2018년 3월 19일

삼일이 채 되지 못하는 장례식.
쪽잠에 수 백여명의 손님을 받아들이기에는 7개월 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버거운 시간이었지만, 80년이 넘는 관계를 정리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다.

작년보다는 모든 것이 쉬웠다.
익숙한 절차를 밟았고 무엇보다 평일, 지방에서 열린 장례식장에 발길이 닿기보다는 손가락으로 전하는 추모가 합리적으로 보이기 충분했다.

환각작용을 일으킬 정도의 마약성 진통제도 통하지 않는 말기암의 고통은 나로서는 감히 공감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의 우주가 시들어가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고 들어왔던 나로서는 이게 잘된 일인지 안 된 일인지 혼란스러워 그저 “되어야 할대로 되었다. 차라리 잘 된 일이다.”라고 우물우물 입으로 흘렸다.

1년 사이 많은 것이 변했다.
나의 1년 역시 많은 일들이 더해진 시간이었지만, 외조부모님들의 1년은 하나의 세계가 완전히 파괴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살겠다던 단단한 말이 죽겠다는 말로 바뀌는데 6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이제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녀석은 그 사이 죽음의 무게를 조금 이해했는지 짧게나마 슬픈 낯빛을 보였다.

따스해지던 날에 종일 비가 뿌리고 이틀날에는 청명한 하늘을 드러냈다.
발인일이었다.
차가운 바람이 숨구멍으로 조금씩 스며드는 게 느껴졌다.

할머니의 옷가지와 짐 꾸러미만을 꺼내서 반쯤 정리했던 집안의 가구들도 모두 들어냈다. 엄마는 조금은 다른 곳이 되어서 기분이 나아졌다고했다.
너무 아파서 시간이 숙성해주기 전에는 바라보지 않아야 될 기억일거라고, 그리 생각했다.

어제. 5일째.
묘 위에 놓여진 한 무더기의 동백꽃에서 향내음이 날 듯 말 듯 했다.
서울 촌놈의 둔감한 몸에도 봄이 오는 듯한 무엇가를 느끼기 충분한 날이었다.

불은 차가운 겨울 속에서 오랜 시간을 숨 죽이다가 튀쳐나온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짧다면 짧은 생의 흔적이지만 어찌 그리도 급하게 거두어가는가. 곧 살아왔던 이야기와 남기고 간 것들이 연기와 흙이 되었다. 마치 새로 태어나는 생명에 화답하듯 화하였다.

어린 날의 혈기는 내게 모든 것에 도전하도록 부추겼다.
그리고 최선의 실패는 스스로를 겁쟁이로 만들었다.
다시 시간이 흘러 이제는 어떻게든 부여잡아야  할 것과 세상이 가는 대로 흘러가도록 두어야 할 것을 조금은 분별할 수 있게 되었다.

구름 너머

무지개가 피어난 곳.
뭉게뭉게 피어난 소문 뒤로
비가 내리지 않는 곳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삶 고개를 구비 구비 내려보며
눈물의 씨를 뿌리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올려볼 적에는 또렷하던 것이
실은 디딜 곳이 하나 없이 높은 바다인 것을 보았습니다.

가슴이 저물듯 아파와
어느 한 점 눈길을 두기 벅차니
이제는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구글 지도 내 타임라인 오류 해결 방법

언젠가부터 Google 지도의 ‘내 타임라인’ 접속이 되지 않았다.
국내에서 구글 지도 서비스에 이런 저런 제재가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쭉 기다려봤는데 마찬가지였다.
해결 방법을 찾아보니 의외로 간단했다.

구글 검색 설정 페이지로 간다.
지역 설정을 ‘현재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바꾼다.
나는 미국으로 바꿨다.

이제 문제없이 타임라인을 확인할 수 있다.

18.02.14

어린 시절의 가장 큰 착각은 행복과 밝음에 대한 오해였던 것 같다.

잘한다면, 좋은 방향으로 간다면 나는 늘 충만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 악마들이 알려준 잘못된 판타지였다.

아프지 않고 기쁘기만 한 것에는 의미가 깃들지 못한다. 진실에는 부재가 담기지 않는다.

잘못된 믿음을 쫓으며 진실의 눈을 가리지 않기를.

기록 시스템

로우 데이터를 따로 기록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

운동일지, 리뷰등이 많이 쌓이고 나면 기존의 틀에서 원하는 자료만 추출해내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그래서는 기록을 하는 만족감 외의 실제적인 의미가 없다.

시간을 내서 미가공 데이터를 기록하는 방식을 좀 더 고민해봐야 한다.

2018.02.25

믿음보다 겸손이 앞서야

오늘은 모 음식 칼럼을 쓰는 사람이 떡볶이에 관해 평한 것이 논란이 됐다는 기사를 봤다.

그리고 그에 관해 사람들이 평한 글들을 읽었다.

내 생각은 이렇다.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하고 그에 관해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한 사람은 어떤 스스로의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경주한 노력은 그 의견에 대한 견실한 방패 혹은 믿음이 된다. 그 결론에 이르기 위한 궤적 안에 얄팍한 반론들의 가지는 스스로가 쳐내고 왔음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개인은 세상을 부분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답이 존재하지 않는 것에 답이라는 깃발을 꽂아봤자 그것은 스스로의 눈에만 비칠 뿐이다.

종종 많은 이들의 공감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의 진위 여부와는 전혀 다른 영역이다. 대게의 가치 판단에 답은 없다. 다만 믿을 뿐이다.

이것이 나의 의견이다.

튼튼한 성은 견고하게 쌓아올린 기반에 있는 것이지, 마지막에 얹어놓은 화려한 장식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자신이 답을 얻고자 노력한 것이 스스로를 무뢰한으로 만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원노트 활용 – 개인화 노트

일전에 디지털 필기에 관한 글을 통해 Keep(킵)과 Evernote(에버노트), Onenote(원노트)의 쓰임에 대해 간략히 적은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 적용했던 활용 방식이 2년이 지난 지금 역시 유효하기 때문에 저는 여전히 같은 방법으로 세 가지 도구를 사용중입니다.
(1차 수집 Keep, 2차 가공 Onenote or Evernote, 3차 저장 Onenote or Evernote, 한 화면 여기저기에 자료를 던져놓고 통합적으로 가공해야 하는 자료는 원노트를 사용하고 텍스트 형식/개별적으로 충분한 자료는 에버노트에 바로 옮깁니다. 에버노트가 원노트보다 가볍고 검색이 강력하므로 자료의 특징에 따라 혼용하는 게 좋습니다.)

특히 최근에 안드로이드 원노트의 동기화가 전보다 빨라져서 만족스럽게 사용중이라, 원노트의 활용법을 공유해보고 싶어 글을 적습니다.

다음은 제 “개인화 노트 – 음식 – 맥주” 중 일부를 찍은 것입니다.

맥주 개인화

새로운 맥주를 마시면 사진을 찍어 해당 노트에 업로드하고 나중에 간략한 감상을 적습니다. 지금이야 그 수가 적지만 이것들이 수 십에서 수 백개 모인다면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울 뿐만아니라 값진 자료가 되리라 믿습니다. 저는 이 자료를 2차 가공함으로서 스스로의 취향에 대한 이해 뿐만 아니라 맥주에 관한 더 폭 넓은 이해를 갖출 수 있을 것입니다.
비단 맥주 뿐만 아니라 와인이나 향수도 같은 방식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에버노트로도 예전에 시도해봤는데 한 개의 노트에 넣으면 스크롤이 무지막지하게 길어졌고, 각각의 노트에 넣으면 너무 개별적인 자료로 인식되어 쓰임이 좋지 않았습니다.

물론 인스타그램과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공개된 글과 개인적인 글은 미묘한 진실성의 차이가 있다고 여겨서 공개 SNS는 소통의 창구로서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제가 기록하는 것들에 대한 원본 소유권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SNS를 활용하더라도 1차적인 기록은 개인 클라우드 노트에 할 생각입니다.

내 인생의 책

<가장 사랑하는 책>

아직도 가야할 길 : 가치관의 혼란을 겪을 때마다 다시 답을 찾기 위해 읽는다. 여유를 가지고 책을 읽다보면 삶을 바라보던 내 오해가 풀리고는 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 동물로 남지 않고 인간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들 때마다 읽는다. 그리고 매번 다시 새겨보는 체로키 인디언의 두 마리 늑대 이야기.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 : 실천적 방안을 연습하는 것에 주안. 첨언이 많아서 책의 내용을 계속 요약해서 정리.

<종종 다시 읽으면 감동과 경이를 주는 책 – 명상하듯 본다>

코스모스

윌든

어린왕자

탈무드

2018.03.20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