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론에 관한 아주 개인적이고 조악한 글

올 한해 내 머리 속을 지배하고 있던 화두는 ‘결정론’이다.

나는 본디 운명따위는 믿지 않는다.
아마도 어려서부터 노력의 가치를 신봉하며 자랐고, 또한 늘 과해보일 정도로 목표에 집중하며 삶의 길을 내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욕심은 많은데, 타고 난 것이 없으니 운명 따위 엿이나 먹으라며 그저 그렇게 된 것이다.
아무튼 보통 사람들이 운명론이라고 부르는 것을 과학자들은 결정론이라고 부른다.

운명이라는 단어를 내리 깔아보는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어려서부터 신은 없다고 생각해 왔다. 머리가 굵어가며 차츰 사회의 부조리함에 익숙해졌는데 이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근거가 되었다.
권선징악은 고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판타지에 불과하다. 같은 역량을 가진 선과 악이 대결을 펼친다면, 단연코 악이 승리한다. 악하다는 것은 결과에 이르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한 사람이 선하기 때문에 절대 사용할 수 없는 수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왜 이타적인 가치를 신봉하는 것이 더 고되고, 나쁜 결과를 낳는가? 그렇다면 신의 가면 뒤에는 악마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인가? 그래 그럴바에 신은 없는 편이 낫겠지.

하지만 어느날 신 존재증명을 읽고 난 뒤에 세상의 정점에 뭔가가 있어야만 할 것같은 쎄한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그것이 종교에서 말하는 인격신은 아니다. 굳이 밝히자면 나는 불가지론자이다. 다만 인간은 우리 세계 바깥에 대해서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까 일단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며, 우주 너머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은 짧은 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그만 고민하는 게 좋겠다고 나의 11살 일기장에도 적혀있다.

그러면 운명도 믿지 않고, 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지 말자는 주의인 내가 왜 결정론을 가지고 이토록 고민을 하게 된 걸까?
내가 이성적이라고 그리고 현 시대에서는 가장 진실에 가깝게 접근하고 있다고 믿는 물리학자 중 일부가 결정론을 지지한다는 사실에 큰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믿음’이 아닌 증명가능한 ‘근거’를 바탕으로 생각하는 과학자들이 결정론을 지지한다?
물론 현대에 양자역학이 등장하면서 미시적 영역에 대한 불확실성을 근거로 결정론이 입지가 크게 줄었으나, 여전히 결정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아직 밝혀내지 못했을 뿐, 모든 것에는 규칙이 존재한다.”라고 말한다.
나는 이 말에 넘어가 하마터면 결정론자들의 의견에 삶을 저당잡히고 침몰할 뻔했다. 다행인 점은 그들의 의견 역시 믿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그 어느 누구도 모든 것에 예측가능한 규칙이 있을 것이라고 천명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런 믿음은 그저 인격신이 있다고 믿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나의 이런 글을 결정론자들이 본다면 내가 자라온 환경과 내가 타고난 기질 그리고 내 기분등 모든 것들에 의한 결과로 내가 이런 결론을 내렸다고 말하겠지만 그런데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알 수 없는 사실에 대해 믿는 것이 다를 뿐이며, 믿음에 관해서는 서로 터치하지 않는 것이 현실적으로 현명하다는 사실을 많은 종교&정치 토론에서 배웠다.

실은 얼마전 아는 형과 여행을 갔다가 새벽까지 음주 토킹중에 결정론에 관해서 토론 할 재미있는 예시가 하나 떠올랐는데 여기 적어보고 싶다.
한 개인이 어떤 선택을 내리는 일을 가정해보자. 전 우주의 모든 시간을 거슬러 그러한 선택은 무한대에 가깝게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오늘 야식으로 라면을 먹을까? 말까? 하는 선택에 조금의 소숫점 오차도 없는 환상적인 50%:50% 의 시행이 결코 존재하지 않을까? 단연코? 물론 이런 일은 내가 우연히 빌린 책 속에 1등 당첨 로또가 들어있을 확률보다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로 희박하지만 모든 공간, 모든 시간을 통틀어 단 한번도 없을 것인가.. 나는 왠지 한번쯤은 있을 것 같다.
그래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냥 한번쯤 있을 것 같다고 믿는다.

‘신은 결코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라고 아인슈타인은 말했지만 내가 창조주라면 나는 랜덤함수를 만들어 넣었을 것이다.

사실 모든게 결정되어 있다고 해도 나는 상관이 없다.
나는 아직까지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영화 속의 주인공으로 순간을 살아가는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운명을 믿지 않아서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주체적인 캐릭터로 살아갈 터이니 참 재미있는 영화가 될 것이다.

바른 몸이 아름답다 – 이 사실을 더 어렸을 때 알았어야 해

이미 알고있어요. 바른 몸이 아름답다는 사실은.

다만 지금의 우리가 알고 싶은, 듣고 싶은 이야기는 어떻게 우리의 몸을 바르게 만들어, 통증을 제거하고 스스로를 아름답게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겠지요.

자, 책장을 펴 봅시다.
책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1장에서는 직립보행과 관련해 우리의 몸이 중력에 대응하는 방식을 설명하고, 현대인들이 가지는 통증은 잘못된 습관과 움직임에서 오는 것임을 역설합니다.

“생명체의 진화란 명확한 설계도 없이 시작된 불법 증개축과 같다.” 아랫돌을 빼서 윗돌에 끼워넣는 임기응변&애드리브라는 표현이 확 와닿았습니다. 순간을 모면하며 진화해 온 우리의 신체는 그래도 제 나름대로의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다만 그 균형의 틈이 어느 이상으로 벌어지면 신음 소리를 내기 시작하죠.

우리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뼈와 그 위에 근육. 그리고 근육 주머니인 근막입니다. 이 근막들이 모인 근막경선이 우리 몸을 띠처럼 두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신체의 균형 문제를 부분이 아닌 전체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저자는 우리 몸을 다시 일깨우는데(신체자각) 마사지(SMR1), 스트레칭, 타기팅(AK2), 보조운동 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스트레칭과 마사지의 차이점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했는데 책의 비유를 통해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한 부분이 느슨해진 고무줄을 양 손가락에 걸고 잡아 당긴다면 고무줄의 약해진 부분만이 더 늘어날 것입니다. 고무줄을 근육 또는 근막이라고 생각해본다면 스트레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긴장된 근육과 근막은  스트레칭으로는 충분히 풀리지 않고, 이미 이완된 부위만이 더욱 이완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마사지, 스트레칭을 통해 근육과 근막을 달래주고 타기팅과 보조운동을 통해 오랫시간 잠자고 있던 근육을 깨워 우리 몸이 가장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신체자각에 이르러야 합니다.

 

다음 장부터는 본격적인 실천적 내용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2장에서는 신체의 각 부분을 진단하고 교정하는 운동들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3장에서는 스쿼트, 데드리프트, 프런트 스쿼트, 프레스를 정확하게 소화해낼 수 있도록 위에서 언급한 기법들을 사용해 도와줍니다.

개인적으로는 3장을 저자의 다른 도서인 강한 것이 아름답다의 내용으로 추가하고 2장의 구성을 더 탄탄히 하는 것이 어땠을까 하고 생각이 됩니다.
(강한 것이 아름답다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전반적으로 케틀벨 운동만 다뤘다면 조금 애매하기는 하겠네요.)

아무튼 저는 저자가 제시하는 운동 철학과 바른 몸을 위한 가이드라인에 적극 공감하는 바이며, 다음 책은 부상 후 재활이나 SMR(폼롤러)에 관련해서 내주시면 제 돈을 적극 투척할 의향이 충만하옵니다.

SHUT UP AND TAKE MY MONEY!

참고로 저자인 코치D님의 네이버 블로그아프니까, 인간이다 포스팅에서 1장의 내용을 찾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현재 저자가 논란에 휩싸여 모든 SNS 계정이 폭파됨(2017.10.22)


  1. Self Myofascial Release(자가 근막 이완) 
  2. Applied Kinesiology(응용 근신경학) 

20150622

미용실에 갔다가 도서관에 갔다.
잠시 화장실에 들렀는데, 왠 할아버지께서 요즘 같은 때에는 손을 깨끗히 닦아야 한다며 손 닦는 시범을 보여주셨다.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아서 알았노라 웃으며 따라서 손을 닦았다.
할아버지께서는 왜 도서관에 왔냐고 물으셨다. 나는 여행 서적이나 찾아 볼 요량으로 들렀다고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원래 뉴욕에 사시는데 비지니스 차 한국에 잠시 지내고 있다며, 유럽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워낙 짧은 시간에 많은 말씀을 하셔서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데, 프랑스는 물가가 쎄니 가지말고 에스토니아, 터키 등지를 경유해서 가라고 하셨다. 식사는 시장에서 깍아서 1달러로 떼울 수 있고 한달에 100달러 이상 쓰지 말라고 조언해주셨다. 또 와인이나 맥주보다는 지역에서 과일이나 곡물로 담근 술이 최고라며 한국에 와서도 막걸리 먹었다고 (ㅋㅋ) 하셨다.
아, 그리고 꼭 혼자가라고 하셨다. 여행은 절대 혼자가야 한다고!!
배낭 안에는 우산과 여분의 운동화를 챙겨넣으란 얘기도 마지막으로 당부하셨다.

나이가 지긋해보이셨는데 왠지 모를 아이같은 미소와 활력이 얼굴에 담겨있어 묘한 상황이라고 느끼면서도 한참을 듣고 있었다.
내일 또 오라고. 할아버지는 내일 또 올꺼라고 말씀하시는데 이상하리만큼 친근한 느낌이 들어서 놀라웠다.

이런 일들이 생기는 날은 묘하게 수면위로 두근두근한다.
매력적인 것도 매력적이지만, 사람들을 중독시키는 활력을 뿜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렇게 다듬어 가면서 늙고 싶다.

닭털 뽑기

잠에서 깼다.
이제 꽤 능숙하게 해내는 편이다만 신경이 곤두선 탓인지 운전을 하고 나면 피로가 몰려온다.
창을 넘겨 살펴 보니 익숙한 풍경에 익숙치 못한 것들이 눈에 걸린다.

마당으로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늘 그렇듯 친척들로 가득 찬 시골은 어딜가나 일거리들이 잔뜩 있는데 이번 풍경은 좀 생소하다.

닭이다. 죽은 닭이다.
모가지가 완전히 꺽인 두 마리의 닭이 커다란 대야안에 들어있었다. 나는 허드렛일을 피할 수 없는 젊은 일꾼이기에 이걸 해야하는건지 고민할 선택지 따위는 없었다. 얼른 장갑을 받아 닭의 털을 뽑기 시작했다.

닭을 잡아본 사람이 없어서 외할아버지께서 손수 몽둥이로 때려 잡으셨다고 하는데, 그 크기를 보니 도저히 맨 손으로 잡을 수는 없을 녀석이었다. 4~5년 동안 자란 한쌍의 닭들은 그 크기가 강아지보다도 크다. 오만상을 하고 닭털을 하나하나 뽑는데 이 털이 내 생각과는 좀 다르다. 무슨 털이 콩나물보다 굵어서 마치 닭의 몸에 박힌 거대한 송곳들을 뽑아내는 기분이었다.

얼핏얼핏 놈들의 대가리를 보니 짧은 순간에 참담한 생각과 기분이 내 머리속으로 엉키어 왔다.

우리가 고기라고 일컫는 것들 역시 살아있던 순간에는 생각을 하고, 감정과 고통 같은 것들을 느끼는 생명체였을 것이 자명하다.
이 흔해빠지고 고리타분한 주제에 대한 생각 뭉터리가 내 머리속을 훝고 지나간다. 사람으로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을 익숙한 고민이기에 생각은 이전에 지나온 길의 흔적을 밟으며 빠르게 이동했다.

사람들이 필요 이상의 육식을 태연자약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죽이고, 베고 손질하는 과정이 남의 손에 맡겨져 있다는 사실이 분명 영향을 끼칠 것이다.

손질은 큰외삼촌이 하셨다.
사람의 몸을 여는 수술 장면을 보면 금새 소름이 끼치고 마는데, 그래도 닭의 손질 과정은 오만상을 하고서라도 지켜 볼 수 있음을 자각하니 뭐라 말할 수 없는 불쾌함과 혼란이 일었다.
그 찝찜함을 떨쳐내기 위해 나는 집으로 돌아와 윌든을 펼쳐봐야 했다.

더 높은 법칙에 관한 이야기.
사냥과 낚시에 대해서 다룬 장이다. 어려운 글은 아니지만 담담하게 진실된 것들을 말하는 윌든은 내게 평화를 안겨줬다. 몇번을 읽은 글이지만 여전히 윌든이 내게 감동을 주는 까닭은 내가 아직 그 가치들을 자연스럽게 내것으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덧. 하루를 잊지 않기 위해 써보는 그날의 하이라이트
– 고추 방아다리 따기.
– 자연산 오디 한 봉지 가득 따서 한웅큼씩 먹어보기.

KB스마트원카드 발급받기

국민은행에서 스마트OTP 3만개를 무료 배포한다는 소식을 듣고 국민은행에 다녀왔다.

원래 토큰형 OTP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 아이를 사용한지 수 년이 지나다보니 배터리가 슬슬 걱정됐다. 수명을 다하여 갑자기 전원이 꺼져버리면 이 OTP로 등록된 모든 은행 지점을 하나 하나 방문해야 할 터였다.
미리 카드형 OTP를 하나 구입해서 교체해야겠다라고 생각 중인 와중에 스마트OTP(=KB스마트원카드) 무료 배포 소식을 듣고 고민할 틈도 없이 냉큼 국민은행을 방문했다.

현재 KB스마트원카드는 서울 지역 30개 영업점에서만 발급가능하며, 7월부터 전 영업점에서 발급 가능해질 예정이다. 발급 가능 지점은 아래와 같다.

스마트OTP는 NFC 기술을 이용하기 때문에 안드로이드에서만 사용가능하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KB국민은행 스마트OTP”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받아서 사용하는데 카드를 발급받을 때 차근차근 등록해주시고 사용법도 알려주신다.

KB스마트원카드(스마트OTP)와 기존에 사용하던 토큰형 OTP

아직 타 은행에서는 스마트 OTP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아서 사용할 수 없지만 빠른 시일내에 스마트OTP만으로 금융거래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란

문득 생각이 나서 적어보는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의 기준

어린 시절 존경하던 어른들의 나이가 되고나니, 그 분들조차 이리저리 흔들리는 하나의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동시에 순간 순간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 흩어지는 나날들과 싸우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이제는 그 분들을 어렸을 때만큼 존경하지는 않는다. 대신 전보다 훨씬 더 좋아하게 되었다. 자신을 지켜나가는 모습이 멋있다.

나는 크던 작던 실수가 잦은 편인데, 앞으로도 바보 짓의 연속 일 것 같다. 정말 그렇게 될 것이다. 종종 실수할 것이고, 누군가와는 상처를 주고 받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내 어린날의 이기적인 모습에 얼굴이 붉어질 것이고, 후회로 얼룩지는 날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세상의 많은 문제들을 도덕적으로든, 타인의 감정을 헤치지 않는 방식으로든간에 완벽하게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마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보통의 사람이 그렇게 될 수는 없다.
근래에 특정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는 늘 겸손을 향해 간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문제를 바라보는 이기심을 모두 덜어내고도 한편에서의 정의가 다른 편에서의 정의와 완전히 중첩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 문제에 대해 소신과 겸손한 태도를 갖추고 있을 것. 어떤 문제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정하지 않으면 기계적 중립의 덫에 빠지기 쉽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겸손이란 스스로 공격받지 않기 위한 방어적인 태도와 다르다. 내가 지지하는 의견조차 한편으로는 한계가 존재함을 인지하고 있는 자세를 말한다.

  • 다른 존재에 대해 공감, 스스로의 개선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일 것. 나와 닮은 사람이 완벽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저 나랑 비슷한 부족한 사람일 뿐이다. 나와 닮아있다는 사실은 편안함만을 보장한다.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면 자신과 다른 부분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할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틀림이 아닌 다름의 영역으로 뻗어나가 스스로를 넓혀 성장할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이와 노인이 죽었을 때 어떤 문화권에서는 앞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던 어린 아이의 죽음을 슬퍼하고, 반면 또 다른 곳에서는 노인의 지혜를 잃은 것을 슬퍼한다고.
두 의견 모두 설득력이 있다.

나는 하얗게 태어나 자신의 도화지 위의 그림을 거침없이 고쳐나가는 그런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수술방에서 나왔다

수술방에서 나왔다.

전혀 예정에 없던 수술이었다.
요 1년 사이에 많이 다치는 것이 사람의 운이란게 있는건지, 아니면 내가 정신을 내놓고 사는 건지.

꽤나 조심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다쳤다. 내 눈으로 보아도 상처가 깊어 지혈만 한 체로 병원으로 갔다.

그런데 의사가 보더니 꿰메는 정도로 안되고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순간 아득해져 물으니 몇 주 쉬고 재활을 하면 될것 같다고 했다.
요 몇년 사이 의사들 수십명을 만나보고 다니며 느낀거지만, 의사들은 늘 두루뭉실하게 얘기한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니 단언하지 않는게 당연하다고 생각이 되면서도.. 그래도 싫다.

심전도, 파상풍, 링거, 수술복, 그리고 더해지는 몇 개의 주사바늘들.
처음이 아니라 익숙하면서도 내 몸이 남에게 맡겨지는 느낌이 거북하다.

‘사고로 목숨을 잃는 과정도 순간일테지?’ 그런 생각이 미치자 내가 하루를 견디며 하나 하나 쌓고 있는 모든 것들이 너무 부질 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아픈 몸을 이끌고 글을 적는다.

“순간을 놓치지 말자.”
지금 이 순간의 기분을 잡아두자. 절대 잊지 말자.

생각을 강요받지 않고 정보를 제대로 섭취하기

오늘은 인터넷 여론 알바단에 대한 논쟁글을 봤다.

인터넷 여론 조작에 대해서는 이미 몇 해전 정치 이슈로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나는 그것이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왔고 점점 고도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치 않는다. 본인의 친구 중 한명이 재수 생활을 마치자 마자 구한 일이 모 학원안에서 여론 댓글을 다는 것이어서 오래전부터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 또한 내가 운영하는 작은 커뮤니티에도 종종 같은 ip대의 체계적으로 설계된 홍보 게시물들이 적힌다. 그들의 장기적이며, 일반인처럼 보이도록 메뉴얼화된 글을 읽다보면  나도 다른 곳에서 참 많이 속고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면에서 모 사건은 아주 멍청한 곳에 외주를 맡겼거나, 본인들이 노하우도 없이 진행한 것이 명백하다.

한번은 ‘언론이 정보를 선별하여 대중을 선동하는 법’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다.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말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A와 B라는 작은 나라에 교통사고가 각각 하루 10번꼴로 난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A국의 방송국에서는 매일 한번씩 교통사고가 일어났음을 보도한다. 반면 B국의 방송국에서는 한달에 한번씩 교통사고를 보도한다. 실제로 A와 B의 교통사고 발생 수치는 다르지 않으나 해당 국가의 국민들이 느끼게 되는 체감 교통사고 발생 수치는 크게 차이가 나게된다. 더 나아가보자. A국에서는 교통사고가 하루에 약 10번 발생나고 매일 보도를 한다. 반면 B국에서는 교통사고가 하루에 약 1000번 발생하는데 한달에 한번씩 보도를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작은 교실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스스로 파악하여 올바른 사고와 결정을 내릴 수 있겠지만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은 충분히 크고 벌어지는 일도 매우 많다. 즉, 누군가가 떠먹여주는 정보만을 받아들이다보면 그들이 이미 가공해놓은 생각의 흐름 그대로 따라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거대 포탈의 기사나 지상파 뉴스, 메이저 신문들을 일체 보지 않는다. 덕분에 몇해 동안은 정치적 문외한으로 살아왔다. 큰 이슈가 터질 때마다 자주 들르는 커뮤니티들의 글들을 살펴보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선별된 정보가 아니다. 그곳에도 악의적 목표를 가진 자들이 상주하고, 또한 전혀 심사 숙고되지 않은 감정적 의견들이 난립한다.

결론적으로 요즘 내가 취하고 있는 자세는 다음과 같다.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주는 매체들을 직접 발굴하는 것이다. 특히 유명 블로거들의 글을 좋아하는데 블로거라고해서 다른 매체들에 비해 신뢰성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들도 사회에서는 의사며 기자고 각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몇몇 블로거들은 사건의 흐름을 꿰뚫어 전문가의 시야까지 얹어 깔끔하게 정리해주기도 한다. 물론 글을 쓰는 사람의 의견이 고민없이 그대로 투사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능하다면 같은 주제로 2~3개의 글을 읽는 편이 좋은 것 같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내가 구독중인 RSS 목록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한번 공유해보고싶다.

2016.07.10
최근에는 진보 성향 매체의 글들을 좀 보았는데, 굉장히 실망을 했다. 그래서 요즘에는 좋은 글을 발견하면 글을 쓴 사람의 이름을 알아두고 해당 기자를 검색해서 본다. 이제는 매체에 대한 신뢰를 거두고 개인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 같다.
jtbc도 사실은 손석희씨를 믿고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16.07.27
메갈 관련 보도를 보니 jtbc도 크로스체크 안하는 것으로 보인다.
팩트 체크라는 책도 내더만 방송하기전에 사실 관계 크로스 체크도 안하는 걸 보니 저딴 것도 언론인가 싶다. 장담하건데 한국에는 신용할 만한 언론이 단 한개도 없다. 그냥 레퍼런스 체크하면서 직접 알아보는게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