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올 8월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발매일을 시점으로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와 스타크래프트2의 캠페인을 재미있게 즐겼다.

예전에 클리어했던 ‘자유의 날개’는 기억을 되살려줄 정도의 캠페인만 선별적으로 골라 플레이했기에 정주행이라고 부르기에 조금 모자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요즘의 나는 취미 생활을 흩뿌려놓았다고 말할정도로 여기저기 흥미가 많은지라 취미가 뭐냐고 물었을 때 오히려 대답하기 곤란한 편인데 스스로가 스타크래프트 덕후라는 점은 매우 힘주어 말할 수 있다.

어릴 적에 도깨비 시장에 가서 여러가지 게임들과 데모 버전이 뒤섞여 있는 CD만 구입하던 내가 난생 처음 구입한 정품 타이틀이 바로 스타크래프트 오리지날이었다. 조그마한 아이가 큰 타이틀을 끌어안고 엄마한테 앞으로 다른 어려운 부탁은 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던 풋내나는 기억이 막 떠오르는 참이다. 그러고보니 그 시절 기억 속에서는 엄마도 참 젊었다.
함께 동봉된 메뉴얼을 수차례 읽었기에 보통은 잘 모르는 스타크래프트 세계관에도 유달리 관심이 많았다. 요즘에야 덕질하기에 좋은 콘텐츠가 여기저기에 넘치지만 그 때는 개인들이 나모웹에디터로 어설프게 만들어 여기저기 깨지기 일수인 홈페이지에 자료를 읽고 또 읽고 매일 매일 방문하면서 새로운 정보가 업데이트되기만을 기대하던 시절이었다. 하루는 어느 책방에서 스타크래프트 관련 소설을 찾았다. 그 내용이 공식 설정과 많이 달라서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책을 놓았는데 지금 보면 그게 일종의 동인지같은 것이었나보다.

시간이 흘러 스타크래프트2의 발매 소식을 들었다. 난 제4의 종족 젤나가가 나오기를 마음 깊이 기대했었다. 단지 친구들과 대전만 즐기는 수준을 넘은 진성 덕후였으므로 내가 알고 있는 세계관 속의 그들을 조작하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에 한스타를 통해 싱글 미션도 틈날 때마다 플레이했던 기억이 난다. 영어를 잘 못해서 그저 눈치로만 상황을 느끼며 해보기도 하고, 다시끔 한스타를 통해 플레이해고,중간 중간 추억을 되살려보기 위해 플레이도 해보고…
그리고 이번에 한국 성우들이 녹음한 리마스터 버전까지 싱글 미션을 꽤나 많이 플레이해봤다.
학교 다닐 때는 친구들과 리그도 만들어서 방과후에 경기도 하고, 다른 반 친구들과 게임으로 교류도 많이 했다. 매번 방학 때면 브레인 서버에서 래더 아이디를 걸고 길드를 부수고 다니는게 취미이기도 했다. 정말이지 스타크래프트는 내게 정말 의미있는 게임이다. 유치하고 순수한 내 어린날에 이 녀석이 함께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 세대에 나와 같은 사람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피씨방을 주 무대로 스타크래프트 – 디아블로 – WOW순으로 옮겨나는 블리자드의 학업 망테크를 탄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나야 디아블로를 한참 하다가 컴퓨터 사양에 부딫혀 스타를 계속 한 것이 중학교 교우관계까지 연결되어 스타크래프트의 고인물 한 층을 담당하게 됐다.

리마스터와 스타크래프트2 캠페인에 대한 감상은 다음에 이어 적도록 하겠다.

몸으로 목격하다

요즘 그런 생각을 한다.

‘정당한 값을 지불하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다.’

공감에 대하여.
그것은 타인을 따뜻하게 녹여줄 수 있는 온도를 가졌느냐에 대한 것일까? 아니면 진정으로 타인의 상황과 감정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일까?

경험에 대하여.
특정한 일을 겪었다는 것이 각각의 개인들에 발화시키는 무엇가에 절대적인 값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은 한 개인에게 어떤 흔적을 남기는가? 경험이란 개별적인 것인가? 그로인해 남겨진 것들은 휘발되지 않는가?

요즘 유발 하라리의 극한의 경험(The Ultimate Experience)를 읽고 있는데 몸으로 목격하다라는 표현이 굉장히 와닿았다.

환희 또는 극심한 고통.
그런 종류의 경험 속에 있을 때 나는 그 기분만큼이나 커다란 다른 감정을 느끼고는 하는데, 오직 나만이 그 경험과 기분 속에 있다는 고독이다.

사실 이런 종류의 생각들을 정리해 절묘한 결론을 내릴만한 재주는 내게 없다.
다만 오늘 나만이 경험하고 타인에게는 오롯이 전달될 수 없는 시간을 보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삶에 있어 의미란 무엇일까.
이러한 기분과 체험 역시 일상 속에 또 다시 휘발되어 갈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중요한 것은 나로 말미암아 누군가가 존재의 의미를 지니는 것 이상이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오직 그것이 선악과를 먹은 우리들을 지탱하는 유일한 의미가 아닐까.

왜 그걸 자주 잊을까.

아팠던 날

컨디션이 좋지 않다.

벌초를 하다가 쏘인 손가락은 바베큐처럼 오동통하게 부어올랐고, 지난 주 잠이 부족했던 날부터 부어오른 턱은 소염제로도 아직 낫지 않았다.

예초기를 돌린 덕에 어깨부터 등은 아직도 움직일 때마다 저릿저릿하고, 온가족이 감기에 걸려버린 통에 침이 넘어갈 때마다 목구멍은 쎄하다.

이런 와중에 이제는 친구가 된, 한 때 군대 선임 형과 대화를 하고있자니 자연스레 군대에서의 일화가 생각났다.

하루는 몸이 너무 좋지 않았다.
주어지는 건 진통제 뿐인 걸 알고있었다. 군장 산악 구보를 하다가 발목이 돌아가 발 전체에 새빨갛게 피가 맺혔을 때도 진통제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고참들에게는 그 흔한 열외도 이등병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 덕에 나는 일병이 되어서도 붉은 발로 살았다.
그런 동네였다.

야간 불침번 근무를 설 때였다.
고작 1시간 반의 실내 근무가 아직도 뇌리에 깊숙하게 박혀있다. 괜찮을거라고 생각했지만 여름임에도 오한이 찾아와 윗니와 아랫니가 달그락 소리를 내며 부딫히는 것이 느껴졌다. 그토록 감기 몸살을 심하게 앓은 적이 없었기에 나는 내 몸 어딘가 완전히 고장나 버렸다고 생각했다. 몸이 다치거나 아프면 욕만 더 먹게 될 껄 알았기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버텼다. 어느새 시야도 조금 흐릿해졌고, 말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놀라운 점은 이 날 밤의 기억은 매우 또렷한 반면 그 뒤의 며칠간은 내 기억 속에 놀라우리만큼 없다는 사실이다. 단지 며칠 뒤 아침 겨우 정신을 차린 뒤 ‘이제 살았다’라고 나지막히 생각했던 순간만 떠오를 뿐이다.

글을 적다보니 오늘 컨디션이 최고는 아니지만 썩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