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 IBK 챔버홀에서 하는 지그문트 그로븐( Sigmund Groven) 하모니카 콘서트에 다녀왔다.
나는 하모니카 연주가 낯설다.
어렸을 적 외갓집에서 하모니카를 발견하고 외삼촌들에게 몇 번 불어달라고 졸라서 짧은 몇 마디의 음을 들어봤던 게 전부다. 나도 하모니카를 조심스럽게 몇 차례 입에 대보기는 했지만 그 뿐이었다. 그 하모니카는 그다지 위생적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머리속의 하모니카는 ‘삑삑-‘터져나오던 외마디 기억이 전부이다. 그런데 하모니카로 콘서트를 한다니… 포스터 속 할아버지1는 얼마나 대단한 연주를 하기에 저런 미소를 지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
결과적으로 썩 좋았다.
사실 1부는 좀 무료하게 흘러갔다. 교양머리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처음 잠시 동안은 노르웨이 할아버지가 옥수수를 힘차게 입에 물고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이 새로운 악기에게 머리 속 공간을 내어 줄 시간이 좀 필요했던 것 같다.
스스로에게 “악기란?”이라는 질문을 던지면 난 크게 아래와 같은 추상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피아노(건반악기). 물방울 위를 통통 뛰며 걸어가는 애들.
바이올린(현악기). 구슬프게 우는 애들.
드럼(타악기). 심장 소리처럼 뛰는 애들.
그런데 그 동안 내게는 관악기에 대한 이미지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모니카 연주를 들으며 ‘이 음색은 무엇과 닮아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우선 하모니카도 처연하게 울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하모니카는 소년과 목동들의 발랄한 도구라는 내 머리 속 벽이 조금씩 허물어졌다.
그리고 때로는 청명하게. 하모니카는 새들의 지저귐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1부 말미에 아리랑을 들으면서부터는 그저 음악 그 자체만을 온전히 들을 수 있었다. 국악 소녀 송소희를 옆에 데려다놓으면 정말 멋질 것 같았다.
2부는 아코디언 연주와 함께 시작되었는데, 멋진 신사2가 갑옷처럼 아코디언을 두르고서는 등장했다. 오른손으로는 건반을 현란하게 두드리고 왼손의 베이스로는 웅장한 숨을 토해냈다.
쫙 빼입은 검은 양복만큼이나 기럭지도 쫙 빠져서 양손으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모습이 마치 좌청룡 우백호를 채찍처럼 휘두르는 전사같아 그저 숨죽여 지켜보았다.
게다가 터키 행진곡3이라니! 운동할 때 듣는 리스트 중 하나라 매일 듣는 곡인데 여기서 만나다니 반가움과 감동이 밀려들었다.
다른 하모니카 연주곡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노르웨이의 민요인 Varsog였다. 이 곡은 우리에게 익숙한 곡이기도 한데, Henning Sommero를 시작으로 Multicyde – A Better Day. 그리고 한국에서는 JTL – A Better Day로 이어지는 곡이다. 어려서부터 이 곡의 전주가 너무 좋아서 원곡까지 찾아 듣고는 했었는데 여기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어느 힘든 날 고개를 들어보니 너무도 아름다운 석양을 하늘에 걸려있는 걸 보았을 때 느낀 그런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참고로 나는 세 곡 중에 Multicyde의 곡을 제일 좋아한다.
그렇게 멋진 공연을 마치고 두 차례나 더 앵콜 무대를 보여준 하모니카 할아버지께 경의를 표한다.
연주를 듣고 나오는 길의 음악 분수에서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나오고 있었다.
- 지그문트 그로븐은 노르웨이에서 1946년에 태어났다. 한국 나이로 이미 70대이다. ↩
- 마티나스 레비츠키(Martynas Levickis) ↩
- Mozart Piano Sonata NO. 11, 터키풍으로 혹은 터키행진곡으로 불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