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이란

자주 많이 웃는 것
지성인들의 존경심과 아이들의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에 감사하고, 배반한 친구들을 참아 주는 것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알고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찾아내는 것
건강한 아이, 작은 정원, 보다 나은 사회 환경과 같이
세상을 좀 더 나은 것으로 남기는 것
우리의 삶이 한 생명이라도 편안하게
숨 쉬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성공.

랄프 왈도 에머슨

김어준 – 나는 언제 행복한 사람인지

예전에 참 좋아했던 김어준씨의 강의다. 맘이 혼란스러울 때 종종 듣고는 했었는데 몇 년만에 다시 듣게 됐다. 정말 우연히 강의가 눈에 띄기에 아침 식사를 하며 틀어놓고 들었다.

오랫만에 강의를 들으니 예전에 비해 다르게 느껴지는 바도 있고, 해당 영상의 댓글을 보니 합리적인 비판도 있다고 여겨져 나름대로 강의에서 취할 수 있는 유익한 삶의 태도를 정리해보고자 하는 맘이 생겼다.

강의는 참 재미있다. 김어준씨의 본인의 기상천외한 경험담과 재미있는 입담을 통해 우리 맘을 두드린다. 하지만 실제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것을 통해 무엇을 배웠느냐는 것이 되겠다. 단순한 재미를 위해서라면 영화관에 가는게 더 낫지 않냐는 말이다.

일단 강의를 통해 받아들여야 할 가치는 두가지다.

1. 자신이 언제 행복한 사람인지 알아라. (=자기 욕망의 주인이 되라.)
남들이 한다고 그냥 무작정 따라 하지말고 본인이 진짜 원하는 것을 하라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듣다가 예전과는 다르게 잠시 그런 의문도 들었다. 사람의 욕망이란 어느정도 보편적인 부분도 있지 않을까? 맛있는 음식, 편안함, 아름다운 것들. 그렇다면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욕망이란 무엇일까?
개인간의 차이는 있을것이다. 굳이 설명해보자면 우리는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를 거치면서 남은 인생을 통해 완전히 바꿀 수 없는 각 개인의 특질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부정하기보다는 올바른 방향으로 키우는 것과 동시에 그 길위에 자신의 행복을 도모하는 것이 낫겠다.

2. ‘당장’, ‘그냥’ 해라.
자기 욕망의 주인이 되라는 첫번째 가치와 연관이 있는 말이다.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처음부터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나이가 먹어도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원한다는 느낌이 들면 당장 그것을 하면서 자신을 찾아가야 한다.

앞뒤 재지말고 그냥 해야 한다.
하고싶은 일들은 대게 힘들다.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라면 당연히 힘들 것이고, 그 어떤 즐거운 일이라도 힘든 지점은 함께 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하지 않아도 될 현실적인 이유를 만들거나 들으려고 하지말아라.

이렇게 직접 부딫혀보고난 뒤 진짜 원하던 것이 아니라면 또 다시 다음에 원하는 것을 찾아가면 그 뿐이다. 단 한번뿐인 인생에 최대 만족과 후회를 줄이기 위해서는 바삐 움직여야 할 것이다.

물론 안정감을 위해 멈춰도 좋다. 그럴 때 자신이 최대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걸 진정으로 확인했다면 말이다.

3. 당장 행복해져야 한다.
행복은 저축되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오직 현재. 그리고 현재. 또 다시 현재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오늘의 행복을 팔아 내일 행복하기 위해서는 내일의 행복이 오늘 버린 행복의 몫을 더한 그 값 이상이어야 할 것인데 그럴 일은 거의 없다. 즐거운 일을 내일 두배로 하는 것보다 이틀에 걸쳐 하는 게 훨씬 행복하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오늘의 행복을 매일 취하는 것이 영리한 것이다.

  • “이것들이 계획을 세웠어?”
    계획에서 실로 무가치한 것은 예측 불가능한 영역이다. 예측 불가능한 것은 자기 만족이자 소설이지 효과적인 계획이 아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계획보다는 소설을 쓰고 있다. 그러니 대부분의 계획은 단기적으로 세우되 인생에서는 계획 대신에 누구에게도 이견이 없을 원칙들을 세워라.
    (예 – 건강을 위한, 소중한 사람을 위한)

생각과 행동 빚기

마음의 길은 습관적으로 발화되는 것이다.

어떠한 행동에 다양한 이유를 붙여보지만 반례와 치명적인 반론은 늘 존재한다.

어떤 종류의 감정이나 생각도 온전히 이성적일 수 없음을 인정하자. 인정하기 싫지만 거의 모든 생각과 행동의 근저에는 지난 경험과 유전 지도에 따른 판단이 앞서있다.

크게 생각하기 위한 첫걸음은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에서 잠시 떨어져나와 바라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두번째로는 나 스스로를 내가 원하는 대로 컨트롤할 수 있음을 믿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황 속에 있는 모든 개인에게 가장 나을 행동을 하는 것이다.

현명한 행동이란 습관이 되지 않으면 불쾌하고 화나고 힘든 종류의 것이다.

수렵 채집 동물인 인간의 몸과 두뇌는 원래 현명하게 행동하도록 조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혜롭다는 건 그다지 자연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동물로 태어났다고해서 그렇게 죽을 필요는 없다. 불편함도 익숙해지면 내게 맞는 옷이 된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순수함을 유지하고 추하게 늙지 않으려면 경험을 사례 판단의 척도가 아닌 사고의 폭을 넓히는데 이용해야 한다. 그러자면 타인을 대할 때 직관의 일부 영역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경험을 쌓아 사고를 넓히되 실제 사실이 아닌 부분을 스스로 채워넣어 판단하지 말 것. 모든 사례는 개별적으로 판단하고, 관계에 최선을 다할 것.

우리가 경험적 직관에 의지하는 것은 표면적으로 볼 때 이익을 주기도 한다. 허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이나 사랑, 배려등 숭고한 가치는 그런 동물적 감각을 일부 제한함으로서만 추구할 수 있다.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길은 더 많은 상처와 자기 연민을 이끈다. 그러나 진정 고귀한 가치를 성취하기 위한 다른 길을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는데 그런 것들의 값은 인내와 자기 성찰의 시간으로 지불해야 하는 법이다.

원칙을 정하되 그 원칙을 스스로 부술 수 있는 유연함을 연습할 것. 원칙이나 사상은 모두 사회적 합의에 불과하므로 인위적 믿음에 매몰되어 더 중요한 가치를 잃는 과오를 범하지 말 것.

사전

나는 사전이 좋다.

지금이야 대게 온라인으로 사용한다지만, 어릴적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먼지 향이 물큰하게 바닥으로 깔리던 사전이 생각난다.
서먹하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서걱거리는 소리가 좋았다.
그 낯설고 형용되지 않던 혼란함이 차차로 익숙해지는 기분이 좋았다.

내가 생각하는 것. 머리로 보기 때문에 나만 보이는 것들을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 낯선 단어들을 보고 있으면 그만큼이나 세상과 좀 더 가까워진 것 같아서 맘이 안정됐다.

보고 느끼고 생각한다.
사진은 그저 빛을 박제한 것에 불과하기에 나는 그것들을 언어로 박제하려는 시도를 해본다.
짐짓 이런 저런 표현을 치렁치렁 달아서 내가 느끼는 것들과 비슷한지 비교해본다. 그리고 성에 차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앞뒤로 깍둑깍둑 썰어본다.

사실 글을 적는다는 건 나를 더 투명하게 번역하는 행위인 것이다.

무제

인생은 짧다.
그건 수백일에 그칠 수도 있고, 수십년이 될수도 있으나 각 개인들이 원하는 모든 것들을 성취하기에 짧다는 건 부정할 일이 없을 것이다.

인생 무상이다.
우리는 태어남을 선택하지 않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자유는 있으나, 삶은 고행이다라는 명제가 띤 세상에 아직 살아있다는 것은 이 곳에 소중한 뭔가 남아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허나 이것은 살기를 선택했다기보다는 죽지 않기로 결정한 소극적 생존에 더 가깝다. 삶의 의미에 대한 결정을 유예하고 고통과 기쁨의 크기를 조심스럽게 가늠해본다. 순간의 기쁨을 고통의 마취약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살기를 결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숨을 쉰 체 죽어 있는 것이다. 어떻게 살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이유를 던져주지 않은 세상에 자기만의 이유를 달아야 한다.
몇 해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몇 가지 작은 이익을 위해서 마음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함부로 판단해보자면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대게 그런 것 같다. 어린 시절동안 몇 개 가치의 무게를 양손에 가늠해보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언제든 떨어지지 않는 행동이 될 정도로 완전히 내 것이 되지는 못한 생각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 사랑하는 것. 이 두가지는 목숨을 팔아서라도 지켜야 할 것이다.

그 두가지를 침해하지 않는 경우 나는 즐거움을 최우선 가치로 둔다. 더 크고 행복하게 살기위해서 포기해야 될 것들은 가식, 타인의 시선, 무의미한 사회의 관습 따위다.

바보같지만 왠지 이런 생각을 똑 부러지게 적어놔야할 것 같아서 여기 적어둔다.

인터넷 토론의 무의미함

예전에 인터넷 토론 커뮤니티를 만들려고 한 적이 있었다. 허나 완전히 망했다. 그 이유인즉슨 이렇다.

사람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감정적이다. 실제 오프라인 토론에서도 나은 결론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지켜내기 급급한데 온라인 토론에서 더 나은 결론이 도출되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일단 통계와 자료를 가지고 텍스트로 논리적 토론이 가능한 수준의 사람들만 모으는 것이 일차적으로 큰 과제이다. 보통의 커뮤니티는 이 부분에서 완전히 실격이다. 진행되는 주제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자기 우물의 의견이 진리인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이 한 둘만 끼어도 토론이 진행이 안되는데 보통의 온라인 게시판은 대게의 구성원이 이렇다. 그래서 늘 각 커뮤니티의 성격대로 결론이 난다.
참 바보같은 일이다. 토론이란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하거나 현 실태를 엄밀하게 알아 선택하는 것이 목적일테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인터넷 공간의 자유게시판을 보지 않는다. 오직 정보성 글과 엄선된 자료만 읽을 뿐이다.

그렇다고 사설이나 통계자료, 논문등이 항상 진실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삼인행필유아사라 했다. 굳이 진흙탕에 들어갈 필요는 없지만, 누구의 말이라도 귀 담아 듣고 그 말을 스스로 가려낼 수 있는 사려가 필요하다.

‘무제’한 토론

더 민주 엿이나 먹어라.

사표가 될까봐 울며 겨자먹기로 20대 내내 지지했던 내 맘이 너무 헛헛하다.

정치가 쇼라면, 쇼를 하는 것이 권력 획득에 필요하기에 능숙한 극의 연출이 정의에 닿을 수 있는 것이라는 변을 할 수야 있겠지만,

그 연극은 지나가던 행인의 가슴에 작은 번짐하나 주었던가? 그저 골수 팬들의 골수를 뽑아먹다가 적당히 버리는 그런 조악한 쇼를 하는 극단을 계속 바라봐 줄 만큼의 자비는 없지 않을까.
그들은 과연 누구를 울렸는가? 이미 울기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사람외에 눈물지은 사람이 있던가.

쇼를 하기로 했으면 진짜 광대가 되라. 길거리의 악사도 한 푼을 구걸하기 위해서 오랜 세월 갈고 닦은 정갈한 곡을 선사하는 법이다.

마음의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눈물을 지을 준비를 하고 있던 사람들조차 힐난을 하고 있는 것을 보라. 이것은 실패한 쇼다. 좋은 소재와 맛깔 좋은 캐스팅에 시선을 끌다가 쪽대본에 삼류 신파극으로 끝나버린 저질드라마다.

적당한 명분. 적당한 분기탕천. 적절한 패배.
무제한 토론에 한참 고조되던 마음이 실은 ‘무제’한 토론임을 알게되어 그 끝이 너무나 옹졸해 보이니 이번에는 응당 욕 좀 해야 맘이 풀리겠다.

우리는 백년 굳어 뒷목이 빳빳한 벽돌도 울리는 그런 대국민 사기극을 원한다.

02/11

사람이 살다보면 이런 저런 일들이 있잖아요.
기쁠 때, 힘들 때.

정말 죽을 것처럼 힘든 나날들이 있는데 이 나날들을 그저 견뎌내는 것이 아니라 곱씹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그래야 좀 멋지게 나이를 먹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인간관계의 현실에 관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한다.
“어. 맞아.”

관계에 오는 갈등은 통제하기 너무 복잡 미묘해서 내가 바뀌고자 노력하는 것이 한 명을 얻고 반대로 또 다시 한 명을 잃는 결과를 가져오는 ‘특성’에 불과하다면 관계에 대한 노력은 물거품 같은 것이다.
“아니. 완전히 그렇지는 않아.”

세상에는 동물과 다른 우리 인간의 기준이 있다. 그 중에는 선과 악이라는 개념도 있다. 옳은 것, 그른 것, 불분명한 것. 개 중에 불분명한 것들은 늘 우리 인간에게 심오한 질문을 던지지만, 옳은 것과 그른 것 역시 명백하게 존재한다. 여기에 대한 기준점이 없이 누군가는 늘 나를 미워하는 것이 관계에 대한 진실이라고 규명하고 그저 ‘이게 현실이니 포기하는게 편해’라는 것은 바보가 되어 행복을 누리려는 비겁한 자의 변명이 아닌가 생각된다. 바꿔 말해 우리는 선한 자가 좋아하고, 악한 자가 미워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물론 너와 나의 차이에 불과한 것들로 남들에게 미움을 살 수도 있다. 이런 문제는 현실적으로 인정 할 필요가 있다. 안타깝게도.

다음으로 중요한 질문은 관계에서 찾아오는 갈등 문제이다.
일단 누구와의 관계이던 갈등이 찾아오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성격, 환경, 사건, 오해등 갈등이 일어날 요소는 차고 넘쳐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갈등 없는 관계는 이미 끊어진 관계이거나, 무언가 덧칠해진 관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대한 갈등을 만났을 때 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해소하려고 노력할 것인가? 아니면 그저 갈등 속에 관계의 신선함이 헤졌음을 인정하고 체념하거나 새로운 관계를 찾아나설 것인가? 안타깝게도 중간은 없다. 사람이 동시에 품을 수 있는 인간관계는 시간만큼이나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답은 없다.
각 관계의 중요도와 성격에 따른 개인의 선택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위에서 말한대로 한 사람이 긴밀하게 맺을 수 있는 인간 관계는 한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성품이 훌륭한 사람들을 가까이하고 갈등을 해소해나가는 방향으로 인간 관계를 꾸린다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위의 영상은 박신양씨의 스타특상쇼 영상인데 행복에 대한 현실 인식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해서 덧붙여봤다. 힘든 시간 역시 소중한 내 인생이다.

이상주의자가 단단한 현실을 만나면 깊숙히 좌초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해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어둡게만 보는 것도 안될 일이다.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기르자. 냉소주의보다는 유머를 가까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