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키터리지 – 인생 엿보기

※ 이 글은 올리브 키터리지를 소개하는 글이 아니라 책을 읽었다는 전제하에 적힌 글이다. 사실 과제로 적었던 글이기는 하나 당시에 내 생각을 솔직하고 진지하게 적었기 때문에 다시 블로그로 옮긴다. 그래도 역시나.. 과제 제출이 목적이었던지라.. 너무 무겁고 좀 길다. 결국 나만을 위한 기록이다.

(당시에 함께 과제로 했던 ‘까르마조프의 형제들’과 ‘월든’의 감상문도 역시 단지 과제라고만 생각하고 적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시 읽어보고 싶지만.. 폐기처분한 것 같다.. ㅠ 지금은 당시 교수님이 학교를 떠나셨기 때문에 감상문이 잘못된 경로로 쓰이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었습니다.
실은 급하게 책을 읽어야 해서 집에서 조금 떨어진 도서관에까지 다녀왔습니다. 책은 평소에도 틈틈이 읽다보니 읽고 싶거나, 필요가 있는 책들을 항상 구입하기엔 나름 부담이 되서 빌려서 많이 읽는 편이랍니다.

뭐, 덕분에 조금은 떨어진 ( 걸어서 30~40분 ), 이사오기전에 예전에 살던 , 동네까지 천천히 걸어서 다녀와 봤습니다. 이런 것도 조금 운치 있네요. 표지에는 당당하게 ‘2009 퓰리처상 수상’이라고 적혀있네요.

퓰리처상이라… 뭐 사실 책도 본인 기호에 맞는게 있다고 믿는 편이라 이런 상의 권위는 잘 믿지 않습니다.
책을 봤습니다. 딱 첫 페이지를 읽어나가면서 느낀 기분은 여성스럽다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온화하고 부드럽다고 할 수 있겠네요. ‘헨리 키터리지’라는 캐릭터의 색깔이 초반부에 베어나와서 그런 느낌을 받은 듯 합니다. 그리고 조금은 의아했습니다. 엥? 제목을 잘못봤나….. ‘올리브 키터리지’는 남편 ‘헨리 키터리지’에게 짜증스러운 말만 간헐적으로 툭툭 던지기만 할 뿐 전면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계속 한 챕터 챕터를 읽어나가면서 올리브와 그녀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소설을 채워나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사건의 주변이나 사람들의 기억속에 등장하는 올리브를 찾게 되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책을 읽으실 분들을 위해서 그 내용은 어느 한 부분도 언급하기가 꺼려지네요. 왜냐하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올리브’라는 사람의 인생 한번을 경험한 듯한 기분이 들었거든요. 어려서 봤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생각나는 책이었답니다.


내가 만약에 올리브 키터리지라면?
만약 백설공주가 사과를 끔찍하게 싫어했다면?
제우스가 애처가였다면?

이런식으로 생각해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나는 어렸을 적에 역사적 사실이나 이야기의 맥락을 살짝 바꿔 놓고 사건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상상해보는 놀이를 즐겼었다. 이 놀이는 항상 흥미로웠고 동시에 상상력을 자극시켰다. 대게는 생각지도 못했던 작은 변화로 인해 기존의 이야기가 조금씩 계속해서 틀어지더니 결국에는 180도 뒤집혀버리는 식이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지금도 무언가에 대해서 새로운 발상을 가지거나 다른 시선을 던져보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때문에 내가 올리브 키터리지라고 생각해보는 것도 기대되는 작업이었다.

소설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올리브의 어린 시절과 젊은 날은 어땠을까? 그 하루 하루의 사건, 사고들이 모여 우리가 알고 있는 올리브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고민해봐도 내가 그녀로써 자랐다면 나는 그녀와 다른 방향으로 성장했을 것만 같다. 그녀의 날카로운 성격과 의사표현 그리고 격렬한 감정 변화는 나와는 조금 다르다. 그녀가 나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얘기하고 있는 게 아니다. 다만 나는 날카롭고 공격적인 성향은 다듬어 나가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이런 면이 여과없이 드러난다. 발랄하게 욕지거리를 하기도 하고 타인의 맘에 상처를 줄 만한 비판도 썩 잘한다. 물론 이것은 세상과 교류하는 그녀의 성향. 즉, 방식일 뿐이다. 키가 크고 아이들이 무서워하던 수학 교사인 그녀는 실상 너무나도 따뜻한 사람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크로스비에서 32년 동안이나 교직 생활을 해온 탓에 지금은 훌쩍 성장해버린 마을의 많은 제자들. 즉, 젊은 어른들이 그녀에게는 나이든 아이들로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 그녀를 보는 제자들의 시선과 그녀가 그들을 대하는 것을 보면 그녀가 심성이 고운 사람이라는 걸 부인 할 수 없다. 자살한 어머니에 대한 끔찍한 기억을 피해 마을을 떠난 케빈과 우연히 만나 가식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모습이나, 거식증에 걸린 한 소녀의 빼빼 마른 몸을 보고 눈물을 훔치는 그녀의 모습에서 교육자로서나 한 인간으로서 애정이 뿜어져 나오는 게 느껴진다. 올리브는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생각만큼 약하지 않다고, 나이가 들어서 병으로 쓰러지는 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강한 사람이다. 하지만 남편인 헨리와 아들인 크리스토퍼에게만은 조금 더 친절하고 솔직한 태도를 가질 순 없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남편인 헨리와 아들 크리스토퍼는 그녀에게 확실히 특별한 존재들이 아닌가? 훗날 헨리가 이렇게 말한다. “결혼하고 수십 년을 같이 사는 동안, 당신은 한 번도 사과를 한 적이 없는 거 같아. 무슨 일에도.” 이 순간에도 올리브는 민망했는지 헨리를 쏘아 붙인다. 물론 헨리는 올리브의 성격을 알고 있고 그러한 부분도 함께 사랑했을지 모르지만 아들 크리스토퍼는 그렇지 못했다. 크리스토퍼는 우울증에 시달렸을 정도로 괴로움에 시달렸다. 올리브에게는 아버지가 갑작스레 자살로 세상을 떠나고, 열병처럼 남 모르게 사랑을 나눴던 짐 오케이시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일. 거기에 올리브 자신의 격한 감정 변화가 더해졌다. 때문에 사랑하는 크리스토퍼를 본의 아니게 괴롭히게 됐던 상황이 만들어졌다고 생각된다. 크리스토퍼가 우울증을 앓기 시작한 그 때에 올리브는 아들이 아닌 자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봤어야 했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행동으로서 관계개선을 위한 노력을 해야만 했다.

마흔 넷의 올리브는 동료 교사인 짐 오케이시와 사랑에 빠졌다. 헨리를 버리고 함께 도망치자고 하면 그리 하겠냐의 짐의 물음에 올리브는 “응” 이라고 대답 할 뿐이었다. 그 둘의 대화 속에 그녀가 짐을 사랑한다는 진실성은 엿보이지만 사실 얼마나 진지한 대답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가 실제로 그녀에게 도망치자는 제안을 했다면, 올리브는 역시 사랑하는 헨리와 그와 그녀 사이의 아들 크리스토퍼를 두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짐과 올리브는 사이에는 단 한번의 키스나 신체적 접촉도 없었다. 또한 후에 세월이 많이 흐르고 나서 올리브는 헨리 같이 충실한 친구를 떠나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위의 상황으로 미루어 보아 짐이 사고로 죽지 않았더라도 올리브는 이 일을 마음으로 진통하고 마는 슬픈 기억으로 끝냈을 것 같다. 사실 남편 헨리에게도 마음에만 깊이 담아둔 사랑이 있다. 헨리와 같은 이름의 남편을 잃은 미망인 데니즈. 데니즈는 올리브와는 대조적으로 굉장히 여성스러운 인물이며 헨리가 젊은 시절 운영했던 약국에서 함께 일했던 사이이다. 서로간에 사랑하는 헨리와 데니즈, 올리브와 짐. 여기에서 두 남녀가 사랑해서 가정이라는 결속을 이뤄야만 하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오히려 부조리 한 것은 아닌가 하고 의문이 들었다. 실은 소설의 이 부분에 대해서 가장 진지하게 고민을 해봤다. 소설에서 여러 커플들을 통해 계속적으로 환기시키는 소재이기도 하다. 불륜 혹은 로멘스. 올리브는 짐에 관한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헨리가 아무 것도 모르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올리브가 짐이 사고로 죽은 뒤 몇 날 며칠을 슬퍼했고 과도하리만큼 오열했을때 헨리는 그러한 사실을 깨달았다. 심지어는 아들 크리스토퍼 조차도 어렴풋한 의중을 가지고 있었다. 헨리는 자신의 사랑을 마음속으로만 묻었고, 그녀의 사랑도 묻었다. 가정을 가진 사람에게 새로 나타난 사랑. 이런 생물학적인 불 같은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쿨리지 효과라는 말이 있다. 남성이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서 성적으로 끌리는 현상을 말하는 것인데, 남성들은 다른 외적 요인들이 아니라 그저 새로운 개인이라는 의미에서 끌리는 것이라고 한다. 비단 정도의 차이일 뿐 남성뿐만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 내 생각을 결론적으로 적어보자면 ‘진지하게 서로를 사랑했었고 충분히 결혼이라는 제도를 숙고해본 소양이 있는 성인이라면 스쳐 지나가는 사랑에 대해 가정을 지킬 의무가 있다고 생각된다.’ 결국 욕망과 순간적인 감정에만 치우친 사랑이 아니라 진실된 의미의 사랑은 믿음과 노력, 추억으로 숭고하게 연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순 아홉 올리브의 6월은 힘든 달이었다. 병원에서 만난 총기강도에 의해 키터리지 부부는 화장실에서 손이 꽁꽁 묶인 체로 끔찍한 경험을 했다. 총부리가 자신의 머리 앞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는 그에게, 그는 다시 그녀에게로 서로의 가슴 깊은 곳에 상처를 내는 비수 같은 말들을 내 뿜었기 때문이다. 올리브는 신실한 기독교인인 남편에 대해서 비방하며 물어 뜯었고, 헨리는 아들이 떠난 것은 그녀가 아들의 인생을 접수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쩌다가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부부가 서로의 마음 속에 남긴 상처는 큰 흉터로 남게 되었다. 왜 조금 더 마음에 여유를 가지지 못했을까? 상황이 너무도 그들을 깊이 조여와 생각의 속도보다도 내뱉는 말의 속도가 빨랐던 것 같다. 나는 온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죽음을 맞이 하는 것이 참으로 아름답고 죽음이라는 이름에 걸 맞는 모습이라 생각한 적이 있다. 내가 올리브였다면 죽게 될 지도 모르는 그런 상황에서 평생을 같이했던 배우자에게 더욱 아름다운 말들을 해줬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오래된 영화가 되어버린 ‘타이타닉’ (글 작성 당시 2010년 후반에는 오래되었으나 지금 2012년 전반기에는 3D로 재출시되었다.) 에서 배가 침몰하는 가운데 서로를 껴안고 있던 노부부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오버랩 되는 순간이었다.

헨리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던 날. 크리스토퍼는 남편과 손수 만들어 가꾸어 놓은 아름다운 집을 버리고 이미 캘리포니아로 떠나버린 뒤였다. 올리브는 혼자가 되었다. 헨리는 앞도 보지 못하고 말도 못하게 되어 버렸다. 때문에 그녀는 사랑스럽게 키운 아들이 왜 자신을 미워하게 되었는지 더욱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그녀의 생각대로 크리스토퍼의 전 부인 수잔 때문도, 아들을 도와주고 있는 정신과 전문의 때문도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잘못은 그녀에게 있었고 서로의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도 그녀가 망쳐버렸다.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녀가 나빴다기보다는 조금 괴팍했고 상황이 좋지 않았다. 자신은 사랑으로써 한 행동이 크리스토퍼에게는 견디기 힘들고 괴로웠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어야만 했다. 남일 같지 않게 요즘에는 빠르게 변해가는 가치관의 차이 때문인지 그저 환경이나 상황이 그렇게 만든 것인지 모르겠지만 부숴져 버린 가정이 참 많이 있다.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다만 사람들이 너무나 바쁘고 힘들어서 조금 소홀해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방법은 그저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피는 물보다도 진하지만 우리 몸에 흐르는 것 중에 가장 진한 것은 땀이 아닐까 생각된다.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서로 보듬어 가다 보면 언젠가 서로의 마음을 다시 열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크리스토퍼도 올리브도 아직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여러 가지 장애물로 서로가 불편할 뿐인 것이다.

시간이 흘러 결국 올리브의 소중한 친구이자 선량한 남편. 헨리도 세상을 떠났다. 올리브에게는 자신에게 맞는 자리가 필요했다. 그 자리에 놓여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자리. 때문에 여러 가지 일들도 해보았지만 다들 허사로 느껴졌을 뿐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만난 잭커니슨. 올리브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해 도움을 준 공화당을 지지하는 재수없는 노인이다. 그는 아내를 잃었다. 레즈비언의 딸과의 관계도 좋지 않다. 비슷한 상처와 비슷한 지옥에 살고 있는 두 사람은 필연적으로 서로의 곁에서 자기의 자리를 발견했다. 올리브 말대로 예전이라면 결코 서로를 선택하지 않았을 두 사람이 말이다. 내가 나이가 들어 올리브의 나이가 되면 내 노년의 위로를 어디에서 받을 수 있을까? 전혀 모르겠다. 안다고 이것 저것 말한다 해도 실은 거짓말일 것이다. 내게는 아직 잃어버릴 동반자도 자식도 없을뿐더러 달려온 길보다는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더 길어 보인다. 다만 언젠가는 헤어지게 될 부모님을 생각하면 그 때의 기분이 노년의 상실감과 비슷할까? 그리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이 약해져만 가는 신체적인 한계를 느끼게 되면 이제는 내려갈 때라는 걸 인정 할 수 있을까? 답은 없어도 언젠가 그 날이 오리라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솔직히말해 내가 올리브가 되어서 생각해보는 과정은 그냥 다른 인물을 심도 있게 이해하고 호응하는 것보다도 그녀의 삶에서 배운다고 말하는 게 맞는 표현인 듯 하다. 삶에서는 사소한 것 하나 하나가 만만치 않고 높은 벽들 투성임에도 꿋꿋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사람들과 소설 속 올리브를 보면 사람이란, 인생이란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눈뜬 자들의 도시

읽은 지 꽤 지난 책입니다.
관련해서  ‘눈먼 자들의 도시’를 부대에 있을 때 먼저 읽어봤어요. 읽을 만한 책이 별로 없어서 찾다가보니 영화 제목으로 봤던 책이 있더라고요. 냉큼 집어들었죠. 덕분에 굉장한 책을 읽었다는 느낌입니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나중에 영화를 구해서 보고 나서 함께 포스팅 해 볼 생각입니다.)
그리고는 잊고 있었는데, 이 책은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눈먼 자들의 도시.. 엥??!? 패러디물인가…?’
그런데 JOSE’ SARAMAGO가 당당히 찍혀 있는게 아닙니까? 아… 속편이구나.

눈먼 자들의 도시에 있던 사람들이 눈을 떴습니다. 말 그대로 눈뜬 자들의 도시입니다.
저는 눈이 멀었던 사람들이 그 사건에서 잃게 된 것들과 얻은 교훈들. 거기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한 얘기라고 혼자 상상했습니다.
예. 아닙니다.  (-.ㅡ  )
이번에는 이 도시 사람들이 무효표를 마구 마구 던집니다. 차라리 투표를 안하면 좋으련만 사상초유의 무효표 때문에 사단이 벌어집니다. 정치 권력의 힘과 그에 따라 개인이 얼마나 무력하게 언론과 정치사회에의한 실명을 하게 될 수 있는 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전작의 주인공도 등장합니다.
주제사라마구의 책을 읽고나면 가슴이 탁 하고 막히는 기분이 드네요. 아…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서, 맹목적으로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 시대에, 나이가 들면서 젊었을 때 꿈꾸던 것과는 달리 돈도 많이 벌며 편안하게 살아가는 남자와 여자를 만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그들도 열여덟 살 때는 단지 유행의 빛나는 횃불이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신의 부모가 지탱하는 체제를 타도하고 그것을 끝내 우애에 기초한 낙원으로 바꾸어놓겠다고 결심한 대담한 혁명가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온건한 보수주의 가운데 어느 것 하나로 몸을 덥히고 근육을 풀었다. 따라서 그들이 과거 혁명에 애착을 갖던 것처럼 지금 애착을 갖고 있는 그 신념과 관행들은 시간이 흐르면 가장 외설적이고 반동적인 종류의 순수한 자기중심주의로 변해갈 것이다. 예의를 약간 걷어내고 말을 하자면, 이런 남자와 이런 여자들은 자신의 인생이라는 거울 앞에 서서 매일 현재의 자신의 모습이라는 가래로 과거의 자기 모습이라는 얼굴에 침을 뱉고 있다.

유일하게 계속 기억에 남는 문구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온건한 보수주의 가운데 어느 것 하나로 몸을 덥히고 근육을 풀었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가고 세상에 익숙해지면서 몸을 덥히고 근육을 풀어서 세상의 부조리에 익숙해 지는 건 아닌가 생각이 되네요.

군대 시절에 읽었던 소중한 책들

남자들에게 군대 시절 이야기란 굉장한 의미가 있습니다.
군대 + 축구 얘기라면 왠만한 술 안주도 저리가라죠.
누군가 얘기하기를 군 시절에는 감수성이 풍부해진다고 하더라고요.
사회와 격리되어 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친구와 군대 얘기를 하다보니 군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군 시절에 읽었던 소중한 책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소위 말하는 ‘짬’이 안될때는 밤에 책 한권 숨겨놓고 침낭속에 등 하나를 켠 채로 책을 읽기도 했었는데요…
제가 군 시절 중 읽었던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그래도 계속가라”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위의 두 권의 책은 군 생활을 견디는데 정말 도움이 됐었죠.
지금도 가끔은 “Keep Going”이라고 외치면서 하루를 살아간답니다. ^^

지렁이 구원기

오늘은 아침에 씻다보니 욕실에 실오라기 마냥 보이는 생명체가 보이더군요…

가끔씩 출몰하는데 어떻게 생겨 먹은 건지 영양분도 없는 땅에서 뿌리를 내린 강인한 원시 생명체를 바라보는 제 눈길은 신기하기만 했답니다.

평소에는 ‘너와 나의 운명은 어긋났다.’,’우리는 함께 갈 수 없는 종의 차이가 있으니 날 원망하지마라.’ 라고 생각하며 저 하수구 너머로 승천 시켜줬을 터인데…

갑자기 살려주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앞 베란다에 있는 화분에 물을 잔뜩 주고 거기에다가 새 터를 마련해 주고 왔답니다.

이제 나도 베스트 드라이버??

오늘은 주말을 맞이하여 운전연습을 했습니다.
아니?
운전연습이라 하면 면허를 취득한다고 생각하실 분들이 많은데, 저는 실전적인 연습이었습니다.
일종의 ‘장롱면허 탈출기’이지요.
면허를 따놓고 군대에 다녀오니 근 2년을 조금 더 지났네요. 핸들을 잡은지가;; 쩝…
이럴 줄 알았으면 운전병으로 가서 친구들 처럼 운전 실력이라도 키워놓을 껄 하고 푸념이나 하게 됩니다.
그렇게 했다면 못해도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들 처럼 폭풍 U턴을 시전할 텐데 말이죠??!?

어찌됐건 오늘은 부모님께서 운전 연습이나 시켜준시다며 꼬깃 꼬깃 구겨진 차림새와 얼굴로 집 앞에서 저 천호대교까지 살짝쿵 운전을 하다가 왔답니다.
‘초보운전’딱지를 붙이고 긴장된 맘으로 핸들을 잡았습니다. 처음에는 우선 동네 주위의 도로를 몇바퀴 돌았는데……..
이것 참.. 암만 제가 운전을 못해도 그렇지.

예. 저는 FM운전자였던 것입니다. 우회전시 딱 서서 옆차 확인! 쏴샥. ‘이상없군 ㄱㄱ~’
빵! 빵! 빵! 빵!
‘허… 참 -.ㅡ^;;;’

그리고 부모님께서 큰 도로로 나가자고 하셔서 나가는데.. 이건.. 택시들은 제게 너무 가혹하더군요.. ‘곤파스’를 의심케 하는 폭풍 차선변경은 물론이고 인도쪽에 손님이 있으니까 말도 안되는 곳에서 딱 멈추기도 하더군요…
방어운전이란게 얼마나 중요한지 몸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래도 다행인건 아무 사고도 없이 오늘 약 1시간반( 08:00 ~ 09:30 )에 걸친 운전을 끝냈다는 거지요.
사실 한번 넋 놓고 옆에 신경을 제대로 못쓰다가 생채기 날뻔했습니다. 후후훗^
마지막으로 집 앞에 와서 아버지께서 주차연습까지 특강으로 해주셨습니다.
“한 손으로 핸들 돌리고 머리는 밖에 내놓고 보면서 한 번에 넣어!”
하시는데.. 운전을 수십년 하신 아버지에게는 제가 비할 내공이 아니더랍니다…
그래도 기능시험 볼 때 했던 주차는 공식에 대입해서 했었던 제가 처음으로 차와 차 사이에 딱 저희 집 차를 그 중간에 밀어넣었답니다!!

뭐.. 앞으로 한 삼백년 정도만 더 연습하면 미하헬 슈머허아저씨도 부럽지 않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