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투자에 관련된 글을 참 많이도 적었지만 대부분 나만의 기록으로 숨겨뒀습니다.
사실 시장에 늘 참여해 있는 전업투자자의 입장에서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감정적 유희를 목적으로 하는 이외의 특별한 장점은 없어 보입니다. 어차피 시장을 통해 결과물을 어떤식으로든 받아볼 것이고 그 결과의 밀도가 다른 여타 일들을 통해 맞이할 결과보다 높기 때문에, 전업투자자라면 다른 짓을 할 시간에 자신의 일에 한번 더 집중하는 편이 백번 낫습니다.
오히려 종목이나 투자에 대한 생각을 공개하는 것에 단점은 무수히 많은 것 같습니다.
언젠가부터 제 생각은 대중들의 의견과 괴리가 생기기 시작했고, 그 생각들은 대게 인기가 없을 것 같습니다. 또한 제가 믿었고 결과적으로 맞았던 관점을 가지고도 제 지인들 대부분은 좋은 투자 결과를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투자란 단지 특정 아이디어만 가지고 할 수 있는게 아니라 시장이 움직이는 모습에 대한 금융공학적인 이해, 자신에 대한 믿음, 계속 추적하면서 오래된 내 생각조차 파기할 수 있는 치열함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주제를 한정하여 이 이야기는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스스로 오래 고민해보기도 했고, 오랜 지인들에게 받았던 질문들은 대부분 이런 생각의 변형인 것 같아서입니다.
최근에 친구들로부터 들은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투자를 계속 한다는 건, 너는 괜찮다는거야?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고통스럽지 않으니까?”
“생활비는 어떻게 해? 어떻게든 계속 이익을 보나?”
일단 저는 이제 만7년을 넘기고 있는, 투자만을 통해 살아가고 있는 개인 전업투자자입니다. 그 모든 기간동안 스스로가 전업투자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일을 하지 않고 투자만으로 생계를 유지한 것은 사실입니다.
처음 투자를 시작할 때는 좋은 종목을 찾았다고 생각했고, 짧게 돈을 벌어 자산을 불린 후 다른 일을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여러 경험을 통해 스스로가 전업 투자자라고 생각하는 오늘날이 되었습니다.
일단 시드가 얼마였는지 궁금하실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학을 다니는 20대 초반부터 학업과 병행해 일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돈을 벌기 시작했고 거기에 운도 닿아 20대 중후반에 억대의 시드를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는 이 일 저 일 경험 상 알바도 해보고 사업에 발을 한 발 넣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사업 아이템을 찾던 중 상술한 것처럼 좋은 종목을 발견해 사업을 진행하기보다는 기업에 투자를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이 한 종목을 통해 저는 몇가지 경험을 하게되었는데, 흔히 몇 배의 수익을 보는 것을 말하는 몇 루타를 쳤고 / 차트의 제일 바닥에서 주식을 던지는 항복 매도를 경험했으며 / 그 후 해당 종목이 완전히 다른 궤도에 안착해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경험을 했습니다. 결국 대부분의 직장인 연봉 몇년 수입 정도인 수 천만원 정도의 금액으로 투자를 계속하게 되었으니 시드가 대단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주식 커뮤니티를 읽다보면 시드가 얼마나 되어야 전업투자자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종종 보이기에 적어보았습니다.
저는 시드는 전업투자자라는 일을 선택하는데 중대한 고려사항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느 정도 뭉터기의 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첫 투자의 경험 이후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고통과 복수심, 환희와 좌절 그리고 분노, 공허함등 참 많은 감정을 널뛰었던 같습니다. 다양한 감정적인 경험이 저라는 개인의 중요한 본질을 바꿔갔습니다.
투자를 하기 이전에 저는 스스로가 대부분의 사람보다 이성적이고 효율적으로 일들을 처리해낼 수 있다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장은 제가 얼마나 나약하고 정서적으로 취약한 사람인지 여과없이 보여줬습니다.
첫 투자의 확정 손실 금액이 만만찮다보니 저는 초반 몇 년을 스캘퍼로 생활했습니다. 시장의 유통되고 있는 정보나 저라는 사람의 사업 분석에 대한 이성적 판단을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정직하게 공개되어있는 가격과 거래량에 기초한 짧은 트레이딩만이 진짜 실력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고됐습니다만 결과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시장에 복수했고, 그 다음에는 그 성과에 기초해 그냥 조금 더 남아있어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단기 트레이딩을 그만둘 때까지도 좋았습니다. 다만 너무 열심히 한 나머지 제 몸의 보상 체계가 거의 완전히 망가졌다는 사실을 인지해 시장에서 나왔습니다. 하루는 친구들을 만나 식사를 하는데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느껴지지 않고 음식의 맛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밍숭맹숭해서 도파민 중독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저는 첫 종목의 트라우마로 단기 트레이딩을 하면서도 작은 분량으로 쪼개고 대신 엄청나게 많은 자리를 거래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최대 손실 2% 내외로 놓고 거래했습니다. 달리말하면 노동량과 자산 회전률이 엄청났습니다. 당시 어딘가에서 보았던 통계에서 제 한달 거래 금액이 개인투자자중에서는 최상위의 거래금액이었으니 참 열심히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할 수 없었습니다. 인생 전체와 돈을 트레이드오프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 후에는 온갖 종류의 투자에 다 손을 대 보았습니다. 부동산 투자 외에 합법적인 알려진 대부분의 투자 방법에 제 돈을 직접 넣어 스킨인더게임을 실천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선물 옵션을 통해서는 공포와 거대 자본의 전략을 배웠고, 온갖 액티브 및 ETF를 통해서는 그들의 무능함과 부도덕함에 실망했습니다. 비상장 주식을 통해서는 환금성의 중요성을, 시장에 나왔던 여러 상품들을 통해서는 인기 경합 상품들이 얼마나 눈 먼 돈을 노리는지 배웠습니다. 퀀트 전략은 감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시장에 기계들이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커지고 있는지 생각할 기회를 줬습니다.
제가 이런 경험들에 제 돈과 시간, 에너지를 투입했다고 해서 앞으로의 투자 성공이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아마 이런 경험들을 하지 않은 분에 비해서는 미약하게라도 생존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질문을 해보고 싶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해보고 싶으신지요?
자신의 돈을 충분히 잃어보고 싶으십니까, 충분히 고통받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고민해보고 싶으십니까?
아마 과거의 저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면 저는 아니라고 대답했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매번 제 앞에 있는 길에 무엇이 놓여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번듯한 직업을 가진 친구들이 물을 때마다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네가 이전에 충분히 노력해서 잘 하게 된 일들을 가지고, 투자라는 새로운 일에 너무 많은 기대와 자원을 투입할 필요가 없다. 차라리 본업을 더 잘하는게 더 나은 투자일 가능성이 높아.”
저는 이미 시장에 많은 자원을 투입하였고 어느정도 그에 적합한 종류의 인간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이지, 제가 겪었던 일련의 과정을 아끼는 타인에게 겪게 할 생각이 없습니다. 최소의 노력으로 대부분의 경쟁자를 상회할 수 있는 인덱스라는 상품이 있는 상황에서 타인에게 투자를 강요하는 것은 어떤 악의나 무지가 아닐까 싶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똑똑한 친구들에게는 한 마디 덧 붙입니다.
“아직 잘 모르니까.. 시장에서 네 능력 범위를 실험해보고 싶으면 잃었을 때 어느정도 아프지만, 그래도 네 인생을 완전히 파괴하지는 않을 1~2년 정도면 모을 수 있는 자금으로 아주 장기적으로 배운다는 관점으로.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해봐”
자기는 전업투자자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니, 재수없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변을 해보자면 지금의 저는 이 일을 아주 진지하게 대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여러분이 일확천금이나 자산을 퀀텀점프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서 투자를 하려는 것과는 바라보는 지점이 조금 다릅니다. 저는 이 일을 평생에 걸쳐서 해보고 싶습니다. 단기 트레이딩을 넘어서 중장기로 기업에 투자하는 일은 제가 세상을 배우고 관심을 지속하게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거대한 지적 게임을 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운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모르는 것들을 정의하고 위험을 피하고 아주 소수의 아는 것을 발견해서 제가 옳았다는 것을 시간과 인내로 증명해냈을 때의 기쁨은 말로 하기 어렵습니다.
전에는 역사책을 읽거나 인지심리학 책을 읽는 것이 단지 자기 만족의 일종에 불과했는데 그런 정보 탐색과 사색의 시간이 내 일이라고 정의해버리는 제 멋대로의 만족감도 있습니다.
즉 저는 수 많은 직업들 중에서 저라는 인간에게 적합한 투자자라는 직업에 도달한 것 뿐입니다. 저는 부자도 아니고 매일 매일 놀지도 않습니다. 시간을 제 멋대로 계획해 쓰기는 하지만 매일 지독할 정도로 많은 량의 정보를 소화하며 사색의 시간을 가집니다. 어찌보면 대부분의 직장인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나름 잘해내고 있고 천성에 맞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어려운 부분도 크지만 그것들은 지난 시간을 통해 많이 배웠고, 앞으로도 더 배워나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둘러보면 누구나 반드시 직접 투자를 해야할 것 처럼, 우리가 누구나 옷을 입듯 투자도 그렇게 정해진대로 하면 승리할 수 있는 것처럼 잘못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키가 큰 사람은 축구보다는 농구에 더 유리하고, 몸집이 좋은 사람은 힘을 쓰는 일에 적합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처럼 본디 활자에 미쳐있는 종류의 인간은 이런 일에 더 적합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