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novo E320

레노버 Lenovo E320

내 생애 두번째 노트북. Lenovo(레노버) E320

첫번째 노트북은 상품으로 받은 X-Note P210이었는데 분홍빛이 감도는 디자인이라 한동안 사용하다가 누나를 줘버렸기 때문에 실제적으로는 내가 선택하고 구입한 첫번째 노트북이라고 할 수 있다.
구입 당시 상당한 고사양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이 매력적이었다. 거기에 외장그래픽 카드도 달려있어서 축구 게임인 위닝을 티비에 연결해 플레이하겠다던 나의 숨은 니즈를 만족시켜줬다! 아쉽게도 티비에 연결하면 꽤나 버벅거렸기에 거의 플레이하지 못하고 그 쯤에 구입했던 엑스박스 패드를 중고로 판매하기도 했었다…

요즘에는 귀찮아서 그렇게까지는 안하는 편인데 당시에는 카드 할인이니 현금성 포인트니 뭐든 싹싹 긁어서 50만원 후반대에 구입했던 것 같다. 현금성 포인트나 청구할인등을 제외하면 70만원 좀 더 됐으려나?

아무튼 이 녀석으로 돈도 참 많이 벌었고, 많은 일을 함께 했다.
몇 년 전에 전자기기 덕후로 빙의했을 때 수 많은 태블릿을 구매 – 판매했음에도 지금까지 손에 쥐고 있던 녀석이다. 근 1년 넘게는 데스크탑을 사용하면서 전원조차 켜보지 않았지만 왠지 판매할 생각이 들지 않았던 녀석.

물론 이 녀석을 가지고 무언가를 했던 건 나 스스로지만 그 순간 순간 시간들 속에 함께 들어있기에 괜시리 애착이 가는 동지같은 녀석이다.
정말 고생했다고 나한테, 이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2017년 5월 22일 새벽

요새는 딱히 글을 적지 않았다.

내 삶에 도움이 될만한 몇 가지 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의 한 타래를 잡아서 이리 저리 깍고 연마해보고 싶은 충동이 들곤한다. 좀 더 솔직하게 고백해보건데 그건 어떤 생각이 아니라 감정에 관한 것일게다.

생각에 관해 말해보자면 세상이 너무 좋은 탓에 굳이 내가 무언가를 적어 올릴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책을 고를 안목이 있다면 좋은 양서들은 도서관에 차고 넘치고, 요즘에는 그 어떤 기술, 전문 분야에 관해서도 인터넷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제대로된 자료들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가장 최근의 정보와 최고의 전문가들을 방 안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그런 온라인 세계에 나의 조잡한 사족을 더할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보면 되겠다.

그러니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오로지 충동적인 감정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단지 그 행위만으로 나를 기쁘게 하는 것. 몰입할 수 있는 것. 순전히 개인적인 것들말이다.

물론 갖가지 감정들은 글이라는 틀 안에 온전히 채워지지 못하고 흘러 날아간다.
글은 본디 기교에 불과하고 선과 의미로 결박된 형상의 공백은 오해나 상상으로 채워진다.
모든 초고는 걸레라지만 나는 스스로의 투박함과 모남이 그리울 때가 많다. 그래서 이 글은 수정 따위 거치지 않고 박제될 운명에 있다. 낙서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오늘은 그저 머리 속에 있는 것을 휘휘저어 마루 바닥에 부워놓은 것 같은 글을 적어보고 싶었다.

내/외장 이용해 모니터 사용하기

나는 그래픽 카드를 따로 사용할 때에는 모니터를 외장 그래픽 카드에만 사용해야 하는 줄 알고있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내장/외장 단자에 동시에 여러 모니터를 연결해 사용할 수 있다.

바이오스에 접속해 멀티 모니터 옵션을 켜준 뒤 끼우고 싶은 단자에 모니터를 연결해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
각각의 바이오스 옵션은 메인보드에 따라 모두 다를테니 구글에 검색해 정확한 지원 유무/옵션 경로를 확인하기 바란다. 참고로 주 모니터를 그래픽 카드에 연결하는 것이 편하다. 게임 등 단일 모니터에서 구동시키는 프로그램을 사용시에 높은 자원을 사용해 원활하게 구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다.

어릴 때는 “사람 안 변해.”라는 말이 품은 자조적인 면이 싫어서 그 말을 극도로 거부했다.
타고난 성품에 이끌려 살아가야 한다는 패배적인 관점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살아가며 겪은 인간 관계들을 통해 타인에 대한 진실한 노력이 좌초되면서 그 말의 의미를 쓰게 곱씹어보고는 했다.
언젠가부터는 주변 사람들에게 “사람 안 변한다. 너무 애쓰지 마”라는 조언을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하지만 한 순간에 손바닥 뒤집듯 결론을 바꿀 가벼운 명제는 아니었다.
비단 내가 경험하는 세상과 사회라는 외부 세계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바라보기 위해서라도 좀 더 굳건한 근거와 의견이 필요했다.

우리의 뇌는 어린 시절 많은 부분이 제 각각의 연결을 곤고히 한다. 신체도 뇌도 자라고 제 모양대로 구성된다.
우리는 부모 세대로부터 물려 받은 설계 지도와 어린 시절의 경험에 따라 스스로를 만들어낸다.
때문에 출생과 어린 시절은 한 개인의 자질을 구성하는 매우 큰 역할을 한다.
우리가 재능이라고 뭉뚱그려 일컽는 것들이 이 시기에 만들어진다.

그러나 성인이 되었다고해서 그것들이 고정 불변으로 확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뇌는 자신이 가진 자원을 재분배하여 새로운 것을 익히고 강화하는데 사용한다.
몸도 마찬가지다. 성인이 된 우리가 자연적으로 정강이 뼈를 늘릴 방도는 없지만 더 단단하게 만들수는 있다.

즉, 성인인 우리는 ‘변하고 또 변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한다.

바꿀 수 없는 것들은 있다.
10년만에 만난 친구를 향해 “너 예전 그대로네.”라는 말을 한다. 어릴적의 인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내 키는 이제 마음의 키처럼 계속 자라지 않는다.
누군가는 자기 자신이 미술 작품들을 견딜 수 없는 것 이상으로 음악을 사랑할 것이다. 물론 그 반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타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의외로 환상일 경우가 많다.
학창 시절 친구들을 만나면 왜 늘 그대로냐고 이야기한다.
나는 손짓 하나, 생각 한 토막까지 내 마음 아래에 두고 원하는 삶으로 이끌어가고 싶은 사람이라 그 말이 늘 의아하다.
가끔은 내가 이미 바꾼 습관까지도 예전이랑 똑같다라는 얘기를 듣고 있으면, 사람의 기억이란게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생각한다.
억측일수도 있으나 사람들은 얼굴이 같은 사람. 즉, 과거와 현재에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는 흔적을 찾아내려는 습관이 들어있는 것 같다.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뭔가를 기억 속에서 발견해내면 ‘거 봐. 역시 내가 생각하던 너네.’ 이러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성적인 생각을 하기보다는 직관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두뇌에게 자연스러우므로 우리는 외적인 이미지에 크게 의존한다.
복숭아가 귤 껍질을 덮고있다고 귤이 되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의 뇌는 그 안을 들여다 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불행 중 다행인지 삶에서 바꿔야한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대게 바꿀 수 있는 것들에 있다.
바꿀 수 없는 것들이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너무 뿌리 깊게 내렸기 때문에 바꾸기 어려운 것인데 이것들을 굳이 바꿀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토록 바꾸기 어려운 것들이란 개인의 특질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런 특징만으로 한 개인에게 어떤 가치가 부여되지는 않는다.
가치의 부여는 대게 그것을 어떻게 행동화시켰느냐에 관한 문제이다.
남들보다 쉬이 흥분하는 사람이 화통한 사람, 괴팍한 사람으로 나뉘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칼이 도구로 쓰일지 무기로 쓰일지는 쓰는 사람의 선택인 것이다.

※ 자신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그걸 실제로 실천하는 사람도 적으니 남을 바꾸기 위해 애쓰지는 말자.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자. 그저 자신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자.

숙취 해소

갈아만든 배(=ldH)의 숙취 효과가 뛰어나다는 풍문을 들은 후부터 음주 후 갈아만든 배를 두어잔 마시고 잠에 들었다.

나름의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며 지내왔는데 어제는 맥주를 안주도 없이 몇 리터 마셨기 때문인지 오늘 아침에 두통이 꽤 심했다.
사실 이십대 중반부터 왠만해서는 다음날 숙취가 있을 정도로 술을 마시지 않는데, 그 원칙을 가지고 있더라도 술자리가 늘 내 맘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다음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소중한 시간을 이리도 허비해버리니…

술은 피하는게 최선이지만 피할 수 없는 술자리에 써먹을 실용적인 정보가 필요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자마자 알콜 흡수를 방해할, 숙취를 도와줄 객관적 정보가 있나 찾아보았다.
단박에 끝을 낼 포스팅은 아니고 그때그때 업데이트해가며 차근 차근 진행해보려고 한다.

일단은 갈아만든 배의 효능에 관한 기사들(1, 2, 3)을 검토해보자.
첫번째 기사에서 실험에 사용된 배 음료가 갈아만든 배라고 콕 집어 말하지는 않았고 한국의 220ml 배 음료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다른 기사에서는 갈아만든 배 사진을 담는가 하면 외국 포럼을 중심으로 갈아만든 배가 이슈가 된 것으로 보아 갈아만든 배라고 여겨도 될 것 같다.

주요 효과는 숙취로 인한 두통 제거이고, 인상깊은 점은 음주 전에 마셨을 경우에만 효과가 입증되었다는 부분이다.
나는 늘 음주 후 마시면서도 효과가 있다고 느꼈는데, 이는 위약 효과이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다음주 부득이하게 잡혀있는 술자리에서 300ml 정도 미리 섭취 후 테스트를 해보려고 한다. 스스로에게 건투를 빈다.
-> 효과가 있다. 물론 정신은 없고 멍한데도 두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숙취 해소 법을 고민하기보다는 술 자체를 조금 먹는게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술을 꼭 먹어야되는 자리를 피하는 방법, 미움을 받더라도 술 그만 마시는 법을 연구해야겠다.

  • 해장으로 탄수화물 식사와 탄산음료가 유의미한지 알아보기.
  • 위의 링크된 3번째 기사 말미에 보면 수분 보충으로는 숙취 해소에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얘기가 있다. 너무 짧게 적혀있어 혼자 생각해보건데 물은 알코올 대사에 작용한다기보다 음주 후 결과인 탈수에 대한 후처치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좀 더 제대로 알아봐야 하겠다.

언젠가는

10년도 더 지난, 학생 때 천번은 족히 들었을 노래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문득 이 노랫말과 꼭 닮은 말을 들었다.
아마도 이 말을 해주신 분은 이상은의 노래를 들었을 연배지.
나는 나얼의 노래가 생각이 나 찾아 들어보았다.

이토록 익숙한 노래와 가사가, 생경하고도 절절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놀라웠다.

술로 취하는 건 싫어지고,
혼자 감상에 취하는 날이 많아지는 걸 보니 내 나름의 되새겨볼 인생을 쌓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러셀의 충고

지성과 도덕에 관하여 통찰력이 있는 러셀의 영상이다.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자신의 믿음이라는 성에 몇 가지 파편적 지식들을 둘러 견고히 만들고자 하는 이들에게 남기는 충고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믿는 것을 바닥부터 의심할 수 없다면 결코 올바르게 생각 할 수 없다. 항상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여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의심할 수 있는 기민함을 가져야한다.

그것이 생각의 내실을 다지는 기본이다. 그러한 자세가 없다면 그 어떤 일로도 성장할 수 없다. 그저 비뚤어져 자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