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노트 활용 – 개인화 노트

일전에 디지털 필기에 관한 글을 통해 Keep(킵)과 Evernote(에버노트), Onenote(원노트)의 쓰임에 대해 간략히 적은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 적용했던 활용 방식이 2년이 지난 지금 역시 유효하기 때문에 저는 여전히 같은 방법으로 세 가지 도구를 사용중입니다.
(1차 수집 Keep, 2차 가공 Onenote or Evernote, 3차 저장 Onenote or Evernote, 한 화면 여기저기에 자료를 던져놓고 통합적으로 가공해야 하는 자료는 원노트를 사용하고 텍스트 형식/개별적으로 충분한 자료는 에버노트에 바로 옮깁니다. 에버노트가 원노트보다 가볍고 검색이 강력하므로 자료의 특징에 따라 혼용하는 게 좋습니다.)

특히 최근에 안드로이드 원노트의 동기화가 전보다 빨라져서 만족스럽게 사용중이라, 원노트의 활용법을 공유해보고 싶어 글을 적습니다.

다음은 제 “개인화 노트 – 음식 – 맥주” 중 일부를 찍은 것입니다.

맥주 개인화

새로운 맥주를 마시면 사진을 찍어 해당 노트에 업로드하고 나중에 간략한 감상을 적습니다. 지금이야 그 수가 적지만 이것들이 수 십에서 수 백개 모인다면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울 뿐만아니라 값진 자료가 되리라 믿습니다. 저는 이 자료를 2차 가공함으로서 스스로의 취향에 대한 이해 뿐만 아니라 맥주에 관한 더 폭 넓은 이해를 갖출 수 있을 것입니다.
비단 맥주 뿐만 아니라 와인이나 향수도 같은 방식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에버노트로도 예전에 시도해봤는데 한 개의 노트에 넣으면 스크롤이 무지막지하게 길어졌고, 각각의 노트에 넣으면 너무 개별적인 자료로 인식되어 쓰임이 좋지 않았습니다.

물론 인스타그램과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공개된 글과 개인적인 글은 미묘한 진실성의 차이가 있다고 여겨서 공개 SNS는 소통의 창구로서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제가 기록하는 것들에 대한 원본 소유권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SNS를 활용하더라도 1차적인 기록은 개인 클라우드 노트에 할 생각입니다.

내 인생의 책

<가장 사랑하는 책>

아직도 가야할 길 : 가치관의 혼란을 겪을 때마다 다시 답을 찾기 위해 읽는다. 여유를 가지고 책을 읽다보면 삶을 바라보던 내 오해가 풀리고는 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 동물로 남지 않고 인간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들 때마다 읽는다. 그리고 매번 다시 새겨보는 체로키 인디언의 두 마리 늑대 이야기.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 : 실천적 방안을 연습하는 것에 주안. 첨언이 많아서 책의 내용을 계속 요약해서 정리.

<종종 다시 읽으면 감동과 경이를 주는 책 – 명상하듯 본다>

코스모스

윌든

2017.10.18 수정

장보고전

컴퓨터로 장시간 할 일이 있을 때는 외출하기가 어려워 스트레스를 해소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이럴 때는 부득이하게 게임이나 영화같은 수동적인 취미로 갈증을 해소하는데, 얼마전 스타크래프트2를 재미있게 즐기고 다른 RTS 게임이 있나 찾아보다가 어릴적 데모 버전을 수십번이나 플레이했던 장보고전이 생각났다.

찾아보니 제작사인 트리거 소프트는 그라비티에 합병되었는데 이전에 만든 게임에 관한 서비스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 고전 게임이 스팀에 올라와 있을리도 만무하고 있다고 해도 윈도우10에서 이상없이 돌아갈 것 같지 않았다.
직접 구해서 플레이하는데 위에 적은 어려움도 있고, 몇 해전 삼국지7을 찾아서 플레이해 본 경험에 비춰보면, 어릴 적 추억을 되살려줘서 좋았으나 게임을 오래 잡고 플레이할 재미는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남이 플레이한 영상을 찾아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나중에 누군가 컨버팅해서 서비스해주면 구입해 즐겨볼 생각은 있으나 지금은 영상을 보면서 추억을 되살려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나는 이 게임을 게임잡지의 번들 시디에 데모버전으로 접했던 것 같다.
청해진, 사무라이, 당대도적 이렇게 각 국가마다 미션이 하나 혹은 두개씩 제공되었던 것 같은데, 이걸로 할 수 있는 플레이는 전부 다 해보았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는 그저 자원이 올라가는 숫자를 보고있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었다. 영웅 유닛 하나만으로 조금씩 적을 제거하는가하면 일부러 유닛들이 죽게해 혼령을 모아 용 같은 괴물을 소환해 놀기도 했다.

이겨야 한다거나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시도해보는 놀이를 즐겼다고 보는 게 맞겠다.
유닛을 생산할 때 딸깍딸깍하는 소리, 이동 명령의 발자국. 그런 사소한 것들이 담겨진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겹다.

스타크래프트

올 8월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발매일을 시점으로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와 스타크래프트2의 캠페인을 재미있게 즐겼다.

예전에 클리어했던 ‘자유의 날개’는 기억을 되살려줄 정도의 캠페인만 선별적으로 골라 플레이했기에 정주행이라고 부르기에 조금 모자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요즘의 나는 취미 생활을 흩뿌려놓았다고 말할정도로 여기저기 흥미가 많은지라 취미가 뭐냐고 물었을 때 오히려 대답하기 곤란한 편인데 스스로가 스타크래프트 덕후라는 점은 매우 힘주어 말할 수 있다.

어릴 적에 도깨비 시장에 가서 여러가지 게임들과 데모 버전이 뒤섞여 있는 CD만 구입하던 내가 난생 처음 구입한 정품 타이틀이 바로 스타크래프트 오리지날이었다. 조그마한 아이가 큰 타이틀을 끌어안고 엄마한테 앞으로 다른 어려운 부탁은 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던 풋내나는 기억이 막 떠오르는 참이다. 그러고보니 그 시절 기억 속에서는 엄마도 참 젊었다.
함께 동봉된 메뉴얼을 수차례 읽었기에 보통은 잘 모르는 스타크래프트 세계관에도 유달리 관심이 많았다. 요즘에야 덕질하기에 좋은 콘텐츠가 여기저기에 넘치지만 그 때는 개인들이 나모웹에디터로 어설프게 만들어 여기저기 깨지기 일수인 홈페이지에 자료를 읽고 또 읽고 매일 매일 방문하면서 새로운 정보가 업데이트되기만을 기대하던 시절이었다. 하루는 어느 책방에서 스타크래프트 관련 소설을 찾았다. 그 내용이 공식 설정과 많이 달라서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책을 놓았는데 지금 보면 그게 일종의 동인지같은 것이었나보다.

시간이 흘러 스타크래프트2의 발매 소식을 들었다. 난 제4의 종족 젤나가가 나오기를 마음 깊이 기대했었다. 단지 친구들과 대전만 즐기는 수준을 넘은 진성 덕후였으므로 내가 알고 있는 세계관 속의 그들을 조작하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에 한스타를 통해 싱글 미션도 틈날 때마다 플레이했던 기억이 난다. 영어를 잘 못해서 그저 눈치로만 상황을 느끼며 해보기도 하고, 다시끔 한스타를 통해 플레이해고,중간 중간 추억을 되살려보기 위해 플레이도 해보고…
그리고 이번에 한국 성우들이 녹음한 리마스터 버전까지 싱글 미션을 꽤나 많이 플레이해봤다.
학교 다닐 때는 친구들과 리그도 만들어서 방과후에 경기도 하고, 다른 반 친구들과 게임으로 교류도 많이 했다. 매번 방학 때면 브레인 서버에서 래더 아이디를 걸고 길드를 부수고 다니는게 취미이기도 했다. 정말이지 스타크래프트는 내게 정말 의미있는 게임이다. 유치하고 순수한 내 어린날에 이 녀석이 함께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 세대에 나와 같은 사람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피씨방을 주 무대로 스타크래프트 – 디아블로 – WOW순으로 옮겨나는 블리자드의 학업 망테크를 탄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나야 디아블로를 한참 하다가 컴퓨터 사양에 부딫혀 스타를 계속 한 것이 중학교 교우관계까지 연결되어 스타크래프트의 고인물 한 층을 담당하게 됐다.

리마스터와 스타크래프트2 캠페인에 대한 감상은 다음에 이어 적도록 하겠다.

몸으로 목격하다

요즘 그런 생각을 한다.

‘정당한 값을 지불하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다.’

공감에 대하여.
그것은 타인을 따뜻하게 녹여줄 수 있는 온도를 가졌느냐에 대한 것일까? 아니면 진정으로 타인의 상황과 감정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일까?

경험에 대하여.
특정한 일을 겪었다는 것이 각각의 개인들에 발화시키는 무엇가에 절대적인 값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은 한 개인에게 어떤 흔적을 남기는가? 경험이란 개별적인 것인가? 그로인해 남겨진 것들은 휘발되지 않는가?

요즘 유발 하라리의 극한의 경험(The Ultimate Experience)를 읽고 있는데 몸으로 목격하다라는 표현이 굉장히 와닿았다.

환희 또는 극심한 고통.
그런 종류의 경험 속에 있을 때 나는 그 기분만큼이나 커다란 다른 감정을 느끼고는 하는데, 오직 나만이 그 경험과 기분 속에 있다는 고독이다.

사실 이런 종류의 생각들을 정리해 절묘한 결론을 내릴만한 재주는 내게 없다.
다만 오늘 나만이 경험하고 타인에게는 오롯이 전달될 수 없는 시간을 보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삶에 있어 의미란 무엇일까.
이러한 기분과 체험 역시 일상 속에 또 다시 휘발되어 갈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중요한 것은 나로 말미암아 누군가가 존재의 의미를 지니는 것 이상이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오직 그것이 선악과를 먹은 우리들을 지탱하는 유일한 의미가 아닐까.

왜 그걸 자주 잊을까.

아팠던 날

컨디션이 좋지 않다.

벌초를 하다가 쏘인 손가락은 바베큐처럼 오동통하게 부어올랐고, 지난 주 잠이 부족했던 날부터 부어오른 턱은 소염제로도 아직 낫지 않았다.

예초기를 돌린 덕에 어깨부터 등은 아직도 움직일 때마다 저릿저릿하고, 온가족이 감기에 걸려버린 통에 침이 넘어갈 때마다 목구멍은 쎄하다.

이런 와중에 이제는 친구가 된, 한 때 군대 선임 형과 대화를 하고있자니 자연스레 군대에서의 일화가 생각났다.

하루는 몸이 너무 좋지 않았다.
주어지는 건 진통제 뿐인 걸 알고있었다. 군장 산악 구보를 하다가 발목이 돌아가 발 전체에 새빨갛게 피가 맺혔을 때도 진통제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고참들에게는 그 흔한 열외도 이등병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 덕에 나는 일병이 되어서도 붉은 발로 살았다.
그런 동네였다.

야간 불침번 근무를 설 때였다.
고작 1시간 반의 실내 근무가 아직도 뇌리에 깊숙하게 박혀있다. 괜찮을거라고 생각했지만 여름임에도 오한이 찾아와 윗니와 아랫니가 달그락 소리를 내며 부딫히는 것이 느껴졌다. 그토록 감기 몸살을 심하게 앓은 적이 없었기에 나는 내 몸 어딘가 완전히 고장나 버렸다고 생각했다. 몸이 다치거나 아프면 욕만 더 먹게 될 껄 알았기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버텼다. 어느새 시야도 조금 흐릿해졌고, 말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놀라운 점은 이 날 밤의 기억은 매우 또렷한 반면 그 뒤의 며칠간은 내 기억 속에 놀라우리만큼 없다는 사실이다. 단지 며칠 뒤 아침 겨우 정신을 차린 뒤 ‘이제 살았다’라고 나지막히 생각했던 순간만 떠오를 뿐이다.

글을 적다보니 오늘 컨디션이 최고는 아니지만 썩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보행자 안전 주의

잠시 쉬는 틈에 비가 오기에 우산을 들고 산책을 나갔다.
슬리퍼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비오는 날의 운치를 만끽할 준비를 한 터였다.

이승훈의 비오는 거리를 흥얼거리며 주변을 돌았다.
남들 눈에는 흥겨운 미친 놈으로 보였을테다.

그러다가 작은 골목을 지나다가 큰 봉변을 당할 뻔 했다.
횡단보호 앞에 비보호 좌회전으로 진입할 수 있던 골목의 초입이었는데 화물차가 빠른 속도로 내게 돌진했다.

면허를 딴 이후로는 항상 운전자와 눈을 맞추고 다니는지라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금새 알아차렸다.
“어..어..! 뭐지 XX”

운전자가 골목에 진입하는데 브레이크는 커녕 엑셀을 더 밟았는지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것 같았다. 찰나의 공포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런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여기 받히면 최소 팔, 다리는 온전하지 않을 것 같았다.

평소 드라마를 볼 때 눈 뜨고 차에 치이는 장면에 치를 떨며 경멸해왔던 덕분인지 간반의 차로 트럭을 피할 수 있었다.

지금도 심장이 벌렁 벌렁한 상태로 키보드를 두드린다.

운전안하는 친구들이 특히 보행시 주의하지 않는 경우가 많던데, 누구의 잘못이던간에 교통 사고를 당하면 무조건 본인의 손해니 보행자도 다들 주의해서 사고를 예방했으면 좋겠다. 특히 오늘 같이 시야가 좋지 않은 비오는 날은 더 조심해야 한다.

오늘의 일기. 오늘의 교훈. 끝.

2017년 8월 16일

상을 치르고 왔다.

직계 가족의 상을 치른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성인이 된 뒤 상주의 격식을 차려 상을 지낸 것은 처음이었다.
많은 일들을 더 큰 어른들께서 진행하셨지만 이번 한 주일이 몇 년처럼 두꺼운 밀도로 내 삶을 채웠다.

상 중에 한 어르신께서 나지막이 호상이라는 말을 내게 해주셨다.
우리는 평소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연명 치료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산소 마스크조차 떼어내려 하시는 손길을 부여잡으며 그 얼마나 많이 울었던가.
때문에 그 단어에 깊은 이질감이 느꼈다. 하지만 따로 소리내어 고치지는 않았다.

꼬박 이틀동안 천 여명의 손님을 받았다. 정확하지는 않으나 식사값이 그에 준하였다.
지친 몸에 장례식은 산 사람을 위한 행사라는 뾰족한 마음이 들었으나, 절하고 또 절했다.
우리는 사람에, 술에. 그리고 이 일련의 장례 절차에 취한 것 같았다. 슬픔을 무언가로 태워 재로 화하여야만 했다. 끝없이 절하고 쪽잠을 자는 것이 조금이라도 우리의 슬픔을 승화시켜나갔을 것이다.

아직 학교도 가지 않은 조그마한 사촌 동생들은 할머니가 하늘나라로 갔다며 방방 뛰었다.
그러면서도 할머니를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조금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다혈질인 우리 가족답게 서로를 끌어안고 위로하는 와중에도 종종 싸웠다.
그러면서도 진심으로 의지했다.
그것을 보면서 삶의 모든 것이 미묘하고도 깊숙하게 엉켜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내가 삶의 다음 이면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정도의 돈을 벌기 시작한 이후로 몇 해가 지나자 꼭 갖고 싶은 것이 없게 되었다. 큰 부자는 아니나 욕심쟁이도 아닌 것 같다.
그 후 몇 년은 하고 싶은 것들을 열심히 찾아다녔는데, 이 역시 시간이 지나자 꼭 해야만 할 도전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걸 못해서 진정으로 후회할까? 라는 게 딱히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에 대한 애착같은 것이 생긴다.
물론 그와 동시에 타인에 대한 실망과 공포도 늘어간다.
그래서 나는 선량한 사람들을 그리도 찾아다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상을 치르며 내게는 가족과 사람이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뿌리 깊게 인식하게 되었다.

장례식 중 단 한번 할아버지께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여 울음을 밖으로 꺼내셨다. 굳게 잠가놓은 단단한 마음조차도 입관 말미에는 슬픔이 부풀어 새어나오고야 만 것이다. 나는 아내를,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헤아릴 길이 없었으나 그 슬픔의 작은 단면에도 가슴이 시리었다.

발인을 하고 삼오제를 지냈다.
지금은 여느때와 다름 없이 내 방에 앉아있다.
변한 게 없는 것 같지만 마음이 헛헛하다. 그 자리에 있어줬으면 하는 마음을 하늘이 거두어 가버렸다.

아무것도 추억하지 않는데 눈물이 난다.
슬픔 또한 내 것이니 이제는 이것을 추억할 것이다.

다름과 틀림

다름과 틀림.
다름은 인정하고 틀림은 인정해서는 안될 것이지만 난 여전히 이 둘을 구분하는 차이를 잘 모르겠다.
둘 사이의 구분선은 영원히 끝에 닿지 못하는 듯하다.

우리는 항상 갈등을 마주하고 어떤 식으로든 선택하면서 나아간다.
나와 생각이 다른 누군가를 대할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옳다고 정해진 것은 애초에 없다고 생각한다.
좋은 것이란 사건에 관여된 사람들이 모두 웃을 수 있는 선택이다. 그러므로 모두에게 좋다면 나를 속이고 상대를 속여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틀린 것이라 생각되더라도 내가 쉬이 털어낼 수 있는 정도이고, 관여된 타인들에게도 좋은 것이라면 양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스스로를 속이는 과정에서 숙고하여 정해놓은 가치관까지 침해당해서는 안된다.

이런 사회의 기술들은 나름 현명하다고 여겨진다. 행동화시키려 노력해볼만하다.

하지만 양립 불가한 문제들도 있다. 많다.
우리는 선택을 해야한다.
칼을 들어 한 쪽을 더 베어내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이 일에 서투르다. 사실 그 누구라도 이 일을 평화롭게 처리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뻔한 얘기겠지만 대다수의 개인이 이런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은 자기 방어, 무시, 기만 정도로 나뉘는 것 같다.
나 역시 무분별하게 위의 대응 방식을 섞어 사용하며 여러 문제를 다루고 있다.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때는 그저 끝이 없는 이유를 대며 나의 주장을 관철시킨다. 사실 말하면서도 상대방의 말 역시 옳다는 걸 인정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하지만 휴전은 내가 겸연쩍게 내민 화친에 손에 상대가 응해줬을 때만 가능하다.

가끔은 이 대화가 하기 싫어 화제를 돌리기도 한다. 문제가 너무 복잡하여 생각하기도 싫고 이렇다할 결정도 내지 못할 것 같다. “너는 그렇구나.”라고 대답하기는 하지만 해당 문제에 대해 나의 관점이 나아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서 물러설 수 없는 일에서는(주로 개인의 이득을 위해서) 비겁한 기만을 하기도 한다. 옳고 그름에는 관심이 없다. 상대를 옆에서 어르고 뒤에서 놀래키며 스스로의 이익을 추구한다. 많은 비지니스 관계가 이럴 것이다. 일을 교우 관계처럼 진행시키는 사람은 언젠가 기만스런 늑대를 만나서 호되게 당하는 날이 있다. 정치공학과 일맥상통한다.

나는 자기 방어, 무시, 기만 모두 싫다.
실제하고 그때 그때 쓸모가 있는 방식일 수 있겠으나, 순전히 개인적인 기호로 싫다.
자기 방어적인 태도는 감정 과잉적이며 관계를 파탄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무조건 버려야 할 태도라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에게 하는 소리다.
무시는 종종 능수능란하게 사용될 수 있으나 자기의 관점을 더 나아가게 하지 못한다. 이런 태도는 순전히 피상적인 인간 관계에서만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기만은 너무도 사익에 치중한다고 여겨져 싫다. 살다보니 상황이라는 톱니 바퀴의 맞물림을 살짝 바꾸어 교묘히 이득을 보는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싫었다. 내가 남들과 다른 직업을 선택한 가장 큰 두가지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평소 생각이 많기 때문인지 나는 정치 공학적인 전략을 짜는데 능했고, 본의 아니게 자기혐오를 느끼는 순간도 있었다. 결국 이런 태도는 삶을 승리자가 없는 전쟁터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내가 지향하고자 하는 태도는 아래와 같다.
쉬이 결정을 내리기 힘든 문제에 관해 내가 가진 의견이란, 내가 가진 가치관과 정보를 기준으로 내린 최선의 것일 것이다. 늘 해당 시점에서 최선의 것이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늘 최선의 것이 아닐 것이 거의 확실하다. 정보는 불완전하며 가치관은 개인적인 것이다.
즉, 나는 스스로의 의견이 내가 아는 한 최선의 것이라고 여기면서 동시에 이것이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명확한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

틀릴 줄 알면서도 자신의 의견에 정직해야하고, 자신의 잘못을 알았을 때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알아야하며,  잘못된 것들을 고쳐 새로운 것을 세울 용기를 가져야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담백하게 주장하는 태도와 겸손한 마음을 항시 간직해야한다.
글을 적으며 돌이켜보건데 이런 태도를 가진 친구가 내 곁에 몇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고맙다.
혹시 벽창호를 만난다면 한 마디도 더 섞지 않는 걸(무시) 추천한다.

이런 글을 적어놓고 있는 나는 여전히 자주, 많이 틀린다. 그 점이 나를 괴롭힌다.
하루 중 즐겁고 보람찬 일들이 참 많지만 좋은 일은 추억에 묻고 이렇게 우울한 글만 블로그에 포스팅하는 것도 괴롭다.
사실 이 블로그는 우울함을 코스프레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