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03

어릴 적에는 지금보다 시를 많이 읽었던 것 같다.

그게 무엇인 줄은 잘 몰랐지만 들이켜보니 씁쓸한 낭만이 있던 시대였다.

초등학생 때는 학교에서 시를 적는 시간도 많았다.
나는 상장도 자주 받아서 엄마가 기뻐했다.

천상병의 귀천을 들은 건 얼만큼 키가 자랐을 때였을까.
한 살 터울의 누나와 텅텅한 장롱 옆 한 모서리 벽에 자를 대고 죽죽 그어가며 누구 머리가 더 높은가 경쟁을 하고는 했었다.

학교에서는 어린 학생들을 위해 자주 글을 읽게 했는데 그 날 읽은 시구가 묘하게 혀 마디에 남았다. 하늘은 불덩이 같은 몸둥이에 땀방울을 짜내듯 자주 높고 맑았고 그렇게 하늘로 돌아간다는 이야기가 듣기 좋았다. 나는 그가 역사책에 나오는 엄청 나이 많은 어른은 아닌가 했었다.

요즘은 고런 생각을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게 무슨 소용일까.

근래에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즐거운 일을 해도 곧 익숙해지고 휘발되어 더 나은 다음을 기약하기 힘드니 삶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던 날들이 많았다.
그에 반해 불운을 지나갈 때 힘든 순간은 끝도 없어 참으로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의미가 없이 그저 그런대로 흘러간다면야 기쁨과 슬픔이 무분별하게 방문을 열고 들이닥쳐야 하는데, 기쁨의 벽은 점차 높아만지고 고통은 그 꼴이 다채로와지니 이건 누구의 장난일까 싶어졌다.

내가 유난히 못난 것인지, 삶이란게 원래 그런 것인지 퍽이나 궁금했다.

어릴 적에 꿈이 뭐냐고 물으면 대강 남들이 하는대로 적당히 둘러댔지만
실은 나 혼자만이 꽁꽁 숨겨둔 꿈이 하나 있었다.

허락된다면 그럴 여유가 있다면,
좋았다고 잘 살았다고 신나게 웃으며 가는 것이 내 바램이다.

우리의 삶이 시간 위에 이미 그려져있다면 내 마지막 날은 어렸을 적에 미리 끄적여놓았다.

그런데 잘 하고 있는 것 같은데도 마뜩하게 기쁘지 않고,
그마저도 잘 되지 않을 때는 대들보가 비틀어지듯 뭔가 완전히 잘못된 건 아닌가 초조한 날들을 많았다.

그러다가 깨달은 건 내가 점수를 메기고 있었구나.
나도 어느새 어린 왕자의 바보같은 어른이 되어서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괴상한 자를 대고 내 삶에 점수를 메기고 있었구나.

그 점수를 놓고서 바보같이 울고 웃었구나.

막연하게 오늘 기뻤으면 그 날은 좋은 날이고, 힘든 일이 있으면 그 날은 세상에 없었으면 좋을 그런 날일까.

실은 그 모든게 함께 주어진 것이고 나는 그것을 다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어떤 날이라도 사랑한다고 웃으며 잠들 수 있는 밤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