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팠던 날

컨디션이 좋지 않다.

벌초를 하다가 쏘인 손가락은 바베큐처럼 오동통하게 부어올랐고, 지난 주 잠이 부족했던 날부터 부어오른 턱은 소염제로도 아직 낫지 않았다.

예초기를 돌린 덕에 어깨부터 등은 아직도 움직일 때마다 저릿저릿하고, 온가족이 감기에 걸려버린 통에 침이 넘어갈 때마다 목구멍은 쎄하다.

이런 와중에 이제는 친구가 된, 한 때 군대 선임 형과 대화를 하고있자니 자연스레 군대에서의 일화가 생각났다.

하루는 몸이 너무 좋지 않았다.
주어지는 건 진통제 뿐인 걸 알고있었다. 군장 산악 구보를 하다가 발목이 돌아가 발 전체에 새빨갛게 피가 맺혔을 때도 진통제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고참들에게는 그 흔한 열외도 이등병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 덕에 나는 일병이 되어서도 붉은 발로 살았다.
그런 동네였다.

야간 불침번 근무를 설 때였다.
고작 1시간 반의 실내 근무가 아직도 뇌리에 깊숙하게 박혀있다. 괜찮을거라고 생각했지만 여름임에도 오한이 찾아와 윗니와 아랫니가 달그락 소리를 내며 부딫히는 것이 느껴졌다. 그토록 감기 몸살을 심하게 앓은 적이 없었기에 나는 내 몸 어딘가 완전히 고장나 버렸다고 생각했다. 몸이 다치거나 아프면 욕만 더 먹게 될 껄 알았기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버텼다. 어느새 시야도 조금 흐릿해졌고, 말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놀라운 점은 이 날 밤의 기억은 매우 또렷한 반면 그 뒤의 며칠간은 내 기억 속에 놀라우리만큼 없다는 사실이다. 단지 며칠 뒤 아침 겨우 정신을 차린 뒤 ‘이제 살았다’라고 나지막히 생각했던 순간만 떠오를 뿐이다.

글을 적다보니 오늘 컨디션이 최고는 아니지만 썩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보행자 안전 주의

잠시 쉬는 틈에 비가 오기에 우산을 들고 산책을 나갔다.
슬리퍼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비오는 날의 운치를 만끽할 준비를 한 터였다.

이승훈의 비오는 거리를 흥얼거리며 주변을 돌았다.
남들 눈에는 흥겨운 미친 놈으로 보였을테다.

그러다가 작은 골목을 지나다가 큰 봉변을 당할 뻔 했다.
횡단보호 앞에 비보호 좌회전으로 진입할 수 있던 골목의 초입이었는데 화물차가 빠른 속도로 내게 돌진했다.

면허를 딴 이후로는 항상 운전자와 눈을 맞추고 다니는지라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금새 알아차렸다.
“어..어..! 뭐지 XX”

운전자가 골목에 진입하는데 브레이크는 커녕 엑셀을 더 밟았는지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것 같았다. 찰나의 공포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런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여기 받히면 최소 팔, 다리는 온전하지 않을 것 같았다.

평소 드라마를 볼 때 눈 뜨고 차에 치이는 장면에 치를 떨며 경멸해왔던 덕분인지 간반의 차로 트럭을 피할 수 있었다.

지금도 심장이 벌렁 벌렁한 상태로 키보드를 두드린다.

운전안하는 친구들이 특히 보행시 주의하지 않는 경우가 많던데, 누구의 잘못이던간에 교통 사고를 당하면 무조건 본인의 손해니 보행자도 다들 주의해서 사고를 예방했으면 좋겠다. 특히 오늘 같이 시야가 좋지 않은 비오는 날은 더 조심해야 한다.

오늘의 일기. 오늘의 교훈. 끝.

2017년 8월 16일

상을 치르고 왔다.

직계 가족의 상을 치른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성인이 된 뒤 상주의 격식을 차려 상을 지낸 것은 처음이었다.
많은 일들을 더 큰 어른들께서 진행하셨지만 이번 한 주일이 몇 년처럼 두꺼운 밀도로 내 삶을 채웠다.

상 중에 한 어르신께서 나지막이 호상이라는 말을 내게 해주셨다.
우리는 평소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연명 치료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산소 마스크조차 떼어내려 하시는 손길을 부여잡으며 그 얼마나 많이 울었던가.
때문에 그 단어에 깊은 이질감이 느꼈다. 하지만 따로 소리내어 고치지는 않았다.

꼬박 이틀동안 천 여명의 손님을 받았다. 정확하지는 않으나 식사값이 그에 준하였다.
지친 몸에 장례식은 산 사람을 위한 행사라는 뾰족한 마음이 들었으나, 절하고 또 절했다.
우리는 사람에, 술에. 그리고 이 일련의 장례 절차에 취한 것 같았다. 슬픔을 무언가로 태워 재로 화하여야만 했다. 끝없이 절하고 쪽잠을 자는 것이 조금이라도 우리의 슬픔을 승화시켜나갔을 것이다.

아직 학교도 가지 않은 조그마한 사촌 동생들은 할머니가 하늘나라로 갔다며 방방 뛰었다.
그러면서도 할머니를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조금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다혈질인 우리 가족답게 서로를 끌어안고 위로하는 와중에도 종종 싸웠다.
그러면서도 진심으로 의지했다.
그것을 보면서 삶의 모든 것이 미묘하고도 깊숙하게 엉켜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내가 삶의 다음 이면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정도의 돈을 벌기 시작한 이후로 몇 해가 지나자 꼭 갖고 싶은 것이 없게 되었다. 큰 부자는 아니나 욕심쟁이도 아닌 것 같다.
그 후 몇 년은 하고 싶은 것들을 열심히 찾아다녔는데, 이 역시 시간이 지나자 꼭 해야만 할 도전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걸 못해서 진정으로 후회할까? 라는 게 딱히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에 대한 애착같은 것이 생긴다.
물론 그와 동시에 타인에 대한 실망과 공포도 늘어간다.
그래서 나는 선량한 사람들을 그리도 찾아다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상을 치르며 내게는 가족과 사람이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뿌리 깊게 인식하게 되었다.

장례식 중 단 한번 할아버지께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여 울음을 밖으로 꺼내셨다. 굳게 잠가놓은 단단한 마음조차도 입관 말미에는 슬픔이 부풀어 새어나오고야 만 것이다. 나는 아내를,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헤아릴 길이 없었으나 그 슬픔의 작은 단면에도 가슴이 시리었다.

발인을 하고 삼오제를 지냈다.
지금은 여느때와 다름 없이 내 방에 앉아있다.
변한 게 없는 것 같지만 마음이 헛헛하다. 그 자리에 있어줬으면 하는 마음을 하늘이 거두어 가버렸다.

아무것도 추억하지 않는데 눈물이 난다.
슬픔 또한 내 것이니 이제는 이것을 추억할 것이다.

2월 27일

햇빛이 놀랍도록 따스했다.
코 끝에 닿는 공기가 몸을 타고 내려오며
겨울에게 인사했다.

날이 너무 좋아서 그만 가슴이 울렁거렸다.

어디부터 왔는지 기억조차 없는데
겨울 위에 새긴 발자국이 흔적조차 없어
길을 잃었다.

2월5일

지나간 것, 알게된 것.
그리하여 흘러 온 것들은 강물과 같아서 사람된 몸으로 돌이켜 올라갈 수 없고.

진실은 외면해도 늘 그 자리에 있어
세상의 한 켠에 서서 언 몸을 녹이는 와중에도
맘을 늘 차갑게 식히니

태어나기는 하늘 탓이되
살기는 내 맘이니
그저 뻗어나가는 가지처럼 부끄럼없이 사는 것이 하나의 바램이어라.

강풀만화거리

오늘은 서울 어디로 가볼까 고민을 하다가 강동역 근처에 있는 강풀 만화거리에 다녀왔다.

강풀 만화거리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강풀 만화 작가님의 만화 캐릭터들을 벽화로 만나 볼 수 있다.

강동역 4번 출구에서 내려 출구 방향으로 이동하다가 골목으로 들어가면 가정집들의 벽면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
개인적으로 성내 시장에 진입하는 큰 길로 가길 추천한다. 왜냐하면 아래에 스캔해놓은 팜플렛이 29번 벽화 옆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난 4번 출구에서 나가서 첫번째 골목으로 들어간 탓에 뭐가 어디있는 줄도 모르고 한참을 돌아다녔다.

강풀만화거리
지도를 휴대폰으로 보는 것도 상관없다면 이 이미지를 클릭해 원본을 저장해서 활용하면 된다.
강풀만화거리
직접 돌아다닐 때는 이렇게 많은 줄 몰랐는데 50여개의 작품이 있다.

지도의 출구라고 표시된 곳에도 지도 표지판이 있으니 이곳에서 사진을 찍어가도 된다.강풀만화거리강풀만화거리

작품을 놓치기 싫다면 지도를 잘 활용하도록 하고, 그저 발길가는대로 여유롭게 다니고 싶다면 골목 바닥에 노란 별(★)을 따라 다녀도 대부분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한참 강풀 작가의 만화에 빠져 정주행했던 기억도 있고, 한적해서 운치가 있었다. 벽화 마을들은 대부분 데이트 코스가 되어버리기 일쑤라 천천히 감상하기 힘든데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사람은 나 뿐이었다.
혼자만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비좁은 골목들에도 그림이 그려져 있어 사람들이 많다면 오히려 불만족스러웠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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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 바보, 당신의 모든 순간, 그대를 사랑합니다.’등이 벽화로 그려져 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들도 있지만 다 읽어보았던 것이라 어린 시절 감성이 떠오르기도 했다.

다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26년, 아파트, 타이밍’이 없어서 조금 아쉬웠다.

헌혈 시작

2016_blood_donation

2016년 새해에 세운 목표 중 하나가 헌혈하기였다.
그런데 어느덧 12월.
그래서 부랴부랴 헌혈의 집으로 갔다.

말라리아 위험 지역에 여행을 다녀왔기에 전산 상 헌혈이 금지되어있었다.  헛발걸음을 했지만 헌혈 금지가 풀리는 1달을 기준으로 예약을 하고서 오늘 오전 중 헌혈을 하고왔다.

전혈은 말라리아 위험 지역 방문 시 만 1년이 지나야 가능해서 성분헌혈(혈장)을 했다. 앞으로는 헌혈을 꾸준히 하려고 미리 다음 예약도 잡고 왔다.

늦게라도 시작해서 다행이다.
Better late than never.

1 Second Everyday 3년 후기 – 1초안에 담기(2)

1초안에 담기라는 포스팅을 한 후로 3년이 더 지났다.
유료일 때부터 지금까지 1 Second Everyday(이하 1SE)를 3년 동안 사용해봤으니 후기를 쓸 자격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

실은 가족과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고나서 뒤늦게 1SE에 여행 동안의 1초를 집어넣다가 몇몇 정보가 다른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적어본다.

일단 가장 도움이 될만한 정보부터  말해보고자 한다.
동영상을 찍지 못하고 날짜가 지나가면 어떻게 할까요?
보통 생각 가능한 옵션은 텍스트를 적어 넣는 것이다. 지금은 이게 가능하지만 처음에는 이런 기능이 없어서 넣어달라고 메일도 보냈던 것 같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사실 날짜가 지난 뒤 영상을 찍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다른 기기에서 찍은 영상이나 사진도 나중에 받으면 해당 날짜에 넣을 수 없다는 건 문제다. 영상은 당연하고 이미지에 날짜 정보가 담긴 exif가 있어도 소용없다.

하지만 날짜가 지나도 넣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간단히 휴대폰의 날짜를 바꿔주면 된다. 보통 스마트폰의 날짜는 네트워크 정보를 통해 자동으로 받아오게 되어있는데 이 옵션을 끄고 영상/사진을 넣고 싶은 날짜로 수동 설정한 후에 영상을 새로 받거나/집어 넣어주면 해당 날짜에 넣을 수 있다.
예전에 공식 홈페이지 포럼을 통해 제작자로부터 얻은 답변인데 현재 홈페이지에는 포럼이 사라진 것 같다.

다음으로 디지털 카메라로 동영상을 찍었을 때 옮기는 방법이다.
*.mts 확장자의 디지털 카메라 동영상을 1SE에서 열려고하니 동영상이 실행되지 않았다. 기본 갤러리에서는 문제없이 열리는 걸 보니 코덱 문제는 아닌데 애플리케이션에서 지원을 안하는 것 같다. 그래서 다른 확장자로 인코딩을 해보았는데 *.avi도 마찬가지로 읽지 못했다.

이것저것 해보니 두가지 방법이 있는 것 같다.
우선 첫번째로 *.mp4 파일로 인코딩하는 것이다. 문제는 오디오 코덱을 지원안한다는 메시지를 뿜거나, 별 다른 오류도 없이 그냥 안되는 걸 보니 별별 시덥잖은 이유로 실행이 안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내 경우에 화질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1SE에서 실행이 되던 옵션을 찾아 아래 이미지로 남겨본다.

20161215001
영상에 관련해서는 아는 바가 적어서 인터넷 검색 및 직접 시도해보며 찾은 값이니 수정할 내용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Daum 팟 인코더 옵션)


두번째로는 갤러리에서는 영상이 실행될 경우인데 이때는 휴대폰 자체 동영상 편집기로 파일을 새로 저장 해주면 된다. 이 방법이 위의 방법보다 손도 적게가고 편한 것 같다. 추천한다.
그리고 인코딩 작업을 거칠바에는 최신 휴대폰의 동영상이 더 보기 좋은 것 같다. 그러니 왠만하면 1SE 영상은 휴대폰으로 찍자.

이 정도가 1SE를 꾸준히 사용하시는 다른 분들에게 드릴 수 있는 정보이고 이제부터는 3년동안 사용하면서 느낀 소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일단 TED 영상의 발표자가 해준 몇 가지 충고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Cesar Kuriyama는 자신의 눈으로 보이는 구도로만 영상을 찍으라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그냥 맘대로 찍으면 된다. 내 경우에는 마음가는대로 남기는게 더 좋았다. 그냥 영상 속에서 자기 자신이 되면 된다.
그리고 좋지 않은 날에도 기록을 멈추지 말라는 그의 충고는 정말 쓸모가 없었다. 영상이 없는 것 또한 삶에 대한 기록이다. 삶의 진정으로 살아가다보면 그따위 삼류 원칙이 들어갈  틈이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그냥 며칠 뒤 간단하게 몇 개의 단어로 그 때의 기록을 남기면 된다.
꼭 매일 매일 남기려고 신경을 곧두세울 필요도 없다. 일상에서는 그냥 살아가게 되는 날들이 있다. 물론 소소한 이벤트를 더하면 좋겠지만 그게 순전히 내 맘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날에는 그냥 “평범한 날” 카테고리를 만들어 셀카를 찍어 올리는 건 어떨까? 특별한 이벤트가 없다고 해서 거짓 연기를 할 필요가 없으며, 그저 당신이 원하는 대로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면 그 날에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몇 가지 나만의 원칙들을 세워가며 1초 영상을 남기다보니 어느덧 3년이 지났다.
친구들은 대개 아직도 하냐는 반응이고, 그 후 몇몇 사람들은 나를 따라서 1초 영상을 남기고 있다. 실은 몇 달전에 2015년도 영상을 합쳐보았는데 6분 남짓의 영상을 보고 이 일을 한 것에 대한 뿌듯함을 느꼈다. 예전에는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나버렸구나 하고 아쉬운 맘에 크게 남았는데 6분동안 쉴새없이 흘러간, 내가 남겨온 찰나를 따라가다보니 그래도 내가 막 살지는 않았구나. 나름 순간들을 가득 채워가며 살았구나라는 생동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대부분의 동영상에 친구와 가족이 들어있어서 이 놀라운 경험을 직접 공유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조금 안타깝다.

광화문 촛불집회

어제(2016/11/26) 광화문 촛불 집회에 다녀왔다.

실은 벌써부터 다녀오려고 했는데 여행이다 뭐다 일상의 핑계로 미루고 있다가, 가장 많은 인원이 모인다는 어제를 정조준하여 출격했다. 날은 춥고 눈도 내렸지만 역에서부터 이동이 힘들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다.

원래는 혼자서 다녀오려고 했는데 여차저차 친구들과 광화문에서 만났다.

매일 뉴스에서는 우리가 온갖 비리에 무감해질만큼 부역자들의 악취를 들춰내고 있다. 마음같아서는 방망이 깎던 노인에게 죽창을 벼려달라고 하여 거리를 활보하고 싶건만,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괴테 옹의 말씀으로 머리를 차갑게 식히고 있었다.

이토록 많은 촛불을 본 건 광우병으로 인한 촛불 집회 이후로 처음 인 것 같다.

반론의 여지없는 하야&탄핵 요청이기에 시민들이 모두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서 축제와 같은 분위기였다.
몸은 추웠지만 맘은 참으로 따뜻해졌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님들도 많이 있었다. 우리의 세계가 이토록 엉망일지라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 세상의 변화가 한 굴곡을 맞이해 출렁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개-돼지는 우리 국민들이 아니라 우리에게 심어주고 싶은 추악한 그들의 자화상이었을런지도 모른다는 부푼 꿈을 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