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몽키 키우기 두번째

다이소에 갔다가 우연히 씨몽키를 보았다.
그리고 한 상자를 사 집으로 가져왔다.
왠지 익숙한 전개.

실은 2년전에 씨몽키를 길렀던 적이 있었다.
두달여를 기르다가 모두 죽어버렸는데, 왠지 맘이 편치 않아 앞으로는 기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이런 걸 두고 선택적 망각이라는 건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번에는 잘 기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난번에는 가장 작은 2,000원짜리 씨몽키 세트였는데, 이번에는 3,000원짜리를 샀다.
‘조금이라도 큰 곳에서 기르면 좀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번에는 두 달(2018.05.01~2018.07.10)을 조금 더 살았다.
하지만 역시나 몹쓸 짓을 한 것 같다.

이번에 알게 된 문제점을 살펴보자면 아래와 같다.
일단 같이 동봉된 공기 펌프의 내구도가 조악해서 일 이주만에 찢어졌다. 덕분에 나는 매일 빨대로 공기를 불어넣으며 인간 여과기 역할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날수록 물이끼가 끼었고 한 눈에 보기에도 물이 탁해졌다. 물갈이도 고려해봤는데 기존 생존 환경과 염도를 맞추지 못하면 치명적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포기했다.
즉, 애초에 다이소 세트는 씨몽키들이 장기간 서식하기에 좋은 환경이 아닌 것 같다. 그 정도 기간을 예상하고 먹이도 딱 그정도만 넣어놨겠지…

나는 녀석들을 부화시켜놓고 또 시한부 삶을 살게 한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든다. 애초에 제대로 기르려면 물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구비해야 하는데 그것들이 이뤄지지 않았다.
다시 생각이 닿으면 다음에는 필요한 것들을 갖추고 작은 물생활을 시도해볼 수는 있겠지만, 최소한 다이소에서 씨몽키 세트를 다시 구입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한달 정도 지나 많은 수의 씨몽키가 죽자 가족들도 몹쓸 짓을 하는 것이라며 나를 비난했는데, 특히 어머니는 알테미아(씨몽키)가 다른 물고기들의 먹이로 많이 쓰인다는 사실을 알고 여러모로 너무 안됐다고 하셨다.

아무튼 살아있는 녀석들을 직접 죽일 수는 없어서 탁한 수조에서 오랜 시간을 살게했다. 그리고 오늘 죽은 녀석들을 건져 화분에 묻어주었다. 녀석들에게 직접 이름을 지어주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2018년 3월 19일

삼일이 채 되지 못하는 장례식.
쪽잠에 수 백여명의 손님을 받아들이기에는 7개월 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버거운 시간이었지만, 80년이 넘는 관계를 정리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다.

작년보다는 모든 것이 쉬웠다.
익숙한 절차를 밟았고 무엇보다 평일, 지방에서 열린 장례식장에 발길이 닿기보다는 손가락으로 전하는 추모가 합리적으로 보이기 충분했다.

환각작용을 일으킬 정도의 마약성 진통제도 통하지 않는 말기암의 고통은 나로서는 감히 공감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의 우주가 시들어가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고 들어왔던 나로서는 이게 잘된 일인지 안 된 일인지 혼란스러워 그저 “되어야 할대로 되었다. 차라리 잘 된 일이다.”라고 우물우물 입으로 흘렸다.

1년 사이 많은 것이 변했다.
나의 1년 역시 많은 일들이 더해진 시간이었지만, 외조부모님들의 1년은 하나의 세계가 완전히 파괴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살겠다던 단단한 말이 죽겠다는 말로 바뀌는데 6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이제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녀석은 그 사이 죽음의 무게를 조금 이해했는지 짧게나마 슬픈 낯빛을 보였다.

따스해지던 날에 종일 비가 뿌리고 이틀날에는 청명한 하늘을 드러냈다.
발인일이었다.
차가운 바람이 숨구멍으로 조금씩 스며드는 게 느껴졌다.

할머니의 옷가지와 짐 꾸러미만을 꺼내서 반쯤 정리했던 집안의 가구들도 모두 들어냈다. 엄마는 조금은 다른 곳이 되어서 기분이 나아졌다고했다.
너무 아파서 시간이 숙성해주기 전에는 바라보지 않아야 될 기억일거라고, 그리 생각했다.

어제. 5일째.
묘 위에 놓여진 한 무더기의 동백꽃에서 향내음이 날 듯 말 듯 했다.
서울 촌놈의 둔감한 몸에도 봄이 오는 듯한 무엇가를 느끼기 충분한 날이었다.

불은 차가운 겨울 속에서 오랜 시간을 숨 죽이다가 튀쳐나온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짧다면 짧은 생의 흔적이지만 어찌 그리도 급하게 거두어가는가. 곧 살아왔던 이야기와 남기고 간 것들이 연기와 흙이 되었다. 마치 새로 태어나는 생명에 화답하듯 화하였다.

어린 날의 혈기는 내게 모든 것에 도전하도록 부추겼다.
그리고 최선의 실패는 스스로를 겁쟁이로 만들었다.
다시 시간이 흘러 이제는 어떻게든 부여잡아야  할 것과 세상이 가는 대로 흘러가도록 두어야 할 것을 조금은 분별할 수 있게 되었다.

2017년 8월 16일

상을 치르고 왔다.

직계 가족의 상을 치른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성인이 된 뒤 상주의 격식을 차려 상을 지낸 것은 처음이었다.
많은 일들을 더 큰 어른들께서 진행하셨지만 이번 한 주일이 몇 년처럼 두꺼운 밀도로 내 삶을 채웠다.

상 중에 한 어르신께서 나지막이 호상이라는 말을 내게 해주셨다.
우리는 평소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연명 치료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산소 마스크조차 떼어내려 하시는 손길을 부여잡으며 그 얼마나 많이 울었던가.
때문에 그 단어에 깊은 이질감이 느꼈다. 하지만 따로 소리내어 고치지는 않았다.

꼬박 이틀동안 천 여명의 손님을 받았다. 정확하지는 않으나 식사값이 그에 준하였다.
지친 몸에 장례식은 산 사람을 위한 행사라는 뾰족한 마음이 들었으나, 절하고 또 절했다.
우리는 사람에, 술에. 그리고 이 일련의 장례 절차에 취한 것 같았다. 슬픔을 무언가로 태워 재로 화하여야만 했다. 끝없이 절하고 쪽잠을 자는 것이 조금이라도 우리의 슬픔을 승화시켜나갔을 것이다.

아직 학교도 가지 않은 조그마한 사촌 동생들은 할머니가 하늘나라로 갔다며 방방 뛰었다.
그러면서도 할머니를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조금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다혈질인 우리 가족답게 서로를 끌어안고 위로하는 와중에도 종종 싸웠다.
그러면서도 진심으로 의지했다.
그것을 보면서 삶의 모든 것이 미묘하고도 깊숙하게 엉켜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내가 삶의 다음 이면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정도의 돈을 벌기 시작한 이후로 몇 해가 지나자 꼭 갖고 싶은 것이 없게 되었다. 큰 부자는 아니나 욕심쟁이도 아닌 것 같다.
그 후 몇 년은 하고 싶은 것들을 열심히 찾아다녔는데, 이 역시 시간이 지나자 꼭 해야만 할 도전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걸 못해서 진정으로 후회할까? 라는 게 딱히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에 대한 애착같은 것이 생긴다.
물론 그와 동시에 타인에 대한 실망과 공포도 늘어간다.
그래서 나는 선량한 사람들을 그리도 찾아다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상을 치르며 내게는 가족과 사람이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뿌리 깊게 인식하게 되었다.

장례식 중 단 한번 할아버지께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여 울음을 밖으로 꺼내셨다. 굳게 잠가놓은 단단한 마음조차도 입관 말미에는 슬픔이 부풀어 새어나오고야 만 것이다. 나는 아내를,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헤아릴 길이 없었으나 그 슬픔의 작은 단면에도 가슴이 시리었다.

발인을 하고 삼오제를 지냈다.
지금은 여느때와 다름 없이 내 방에 앉아있다.
변한 게 없는 것 같지만 마음이 헛헛하다. 그 자리에 있어줬으면 하는 마음을 하늘이 거두어 가버렸다.

아무것도 추억하지 않는데 눈물이 난다.
슬픔 또한 내 것이니 이제는 이것을 추억할 것이다.

2월 27일

햇빛이 놀랍도록 따스했다.
코 끝에 닿는 공기가 몸을 타고 내려오며
겨울에게 인사했다.

날이 너무 좋아서 그만 가슴이 울렁거렸다.

어디부터 왔는지 기억조차 없는데
겨울 위에 새긴 발자국이 흔적조차 없어
길을 잃었다.

2월5일

지나간 것, 알게된 것.
그리하여 흘러 온 것들은 강물과 같아서 사람된 몸으로 돌이켜 올라갈 수 없고.

진실은 외면해도 늘 그 자리에 있어
세상의 한 켠에 서서 언 몸을 녹이는 와중에도
맘을 늘 차갑게 식히니

태어나기는 하늘 탓이되
살기는 내 맘이니
그저 뻗어나가는 가지처럼 부끄럼없이 사는 것이 하나의 바램이어라.

강풀만화거리

오늘은 서울 어디로 가볼까 고민을 하다가 강동역 근처에 있는 강풀 만화거리에 다녀왔다.

강풀 만화거리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강풀 만화 작가님의 만화 캐릭터들을 벽화로 만나 볼 수 있다.

강동역 4번 출구에서 내려 출구 방향으로 이동하다가 골목으로 들어가면 가정집들의 벽면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
개인적으로 성내 시장에 진입하는 큰 길로 가길 추천한다. 왜냐하면 아래에 스캔해놓은 팜플렛이 29번 벽화 옆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난 4번 출구에서 나가서 첫번째 골목으로 들어간 탓에 뭐가 어디있는 줄도 모르고 한참을 돌아다녔다.

강풀만화거리
지도를 휴대폰으로 보는 것도 상관없다면 이 이미지를 클릭해 원본을 저장해서 활용하면 된다.
강풀만화거리
직접 돌아다닐 때는 이렇게 많은 줄 몰랐는데 50여개의 작품이 있다.

지도의 출구라고 표시된 곳에도 지도 표지판이 있으니 이곳에서 사진을 찍어가도 된다.강풀만화거리강풀만화거리

작품을 놓치기 싫다면 지도를 잘 활용하도록 하고, 그저 발길가는대로 여유롭게 다니고 싶다면 골목 바닥에 노란 별(★)을 따라 다녀도 대부분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한참 강풀 작가의 만화에 빠져 정주행했던 기억도 있고, 한적해서 운치가 있었다. 벽화 마을들은 대부분 데이트 코스가 되어버리기 일쑤라 천천히 감상하기 힘든데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사람은 나 뿐이었다.
혼자만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비좁은 골목들에도 그림이 그려져 있어 사람들이 많다면 오히려 불만족스러웠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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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 바보, 당신의 모든 순간, 그대를 사랑합니다.’등이 벽화로 그려져 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들도 있지만 다 읽어보았던 것이라 어린 시절 감성이 떠오르기도 했다.

다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26년, 아파트, 타이밍’이 없어서 조금 아쉬웠다.

헌혈 시작

2016_blood_donation

2016년 새해에 세운 목표 중 하나가 헌혈하기였다.
그런데 어느덧 12월.
그래서 부랴부랴 헌혈의 집으로 갔다.

말라리아 위험 지역에 여행을 다녀왔기에 전산 상 헌혈이 금지되어있었다.  헛발걸음을 했지만 헌혈 금지가 풀리는 1달을 기준으로 예약을 하고서 오늘 오전 중 헌혈을 하고왔다.

전혈은 말라리아 위험 지역 방문 시 만 1년이 지나야 가능해서 성분헌혈(혈장)을 했다. 앞으로는 헌혈을 꾸준히 하려고 미리 다음 예약도 잡고 왔다.

늦게라도 시작해서 다행이다.
Better late than never.

1 Second Everyday 3년 후기 – 1초안에 담기(2)

1초안에 담기라는 포스팅을 한 후로 3년이 더 지났다.
유료일 때부터 지금까지 1 Second Everyday(이하 1SE)를 3년 동안 사용해봤으니 후기를 쓸 자격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

실은 가족과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고나서 뒤늦게 1SE에 여행 동안의 1초를 집어넣다가 몇몇 정보가 다른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적어본다.

일단 가장 도움이 될만한 정보부터  말해보고자 한다.
동영상을 찍지 못하고 날짜가 지나가면 어떻게 할까요?
보통 생각 가능한 옵션은 텍스트를 적어 넣는 것이다. 지금은 이게 가능하지만 처음에는 이런 기능이 없어서 넣어달라고 메일도 보냈던 것 같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사실 날짜가 지난 뒤 영상을 찍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다른 기기에서 찍은 영상이나 사진도 나중에 받으면 해당 날짜에 넣을 수 없다는 건 문제다. 영상은 당연하고 이미지에 날짜 정보가 담긴 exif가 있어도 소용없다.

하지만 날짜가 지나도 넣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간단히 휴대폰의 날짜를 바꿔주면 된다. 보통 스마트폰의 날짜는 네트워크 정보를 통해 자동으로 받아오게 되어있는데 이 옵션을 끄고 영상/사진을 넣고 싶은 날짜로 수동 설정한 후에 영상을 새로 받거나/집어 넣어주면 해당 날짜에 넣을 수 있다.
예전에 공식 홈페이지 포럼을 통해 제작자로부터 얻은 답변인데 현재 홈페이지에는 포럼이 사라진 것 같다.

다음으로 디지털 카메라로 동영상을 찍었을 때 옮기는 방법이다.
*.mts 확장자의 디지털 카메라 동영상을 1SE에서 열려고하니 동영상이 실행되지 않았다. 기본 갤러리에서는 문제없이 열리는 걸 보니 코덱 문제는 아닌데 애플리케이션에서 지원을 안하는 것 같다. 그래서 다른 확장자로 인코딩을 해보았는데 *.avi도 마찬가지로 읽지 못했다.

이것저것 해보니 두가지 방법이 있는 것 같다.
우선 첫번째로 *.mp4 파일로 인코딩하는 것이다. 문제는 오디오 코덱을 지원안한다는 메시지를 뿜거나, 별 다른 오류도 없이 그냥 안되는 걸 보니 별별 시덥잖은 이유로 실행이 안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내 경우에 화질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1SE에서 실행이 되던 옵션을 찾아 아래 이미지로 남겨본다.

20161215001
영상에 관련해서는 아는 바가 적어서 인터넷 검색 및 직접 시도해보며 찾은 값이니 수정할 내용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Daum 팟 인코더 옵션)


두번째로는 갤러리에서는 영상이 실행될 경우인데 이때는 휴대폰 자체 동영상 편집기로 파일을 새로 저장 해주면 된다. 이 방법이 위의 방법보다 손도 적게가고 편한 것 같다. 추천한다.
그리고 인코딩 작업을 거칠바에는 최신 휴대폰의 동영상이 더 보기 좋은 것 같다. 그러니 왠만하면 1SE 영상은 휴대폰으로 찍자.

이 정도가 1SE를 꾸준히 사용하시는 다른 분들에게 드릴 수 있는 정보이고 이제부터는 3년동안 사용하면서 느낀 소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일단 TED 영상의 발표자가 해준 몇 가지 충고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Cesar Kuriyama는 자신의 눈으로 보이는 구도로만 영상을 찍으라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그냥 맘대로 찍으면 된다. 내 경우에는 마음가는대로 남기는게 더 좋았다. 그냥 영상 속에서 자기 자신이 되면 된다.
그리고 좋지 않은 날에도 기록을 멈추지 말라는 그의 충고는 정말 쓸모가 없었다. 영상이 없는 것 또한 삶에 대한 기록이다. 삶의 진정으로 살아가다보면 그따위 삼류 원칙이 들어갈  틈이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그냥 며칠 뒤 간단하게 몇 개의 단어로 그 때의 기록을 남기면 된다.
꼭 매일 매일 남기려고 신경을 곧두세울 필요도 없다. 일상에서는 그냥 살아가게 되는 날들이 있다. 물론 소소한 이벤트를 더하면 좋겠지만 그게 순전히 내 맘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날에는 그냥 “평범한 날” 카테고리를 만들어 셀카를 찍어 올리는 건 어떨까? 특별한 이벤트가 없다고 해서 거짓 연기를 할 필요가 없으며, 그저 당신이 원하는 대로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면 그 날에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몇 가지 나만의 원칙들을 세워가며 1초 영상을 남기다보니 어느덧 3년이 지났다.
친구들은 대개 아직도 하냐는 반응이고, 그 후 몇몇 사람들은 나를 따라서 1초 영상을 남기고 있다. 실은 몇 달전에 2015년도 영상을 합쳐보았는데 6분 남짓의 영상을 보고 이 일을 한 것에 대한 뿌듯함을 느꼈다. 예전에는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나버렸구나 하고 아쉬운 맘에 크게 남았는데 6분동안 쉴새없이 흘러간, 내가 남겨온 찰나를 따라가다보니 그래도 내가 막 살지는 않았구나. 나름 순간들을 가득 채워가며 살았구나라는 생동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대부분의 동영상에 친구와 가족이 들어있어서 이 놀라운 경험을 직접 공유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조금 안타깝다.

광화문 촛불집회

어제(2016/11/26) 광화문 촛불 집회에 다녀왔다.

실은 벌써부터 다녀오려고 했는데 여행이다 뭐다 일상의 핑계로 미루고 있다가, 가장 많은 인원이 모인다는 어제를 정조준하여 출격했다. 날은 춥고 눈도 내렸지만 역에서부터 이동이 힘들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다.

원래는 혼자서 다녀오려고 했는데 여차저차 친구들과 광화문에서 만났다.

매일 뉴스에서는 우리가 온갖 비리에 무감해질만큼 부역자들의 악취를 들춰내고 있다. 마음같아서는 방망이 깎던 노인에게 죽창을 벼려달라고 하여 거리를 활보하고 싶건만,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괴테 옹의 말씀으로 머리를 차갑게 식히고 있었다.

이토록 많은 촛불을 본 건 광우병으로 인한 촛불 집회 이후로 처음 인 것 같다.

반론의 여지없는 하야&탄핵 요청이기에 시민들이 모두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서 축제와 같은 분위기였다.
몸은 추웠지만 맘은 참으로 따뜻해졌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님들도 많이 있었다. 우리의 세계가 이토록 엉망일지라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 세상의 변화가 한 굴곡을 맞이해 출렁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개-돼지는 우리 국민들이 아니라 우리에게 심어주고 싶은 추악한 그들의 자화상이었을런지도 모른다는 부푼 꿈을 꾸었다.

스마트 OTP 사용

작년에 국민은행에서 스마트OTP를 발급 받았었다.

그 후에 휴대폰이 망가져 급히 해외폰(파이어폰)을 구매하여 사용했는데, 그때부터 스마트뱅킹을 이용하지 않았다. 커스텀 롬을 사용하는데 스마트뱅킹을 사용하기가 영 찝찝했기 때문이다. CM 공식 롬이라면 믿고 사용할 수 있겠지만 개인이 수정한 커스텀 롬은 아무리 롬의 소스가 오픈되어있다고 하더라도 걱정이 됐다. 소수가 사용하는 롬은 제대로 검증될리도 만무하거니와 소스 속에 나쁜 코드를 꽁꽁 숨겨놨다가 어느날 갑자기 작동시켜 정보를 빼가도 속수무책일 것이라는 생각때문이었다.

아무튼 불편함을 감수하고 잠시 사용하기로 했던 휴대폰이 나름 맘에 들고 그 외에 딱히 맘에 드는 휴대폰도 없어서 1년을 스마트뱅킹없이 살게 되었다. 그러다가 얼마전 휴대폰을 바꾸고 스마트뱅킹을 다시 이용하고 있는데… 도대체 불편해서 어떻게 살았나 싶다. 그동안 여러 곳에 분산된 계좌에 접근 편의성이 떨어지니 예&적금 관리도 잘 안되고 가계부도 대충 대충 적고 살아왔던 것 같다. 다시 재테크 공부에 열을 올리겠노라 작심하고 책상에 고이 모셔뒀던 스마트OTP도 재등록했다.

참고로 국민은행의 경우 인터넷이나 모바일에 OTP 재등록 메뉴가 없어 직접 방문을 했는데 당행  OTP는 보통 발행하면서 등록하기 때문에 개인이 등록할 수 없다고 한다. 아마 다른 은행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1년 사이에 스마트OTP를 사용할 수 있는 은행이 조금 더 늘었다. 관련된 정보는 스마트OTP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주로 입출금을 이용하는 은행은 모두 스마트OTP를 지원하고 있어서 타행 OTP 등록을 통해 스마트OTP를 등록했다. 추가적인 어플은 각 은행의 스마트뱅킹 어플 외에 스마트 OTP 공동앱을 받아주면 된다.

이용해보니 이체시 스마트OTP를 접촉시키면 팝업으로 핀 번호가 뜨는데 이를 수동입력해주는 방식으로 이용한다.

—————2016/11/18—————
두 차례 스마트 OTP 문제를 겪었습니다. 통합 스마트 OTP 앱이 새로 나왔는데 말만 통합이지 각 은행마다 다른 인증 앱을 사용하게 됩니다.
현 시점에서 스마트 OTP는 주로 쓰는 은행(발급받은 곳)만 등록해두시는 걸 추천하고, 스마트 OTP 하나로 모든 은행을 사용하는 건 불편함이 더 많습니다.

—————2018/12/01—————
스마트 OTP 공동앱만으로 사용가능하게 통합된지도 꽤 되었고, 사용중인 모든 은행/증권사를 스마트 OTP로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