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03

삶의 바닥에서 죽고싶다와 살려달라는 말은 쉬이 넘나들 수 있는 경계에 위치해 있다. 두 말 사이의 본질은 도망치고 싶다는 것이고, 바닥의 중력에 잡힌 사람에게 죽을 각오로 살라는 이야기는 저 아랫 세상의 풍경을 본 적 없는 무지에서 비롯된다.

한 개인의 바닥에서는 지성도 성품도 별 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 굶주린 자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음식뿐이듯 삶이 위태로운 사람에게는 오직 절망보다 큰 삶의 의미만이 필요하다. 허나 그것을 스스로에게서 이끌어 낼 수 있었다면 이미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자기 자신의 목숨을 저울질하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므로 결론은 대게 타자에게 있다.

물론 제3자에게 귀책의무가 없으므로 비극은 자주 그리고 점점 더 자주 일어난다. 또한 선한 의도를 가진 들 우리들은 대게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중생이라 알면서도 주변인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아야 할 때가 있다. 괴로운 일이다.

나는 마치 미로 같다고 생각했다. 절망에 빠진 이는 분별없이 가장 가까운 문을 출구로 여기고 달려나간다. 그 길이 사는 길인지 죽는 길인지는 오직 운에 의해 찰나에 결정되는 것이다. 지금 사는 길도 막다른 길에 연결되어 있을지 알 수 없다.

허락된 것은 오직 아끼는 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더듬어 나가는 것 뿐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내 맘대로 되지 말라고 만들어놓은 것 같은 현실 속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책을 덮었을 때, 그 이야기가 슬프더라도 다른 이에게 흉으로 남지는 않기를 바란다. 그 책의 주인공도 그리 말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