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 만들기

코로나 이후 좀처럼 생활이 나아지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서 적극적인 변화를 주기로 했다.
코로나 때문에 여러가지 제약도 있었지만, 집안 사정이 더해져 생활의 중심이 옮겨진 채로 한동안 생활하고 나니 오래 된 좋은 습관조차도 잃게 되었다.

이 글은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하루의 중심을 정함으로써
첫째, 삶에서 무엇을 만나던 다시 이리로 돌아오기 위한 지침을 세우려는 목적이 있고
둘째, 변화의 과정을 기록함으로써 꾸준히 밀어붙이려고 한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달리기를 제대로 하는 것이다. 10년도 넘게 뛰어왔지만 코로나 때 외출을 자제하고 또한 마스크를 쓰고 뛰기 힘들어 어영부영하던 것이 죄책감에 겨우겨우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기존에 사용하던 가민의 5km 챌린지 기능을 이용해 5주째 뛰고 있는데, 일주일 3일 수행에 매번 인터벌이 섞여있다.
옛날에는 늘 존2로 뛰었는데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변화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왠지 열정이 동하지 않아서 변화를 주기로 한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5년내 변하지 않던 몸무게가 벌써 2kg이나 빠졌다.

그리고 이번주에는 수면 패턴을 바꾸기 위해 집중했다.
출근 할 필요가 없는 일의 장점은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지만 기준이 부재하니 어느 틈엔가 생활리듬이 자유분방해지고 고삐를 쥐었나 놓는 일이 다반사가 되어 수면 패턴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달리기에 근력 운동을 조금 더해보니 회복력이 떨어진 것이 크게 느껴져 어떻게든 생체 리듬을 먼저 잡아야 겠다고 생각해서 밤도 새보고 억지로 버티면서 이번주 내 기상 시간을 고정시켰다.
반동이 컸다. 다래끼도 나고 눈병도 났다. 관절에 염증도 생긴 것 같이 아파서 올해 들어 시작한 간헐적 단식(아침 거르기)도 중지하고 세끼를 엄청나게 챙겨먹었다. 운동도 하루 쉬던 것을 이틀 쉬고 강도를 조절했다. 아직은 낮에 갑자기 피로가 몰려들지만 +-수준 내에서 기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계속 잘 유지해야겠다.

근력 운동도 다시 시작했다.
오래 쉬었지만 그만큼 오래해와서 만만한 팔굽혀펴기와 풀업부터 다시 시작했다. 하체는 안하던 인터벌이 들어가서 30~45분 달리기 강도가 더 올라가지 않을 때까지는 따로 하지 않을 생각이다.

걷기, 명상, 수분 섭취, 매일 외국어-투자 공부하기, 독서 및 자료 정리, 여행 다시 시작, 경험한 것 피드백, 식사 기록, 위생관리 등 빈도와 방법이 다른 루틴에 대해서 좀 더 체계적으로 관리 및 기록할 예정

240603

어릴 적에는 지금보다 시를 많이 읽었던 것 같다.

그게 무엇인 줄은 잘 몰랐지만 들이켜보니 씁쓸한 낭만이 있던 시대였다.

초등학생 때는 학교에서 시를 적는 시간도 많았다.
나는 상장도 자주 받아서 엄마가 기뻐했다.

천상병의 귀천을 들은 건 얼만큼 키가 자랐을 때였을까.
한 살 터울의 누나와 텅텅한 장롱 옆 한 모서리 벽에 자를 대고 죽죽 그어가며 누구 머리가 더 높은가 경쟁을 하고는 했었다.

학교에서는 어린 학생들을 위해 자주 글을 읽게 했는데 그 날 읽은 시구가 묘하게 혀 마디에 남았다. 하늘은 불덩이 같은 몸둥이에 땀방울을 짜내듯 자주 높고 맑았고 그렇게 하늘로 돌아간다는 이야기가 듣기 좋았다. 나는 그가 역사책에 나오는 엄청 나이 많은 어른은 아닌가 했었다.

요즘은 고런 생각을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게 무슨 소용일까.

근래에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즐거운 일을 해도 곧 익숙해지고 휘발되어 더 나은 다음을 기약하기 힘드니 삶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던 날들이 많았다.
그에 반해 불운을 지나갈 때 힘든 순간은 끝도 없어 참으로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의미가 없이 그저 그런대로 흘러간다면야 기쁨과 슬픔이 무분별하게 방문을 열고 들이닥쳐야 하는데, 기쁨의 벽은 점차 높아만지고 고통은 그 꼴이 다채로와지니 이건 누구의 장난일까 싶어졌다.

내가 유난히 못난 것인지, 삶이란게 원래 그런 것인지 퍽이나 궁금했다.

어릴 적에 꿈이 뭐냐고 물으면 대강 남들이 하는대로 적당히 둘러댔지만
실은 나 혼자만이 꽁꽁 숨겨둔 꿈이 하나 있었다.

허락된다면 그럴 여유가 있다면,
좋았다고 잘 살았다고 신나게 웃으며 가는 것이 내 바램이다.

우리의 삶이 시간 위에 이미 그려져있다면 내 마지막 날은 어렸을 적에 미리 끄적여놓았다.

그런데 잘 하고 있는 것 같은데도 마뜩하게 기쁘지 않고,
그마저도 잘 되지 않을 때는 대들보가 비틀어지듯 뭔가 완전히 잘못된 건 아닌가 초조한 날들을 많았다.

그러다가 깨달은 건 내가 점수를 메기고 있었구나.
나도 어느새 어린 왕자의 바보같은 어른이 되어서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괴상한 자를 대고 내 삶에 점수를 메기고 있었구나.

그 점수를 놓고서 바보같이 울고 웃었구나.

막연하게 오늘 기뻤으면 그 날은 좋은 날이고, 힘든 일이 있으면 그 날은 세상에 없었으면 좋을 그런 날일까.

실은 그 모든게 함께 주어진 것이고 나는 그것을 다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어떤 날이라도 사랑한다고 웃으며 잠들 수 있는 밤이 되기를 바란다.

240521

현대인들의 고통 중 많은 부분이 뭔가를 소중히 여기는 방식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한 가지에 얽메일 필요도 없지만, 무언가를 과도하게 소비하고 경험하려는 형태로 편향되어 있다.

하지만 시간과 에너지는 명백히 한정되어 있는 걸. 다 가질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삶에서 더 빈번한 문제는 중요한 것들의 우선순위를 잊는 경우다. 우리는 눈 앞의 시시한 목표에 너무 눈길을 사로 잡혀서 더 중요한 것들이 뭔지 알면서도 자주 놓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해답이 있는 건 아니다. 더 자주 생각하고 되새겨 중심을 잡는 것 뿐이지 않을까 싶다.

240115

오늘은 어릴 적 살던 동네에 다녀왔다.

언젠가부터 계획없이 발길 닿는대로 가다보면 가끔 그곳에 도착한다.
그 동네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대로인 점이 많다.
동네 구멍 가게는 편의점이 됐고 만화책방은 빌라가 되었지만, 집 앞 세탁소와 역 앞의 과일 가게는 그대로 서 있었다.

마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처럼 익숙하게 내가 살던 골목으로 돌아 들어서면 마법이 걸린 것처럼 순식간에 과거가 열린다.
엄마한테 천원짜리 지폐 한장을 받아 매일같이 누나랑 떡볶이를 사서 돌아오던 그 골목. 나보다 두어살 많던 동네 형들과 축구를 하다가 울고는 하던 작아져버린 골목.
떡볶이가 아직 익지 않아 기다릴 때면 나는 그 앞의 오락실에서 나보다 한 뼘은 더 큰 아이들이 게임하는 것을 물끄러미 구경하고는 했다.

“왜”
‘이 작은 골목에서 딱 두 개만 바뀌었는데 그게 내가 살던 집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종일을 함께 하던 가장 친했던 친구 녀석의 집일까’
라는 생각을 하고 턱을 들고 입을 삐죽거리며 시멘트로 막혀버린 옛 친구의 집 문 앞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제는 없어져 버린 문 앞에는 원래 높은 계단이 있었고 나는 늘 그 높고 좁은 계단에서 떨어지지는 않을까 긴장을 했었다. 어린 그 날처럼 침이 꼴깍넘어갔다.

이 조그만 골목에 낯선 사람이 사연 많은 얼굴로 겨울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모습이 과거의 망령으로 오해를 받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칠 때쯤 고개를 돌리니 작은 CCTV 하나가 눈에 띄었다.
대문 사이로 들어간 공을 줍겠다고 문을 두드리니 고함을 쳐내던 그 이웃분이 아직도 그 집에 살고 계신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 과거로부터 돌아 나오려는 찰나 한 할머니께서 작은 폐지를 한 손에 쥐고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순간 내가 살던 집의 2층에 살던 주인집 할머니가 겹쳐 지나갔다.
‘아, 아니겠지’
족히 30년 전의 일이라 살아계신다면 100세도 훌쩍 넘으신 분이 이렇게 정정하실리가 없지.

오늘은 과거에 너무 취한 것 같아 취한 김에 유치원에 오고 가던 길, 학교 통학길도 걸어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올 때는 이제 우리집을 가진다며 부푼 맘으로 부모님과 모델하우스를 보러 걸어다니던 길을 통해 걸어왔는데 그때의 엄마는 20대였더라. 우리 엄마 참 젋고 예뻤는데.
엄마는 내게 처음부터 엄마라 항상 모든 것을 의지했는데.
그 나이에 힘든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을 더 잘 살아내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걸 알지만, 하루 정도는 잠깐 과거에 들러 쉬다가 가도 되지 않을까. 그래도 되지 않을까.

에버노트 무료 사용자 혜택 대폭 축소

에버노트 무료 사용자 혜택이 대폭 축소되어 1개의 노트북과 50개의 노트만을 제공하게 되었다. 사실상 무료 사용 계정은 맛보기용으로 격하된 것인데 회사가 잘 되서 유료화에 박차를 가한 것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 고육지책으로 짜낸 듯 보인다. 흡사 곧 망할 회사가 조금이라도 법인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마지막 희망퇴직자를 받는 것 같다고 할까.

에버노트를 10년 넘게 사용해온 입장에서는 좀 서글픈 마음이 든다. 요즘은 구독 경제라 구독 요금으로 이것저것 내는 입장에서 구독을 하나 추가하는 게 싫다기보다, 내가 사랑했던 이 앱을 구독 할 까닭이 없다는 사실이 좀 씁쓸하다.

에버노트는 이제 다른 노트 앱에 비해서 장점이랄 것도 없는 죽어가는 유니콘이 되었다.
일단은 obsidian과 원노트로 대부분 노트를 옮길 것 같다.

이런 걸 볼 때마다 혁신(革新)이라는 단어에 침착하게 되는데, 현재를 지켜내면서 새로운 것으로 변모를 할 수 있는 능력이야 말로 정말 대단한 것 같다는 생각에 빠진다.
지켜내는 것보다는 새롭게 만드는 편이 훨씬 쉽다. 그만큼 한 손에 현재의 영광을 쥐고서 시도하는 변화가 어렵다는 것이고, 롱런하는 사람들의 힘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