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는 얼마 지나지 않은 군 복무 시절에 읽은 책입니다. 군 시절 읽은책 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책 중 하나인 이 소설은 이미 대중에게 충분히 알려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이 소설의 제목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기분을 느끼셨을 겁니다. ‘엄마를 부탁해’라는 제목… ‘부탁한다.’라는 사실은 누군가에게 맡겨 위임한다는 것인데 엄마라는 존재가 과연 고작 그런 대우를 받을 존재인가? 하는 의문이 드시지 않으십니까? 역시나 불길한 예감대로 소설 속 우리의 못난 자식들은 엄마를 잃어버립니다. 하지만 이 소설이 읽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진짜 이유는 소설 속의 주인공이 바로 여러분이자 저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소설은 말하는 사람의 시점을 바꿔가며 자신의 속내를 숨김없이 털어놓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읽는 이가 그 누구라도 피해 갈 수 없는 함정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치 제 머리 속에서 혹은 입에서 바로 튀어나온 말인 듯 불쑥 불쑥 놀라게 합니다.
‘엄마’라는 말에서 여러분들은 어떤 느낌을 받는지 모르겠습니다. 끝없는 사랑, 포근함 또는 자신이 이 세상에 가지고 나온 모든 것들에 대한 고향. 앞선 단어들이 제가 엄마라는 말을 정의하는 다른 말들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께서도 아마 그 이미지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그 무한한 사랑의 본연인 엄마라는 말의 이미지가 맘속에 자리잡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 엄마가 사라졌습니다. 서울역에서 당신의 생일상을 받으러 오시는 길에 우린 그만 그녀를 잃어버렸습니다. 우린 인파 속에서 엄마의 손을 놓쳐 버린 순간에 엄마를 잃어버렸으나 사실은 이미 언제인지도 모를 과거에 지금은 칠순이 되어버린 그녀. 박소녀씨를 잊어버린 채였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엄마라는 존재는 그저 엄마 그 자체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집으로 방문한 외삼촌께서 엄마의 이름을 불렀을 때 어린 저에게는 그 이름이 굉장히 생소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어린 시절의 일이 아직도 제 기억의 한 켠에 남아있는 까닭은 그 일로 인해 엄마라는 존재를 한 명의 개인으로 볼 수 있는 인식의 확장이 이뤄졌기 때문일겁니다. 사실 지금 우리들의 엄마들 중 다수가 시대와 삶이 주는 시련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을 사랑하기에 포기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으로서의 삶입니다. 눈매가 소처럼 맑았던 박소녀씨가 울 수 조차 없을 정도의 두통에 시달리고 자신에게 진정 소중했던 것들을 내 던지면서도 유일하게 지켜낸 것은 바로 자식들입니다. 힘이 뜰 때, 가슴이 아플 때, 외로울 때, 가련한 소망이 있을 때도 우리네 엄마들에게 삶을 사는 오직 하나의 방식은 바로 자식들이었습니다.
엄마를 잃고 나서 던지는 작가의 한 마디는 괜시리 공감이 가는 구석이 있습니다. ‘특히 나쁜 일은 발생하고 나면 되짚어지는 게 있다. 그때 그러지 말아야 했는데 싶은 것’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하는 순간의 선택이 얼마나 불확실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그 결과 특히나 좋지 않을 때 더욱 되짚어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난히 운이 좋았던 일도 그 밑바닥까지 따지고 들면 별 것 아닌 요소가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은 생각보다 더욱 불확실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진실만은 다른 것들과 다른 차원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비평가라도 함부로 입을 열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 진실된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 사랑을 의심할 여지 없이 주는 사랑이 헌신적인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태어남과 동시에 어미의 몸을 파먹어 세상으로 나갈 양분을 획득하는 두꺼비가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엄마들도 시대, 삶이 주는 갈증의 몫을 혼자 지고 가려하지만, 정작 본인도 목마름에 허덕일 수 밖에 없는 한 개인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을 때, 이미 성장한 자식들은 이제와서 눈물 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부모 아닌 이는 있을 수 있어도 자식 아닌 이는 없습니다. 그저 한 개인인 엄마. 딸이자 형제인 엄마들이 앞으로는 그 자식들로 하여금 지금보다 행복해졌으면 하는게 작은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