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인생은 짧다.
그건 수백일에 그칠 수도 있고, 수십년이 될수도 있으나 각 개인들이 원하는 모든 것들을 성취하기에 짧다는 건 부정할 일이 없을 것이다.

인생 무상이다.
우리는 태어남을 선택하지 않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자유는 있으나, 삶은 고행이다라는 명제가 띤 세상에 아직 살아있다는 것은 이 곳에 소중한 뭔가 남아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허나 이것은 살기를 선택했다기보다는 죽지 않기로 결정한 소극적 생존에 더 가깝다. 삶의 의미에 대한 결정을 유예하고 고통과 기쁨의 크기를 조심스럽게 가늠해본다. 순간의 기쁨을 고통의 마취약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살기를 결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숨을 쉰 체 죽어 있는 것이다. 어떻게 살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이유를 던져주지 않은 세상에 자기만의 이유를 달아야 한다.
몇 해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몇 가지 작은 이익을 위해서 마음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함부로 판단해보자면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대게 그런 것 같다. 어린 시절동안 몇 개 가치의 무게를 양손에 가늠해보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언제든 떨어지지 않는 행동이 될 정도로 완전히 내 것이 되지는 못한 생각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 사랑하는 것. 이 두가지는 목숨을 팔아서라도 지켜야 할 것이다.

그 두가지를 침해하지 않는 경우 나는 즐거움을 최우선 가치로 둔다. 더 크고 행복하게 살기위해서 포기해야 될 것들은 가식, 타인의 시선, 무의미한 사회의 관습 따위다.

바보같지만 왠지 이런 생각을 똑 부러지게 적어놔야할 것 같아서 여기 적어둔다.

The Egg (by Andy Weir) 구자형씨 텔링

 

아래에는 스포일러를 담은 개인적 감상이 포함되어 있으니 스크롤을 조심해서 내려주세요.

 

 

 

 

고요한 떨림이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단지 흥미로운 단편 소설일 뿐만 아니라 거기에 구자형씨의 멋진 목소리와 좋은 음악이 곁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이야기를 듣고 잠시동안 멈춰진 시간과 닫힌 공간에 갇혀버린 기분이 들었다. 단 한숨의 공기조차 멈춰버린 듯하다.

트루먼 쇼의 트루먼처럼 우리 모두는 이 우주에서 유일한 주인공이었으며, 동시에 모든 가해자이며 그 가해자에게 학대당한 피해자였다. 내가 사랑하는 이는 나 스스로였으며, 내가 미워하는 사람 역시 나였다.
네이버 웹툰 ‘죽음에 관하여’에서 비슷한 감성을 느껴본 적이 있다. (현재 2화를 볼 수 있는데 관련해서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유료로 바뀌어 몇 화인지 확인해볼 수가 없다.)

만약 세상이 이 이야기와 같다면… 지난 생에서 나쁜 짓은 이미 다 해버리고 지금 충분히 성장한 영혼이기를 빌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으로의 삶이 아직 남아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