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의 앵커링 뛰어넘기

  1. 투자와 관련해서 바로 직전의 생각을 극복하기 힘들다는 건 충분히 알려져있다.
    구체적인 실천 예시를 들면 매수/매도 판단시에 자신의 보유수량이나 평단가를 모르는 것처럼 판단해야 한다. 해당 종목을 얼마나 들고 있었고 얼마나 돈을 벌거나 잃었는지도 잊은 것처럼 판단해야 한다. 한마디로 그 종목을 가지지 않고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는 사람의 기분으로 현재의 상황을 판단해야 한다. 너무나도 간단한 사실이지만 이걸 스스로 배우고 적용하기까지는 수억원도 모자르다.
  2. 정서적인 한계점에 도달할 때가 있다.
    그 상황을 몸이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면 우선 특정한 사건이 있고 그 사건이 전전두엽을 한계까지 밀어붙여 정서적 통제력을 잃은 것이다. 하지만 한가지 뒤집어 생각할 지점이 있다. 대부분 문제가 발생할 때 단일 사건이 가하는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스스로가 과거에 관련된 일로 얼마나 깊은 고통을 받았고, 스스로가 얼마나 참아왔는가 하는 메타인지와 스토리텔링이 과거로부터 고통을 한꺼번에 되살려 가져오는 것에 가깝다.
    이런 논리적인 이해는 받아야 하지않을 고통을 소거하는데 도움이 된다.

사람의 보편적인 정신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이해하면서 한 발자국만 그 길에서 발을 떼어도 삶에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이 꽤나 크다는 생각을 한다.

251009

민주주의와 AI는 상성이 좋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최근에 한 생각들이 그 지점에서 만났다.

요즘 어느 나라를 봐도 우리가 믿던 민주주의의 수준을 내려 근시안적인 이익을 대변하는 정부가 선출되고있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큰 사건이 벌어질 타이밍이 이미 지나갔다는데 현재 시스템에 놓인 폭탄이 그때 그때 벌어지는 큰 사건들에 관심을 뺏긴 채 터지지 않고 겨우 이어지는 것 같다.

25년이 끝나감에도 AI는 멈추지않고 지수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인간의 의식이 특별하지 않다는 점에서 LLM은 인간이 상상하는 형태의 자의적인 의도를 갖지 않을 것 같다.
생명체와 같은 사고를 가지기 위해서는 자체적인 감각. 그리고 정보의 개별적인 해석을 통한 성장등의 고립적인 특징에 더해 생존이라는 절대적인 목표를 가진 유전자적 의도가 필요한 것 같다. 그런 자의적인 개별 존재의 스토리텔링이 의지가 아닐까 싶다.
LLM은 그런 형태로 설계되지 않았기에 고도화된 지적 도구로 남을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한다. 그 편이 인간에게도 이롭다. 특이점은 당장에라도 우리가 상식적으로 상정할 수 있는 병목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점의 형태가 아닌 선이나 면처럼 바라볼 수 있는 형태로 과속방지턱을 넘어서며 올 것 같다. 하나의 원리나 지식이 기술 발전을 증폭시키는 연쇄작용처럼 말이다.

아무튼 현 시점에 이미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수적 감각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가속도가 붙고 있고 우리의 기존 시스템이 버텨준다면 생산력의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각 개인의 이기심을 대변하는 민주주의가 오히려 이 시점에서 상성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지구안의 넘치는 생산성을 올바르게 재분배하고 있지 않지만 인간의 이기심을 제일 잘 대변하고 있는 민주주의만이 앞으로 그 재분배를 요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AI가 플라톤이 말한 철인이 될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생명계가 그렇게 저열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명의 개개인은 별볼일 없지만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기심, 질투, 이타심, 메타 인지와 같은 모든 본성들은 인간계를 지금까지 생존하게 만들어줬다.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모순된 본성은 평생동안 개인을 괴롭히는데 그것이 전체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아주 훌륭한 전략일 수 있고, 또한 합리적으로 이해가 되니 말이다.

5년이나 10년뒤에 세상이 어떻게 변했을지 이 글을 다시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