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가끔 세상을 많이 보거나 이런 저런 경험을 통해, 혹은 지식을 통해 그렇지 못한 다른 이들과의 우열을 가르려고 시도한다.
일면 이해가 되지만 유한한 인간에게 앎이란 일생에 채우지 못할 못이고, 어렵사리 도달한 깨달음이란 실은 뒷걸음질에 닿기도 하는 티끌같은 관점의 차이다.
우리가 바보같은 건 어쩌면 어른이 되기에는 너무 짧은 생에 어른이 되기를 강요받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남과 자신을 구분하려고 하는 강박은 우리들이 생각이라는 개개인의 맞춤 감옥에 갇혀있기 때문에 생긴 신경증이라는 상상을 한다.
우리가 세상과 소통하는 이 흥미로운 언어 퍼즐은 실은 진실의 근사값에 불과하기에 늘 모호한 경계를 자유로이 타고 넘는다. 그렇기에 논리를 쌓는 것은 구름을 벽돌로 빗어 집을 짓는 것만큼이나 꿈 같은 일이라 곧잘 질펀하게 뭉게지고는 한다.
감정에 제 이름이 없다면 우리는 아마도 그것에 대해 눈치채지 못하고 살 것이다.
그것에 이름을 붙여주고 오랫동안 바라보고, 그에 관해 이야기를 쌓고 난 후에야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된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자기 자신조차 까마득하게 모르고, 세간의 평가를 꼬낏 꼬낏 모은 뒤에야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이 겨우 보이는 법이다.
모든 것이 모호하고 적당히 둘러대기만 할 뿐인 세상이라
나는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더 많은데도 뭔가를 믿는다고 말할 수 있어서
그 무모하게 벼려진 마음이 반짝인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진 말과 생각은 무뎌서 이리저리 두드려볼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