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초부터 말일까지 약 한달동안 3D 프린터 조립 알바를 했다.
기존에 여러매체를 통해 3D 프린터를 접하면서 막연한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인이 관련 사업을 하는 업체에서 일하게 되었고, 어느날 내게 알바를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했다. 평소 내가 이런 저런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을 쓸 일이 생기자 내가 생각났다고 했다.
그래서 시급도 묻지않고 무작정 해보았다.
그렇게 약 한달동안 편도 1시간 반이 넘는 거리를 오가며 알바를 했다.
결과부터 말해보자면 썩 괜찮은 경험을 해본 것 같다.
우선 3D 프린터에 대해 좀 더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좋았다. 앵무새 말을 쫓듯 하는 언론이나, 수식어가 찬란하기만 한 홍보 자료들로는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이 경험을 통해 직접적으로 이해되었다.
3D 프린터는 생각보다 참 별것 아니면서도 대단한 놈이었다.
그 구조나 작동원리가 참으로 단순하다는 점이 참 별 것이 아니게 느껴졌고, 그 별 것 아닌 것이 개개인의 생활을 폭발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직은 꽃피지 못한 ‘가능성’이다.
보급형 3D 프린터는 제작속도도 정교함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싸다고 말하기 애매한 가격의 제품을 구매해서 얻을 수 있는 애매한 이점을 일반 소비자들은 굳이 원치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목업을 제작하거나 커스터마이징 제품을 생산하는 후가공 업체등 다품종 소량 생산체제의 분야에서의 3D 프린트는 꿀과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소수의 분야에서 쓰이는 특수한 제품들은 보통의 일반인들에게는 ‘그들의 연장’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가능성’이 피어나기 위해서는 마치 올림픽 구호를 외치듯 더 싸고, 더 빠르게, 더 정교하게 출력물을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이 필요해 보인다. 말 그대로 “뚝딱” 만들어져야 한다.
나는 이가 빠져버린 플라스틱 부품 하나를 생산하기위해 산만하게 좌우로 몇시간씩 움직여대는 큼지막한 박스를 내 방에 들여놓고 싶지 않다. 그 가격이 20~30만원정도 한다면 재미있는 장난감이라고 생각해보겠지만 비슷한 가격대의 중국산 제품 퀄리티의 대해서는 좋은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실제로 내가 본 3D 프린터 구매자들 대부분이 대학교 연구실에 있거나 개인적인 흥미를 가지고 구매하는 사람들이었다. 성인의 취미로 보기에 보급형 3D 프린터는 크게 부담되는 가격은 아니다. 허나 우리가 3D 프린터에 원하는 건 고작 그런게 아닐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실제로 유용한 것이라고해서 항상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비트코인의 경우에도 개개인의 삶을 한층 개선시킬 혁신적 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보급형 3D 프린터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3D 프린터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것 외에도 그곳에서 일하는 과정자체가 새로운 경험과 생각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일단 평소부터 알고 지내던 4인이 유쾌하게 일하는 공간에서 사람냄새를 맡을 수 있어 좋았다.
한편 중국과 일본을 통해 사업&영업을 하셨던 사장님의 사람에 대한 철학을 듣고는 그동안 못했던 고민도 해보았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람을 남긴다.’라는 생각은 한동안 잊고 있었던 관점이다. 사실 돌이켜보면 나도 그런 마음 가짐으로 묵묵히 주어진 일들을 해나가던 때가 있었다. 당시에 몸은 힘들었어도 고요한 평화를 맛보고 있지 않았나 싶다.
아, 그리고 난 사실 군대에서 공구리나 납땜 등 남들 하는 만큼 이런 저런 종류의 작업을 이미 다 해봤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절단기도 사용하고 레이저 컷팅기도 구경하고… 처음이라 신기하고 재미있는 경험을 많이 했다.
많은 부품들을 자르고, 조이고, 균형을 맞춘다.
집중해서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가는 동안 오랜시간 잠들어 있던 흥미도 깨어났다. 어려서 며칠동안 꼼짝않고 고무줄 총을 만들었던 기억이 났다. 별이나 종이학 접기도 끈질기게해서 큰 유리병을 한가득씩 채웠었다. 나는 그리기나 공작등 미술 관련 부분에 유달리 흥미가 많았다. 크리스마스가 되어 뭔가를 만들거나 미술시간에 하드보드지를 잘라 입체 도형을 만들며 다른 어떤 고민도 없이 하루를 보내곤 했다.
추억을 되살리며 노하우가 필요한 작업들이 슬슬 몸에 익어갈 무렵 처음에 예정했던 알바 기간이 끝이 났다.
사람들도 좋고 아직 궁금한 부분도 좀 남았지만, 당장 집중해야 할 내 일들을 온전히 할 시간을 가지고 싶어서 알바를 그만뒀다.
하지만 나는 이 경험을 통해 앞으로도 꾸준히 3D 프린터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테고, 그동안 잊고있던 내 흥미를 되찾게되서 기쁜 맘이 크다.
위의 사진은3D 프린터 출력물들이다. 각기 원하는 3D 모델링 후 재료인 필라멘트에 따라 색상도 성질도 다양한 출력물을 뽑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