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21

현대인들의 고통 중 많은 부분이 뭔가를 소중히 여기는 방식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한 가지에 얽메일 필요도 없지만, 무언가를 과도하게 소비하고 경험하려는 형태로 편향되어 있다.

하지만 시간과 에너지는 명백히 한정되어 있는 걸. 다 가질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삶에서 더 빈번한 문제는 중요한 것들의 우선순위를 잊는 경우다. 우리는 눈 앞의 시시한 목표에 너무 눈길을 사로 잡혀서 더 중요한 것들이 뭔지 알면서도 자주 놓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해답이 있는 건 아니다. 더 자주 생각하고 되새겨 중심을 잡는 것 뿐이지 않을까 싶다.

240115

오늘은 어릴 적 살던 동네에 다녀왔다.

언젠가부터 계획없이 발길 닿는대로 가다보면 가끔 그곳에 도착한다.
그 동네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대로인 점이 많다.
동네 구멍 가게는 편의점이 됐고 만화책방은 빌라가 되었지만, 집 앞 세탁소와 역 앞의 과일 가게는 그대로 서 있었다.

마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처럼 익숙하게 내가 살던 골목으로 돌아 들어서면 마법이 걸린 것처럼 순식간에 과거가 열린다.
엄마한테 천원짜리 지폐 한장을 받아 매일같이 누나랑 떡볶이를 사서 돌아오던 그 골목. 나보다 두어살 많던 동네 형들과 축구를 하다가 울고는 하던 작아져버린 골목.
떡볶이가 아직 익지 않아 기다릴 때면 나는 그 앞의 오락실에서 나보다 한 뼘은 더 큰 아이들이 게임하는 것을 물끄러미 구경하고는 했다.

“왜”
‘이 작은 골목에서 딱 두 개만 바뀌었는데 그게 내가 살던 집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종일을 함께 하던 가장 친했던 친구 녀석의 집일까’
라는 생각을 하고 턱을 들고 입을 삐죽거리며 시멘트로 막혀버린 옛 친구의 집 문 앞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제는 없어져 버린 문 앞에는 원래 높은 계단이 있었고 나는 늘 그 높고 좁은 계단에서 떨어지지는 않을까 긴장을 했었다. 어린 그 날처럼 침이 꼴깍넘어갔다.

이 조그만 골목에 낯선 사람이 사연 많은 얼굴로 겨울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모습이 과거의 망령으로 오해를 받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칠 때쯤 고개를 돌리니 작은 CCTV 하나가 눈에 띄었다.
대문 사이로 들어간 공을 줍겠다고 문을 두드리니 고함을 쳐내던 그 이웃분이 아직도 그 집에 살고 계신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 과거로부터 돌아 나오려는 찰나 한 할머니께서 작은 폐지를 한 손에 쥐고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순간 내가 살던 집의 2층에 살던 주인집 할머니가 겹쳐 지나갔다.
‘아, 아니겠지’
족히 30년 전의 일이라 살아계신다면 100세도 훌쩍 넘으신 분이 이렇게 정정하실리가 없지.

오늘은 과거에 너무 취한 것 같아 취한 김에 유치원에 오고 가던 길, 학교 통학길도 걸어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올 때는 이제 우리집을 가진다며 부푼 맘으로 부모님과 모델하우스를 보러 걸어다니던 길을 통해 걸어왔는데 그때의 엄마는 20대였더라. 우리 엄마 참 젋고 예뻤는데.
엄마는 내게 처음부터 엄마라 항상 모든 것을 의지했는데.
그 나이에 힘든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을 더 잘 살아내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걸 알지만, 하루 정도는 잠깐 과거에 들러 쉬다가 가도 되지 않을까. 그래도 되지 않을까.

에버노트 무료 사용자 혜택 대폭 축소

에버노트 무료 사용자 혜택이 대폭 축소되어 1개의 노트북과 50개의 노트만을 제공하게 되었다. 사실상 무료 사용 계정은 맛보기용으로 격하된 것인데 회사가 잘 되서 유료화에 박차를 가한 것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 고육지책으로 짜낸 듯 보인다. 흡사 곧 망할 회사가 조금이라도 법인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마지막 희망퇴직자를 받는 것 같다고 할까.

에버노트를 10년 넘게 사용해온 입장에서는 좀 서글픈 마음이 든다. 요즘은 구독 경제라 구독 요금으로 이것저것 내는 입장에서 구독을 하나 추가하는 게 싫다기보다, 내가 사랑했던 이 앱을 구독 할 까닭이 없다는 사실이 좀 씁쓸하다.

에버노트는 이제 다른 노트 앱에 비해서 장점이랄 것도 없는 죽어가는 유니콘이 되었다.
일단은 obsidian과 원노트로 대부분 노트를 옮길 것 같다.

이런 걸 볼 때마다 혁신(革新)이라는 단어에 침착하게 되는데, 현재를 지켜내면서 새로운 것으로 변모를 할 수 있는 능력이야 말로 정말 대단한 것 같다는 생각에 빠진다.
지켜내는 것보다는 새롭게 만드는 편이 훨씬 쉽다. 그만큼 한 손에 현재의 영광을 쥐고서 시도하는 변화가 어렵다는 것이고, 롱런하는 사람들의 힘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요네즈 켄시 – Lemon

언젠가부터 자주 듣다보니 의미도 모른 채 가사를 외워버린 노래.

노래를 만들던 중 요네즈 켄시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데 노래의 첫 구절부터 이 사람이 진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할 수 밖에 없다는 건 그 사람이 사용하던 물건이라도 내게 말을 걸어줬으면 좋겠고, 묘하게 남은 향이 날아가는 것이 너무 싫어서 하루가 완전히 멈춰버렸으면 좋겠다는 맘이니까.

아무튼 태어나 버린 이상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 그리고 나 역시 언젠가는 떠나가야 하기에 이별은 아무래도 피할 수 없는 일이라. 참 희한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그렇게 애를 써서 의미가 있다고 이름표를 붙여놓은 것들은 돌이켜보면 대게 부질없고, 그저 기쁘고 슬퍼하고 화나고 즐거운 일들.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일들이 오직 삶 그 자체고 우리가 살았음을 밝히고 있으니.
그걸 알면서도 매일 매일 하루하루에 파묻혀 잊고 마는 것이 참 인간적이다 싶고 우습다.
그러다 가끔 다시 찾아오는 선명한 하루는 내가 누군지 여기가 어딘지 알려주는 것 같다. 어쨌든 어떻게든 하루를 살고 있구나. 이건 오늘이고 오고 있는 건 내일이고. 내가 없을 내일까지 여기 그대로 있겠구나.

교통카드 충전 사기 당한 돈 받아낸 이야기

때는 5월 말.
평양냉면 한번도 안 먹어봤다는 친구 우래옥에 가서 평냉 먹일려고 더위를 물개처럼 헤치고 지하철 역에 도착했음. (우래옥 평양냉면 맛은 있는데 좀 비쌈. 대기줄은 긴데 그래도 회전이 빨라서 30분이면 보통 먹을 수 있음)

그런데 왠 할아버지 될 듯 말 듯한 중년의 아저씨가 우물쭈뼛하면서 나한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교통카드 충전 금액이 다 되어서 집에 가지 못해 난처한 상황이라고 했다.
사실 본인은 10여년 전에도 이렇게 돈을 빌려줬다가 받지 못했던 호구 체질인지라 이게 좀 흔한 레파토리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 짧은 순간에 든 생각은 만약에 이게 사실이라면 어르신의 입장에서는 정말 난처할 수 있다 싶었다. 마침 아버지 연배처럼 보이기도 하고.
실제로 난처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는 가능성을 만드는 것보다는 내가 만원 잃어버리는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 주변 은행까지가서 돈을 인출해 충전해드리고 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물론 사기꾼이었다.
게다가 전화번호를 검색해보니 상습범이었다.

여기서 재수없다고 생각하고 그만 둘 수도 있었다. 사실 만원이면 최저시급 1시간의 노동인데 이거 신경쓰고 시간 버릴 바에 무시하는게 더 이득이니까.
그렇지만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 이유는 나는 거짓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선의를 베풀었는데, 또 다른 피해자들도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나는 그런 마음들이 배신당하면 안된다고 생각했기에 이 행각을 그냥 지나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찰서에 신고함.
고소장을 써본 건 처음이었는데, 입구에서 소액 사기라고 하니까 지원팀으로 연결해주고 다시 간단한 고소장을 육하원칙에 맞게 작성하고 나니 경제팀으로 사건을 배당해줬다. 시간이 흘러서 담당 수사관님과 몇 번의 통화. 수사관님이 CCTV 확보하고, 경찰서에 다시 출석해 수사관님이 구두로 질문하고 대답해서 작성하는 진술서 작성을 하자 고소 절차가 끝이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기꾼에게서 연락이 와 돈을 변제 받았다.
친구는 사기꾼이 이 일을 하려면 지하철을 타는 비용을 썼으니 오히려 손해를 봤다고 말했다. 🙂
사실 사기꾼은 그저 돈 갚는 걸 잊어버렸다고 변명하고 형사적인 처벌을 딱히 할 수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경찰서에 사기꾼이 이런 사건으로 고소당했다는 기록을 문서화 시키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아무래도 이런 기록이 많으면 다음 피해자들의 고소 수사가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싶다. 피해자들이 작은 돈이라고 그냥 넘어가지 않고 따박따박 받아내야 이런 사기 수법이 수익이 안되서 결국에는 없어지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