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노트 무료 사용자 혜택 대폭 축소

에버노트 무료 사용자 혜택이 대폭 축소되어 1개의 노트북과 50개의 노트만을 제공하게 되었다. 사실상 무료 사용 계정은 맛보기용으로 격하된 것인데 회사가 잘 되서 유료화에 박차를 가한 것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 고육지책으로 짜낸 듯 보인다. 흡사 곧 망할 회사가 조금이라도 법인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마지막 희망퇴직자를 받는 것 같다고 할까.

에버노트를 10년 넘게 사용해온 입장에서는 좀 서글픈 마음이 든다. 요즘은 구독 경제라 구독 요금으로 이것저것 내는 입장에서 구독을 하나 추가하는 게 싫다기보다, 내가 사랑했던 이 앱을 구독 할 까닭이 없다는 사실이 좀 씁쓸하다.

에버노트는 이제 다른 노트 앱에 비해서 장점이랄 것도 없는 죽어가는 유니콘이 되었다.
일단은 obsidian과 원노트로 대부분 노트를 옮길 것 같다.

이런 걸 볼 때마다 혁신(革新)이라는 단어에 침착하게 되는데, 현재를 지켜내면서 새로운 것으로 변모를 할 수 있는 능력이야 말로 정말 대단한 것 같다는 생각에 빠진다.
지켜내는 것보다는 새롭게 만드는 편이 훨씬 쉽다. 그만큼 한 손에 현재의 영광을 쥐고서 시도하는 변화가 어렵다는 것이고, 롱런하는 사람들의 힘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요네즈 켄시 – Lemon

언젠가부터 자주 듣다보니 의미도 모른 채 가사를 외워버린 노래.

노래를 만들던 중 요네즈 켄시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데 노래의 첫 구절부터 이 사람이 진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할 수 밖에 없다는 건 그 사람이 사용하던 물건이라도 내게 말을 걸어줬으면 좋겠고, 묘하게 남은 향이 날아가는 것이 너무 싫어서 하루가 완전히 멈춰버렸으면 좋겠다는 맘이니까.

아무튼 태어나 버린 이상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 그리고 나 역시 언젠가는 떠나가야 하기에 이별은 아무래도 피할 수 없는 일이라. 참 희한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그렇게 애를 써서 의미가 있다고 이름표를 붙여놓은 것들은 돌이켜보면 대게 부질없고, 그저 기쁘고 슬퍼하고 화나고 즐거운 일들.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일들이 오직 삶 그 자체고 우리가 살았음을 밝히고 있으니.
그걸 알면서도 매일 매일 하루하루에 파묻혀 잊고 마는 것이 참 인간적이다 싶고 우습다.
그러다 가끔 다시 찾아오는 선명한 하루는 내가 누군지 여기가 어딘지 알려주는 것 같다. 어쨌든 어떻게든 하루를 살고 있구나. 이건 오늘이고 오고 있는 건 내일이고. 내가 없을 내일까지 여기 그대로 있겠구나.

교통카드 충전 사기 당한 돈 받아낸 이야기

때는 5월 말.
평양냉면 한번도 안 먹어봤다는 친구 우래옥에 가서 평냉 먹일려고 더위를 물개처럼 헤치고 지하철 역에 도착했음. (우래옥 평양냉면 맛은 있는데 좀 비쌈. 대기줄은 긴데 그래도 회전이 빨라서 30분이면 보통 먹을 수 있음)

그런데 왠 할아버지 될 듯 말 듯한 중년의 아저씨가 우물쭈뼛하면서 나한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교통카드 충전 금액이 다 되어서 집에 가지 못해 난처한 상황이라고 했다.
사실 본인은 10여년 전에도 이렇게 돈을 빌려줬다가 받지 못했던 호구 체질인지라 이게 좀 흔한 레파토리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 짧은 순간에 든 생각은 만약에 이게 사실이라면 어르신의 입장에서는 정말 난처할 수 있다 싶었다. 마침 아버지 연배처럼 보이기도 하고.
실제로 난처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는 가능성을 만드는 것보다는 내가 만원 잃어버리는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 주변 은행까지가서 돈을 인출해 충전해드리고 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물론 사기꾼이었다.
게다가 전화번호를 검색해보니 상습범이었다.

여기서 재수없다고 생각하고 그만 둘 수도 있었다. 사실 만원이면 최저시급 1시간의 노동인데 이거 신경쓰고 시간 버릴 바에 무시하는게 더 이득이니까.
그렇지만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 이유는 나는 거짓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선의를 베풀었는데, 또 다른 피해자들도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나는 그런 마음들이 배신당하면 안된다고 생각했기에 이 행각을 그냥 지나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찰서에 신고함.
고소장을 써본 건 처음이었는데, 입구에서 소액 사기라고 하니까 지원팀으로 연결해주고 다시 간단한 고소장을 육하원칙에 맞게 작성하고 나니 경제팀으로 사건을 배당해줬다. 시간이 흘러서 담당 수사관님과 몇 번의 통화. 수사관님이 CCTV 확보하고, 경찰서에 다시 출석해 수사관님이 구두로 질문하고 대답해서 작성하는 진술서 작성을 하자 고소 절차가 끝이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기꾼에게서 연락이 와 돈을 변제 받았다.
친구는 사기꾼이 이 일을 하려면 지하철을 타는 비용을 썼으니 오히려 손해를 봤다고 말했다. 🙂
사실 사기꾼은 그저 돈 갚는 걸 잊어버렸다고 변명하고 형사적인 처벌을 딱히 할 수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경찰서에 사기꾼이 이런 사건으로 고소당했다는 기록을 문서화 시키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아무래도 이런 기록이 많으면 다음 피해자들의 고소 수사가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싶다. 피해자들이 작은 돈이라고 그냥 넘어가지 않고 따박따박 받아내야 이런 사기 수법이 수익이 안되서 결국에는 없어지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230321

https://youtube.com/watch?v=8XDI2kk6qQU%3Fclip%3DUgkx9_kQqBeM4iybbAUwe_NUJYJbQhk3NK1M%26clipt%3DEPjMAxj01QY

삶에서 중요한 건 태도라는 생각을 했다.

좋은 결과를 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어떤 목표에 투신한다는 것은 자신을 잊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지만, 좋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한 개인이 자신을 완전히 경주한 일의 나쁜 결과를 받는 건 꽤 아픈 일이고, 반대로 그 목표에 겨우 닿아 올라선 뒤의 공허함은 상상외로 큰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영원히 가득 채울 수 없고 얼마간의 여백은 더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않고 항상 함께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자신을 달래 줄 새로운 목표를 세우거나 그냥 바보같이 멈춰 서 시간을 하염없이 태울수도 있다.

누군가는 한 평생을 달릴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눈을 가린 경주마와 무엇이 다를까. 내일을 갖기 위해 포기한 오늘들은 정신없이 달려온 과거만을 비추어줄 뿐이다.

행복은 즐거운 마음의 합이라는 생각을 했던 때도 있었다.
뭔가를 하면, 뭔가를 가지면 그것들이 계속 쌓여서 만족스럽기만 하루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행복하기 위해 채운 것들은 거짓말처럼 거추장스럽고 갈증만 불러왔다. 반면 아무 기대도 없이 세상을 통해 받은 것들은 아무리 사소한 것들이라도 간직할 만한 것들이 되었다.

우리가 꼭 무언가가 될 필요는 없다. 어차피 그건 대게 시간이나 노력 혹은 다른 자원의 문제고 결국 뭔가가 된다해도 그뿐이다. 삶이 이야기를 통해 만들어준 개인적인 의미도 있을 수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짜 의미를 유행처럼 만들어 쫓고 있는 것 같다.
경험이나 소유도 같은 문제다.

인생은 있지도 않을 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내가 믿는 것을 엄격하게 고르고 그것을 관철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오늘의 내가,
원하는 나 자신이 되기 위해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는 태도라는 생각을 했다.

230224

자진해서 한계지점에서 머무르자라는 생각 한 토막

부끄러움을 모르는 하루는 안전지대로 도망친 하루다. 그것이 나쁜 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을 살아내지 못한 하루에 부끄러운 마음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은. 역시 부끄러운 일이다.

많은 일들이 내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또한 없었다.

겸손이나 인내라는 것을 안전한 곳에서 떠올릴 때는 추상적이고 고요한 것이지만, 실제 곁에 둘 때는 격정적인 감정의 파고와 함께 하는 것이다. 겸손은 비통함이나 경외심 뒤에 오고 인내는 아픔과 함께 온다.
자신의 삶이 어려움없이 평화롭다면, 단지 겸손과 인내를 흉내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덕목은 늘 손아귀에 쥐고 있을만큼 가벼운 종류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 알몸으로 수영하고 있는지는 파도가 빠져나가야 알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사람이 얼마나 강인한 사람인지는 파도가 친 뒤에나 알 수 있는 일이다.

자신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될 일이지만 일신의 아늑함에 숨어들은 자신을 과대평가해서도 안된다.

현실은 계속해서 변하고 자기 자신도 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은 삶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자진해서 벌판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젊은 시절에는 너무 뜨겁게, 나이를 먹어서는 너무 차갑게 살아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나이를 먹어서 자신이 세상을 잘 다룰 줄 알게 되었다고 혹은 지혜로워졌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이는 편향된 생각이 아닐까 한다.

사람은 무언가를 얻으려는 것보다는 나쁜 감정을 회피하기 위해서 동기부여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이를 통해 생각해보면 젊은 날에 한계를 훌쩍 넘어 서 버티는 것은 되고자 하는 자신에 대한 열망 그리고 현실 속 자신과의 차이를 피하려는 두가지 마음의 혼재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둘 중 하나만 생각한다면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나이가 들어 더 쉬운 길로 가려는 자신은 정말로 세상에 요령이 생기고 효과/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낸 것일수도 있지만 단지 귀찮고 번거로운 일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음을 함께 고려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오랜 시간 혼란스러웠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돌이켜보면 너무 뜨겁기만 한 것도 답은 아니었다. 운동을 하면 너무 몰아붙여서 다치기 일쑤였고, 일을 할 때는 지나친 과로로 몸이 상해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그건 어떤 발바둥이었던 것 같다.

그러면 지금은 더 나아졌을까.
돈과 시간에 여유는 생겼지만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 일이 많아졌다. 내가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게 나 외의 세상에서 절대적인 무슨 의미가 있는 일은 아니니까. 적당히 하는 것들이 올바른 처신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그러다가 가끔씩 뜨거운 마음이 생겨서 내 한계지점을 벗어났을 때는 벌거벗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한동안은 몸이 늙어도 사람의 마음은 쉽게 나이를 먹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나이를 들어감에 따라 가장 주의해야 할 일은 마음이 늙는 것일지도 모른다.

충분히 만족한다고 해서 적당히 살지는 말아야겠다.
충만한 삶은 만족감을 불러왔을까. 사람의 마음은 결코 영원한 행복에 도달하지 못한다. 우리는 더 많이 채우려 하기보다 자신의 영역을 넓혀서 기쁨의 종류와 빈도를 높이고 동시에 불편함을 감수해 만족의 역치를 낮추는 현실적인 결론을 따라야 한다.

물론 어린 시절에 했던 실수를 그대로 답습하고 싶지는 않다. 경험은 사람을 더 나아지게하는데 쓰여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계지점을 넘어서려고 맹목적으로 달려나가기보다는 나의 한계지점을 찾아서 그 경계선에서 머무르는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뜨겁고 차가운. 조금은 경험적이고 모호한 답이지만 모든 일에 통하는 원칙이란, 단지 모든 일들은 개별적이라는 것이다.
한계 지점에 서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지켜보고 다시 다음 한계선에서 넘을 듯 말 듯 위태롭게 서서 버티는 방법만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답은 항상 기본에 있고 진부하다. 경험이 중요한 것은 기본에 충실하도록 몸에 기억이라는 흉터를 새겨주기 때문이다. 타인의 경험을 통해 새긴 글귀는 쉽게 지워진다.

230123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은 고민을 너무 오랫동안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많은 종류의 고민들은 이미 물어보았고 답을 내렸기에, 비록 만족스럽지 못한 답이라도 그저 묵묵히 믿는대로 따르면 그 뿐입니다.

최근에 많이 하는 생각은 모든 것을 기적으로 바라보는 가치관입니다.
생각해보면 참 이상합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자연스럽다고 표현합니다. 자연이 그대로 있었고, 우리는 그에 익숙해졌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우연히 그 모든 것에 의문을 갖게 됐습니다.

만약 내가 물이 필요하지 않는 생명체라면, 물이 필요한 존재를 보면서 얼마나 기이한 맘을 품을까.
왜 우리는 다른 생명을 섭취하는 괴상한 의식을 통해 하루를 연장하는 구조를 갖게되었을까. 왜 세계가 이렇게 독특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음에도, 어떻게 우리는 그것들을 당연하게 받아 들일 수 있는 황당무계한 사고를 부여받았을까.

이런 생각이 한번 뿌리를 내리면 세상의 모든 것이 기이하고 놀라워집니다.
그 모든 우연. 제 머리로는 셈할수도 없이 끝없이 펼쳐진 가능성 위에 놓인 한 점의 현실.

하나의 삶이 소유한 작은 시공간에서 가장 멋진 점은 우리가 자유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쫓는게 무엇이건. -믿는 것, 부여된 혹은 만든 의미나 이야기 –
심지어 자유라는 건 그 모든 것을 부정하고 포기하는 것까지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말도 안되는 세상의 아주 작은 점을 빌려쓰고 있다는 그 생각만으로도 마음은 제가 생각할 수 있는 제일 먼 곳까지 날아갑니다.
어쩌면 불가능했을 그 모든 것이 있었고, 있을테니까요.

내일이 되면 또 다시 인간적인 문제들이 삶을 가로막고, 오늘을 위한 문제들로 눈을 가릴 것을 압니다.
해가 뜨면 해야 할 일을 해야하고, 미래를 오늘로 가져오기 위해서 사람이 만든 규칙안에 내 몸과 마음을 끼워 맞출 것을 압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라는 한 점이 여전히 말도 안되는 기적이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마음만은 어디에도 쫓기지 않고 내가 원하는 나로 존재 할 수 있습니다.

삶은 기적이라는 말로 남을 위로하거나 설득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나이를 먹어서 좋지 않은 점은 사는 것보다 죽는게 합리적일수도 있는 현실을 만나서 알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삶이 개인에게 허락한 것은 그런 곤경에 처한 사람을 만나면 도움을 주고, 그런 불운을 만난 자신을 세상이 돕도록 청하는 것뿐입니다. 그런 현실적인 한계 속에서 누군가는 타인보다 더 가혹한 세상을 살게 됩니다. 그것이 제가 여전히 불가지론자로 남아 세상을 쏘아보는 이유입니다.

낙관주의자가 저를 설득할 수 없듯, 우리도 세상이 모든 면에서 평평해지도록 설득할 수 없습니다. 차면 기울고, 기울고 나면 다시 차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기이하게도 말이죠.

그럼에도 저는 또 생각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놀랍고 이해할 수 없다고요.
이 자연스러운 생각은 그 어떤 모순에도 불구하고 저를 인간적인 문제들로부터 떼어내는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이는 자연의 경이에 비하면 인간이 만든 퍼즐이 너무도 작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세상의 경이를 보고 있으면, 누군가의 마음이 당신을 해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 누군가가 자기 자신일지라도요.

늦은 첫 코로나 후기

23.01.09 (월)
월요일 밤 자려고 누웠는데 목이 살짝 잠겼다.
코로나가 생긴 이후 마스크를 쓰고 생활을 한 덕에 흔한 목감기 한번 걸리지 않았기에 조금 싸한 기분이 들었다.

23.01.10 (화)
낮에 이상할 정도로 피곤해서 뜨거운 물로 씻고 나왔는데, 갑자기 오한이 찾아왔다. 요즘 코로나는 기관지가 안 좋아진다는 말만 들어서 코로나는 아니고 유행하는 독감에 걸린게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저녁 무렵까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자가검진키트를 이용해 검사해봤다. 처음에는 음성으로 나왔는데 1시간이 훌쩍 지나 다시 살펴보니 T자 부분에 보일듯 말듯한 두 줄이 표시되어 PCR 검사를 받고 왔다.
살짝 열감이 있어서 이부프로펜이 들어간 경구용 감기약을 먹고 잤다.

23.01.11 (수)
오전에 확진 문자를 받았다.
은연중에 예상했던지라 일상적으로 아침을 먹었다. 이때부터 체온을 재기 시작했는데 식 후 1시간 정도 지나니 39도를 넘어섰다. 어제 먹었던 이부프로펜이 들어간 감기약을 먹고 한 숨 자고 일어났다. 37~38도를 왔다갔다했다.
이 날은 온도 조절이 안되서 끼니때마다 감기약을 한 알씩 먹었다. 비타민B, D, 아연도 먹었다.
오한이 찾아오면 전기장판 깔고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잤다. 자고 일어나면 땀이 흠뻑 났는데 이러면 잠깐씩 체온이 적정수준으로 돌아오고 다시 일어나 있으면 온도가 오르고 다시 잠깐 자고를 반복했다.

23.01.12 (목)
잠을 너무 많이 잔 탓에 아침 일찍 깼다. 잠깐 스트레칭을 하는데 속이 뒤집히는 것처럼 갑자기 역함이 밀려와 구토를 할 뻔 해서 다시 누웠다. 다행히 체온은 37도 초반에서 유지가 되서 약을 안 먹어보기로 했다.
오후가 되니 체온은 36.x~37.x 수준으로 안정됐다.
저녁 무렵부터는 목이 엄청 아팠다. 열이 안나서 이제 계속 나아지겠구나했는데, 침 한번 삼키기가 어려울 정도로 아팠고 밖에서 만져도 목이 뜨끈뜨끈할 정도라 그 여파로 두통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코가 막히고 침을 삼킬 때의 통증 때문에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일어나 물 한컵 먹고 쉬다가 잠깐 자고 일어나 물 마시고 잠깐 자는 식으로 밤을 보냈다.

23.01.13 (금)
7시쯤 다시 잠에 들어서 11시쯤 일어났는데, 놀랍게도 목의 통증이 덜했다. 침을 삼킬 때 불편한 정도는 같은데 싸한 느낌이 줄었다고 해야할 것 같다.
그런데 점심을 먹다보니 맛이 잘 안나는 걸 알 수 있었다. 혹시나해서 다른 자극적인 음식, 간식들도 먹어보아쓴데 확실히 맛이 잘 나지 않았다.
목의 통증은 줄었지만 발작적으로 나는 마른 기침은 오히려 늘었다.
이제 관리만 잘해주면 이번 코로나는 큰 무리없이 잘 지나가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23.01.14 (토)
오후쯤 되니 귀신같이 침을 삼켜도 목이 아프지 않음.
목이 간지러워서 마른 기침은 하지만 갑자기 나오는 기침도 줄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