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라는 단어가 맘에 들지 않는다

나는 종종 중고거래를 한다.
내가 좋아하는 디지털 기기나 제품들은 국내에 발매되지 않은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에 해외 구매를 자주하는데 그럴 바에 중고거래를 하는 편이 빠르고 저렴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무튼 며칠 전 중고거래를 했는데 미처 택배에 넣어주지 못한 것이 있다고해서 중고거래자와 우리집 주변에서 직접 만날 일이 있었다.

나는 문자를 통해 약속장소 근처에서 도착해 전화를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중고거래를 하시는 분이 ‘청각장애인’이라서 통화가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집 앞이라 약속 장소까지 이동하는 몇 분동안 나는 솔직히 조금 당황한 상태로 걸었다.

‘아.. 간단한 수화라도 배워둘 것 그랬나.. 아..아니, 입을 읽을 수 있을텐데 오히려 자연스럽게 행동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무례한 것이 아니라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는 상관없다는 주의지만,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만날 때는 늘 긴장하게 된다.
내가 잘 모르기 때문에 행한 어떤 행동이 상대에게 비수가 되어 꽂힐 수 있고, 혹은 내 기준에서의 배려가 상대에게 차별로 느껴질까봐서이다. 실은 이런 감정들은 신체가 불편한 분들에 대한 나의 무지에서 기인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언젠가 시선조차 폭력이 될 수 있다는 한 동영상을 본 후로부터 이런 생각이 강해졌다.

실은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문자에서 읽자마자 큰 위화감을 느꼈다. 단지 신체의 한 부분이 불편할 뿐인데 그것을 저 단어하나로 뭉뚱그려 적는 것에 대한 반감이 크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에 대한 무언가의 선을 긋는다는 느낌?

장애라는 건 단지 불편하다는 것 아닌가?
어딘가가 불편하다는 정의에 따른다면 나는 아직까지 장애인이 아닌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사회적 의미의 비장애인이라는 범주에 속하면서도 자신의 정서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를 가둬 행동의 제약을 가지고 있다면 그야말로 장애인이 아닐까?
사지가 멀쩡하면서도 평생 숨쉬기 운동과 바보상자를 지켜보는 일밖에 하지 않은 사람과 신체가 불편하면서도 철인3종 경기를 완주하고 사회적 기업을 이끄는 사람. 이 둘 중에 누가 장애인인가?

그래. 단지 신체적으로 불편한 상태를 일컽는 말이겠지만서도 아무튼 난 이 정의가 퍽 맘에 들지 않는다.

2016.12.17 앞으로 장애라는 말을 다르다로 치환해사용하려고한다.

자기계발서와 격언의 무의미함

안다. 이미 잘 안다.
국내에 나온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는 쓰레기다.
나무야 미안하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럼에도 나름 선별했다고 자부하며 읽었던 책들이 있다. 주로 근거를 바탕으로 한 심리학, 행동심리에 관한 책들이다. 그외에 철학책들도 아낌없이 보았다. 나의 판단력과 지혜의 격을 높여줄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것들에 의심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스스로의 경험과 여러 작품에서 찰나의 영감을 얻은 뒤 흩어질까 두려워 적어놓은 노트 수백장도 갑자기 쓰레기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 타인들의 경험과 거기에서의 얻은 깨달음을 토할 때까지 꾸역 꾸역 삼키다보니 내게 남은 것은 뒤룩 뒤룩 살찐 추한 몸뚱이뿐이라는 사실을 거울속에 나를 돌아본 뒤에야 알았다.
쓸데없는 정보. 모자른 시간.

물론 노력을 통해서 외모/몸매를 가꾸거나, 외국어를 배우거나 혹은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을 갖추는 것은 가능하다.

그런데 인품이나 직관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유의미할 정도의 성과가 있을까? 골똘히 생각해보니 이것들은 글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글은 그저 잠시동안 감정의 촉매/마취 역할 그 이상을 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수많은 연사들이 뱉어낸 격언들은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결국 그 말들은 특정한 상황에서만 옳은 것이다.
“Okay, 이 상황에는 이렇게 판단해야지. 음… 이럴 때는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고!”
이럴바에는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 순간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 훨씬 더 나은 방책일 것이다.

자잘한 요령에 삶을 투자하지 말자.
순간 순간에 집중을 하고 있으면, 내가 알고있는 것과 스스로의 과거를 통해 판단을 내리고 행동할 수 있다. 그렇다면 후회는 없을 것이다.

디지털기기의 무게에 관한 고찰

디지타이저가 달린 태블릿들을 정리하던 와중에 디스플레이(크기/화면비)와 무게에 관해 아주 소소한 깨달음이 있어 끄적여봅니다.

물건을 사용하다보면 묘하게 정이가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왠지 딱 내것인 것 같은 녀석들. 필기가 가능한 녀석들 중에는 TPT2가 딱 그렇습니다. 성능은 참 안좋은데 이상하게 손이 갑니다. 그러다가 ‘서피스3는 왜 이렇게 무겁지?’ 라는 생각이 번뜩 지나갑니다.
TPT2 : 서피스3 = 590 : 622(g)로 32g 차이가 이렇게나 컸던 것인지 조금 의아해지네요. 그리고 이번에는 갤럭시 노트 8.0을 들어봅니다. 갤럭시 노트 8.0는 338g으로 TPT2와 250g 가량 차이가 나는데도 30g 정도의 체감밖에 나지를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제 손목이 맛탱이가 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손목을 재활센터로 보내기 전에 갤럭시 탭 프로를 한번 들어보기로 마음 먹습니다. 갤럭시 탭 프로는 331g인데 갤럭시 노트 8.0보다 어마어마하게 가볍네요.

그렇습니다. 제 손목이 맛탱이가 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손목을 재활센터로 보내기 전에 노트 8.0의 두꺼운 케이스를 훌훌 벗겨봅니다. “오오오오~!! 스고이!” 손오공의 강철 도복을 벗어버린 것 마냥 가벼워진 노트 8.0을 들고 쟁반돌리기를 합니다. 바로 이거얏!

케이스가 태블릿의 배터리와 화학반응을 일으켜 무거워진 것도 아닐테고 왜 이런 미스테리한 일이 제게 일어나는지 원망스러워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PD를 불러보지만 말하는 동물을 데려오라며 제게 면박을 줍니다.

갓 냉온수기에서 나온 따뜻한 온수를 벌컥 벌컥 마시며 잠시 생각해봅니다.
아마 그립감과 무게 중심에서 오는 차이려니하고 생각합니다. TPT2와 서피스3는 각각 16:9, 4:3의 화면비를 가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거치할 곳이 없을 시 한손으로 파지하고 필기를 해야하는 기기의 특성상 좌우로 훨씬 넓은 서피스는 작고 고운 제 한손으로 잡기에는 무리가 있던 것이죠.
갤럭시 노트의 경우에는 두꺼운 젤리케이스로 인해 파지점이 변하고, 미끄럽기까지해서 힘이 더 들어갔던 것이라고 여겨지네요.
결론은 기기를 살 때는 무게만 보지말고 직접 만져보는게 가장 확실하다. 그러니 뻘글을 쓰지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