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2의 사견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온다고 한다. 법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전체를 두고 보면 수긍이 가는 말이다. 두려움과 사려가 부족한 인간은 무언가 할 수 있음을 굳이 휘두르려하고, 그에 따르는 시민 재판이란 누군가 도화선에 불을 붙이면 또 다른 이가 기름을 붓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 같다.

현대판 권선징악은 좌우로 뭇매를 때리며 왁자지껄 나아간다. 피해자는 눈물을 묻혔고 너덜너덜한 가해자와 그를 지켜보는 배심원은 입맛이 쓰다. 누가 이겼지? 타인에 대한 두려움을 상자 속에 가둔 태초의 악마만 웃었다. 바보같은 어른들이 바보같은 어른을 만들어 냈다. 바보가 바보에게 또 다시 바보에게.

그래서 역사와 진보는 좌우 줄 아래로 철퍼덕 거리며 휘엉청청 간다. 뼈 아픈 경험도 투박하게 계승되고 퍽이나 누락된다. 인류는 앞으로도 그렇게 폭력적인 방식으로 걸음마를 배울 수 밖에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일어날 일이 결국 일어난 것은 알겠다.

201015

젊음이란 단 하나만 알고-믿고, 자연스레 번지듯 달려나가는 불길 같다.

나지막이 세상의 여러 가능성을 알아버린 어른이 젊은 시절 달렸던 것과 같이 달려나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단단히 마음을 동여메야 할까.

마음이 결코 늙지 않는 것처럼 실은 절로 자라지도 않으니, 나이테 사이에 켜켜히 쌓은 것을 안고 뛰기 위해서는 어릴적보다 더 많은 용기를 빌려야 한다.

누군지도 모르고 믿지도 않을 것에 대고 기도를 해본다. 결과는 네 것일지라도 지금은 내 것이기를.

내가 믿는 것에 대고 기도를 해본다. 마음은 세상에 침해되지 않기를, 그래서 되고자 하는 인간으로 죽을 수 있기를.

옛날 이야기에는 악마에게 속아 부귀영화와 자신의 삶을 맞바꾸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동화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했는데, 실은 우리 주변에 많은 이야기이다.

우리가 삶에서 원하는 것들 중 많은 것들이 그리 중요한 것들이 아니다. 그것들을 가지기 위해 바치는 값어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잘해봐야 삶의 많은 부분을 작은 욕망과 교환할 뿐이고, 대다수는 평화만을 빼앗기게 된다.

노력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방향성의 문제다. 노력은 단지 기본에 불과하다.

잘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능력이라 생각한 적이 있었고, 때로는 성품이라 생각한 때도 있었다. 종종 운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요즘은 옳은 생각들을 주의깊게 곁에 잡아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한심한 방향으로 향하는 관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에 저항하는 것이 개인의 삶을 가를 것이라 생각한다.

숨 쉬듯이 수양하자.

한번에 신을 수 있는 신발은 두개뿐

한 때는 미니멀리즘에 빠져있었다.

그런데 한참을 해보니 🤔 미니멀리즘이라는 것이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모아 가지고 싶은 욕망은 가짜가 아니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어 큰 집에 맘껏 사서 모으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것저것 모아 본 경험으로 그것도 답은 아닌 것 같았다.

모든 것에는 실제 공간과 마음의 일부분을 할당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한 개인이 소속감있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의 크기도 맘을 내 줄 시간도 한정되어있다.

그 후에 알게모르게 나는 생각과 정보에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게 된 것 같다. 정보는 크기의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원래도 활자 중독 증세가 있었으나 마치 면죄부를 받은 것 처럼 끊임없이 읽고 기록하고 학습하는데 빠져있었다.

독서나 공부는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말을 비판없이 쫓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무슨 해골물을 달게 마시거나, 누군가 내 머리를 홍두깨로 내려친 것은 아니다. 사실은 느끼고 있었는데 생각으로 깨우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항상 생각에 너무 깊이 메여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 맘에도 크기가 있었는데 까먹고 있었나보다. 우리는 동시에 여러 생각을 할 수 없고, 사색에 빠져 있을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 역시 삶에서 한정적이다.

아마도 나는 앞으로 덜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사회의 경쟁자들은 대게 미친놈들이다. 삶에서 더 좋은 결과물을 원할 때 우리는 인생을 포기한 워커홀릭들과 경쟁해야 한다.

답은 밀도에 있겠다. 나는 이것을 20살 초반에 배웠고 사용했었는데, 어느덧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신이 얼마나 많던간에 한번에 신을 수 있는 신은 오직 두 개라는 사실처럼, 삶에 담을 수 있는 것들도 그 크기가 정해져있음을 늘 생각하자.

200411 생각정리

과거도, 미래도 거짓말 같다는 생각을 한다.
과거의 다른 이름인 기억은 보통의 관념보다 주관적이다. 과학이 말하길 기억이란 왜곡이 많이 일어나고, 의도에 따라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가능할 뿐만 아니라 우리는 우리 스스로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왜곡된 기억을 가지고 있다.

미래는 애매하다. 시간과 미래에 관한 이론은 많이 있다만 그것들에 대해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를 벗어날 수 없는 하나의 인간이 모르는 것에 대해 상상해 현재의 길잡이로 삼는 건 바보같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인생에 관해 변하지 않는 사실로 보이는 것은 오직 태어난다는 것과 죽는다는 사실 뿐이다. 그런데 이게 생각해보면 참 재미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이 태어나는 일과 죽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의식은 자신의 탄생과 죽음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다. 아이러니하다.

언젠가부터 죽음이 두렵지 않아졌으나 아마도 ‘먼 미래의 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란 의문이 들었다. 우리가 겪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현재 뿐이고 우리는 누구나 종국에 죽음을 현실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것을 경험할 수 없으면서도 두려워하다니 웃긴다. 그렇다면 우리가 두려운 것의 실상은 상실이 아닐까.

조금 더 물어본다.
우리는 이미 삶을 통해 상실들을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꽤 아픈 편에 속한다만 그것만으로는 죽음에 대한 우리의 느낌을 설명하기에 부족한 것 같다. 아마도 상실의 고통조차 느낄 수 없도록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구구절절 설명해야겠다.

그렇게 이해하고 나면 죽음은 당도해서야 나타나는 문제가 아닌 현재의 문제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렇다면 우리가 현재라는 족쇄를 달고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어떤 일에 ‘의미’라는 꼬리표를 붙여야 조금이라도 더 만족스럽게 살아갈 수 있을까.
실은 이 생각에서부터 시작해서 위의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

만족을 모르는 머리는 늘 비교하며 답에 가까운 것들 쫓으려는 천성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인류의 피에는 시지프스의 그것이 꽤 많이 섞여 있는게 아닐까 싶다.

늘 돌고 돌는 생각이지만 구구절절 적고나면 온갖 생각들이 차분히 가라앉는 기분이다.

200306

심장 뛰는 소리를 들어 본 적 있는 오래 된 이 있다면. 아마 적의 가슴을 열어 날뛰는 그것을 뽑아내 악기로 사용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내 단단한 쇠가죽 때리는 울음 소리만 못하다는 걸 깨닫았을 것이다. 

심장은 오직 제 주인을 위해 뛰기에, 뭔가 가련하고도 기특하다는 생각을 한다. 제 얘기를 하는 지 알았는지 심장 소리가 잦아들었다.

해가 다가오는지 어둠이 차분해졌다.아직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어둠의 부재를 통해 그것이 느껴진다. 새벽 찬 공기가 마치 몸으로 스며드는 것 같은 한기에 침식되다 보면 해는 신 중의 으뜸이라는 옛 이야기에 수긍이 간다.

오늘이 또 왔다.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몰라서 웃었다. 어찌되건 그 편이 더 좋아보이니까.

엑스박스 게임패스(XBOX GAMEPASS) PC 게임 설치 오류 해결법

윈도우10은 꽤 안정성이 높은 반면에 윈도우 스토어는 참 별로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윈도우10의 최근 업데이트는 똥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

아무튼 윈도우스토어를 경유해야 하는 엑스박스 게임패스(XBOX GAMEPASS)도 은근히 문제가 많았습니다. (게임 관리는 Xbox 앱을 통해서 합니다) 게임이 설치가 안된다거나 블루스크린을 띄우며 PC가 멈추기 일쑤입니다. 윈도우10을 수년동안 써봤지만 블루스크린을 본 게 몇년 만인지 모릅니다.

처음 겪은 문제는 Rise of Nations와 Age of Empire Definitive Edition을 설치하는데 블루스크린이 반복되는 것이었고, 두번째 문제는 Astroneer가 알 수 없는 오류로 설치가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첫번째 문제는 윈도우 업데이트로 해결하였습니다. 정확히 어떤 업데이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꽤 오랜 시간차를 두고 게임 설치를 시도했으니 마소측에서 문제를 인지하고 업데이트를 통해 해결한 것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두번째 문제는 윈도우10의 지역설정을 한국에서 미국으로 바꿈으로서 해결했습니다.
검색창에 ‘지역’이라고 ‘지역 설정’으로 들어가셔서 바꿔주시면 됩니다.

20191208

오늘은 동창을 만났다.
오래되었지만 틈틈히 시간을 내어 만나 근황을 알리는 친구다.
녀석은 20살 넘어서부터 10여년동안 주경야독해왔던지라, 녀석을 불러내 밥 한끼 살 때마다 내 마음도 씁쓸했다.

다행히 최근 원하던 바를 이뤄 요즘에는 즐거운 만남을 가지고 있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 법인데 고생한 바를 옆에서 지켜봐온 것이 있으니 나도 진심으로 기뻤다. 타인의 경사에 이토록 기쁘다니 참 끈덕지게 고생한 녀석임은 확실하다. 실은 너무 고되게 사는 것 같아 참 미련하다고 생각한 때도 많았다.

아무튼 좋은 때고, 마침 날이 연말을 향하는 지라 다른 동창도 불러 함께 식사를 했다.
이른 시간부터 보았는데 술도 안주도 거의 없이 이야기만으로도 시간을 넉넉히 잡아먹었다.

머리가 굵어지다보니 서로 만나면 한 끼를 먹어도 좀 갖춰진 식사를 하게되는데 오늘은 어린 시절에 가던 오래된 식당에서 배부른 저녁을 먹고, 동네 호프와 노래방을 다녀왔다. 참 웃긴다. 꼭 15년 전 어린 애들처럼 놀고나니 머쓱하면서도 바보같이 즐거웠다.

나이가 들면 새로운 노래를 잘 안듣게 된다기에 밀려드는 세월을 짐짓 무시하려 노래방에서는 요즘 노래를 부르려고 하는 편이다. 그런 나도 꼭 부르게 되는 옛날 노래들이 몇 개 있다.

친구 녀석이 그러더라. 이 노래는 가수가 부른 게 오히려 어색하고 네가 부른게 원래 노래처럼 느껴진다고. 그 말을 듣고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다.

며칠 전에는 길거리를 걷다가 숨겨진 기억 속 어떤 냄새를 맡았다.
시간은 그저 어딘가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흘러들었구나라고 생각했다.

2019.12.03

김칫국이 조금 남아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인스턴트 식품은 왠만하면 안 먹으려고 하는데 국을 그냥 다시 먹기 지겹기도 하고 얼큰한 국물을 좋아하는지라. 이래저래 끓여 먹었다.

그리고는 혼자 열연을 펼치며 먹방을 찍었는데, 이 환상적인 맛을 요리왕 비룡식으로 표현하고 싶은 절절한 맘이 들었다.
‘아! 이 맛은 무엇일까. 국밥뭐시기와는 다른 진하고 오랜…’
짧은 순간 생전에 먹었던 천상의 식탁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개중에 다수가 군대시절에 먹었던 음식임을 깨달았다.
별 다섯개에 백주부 맛집보다 그때 삼켰던 질긴 보급라면이 훨씬 맛있었다.
장식품 아닌 내 머리로도 쉽게 외울수 없는 비싼 외국 음식들보다 미지근한 물에 반쯤 익어 생라면과 생스프의 맛이 혼재된 행군 중에 먹은 육개장이 더 맛있었다.
남 몰래 같이 욕지거리하고 서로 위해주던 동료들과, 욕밖에 안나올 정도의 극한의 노동이 섞인 맛이라 그런 것이 아닐까.

그렇게 파노라마 속 인생의 맛을 탐험하던 중에 어릴 적 먹었던 감자 하나가 떠올랐다.
지금은 흔적도 찾을 수 없는 25년 전 오랜 초가 집 옆 주방.
가마솥도 있고 아궁이도 있던 그 곳에 놓인 화로. 거기에다가 감자를 쪄 먹었는데 기가 막히는 맛이었다.

며칠전에는 어머니가 외할머니께서 해주신 두부가 먹고 싶다고 하셨다.
생전에는 고생이라며 그렇게 말리시더니 갑자기 그러셨다.
나도 외할머니가 쪄준 감자가 먹고 싶다. 외할아버지가 만들어주신 썰매를 타고 싶다.
사진 한 장도 없는 그 때 그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요즘에는 아버지께서 고향이 나오는 쇼프로를 매주 보신다.
할머니 집은 부서지고 흔적도 없다. 바로 그 옆집에서 개그맨이 생활하는 전원 프로그램인데 나는 우리 집도 아닌데 무슨 재미로 보냐고 핀잔을 주곤 했다.

실은 안다.
풀 한포기라도 익숙한 것이 있지 않을까. 흙 한 줌이라도 옛 흔적이 있을까봐.

죽음에 대한, 과거에 대한 최고의 애도는 살아있는 사람이 기억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이게 다 라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