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18

참 열심히 살았던 시절에 나왔던 노래라 들을 때마다 다른 의미로 가슴이 울렁거리는 노래.

10년 7월에 전역을 했는데 시행착오를 거치고 11년 2~3월부터 돈을 벌기 시작해서 그 일을 학업 및 다른 일과 병행하면서 18년까지는 쭉 했던 것 같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욕심이 많아서 누워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중간 중간 쉴 때나 이동하던 대중교통에서 벌충하고는 했다.

여행이라도 며칠 가려면 그 전 주에 며칠씩 밤새야했던 상황이였는데, 젊어서 그게 또 됐다.ㅋㅋㅋ

미련하게 지하철에서 두꺼운 전공책을 펼치고 서서 읽기도 하고 노트북 펼치고 앉아 코딩을 하기도 했었다. 남이 보면 대체 왜 저래 싶게 살았는데, 가진 게 없던 당시의 나로서는 시간을 아끼는 것이 최선이었고 단지 할 수 있는 일을 했던 것 뿐이다.

스스로에게 주었던 유일한 휴식시간은 금요일 저녁 잠들기전 누워서 만화책을 보던 30분 가량이었는데 나중에는 그 시간에 인터넷을 하고 싶어서 만화책도 몇 년동안 읽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돌이켜보면 그 나날들이 지금의 내가 있게 해준 토양이었다.

지독하게 살아봤던 시간 때문인지 노력을 무시하는 요즘의 풍토가 나는 싫다.

군에 있을 때 지휘관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한 말이 있었다.
“열심히 하지마. 그냥 잘해. 결과를 가져와.”
나는 그래도 그냥 열심히 하는 사람보면 응원해주고 싶고 가슴이 뛰고 멋있어 보인다.
어차피 세상 사람들의 대부분은 대충 살기 때문에 끈기를 가지고 하는데 제 몫을 해내지 못하는 경우는 잘 보지 못했다.

글을 적다보니 뭔가를 미련하도록 열심히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220515 인연

사 오월 동안 사람을 많이 만났다.

잠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조심스럽게 이어가던 인연의 끈을 확 잡아 당겼다고나할까. 가끔은 몸살 기운이 올라올 정도로 바쁘게 요 한 두달을 지냈다.

벌써 15년 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동창의 연락이 와서 만나기도 하고, 근 2~3년 코로나를 핑계삼아 미루던 만남들이 계속 이어졌다.

오늘은 2~3년만에 고등학교 동창 모임 멤버들이 거의 다 모였다.
만났을 때는 거짓 한점없이 너무 즐거웠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발걸음이 헛헛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은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을 더 기꺼이 즐기는 사람이라 그렇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득 마음 속 여백의 의미를 알았다.

같은 길에서 같은 것을 보고 향해 가던 사람들이
작심하고 날을 잡지 않으면 만날 일이 없을 정도로 삶의 모양이 흩어져 버린 것에 대한 쓸쓸함이구나.

반대로 생각하면 그렇게 맺은 추억이, 이렇게 달라진 사람들을 아직도 묶어 주는 것이 대단하기도 하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누구 하나 삶에서 낙오하지 않고 다들 떳떳하게 자신의 길을 내었다는 사실이 기특하고 또 만나서 자기 인생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도 기쁘기 그지없다.

그냥 어제의 내가 너가 그립고, 오늘의 나와 네가 기특하다.
내일은 그냥 다 잘 살았으면 좋겠다.

선에는 착할 선(善)자와 줄 선(線)자가 있다.

우리는 이 두가지 선을 잘 지켜야 한다.

짧게 살아온 경험에 의하면,
불의의 이탈 경로를 타지 않은 인생은 결국에.
시시한 인간이 될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대게 먼저 망가진 사람들이 내민 손을 잡거나 그 길을 답습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는 당시에 작은 가치를 팔아 큰 이익을 얻는 합당한 거래로 보이기 때문에 어릿한 사람들을 현혹하기 쉽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가 그토록 시시하고 고리타분하게 여겨 헐값에 팔아버린 가치들은 한번 잃어버리고나면 다시 사올 수 없는 종류의 진실로 값진 것이다. 동료일때는 한없이 약한데 적이 되면 더럽게 쎄지는 그런 놈이라고나 할까.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가하면
나라는 세계가 나의 역사를 온전히 알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에 대한 메타 인지가 부족한 사람조차도, 그 몸과 신경은 자신의 역사를 강화한다.

나는 결단력이 부족한 굼뜬 인간인데다가 생각이 많아 그것들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보았다.

사람들은 미리 세상을 산 사람들이 내놓은 시시한 답들을 무시하고
다양한 오답을 향해 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어린아이도 알 수 있는 몇 가지 진실이지, 높은 지능의 처세술이 필요한게 아니다.

옛날 이야기에는 악마에게 속아 부귀영화와 자신의 삶을 맞바꾸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동화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했는데, 실은 우리 주변에 많은 이야기이다.

우리가 삶에서 원하는 것들 중 많은 것들이 그리 중요한 것들이 아니다. 그것들을 가지기 위해 바치는 값어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잘해봐야 삶의 많은 부분을 작은 욕망과 교환할 뿐이고, 대다수는 평화만을 빼앗기게 된다.

노력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방향성의 문제다. 노력은 단지 기본에 불과하다.

잘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능력이라 생각한 적이 있었고, 때로는 성품이라 생각한 때도 있었다. 종종 운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요즘은 옳은 생각들을 주의깊게 곁에 잡아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한심한 방향으로 향하는 관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에 저항하는 것이 개인의 삶을 가를 것이라 생각한다.

숨 쉬듯이 수양하자.

한번에 신을 수 있는 신발은 두개뿐

한 때는 미니멀리즘에 빠져있었다.

그런데 한참을 해보니 🤔 미니멀리즘이라는 것이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모아 가지고 싶은 욕망은 가짜가 아니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어 큰 집에 맘껏 사서 모으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것저것 모아 본 경험으로 그것도 답은 아닌 것 같았다.

모든 것에는 실제 공간과 마음의 일부분을 할당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한 개인이 소속감있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의 크기도 맘을 내 줄 시간도 한정되어있다.

그 후에 알게모르게 나는 생각과 정보에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게 된 것 같다. 정보는 크기의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원래도 활자 중독 증세가 있었으나 마치 면죄부를 받은 것 처럼 끊임없이 읽고 기록하고 학습하는데 빠져있었다.

독서나 공부는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말을 비판없이 쫓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무슨 해골물을 달게 마시거나, 누군가 내 머리를 홍두깨로 내려친 것은 아니다. 사실은 느끼고 있었는데 생각으로 깨우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항상 생각에 너무 깊이 메여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 맘에도 크기가 있었는데 까먹고 있었나보다. 우리는 동시에 여러 생각을 할 수 없고, 사색에 빠져 있을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 역시 삶에서 한정적이다.

아마도 나는 앞으로 덜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사회의 경쟁자들은 대게 미친놈들이다. 삶에서 더 좋은 결과물을 원할 때 우리는 인생을 포기한 워커홀릭들과 경쟁해야 한다.

답은 밀도에 있겠다. 나는 이것을 20살 초반에 배웠고 사용했었는데, 어느덧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신이 얼마나 많던간에 한번에 신을 수 있는 신은 오직 두 개라는 사실처럼, 삶에 담을 수 있는 것들도 그 크기가 정해져있음을 늘 생각하자.

200411 생각정리

과거도, 미래도 거짓말 같다는 생각을 한다.
과거의 다른 이름인 기억은 보통의 관념보다 주관적이다. 과학이 말하길 기억이란 왜곡이 많이 일어나고, 의도에 따라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가능할 뿐만 아니라 우리는 우리 스스로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왜곡된 기억을 가지고 있다.

미래는 애매하다. 시간과 미래에 관한 이론은 많이 있다만 그것들에 대해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를 벗어날 수 없는 하나의 인간이 모르는 것에 대해 상상해 현재의 길잡이로 삼는 건 바보같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인생에 관해 변하지 않는 사실로 보이는 것은 오직 태어난다는 것과 죽는다는 사실 뿐이다. 그런데 이게 생각해보면 참 재미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이 태어나는 일과 죽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의식은 자신의 탄생과 죽음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다. 아이러니하다.

언젠가부터 죽음이 두렵지 않아졌으나 아마도 ‘먼 미래의 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란 의문이 들었다. 우리가 겪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현재 뿐이고 우리는 누구나 종국에 죽음을 현실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것을 경험할 수 없으면서도 두려워하다니 웃긴다. 그렇다면 우리가 두려운 것의 실상은 상실이 아닐까.

조금 더 물어본다.
우리는 이미 삶을 통해 상실들을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꽤 아픈 편에 속한다만 그것만으로는 죽음에 대한 우리의 느낌을 설명하기에 부족한 것 같다. 아마도 상실의 고통조차 느낄 수 없도록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구구절절 설명해야겠다.

그렇게 이해하고 나면 죽음은 당도해서야 나타나는 문제가 아닌 현재의 문제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렇다면 우리가 현재라는 족쇄를 달고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어떤 일에 ‘의미’라는 꼬리표를 붙여야 조금이라도 더 만족스럽게 살아갈 수 있을까.
실은 이 생각에서부터 시작해서 위의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

만족을 모르는 머리는 늘 비교하며 답에 가까운 것들 쫓으려는 천성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인류의 피에는 시지프스의 그것이 꽤 많이 섞여 있는게 아닐까 싶다.

늘 돌고 돌는 생각이지만 구구절절 적고나면 온갖 생각들이 차분히 가라앉는 기분이다.

200306

심장 뛰는 소리를 들어 본 적 있는 오래 된 이 있다면. 아마 적의 가슴을 열어 날뛰는 그것을 뽑아내 악기로 사용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내 단단한 쇠가죽 때리는 울음 소리만 못하다는 걸 깨닫았을 것이다. 

심장은 오직 제 주인을 위해 뛰기에, 뭔가 가련하고도 기특하다는 생각을 한다. 제 얘기를 하는 지 알았는지 심장 소리가 잦아들었다.

해가 다가오는지 어둠이 차분해졌다.아직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어둠의 부재를 통해 그것이 느껴진다. 새벽 찬 공기가 마치 몸으로 스며드는 것 같은 한기에 침식되다 보면 해는 신 중의 으뜸이라는 옛 이야기에 수긍이 간다.

오늘이 또 왔다.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몰라서 웃었다. 어찌되건 그 편이 더 좋아보이니까.

엑스박스 게임패스(XBOX GAMEPASS) PC 게임 설치 오류 해결법

윈도우10은 꽤 안정성이 높은 반면에 윈도우 스토어는 참 별로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윈도우10의 최근 업데이트는 똥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

아무튼 윈도우스토어를 경유해야 하는 엑스박스 게임패스(XBOX GAMEPASS)도 은근히 문제가 많았습니다. (게임 관리는 Xbox 앱을 통해서 합니다) 게임이 설치가 안된다거나 블루스크린을 띄우며 PC가 멈추기 일쑤입니다. 윈도우10을 수년동안 써봤지만 블루스크린을 본 게 몇년 만인지 모릅니다.

처음 겪은 문제는 Rise of Nations와 Age of Empire Definitive Edition을 설치하는데 블루스크린이 반복되는 것이었고, 두번째 문제는 Astroneer가 알 수 없는 오류로 설치가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첫번째 문제는 윈도우 업데이트로 해결하였습니다. 정확히 어떤 업데이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꽤 오랜 시간차를 두고 게임 설치를 시도했으니 마소측에서 문제를 인지하고 업데이트를 통해 해결한 것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두번째 문제는 윈도우10의 지역설정을 한국에서 미국으로 바꿈으로서 해결했습니다.
검색창에 ‘지역’이라고 ‘지역 설정’으로 들어가셔서 바꿔주시면 됩니다.
몇몇 게임의 경우 한국어 버전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한국 지역에서 노출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용과같이 극1을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위치를 미국으로 바꿔서 설치해야 합니다.

최근에 겪은 세번째 문제는 구독 정보를 읽어내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별다른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급한대로 윈도우 스토어의 게임탭에서 게임을 설치/실행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