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의 노래

나는 늘

떠나면서 살지 
 
굳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좋아 
 
바람이 날 데려가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새롭게 태어날 수 있어 
 
하고 싶은 모든 말들
아껴둘 때마다
씨앗으로 영그는 소리를 듣지 
 
너무 작게 숨어 있다고
불완전한 것은 아니야
내게도 고운 이름이 있음을
사람들은 모르지만
서운하지 않아 
 
기다리는 법을
노래하는 법을
오래전부터
바람에게 배웠기에
기쁘게 살 뿐이야 
 
푸름에 물든 삶이기에
잊혀지는 것은
두렵지 않아 
 
나는 늘 
떠나면서 살지

– 이해인

2016/07/15

누구의 울음소리인지도 모를, 수 많은 작은 것들의 울음 소리 사이로 고야 열매가 떨어지면서 건넛방 작은 지붕을 쿵쿵거리며 때리는 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누가 처들어오는 줄 알고 놀랬건만 이제는 좀 익숙하다. 도시는 그리도 덥다던데 이곳의 바람은 서늘해서 두꺼운 이불을 덮고도 감기에 걸릴까 맘이 쓰인다.

서울에서 차로 고작 두시간 거리이것만 맘은 한 평생을 떨어져나온 것 처럼 다르게 느껴진다.

그곳에 있을 때는 작은 내 세상이 삶의 전부인것만 같은데, 여기서 거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늘상 잊어버리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 모습이 워낙 다채롭기 때문인지 삶이란 뭔지 참 모르겠다.

고행인가 싶으면 달콤하고, 즐겨볼까하면 목을 죄어온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요즘에는 힘들어도 마음에 깊이 베이지 않고, 즐거워도 흠뻑 취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무감해지지는 않은 느낌인데, 내가 가진 언어로 쉬이 표현이 되지 않는 그런 기분이다.

아무튼 서늘한 바람과 풀잎에 고이는 소리에 취해 버리면 이런 기분이라는거다.

귀여운 슬리퍼

슬리퍼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사람들은 살 때 빼고는 거기에 뭐가 달렸는지 관심도 없으면서 저걸 귀엽게 만드려고 하지?”

뭔가 생각하려다가 ‘사람이란 원래 이상한게 정상이고, 이성적인 순간은 가끔 찾아오는 손님같다’는 생각으로 덮고 그만뒀다.

행복

행복도 취하고 무뎌지는 것이라 자꾸 탐하다보면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
결국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충만하게 행복한 상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행복에 대한 기준을 낮추고 끝없는 만족을 추구하기보다는 가치있는 일을 찾을 필요가 있다.
스스로 가치있다고 여기는 일을 헌신적으로 해나간다면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으며 삶의 만족감도 더할 것이다.

※ 한강에 떠오르는 햇살이 참 예쁘다

어깨 병원 후기

블로그 리뷰 남기면 자꾸 귀찮게 하는 업체들이 많으니 병원 이름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1. XX라 병원 : 요즘 흔한 프랜차이즈식 병원입니다. 그래도 이곳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사분이 직접 봐줍니다. 진료보고 재활쪽으로 바로 넘기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받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기계식 커리큘럼대로 모든 환자를 다루는 것 같아서 그 부분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2. 유명한 영등포 모 병원 : 다들 아실 그 분에게 받았습니다. 다른 후기에서 들은 것처럼 직원이 불친절합니다. 저는 ‘뭐지, 내가 뭔 실수했나. 왜 날 이따위로 대하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덕분에 MRI 찍기로 마음 먹고 갔는데, 원장 만나기 전부터 여기서 치료 안받기로 결정했습니다.
    사실 원장님 자체는 실력과 양심은 있을지 모르겠으나 진료 방식이 신뢰가지 않습니다. 우선 제가 보조하는 분께 모든 진행상황과 통증에 대해 10분에 걸쳐 말했거늘 들어오자마자 핀트를 못 잡고 다른 소리를 합니다. 1시간 기다려서 5분 진료 받는데, 짧은 시간에 따른 의사소통의 문제일런지 모르겠지만 평소에 몸 아프면 관련된 전문서적도 다 읽고, 논문도 읽고 가는 저 같은 놈은 우선 이런 시스템에 실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 얘기는 필요없고”라는 식으로 커뮤니케이션 안하는 것 보고 딱 질렸습니다. 다른 분들은 진료하는 사람이 웃으면 그걸로 친절하다고 생각하는 건지(?) 평은 좋았는데, 내가 듣고 싶은 명확한 것에 대해서만 빨리 말해라라는 것 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관련 문서 읽는 수준으로 혼자 해결할 수 있는 그 정도 문제였으면 처음부터 병원을 안갔겠죠. 게다가 제가 분명히 어깨 빠졌었다고 얘기했는데 원장은 제 어깨 한번도 직접 만져보지 않고 처방해준 약 약국가서 받아보니 근육진통제네요. 저야 다른 병원가서 MRI찍어볼거지만 자기 몸 아픈거 온전히 의사에게만 맡겨놓는 사람도 많은데 이런 커뮤니케이션에 분명히 피해보는 환자도 꽤 나올거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니 참 별로네요. 실력은 있어보입니다만..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맘에 들지 않는다

나는 종종 중고거래를 한다.
내가 좋아하는 디지털 기기나 제품들은 국내에 발매되지 않은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에 해외 구매를 자주하는데 그럴 바에 중고거래를 하는 편이 빠르고 저렴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무튼 며칠 전 중고거래를 했는데 미처 택배에 넣어주지 못한 것이 있다고해서 중고거래자와 우리집 주변에서 직접 만날 일이 있었다.

나는 문자를 통해 약속장소 근처에서 도착해 전화를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중고거래를 하시는 분이 ‘청각장애인’이라서 통화가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집 앞이라 약속 장소까지 이동하는 몇 분동안 나는 솔직히 조금 당황한 상태로 걸었다.

‘아.. 간단한 수화라도 배워둘 것 그랬나.. 아..아니, 입을 읽을 수 있을텐데 오히려 자연스럽게 행동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무례한 것이 아니라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는 상관없다는 주의지만,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만날 때는 늘 긴장하게 된다.
내가 잘 모르기 때문에 행한 어떤 행동이 상대에게 비수가 되어 꽂힐 수 있고, 혹은 내 기준에서의 배려가 상대에게 차별로 느껴질까봐서이다. 실은 이런 감정들은 신체가 불편한 분들에 대한 나의 무지에서 기인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언젠가 시선조차 폭력이 될 수 있다는 한 동영상을 본 후로부터 이런 생각이 강해졌다.

실은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문자에서 읽자마자 큰 위화감을 느꼈다. 단지 신체의 한 부분이 불편할 뿐인데 그것을 저 단어하나로 뭉뚱그려 적는 것에 대한 반감이 크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에 대한 무언가의 선을 긋는다는 느낌?

장애라는 건 단지 불편하다는 것 아닌가?
어딘가가 불편하다는 정의에 따른다면 나는 아직까지 장애인이 아닌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사회적 의미의 비장애인이라는 범주에 속하면서도 자신의 정서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를 가둬 행동의 제약을 가지고 있다면 그야말로 장애인이 아닐까?
사지가 멀쩡하면서도 평생 숨쉬기 운동과 바보상자를 지켜보는 일밖에 하지 않은 사람과 신체가 불편하면서도 철인3종 경기를 완주하고 사회적 기업을 이끄는 사람. 이 둘 중에 누가 장애인인가?

그래. 단지 신체적으로 불편한 상태를 일컽는 말이겠지만서도 아무튼 난 이 정의가 퍽 맘에 들지 않는다.

2016.12.17 앞으로 장애라는 말을 다르다로 치환해사용하려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