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불가지론자에 기독교적 무신론자로 남아있다.

당연하다고 믿었던 여러가지 도덕 관념이 전반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와중에 그것을 지켜낼 논리적인 함의를 발견하지 못했다.

세상을 정글로 인식하고 타인을 배경화하여 살아가고자 한다면 일면 합리적 대응과 결과를 도출할 수도 있겠지만, 그 덕에 의미 자체의 상실을 겪을 수 있기에 조심스럽게 가치를 정립해나가야 한다.

거울의 한 면이 비춘 타성의 믿음이 아닌 자신이 정립한 도덕관을 신이 부재한 상태로 세울 수 있을까.

이건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일단의 그의 생각을 훔칠 수 있는대까지 훔쳐야겠다.

18.02.14

어린 시절의 가장 큰 착각은 행복과 밝음에 대한 오해였던 것 같다.

잘한다면, 좋은 방향으로 간다면 나는 늘 충만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 악마들이 알려준 잘못된 판타지였다.

아프지 않고 기쁘기만 한 것에는 의미가 깃들지 못한다. 진실에는 부재가 담기지 않는다.

잘못된 믿음을 쫓으며 진실의 눈을 가리지 않기를.

기록 시스템

로우 데이터를 따로 기록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

운동일지, 리뷰등이 많이 쌓이고 나면 기존의 틀에서 원하는 자료만 추출해내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그래서는 기록을 하는 만족감 외의 실제적인 의미가 없다.

시간을 내서 미가공 데이터를 기록하는 방식을 좀 더 고민해봐야 한다.

2018.02.25

풀꽃의 노래

나는 늘

떠나면서 살지 
 
굳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좋아 
 
바람이 날 데려가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새롭게 태어날 수 있어 
 
하고 싶은 모든 말들
아껴둘 때마다
씨앗으로 영그는 소리를 듣지 
 
너무 작게 숨어 있다고
불완전한 것은 아니야
내게도 고운 이름이 있음을
사람들은 모르지만
서운하지 않아 
 
기다리는 법을
노래하는 법을
오래전부터
바람에게 배웠기에
기쁘게 살 뿐이야 
 
푸름에 물든 삶이기에
잊혀지는 것은
두렵지 않아 
 
나는 늘 
떠나면서 살지

– 이해인

2016/07/15

누구의 울음소리인지도 모를, 수 많은 작은 것들의 울음 소리 사이로 고야 열매가 떨어지면서 건넛방 작은 지붕을 쿵쿵거리며 때리는 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누가 처들어오는 줄 알고 놀랬건만 이제는 좀 익숙하다. 도시는 그리도 덥다던데 이곳의 바람은 서늘해서 두꺼운 이불을 덮고도 감기에 걸릴까 맘이 쓰인다.

서울에서 차로 고작 두시간 거리이것만 맘은 한 평생을 떨어져나온 것 처럼 다르게 느껴진다.

그곳에 있을 때는 작은 내 세상이 삶의 전부인것만 같은데, 여기서 거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늘상 잊어버리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 모습이 워낙 다채롭기 때문인지 삶이란 뭔지 참 모르겠다.

고행인가 싶으면 달콤하고, 즐겨볼까하면 목을 죄어온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요즘에는 힘들어도 마음에 깊이 베이지 않고, 즐거워도 흠뻑 취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무감해지지는 않은 느낌인데, 내가 가진 언어로 쉬이 표현이 되지 않는 그런 기분이다.

아무튼 서늘한 바람과 풀잎에 고이는 소리에 취해 버리면 이런 기분이라는거다.

귀여운 슬리퍼

슬리퍼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사람들은 살 때 빼고는 거기에 뭐가 달렸는지 관심도 없으면서 저걸 귀엽게 만드려고 하지?”

뭔가 생각하려다가 ‘사람이란 원래 이상한게 정상이고, 이성적인 순간은 가끔 찾아오는 손님같다’는 생각으로 덮고 그만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