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전

컴퓨터로 장시간 할 일이 있을 때는 외출하기가 어려워 스트레스를 해소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이럴 때는 부득이하게 게임이나 영화같은 수동적인 취미로 갈증을 해소하는데, 얼마전 스타크래프트2를 재미있게 즐기고 다른 RTS 게임이 있나 찾아보다가 어릴적 데모 버전을 수십번이나 플레이했던 장보고전이 생각났다.

찾아보니 제작사인 트리거 소프트는 그라비티에 합병되었는데 이전에 만든 게임에 관한 서비스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 고전 게임이 스팀에 올라와 있을리도 만무하고 있다고 해도 윈도우10에서 이상없이 돌아갈 것 같지 않았다.
직접 구해서 플레이하는데 위에 적은 어려움도 있고, 몇 해전 삼국지7을 찾아서 플레이해 본 경험에 비춰보면, 어릴 적 추억을 되살려줘서 좋았으나 게임을 오래 잡고 플레이할 재미는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남이 플레이한 영상을 찾아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나중에 누군가 컨버팅해서 서비스해주면 구입해 즐겨볼 생각은 있으나 지금은 영상을 보면서 추억을 되살려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나는 이 게임을 게임잡지의 번들 시디에 데모버전으로 접했던 것 같다.
청해진, 사무라이, 당대도적 이렇게 각 국가마다 미션이 하나 혹은 두개씩 제공되었던 것 같은데, 이걸로 할 수 있는 플레이는 전부 다 해보았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는 그저 자원이 올라가는 숫자를 보고있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었다. 영웅 유닛 하나만으로 조금씩 적을 제거하는가하면 일부러 유닛들이 죽게해 혼령을 모아 용 같은 괴물을 소환해 놀기도 했다.

이겨야 한다거나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시도해보는 놀이를 즐겼다고 보는 게 맞겠다.
유닛을 생산할 때 딸깍딸깍하는 소리, 이동 명령의 발자국. 그런 사소한 것들이 담겨진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겹다.

스타크래프트

올 8월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발매일을 시점으로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와 스타크래프트2의 캠페인을 재미있게 즐겼다.

예전에 클리어했던 ‘자유의 날개’는 기억을 되살려줄 정도의 캠페인만 선별적으로 골라 플레이했기에 정주행이라고 부르기에 조금 모자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요즘의 나는 취미 생활을 흩뿌려놓았다고 말할정도로 여기저기 흥미가 많은지라 취미가 뭐냐고 물었을 때 오히려 대답하기 곤란한 편인데 스스로가 스타크래프트 덕후라는 점은 매우 힘주어 말할 수 있다.

어릴 적에 도깨비 시장에 가서 여러가지 게임들과 데모 버전이 뒤섞여 있는 CD만 구입하던 내가 난생 처음 구입한 정품 타이틀이 바로 스타크래프트 오리지날이었다. 조그마한 아이가 큰 타이틀을 끌어안고 엄마한테 앞으로 다른 어려운 부탁은 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던 풋내나는 기억이 막 떠오르는 참이다. 그러고보니 그 시절 기억 속에서는 엄마도 참 젊었다.
함께 동봉된 메뉴얼을 수차례 읽었기에 보통은 잘 모르는 스타크래프트 세계관에도 유달리 관심이 많았다. 요즘에야 덕질하기에 좋은 콘텐츠가 여기저기에 넘치지만 그 때는 개인들이 나모웹에디터로 어설프게 만들어 여기저기 깨지기 일수인 홈페이지에 자료를 읽고 또 읽고 매일 매일 방문하면서 새로운 정보가 업데이트되기만을 기대하던 시절이었다. 하루는 어느 책방에서 스타크래프트 관련 소설을 찾았다. 그 내용이 공식 설정과 많이 달라서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책을 놓았는데 지금 보면 그게 일종의 동인지같은 것이었나보다.

시간이 흘러 스타크래프트2의 발매 소식을 들었다. 난 제4의 종족 젤나가가 나오기를 마음 깊이 기대했었다. 단지 친구들과 대전만 즐기는 수준을 넘은 진성 덕후였으므로 내가 알고 있는 세계관 속의 그들을 조작하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에 한스타를 통해 싱글 미션도 틈날 때마다 플레이했던 기억이 난다. 영어를 잘 못해서 그저 눈치로만 상황을 느끼며 해보기도 하고, 다시끔 한스타를 통해 플레이해고,중간 중간 추억을 되살려보기 위해 플레이도 해보고…
그리고 이번에 한국 성우들이 녹음한 리마스터 버전까지 싱글 미션을 꽤나 많이 플레이해봤다.
학교 다닐 때는 친구들과 리그도 만들어서 방과후에 경기도 하고, 다른 반 친구들과 게임으로 교류도 많이 했다. 매번 방학 때면 브레인 서버에서 래더 아이디를 걸고 길드를 부수고 다니는게 취미이기도 했다. 정말이지 스타크래프트는 내게 정말 의미있는 게임이다. 유치하고 순수한 내 어린날에 이 녀석이 함께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 세대에 나와 같은 사람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피씨방을 주 무대로 스타크래프트 – 디아블로 – WOW순으로 옮겨나는 블리자드의 학업 망테크를 탄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나야 디아블로를 한참 하다가 컴퓨터 사양에 부딫혀 스타를 계속 한 것이 중학교 교우관계까지 연결되어 스타크래프트의 고인물 한 층을 담당하게 됐다.

리마스터와 스타크래프트2 캠페인에 대한 감상은 다음에 이어 적도록 하겠다.

2018.08.12 :
나이가 들면서 열정을 쏟을 대상은 현실 세계에 한정하고, 게임은 순전히 즐기기만 하기로 맘을 먹었다. 그래서 전략 게임이라기보다는 피지컬 게임이 된 스타크래프트 래더에는 더 이상 흥미가 가지 않는다. 또한 밸런스 패치가 없어 전혀 새로울 게 없는 까닭도 있다. 리마스터되어 새롭게 보는 맛에 살아났던 팬심이 신선함과 함께 시들었다. 한동안은 재미있어 몇 시간씩 하기도 했는데 이도 반복된 게임 양상에 곧 지겨워졌다. 차라리 리메이크였다면 어땠을지 궁금하다.
아무튼 이제 다음에 추억을 다시 소환할 때가 되어야 다시 설치하게 될 것 같다.
하지만 미션을 외국어 학습 재료로 사용한다거나, 리그 방청 정도는 기회가 되면 언제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요즘에는 스타2 협동전을 해 왔는데, 이마저도 업데이트가 늦어 친구와 한 주에 하나씩 돌연변이를 깨는 것 이상으로는 하지 않고 있다.

투더문(To the Moon)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 그런 날 있잖아.

평소에 하던 일들은 다 하기가 싫은데 뭔가가 막 하고 싶은 날.
언제 구입했는지도 잘 기억이 안나는데, 이 게임이 내 스팀 계정에 들어있었다. 그 날 그걸 봤다.

게임은 이틀에 나눠서 했다. 그마저도 첫째날 게임이 오류가 나서 멈추지 않았다면 단번에 해버렸을 것 같다.

투 더 문(To the Moon)은 어렵지 않다. 기껏해야 맵을 돌아다니면서 아이템을 모으고 퍼즐을 몇 번 풀어주는 게 전부다.
소설 같은 게임이다.

하지만 음악과 이야기가 아름다워서 쯔꾸르 게임의 게임성조차도 특별한 매력으로 느껴지게 한다.

게임에 관해서는 딱히 할 이야기가 없다. 아이디어가 특별하다거나 여타 새로운 것들을 넣은 것은 아니니까.

중요한 것은 이야기이다.
다시 한번 언급하지만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잔뜩 첨가되어 있다.

생명이 위태로운 ‘조니’는 얼마남지 않는 시간동안에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도움을 청한다. 도움을 주기 위해 나타난 사람들(플레이어)은 의뢰인의 기억으로 들어가 그것을 조작해 꿈을 이룬 삶을 살게해주는 일을 한다.

그의 꿈은 달에 가는 것이다.
왜 그게 꿈인지도 본인도 모르는데 아무튼 그게 꿈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조니의 삶을 하나씩 살펴나간다.

거기에는 아내 ‘리버’가 있다.
리버는 무슨 일 때문인지 미쳐버린 것 같은 행동을 보이는데, 오리 너구리 인형을 항상 가지고 다니며 종이 토끼를 병적으로 접어 조니에게 토끼에 대해 설명하게 한다. 자신의 머리를 자르기도 한다.

마지막에 우리는 John(조니) 스스로도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기억까지 도착하는데 거기에조차도 리버가 있다.
그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곳에 그녀가 있었다.

그리고 모든 의문점이 풀리게 된다.

어린 시절의 조니과 리버는 늦은 밤 숲 속에서 만났다.
둘은 서로의 이름에 대해 이야기하고, 밤하늘의 토끼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혹시라도 다시 만날 수 없게된다면 달에서 다시 만나기로 재차 약속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조니의 쌍둥이 형제였던 조이가 사고로 어머니의 손에 죽자 어머니는 그에게 약물을 과다 복용시켜 어린시절의 기억들을 모조리 지워버린다.

결국 기억은 소녀에게만 남게 되었다.
여기에서야 밝히지만 사실 리버는 아스버거증후군에 시달리던 환자이다.

시간이 흘러 조니와 리버는 학교에서 다시 만난다.
리버는 어린 시절에 조니에게 선물로 받은 오리 너구리 인형과 가방을 어딜가나 간직하고 다녔다. 그렇게 항상 조니의 주변 어딘가에. 나중에 둘이 영화관에 데이트를 하면서 밝혀지지만 리버는 대인관계에 문제를 갖고 있다. 그녀에게는 같은 공간에 존재하며 같은 것을 바라보는 자체로 그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기억도 없는 조니는 리버에게 끌리면서도 그 이유가 혼자 다니는 리버가 특별해 보이고, 자신도 그녀와 함께 해서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 리버를 사랑하는 맘이 커진 조니는 그녀에게 처음 고백했던 불손한 자신의 맘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하지만 그 고백의 원래 목적과 다르게 리버는 조니에게 어린 시절의 기억이 없다는 걸 깨달았고 그로 인해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리버는 어린 시절 조니가 선물로 줬던 가방을 등대를 향해 던져보라고 하며 그의 기억을 시험 해본다. 아무것도 모르는 조니가 그 가방을 정말 등대로 던져버리자 리버는 너무 놀라 달려가다가 절벽에 떨어질 뻔한다.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하며 넘어갔던 그 장면을 돌이켜보고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얼마나 놀라고, 가슴이 아팠을까.

그 때부터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조니의 기억을 되살리려고 노력을 다한다.

밤하늘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토끼를 접어서 조니에게 보여주었다. 그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 그때처럼 토끼에 대해서 물어봤다. 조니가 아무것도 기억해내지 못하자 기억 속의 밤하늘에 떠있던 빛깔을 따라 토끼를 접었다. 물어보았다.
다시 또 접고 물어보았다.

어린 시절처럼 머리를 잘랐다.

리버는 병에 걸리게 되었다.
하지만 리버는 치료를 받기보다는 등대를 볼 수 있는 집을 짓기를 원했다. 등대는 별이기 때문이다. 서로 이야기하고 싶어하지만 닿지 못하기에 계속해서 인사를 보내는 별이다. 리버는 그런 등대를 지켜야만했다.
달은 그녀와 그를 이어주고, 그런 달까지 닿는 것이 등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나 오리 너구리 인형은 항상 함께였다.

리버가 세상을 떠났다.
조니는 리버가 그리웠고, 이유도 모른 채 (그녀를 만나러 가기 위해) 달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의뢰를 했다.

잃어버린 기억으로 인해서 조니와 리버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둘의 사랑과 영혼은 달과 등대로 이어져 끊어지지 않았다.

아름다운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