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간 드라마 미생(未生)1이 주목을 받았다. 나는 미생을 만화책2으로 보았는데, 드라마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미생을 접하게 되어 참으로 고맙다.
미생은 우리들에게 너만 그렇게 힘든 것은 아니라며 넌지시 위로를 건내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만나는 지친 눈빛. 그 헤묵어보이는 어깨에 위로를 건내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서.
너도 그리고 나도. 모두 위로를 받아서 참 다행이다.
드라마는 오며가며 잠깐씩 본 것이 전부지만 최대한 원작에 가깝게 만들어졌다고 들었다. 특히 “지상파 채널에서 드라마 내의 러브라인을 제안해 거절했었다.”는 작가 윤태호씨의 이야기가 인상적으로 들려왔다.
미생(未生).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주인공 장그래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에서 실패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장그래는 그저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이어야만 했다.
상황 탓으로 돌리자면 그 동안 달려온 자신이 너무도 초라해지고, 스스로에게 미안해지기 때문이다. 그건 너무 아프다.
그렇게 시작된 인턴생활. 그리고 겨우 손에 움겨쥔 계약직.
독자들의 퉁명스러운 불만을 받아내야만 했던 특급 낙하산 장그래였지만, 계약직마저도 한 숨의 공기를 찾아해매듯 몸부림치고 나서야 얻을 수 있었다.
그런 장그래에게도 행운이 있다면 그건 어디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좋은 동료들과 오랜 세월동안 바둑으로 다져 낸 그의 안목이었다. 그런 그의 시선이 우리를 원 인터내셔널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로 이끌어준다.
돌 하나를 깔고 상대의 응수를 기다리듯 이야기는 장그래에게서 다른 인물에게로 차례차례 옮겨간다.
회사에서 받는 그 어떤 수모보다도 무거운 가장의 무게. 이성의 끈이 끊어지도록 팽팽히 당겨지는 갑을관계에서의 긴장감, 스스로가 누군지 지워내야 할 정도로 계속해서 머리를 채우는 일거리들, 비효율적인 시스템의 틈바구니를 채우는 야근시간.
숨이 턱턱 막혀오고 ‘너는 누구니? 왜 이렇게 힘들지?’ 라는 물음이 던져진다.
자신의 모습을 틀에 부워 제일 작은 톱니바퀴로 만들어낸다. 조금도 크거나 그 모양을 벗어나서는 안된다. 일이란 더 나은 가치를 만들고, 자신을 완성시켜나가는 것이라는 가증스런 말들을 향해 현실이 가래침을 마구 뱉어댄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그 속에서 순간을 놓치고, 자신들이 누군지 잊고만다. 우리 모습은 마치 큰 파도 위에 올라 탄 작은 돗단배같다. 바다를 정복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발디딜 한 켠의 공간만이 필요했을 뿐인데.
그럼에도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희망은 존재한다.
물론 파도가 너무 높아서 희망은 그저 희망으로만 끝날 수도 있다.
그래도 서로 같은 악몽속에 있다는 동질감과 연민은 우리에게 힘을 준다. 그런것들이 우리를 지탱해주는게 아닐까?
결국은 사람이다.
덧. 미생을 재미있게 감상하는 몇가지 팁.
- 한번에 정주행을 하다보면 녜웨이핑과 조훈현의 대국. 그 각각의 수를 쉽게 지나칠 수 있는데, 기보 해설과 만화속 상황을 연관시켜보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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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에는 각 권마다 착수, 도전, 기풍등의 부제가 있으며 이에 대한 설명은 각 권 책갈피의 작가 소개란 아래에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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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92수(단행본 6권)에는 BGM이 삽입되어 있는데 이 곡은 Brahms 3번교향곡 3악장 Baby alone in Babylone이라고 한다. 책으로 감상하는 경우에는 음악을 틀어놓고 보면 좋을 것 같다.
4. 작품 초기와 끝날즈음을 비교해보면 작화가 많이 달라지는데 이에 대한 작가의 변은 미생 후기 – 1에서 찾아볼 수 있다.
5. 미생 후기 – 2~5에는 미생 2부를 위한 윤태호 작가의 요르단 여행기가 담겨져 있다.
6. 미생 [ 특별5부작] 사석3도 놓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