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6월 23일 20:00
※ 본 글은 극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원로(ONE路) 연극제의 극 중 하나인 신궁(神弓)을 보았다.
평소와 같이 극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배제한 상태로 관람했는데.
극 초반에 흐름을 잘 따라가지 못했기에, 간만에 이런 행동을 후회했다.
극 시작과 함께 보여준 몇 개의 장면과 극의 본격적 배경이 되는 어촌(장선포)이 잘 연결되지 않았다. 몇몇 토속 방언들의 의미를 몰라 ‘어어…’ 하던 찰나에 장면이 지나갔고, 일부 대사도 제대로 듣지 못했던 게 화근이었다.
극의 시작과 함께 보여준 장면은 주인공 왕년이의 과거를 보여주는 것 같은데, 다행히 그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살펴가는데 문제는 없었다.
그래도 이 부분이 맘에 걸렸던지라 후에 원작 소설인 천승세 작가의 <신궁1>을 찾아보려고 한다.
극은 어촌 무당 왕년이와 악덕 선주, 고리대금 업자를 중심으로 영세어민들의 비애를 다루고 있다. 왕년이를 통해 우리네 무속 문화를 엿보는 것은 보너스다.
왕년이의 남편 옥수는 어부다.
한번은 흉어2가 닥치는데 이 때 옥수는 선창 객수 판수에게 배를 넘기게 된다. 누군가의 시련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탐욕을 뽐낼 기회인 법이다.
그러고도 옥수의 빚은 계속 늘어 말미에는 판수의 배를 타고 일을 하러 바다로 나간다.
배가 돌아왔다.
해안으로 돌아온 배의 어창에는 왠일인지 대못질이 되어 굳게 닫혀있었다. 자꾸만 발칙하게 드는 상상을 휘휘 내저어내며 거부해보지만 그런 생각들은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상상은 그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었고, 어창 속에는 많은 주검들이 있었다.
어민들의 절규를 듣는데 순간 소름이 끼쳤다.
그 순간 세월호의 기억이 떠올린 건 나 뿐이었을까?
과거에 쓰인 글에서 왜 나는 세월호를 겹쳐보게 되었을까. ‘세상은 조금이라도 나아진 것일까?’라는 생각이 눈 앞에 펼쳐진 극과 나 사이를 순식간에 격리시키고 에워샀다.
왕년이는 죽은 자들을 위한 굿을 했다.
무속 신앙이나 신을 믿지 않는 나이지만 이 굿판이 누군가를 위한 진정성 있는 위로의 춤사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왕년이는 굿을 하지 않게 되었다.
세월은 무심하게도 수년 동안 흘러갔고, 왕년이는 어민들의 등쌀에 이기지 못한 탓인지 다시 한 번 굿판에 서게 된다.
모월 모일. 고리대금 업자가 태어난 그 날, 그곳에서 왕년이는 고리대금 업자가 쓴 바가지 위로 활시위를 당겨 목숨을 앗아가는 피와 복수의 굿판, 아니 스스로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굿판을 벌이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극은 현실과 달리 통쾌하기라도 하구나.
아아.
- 1979년 나온 중편소설로 창비사의 <20세기 한국소설> 22편 에 수록되어 있다. ↩
- 다른 때에 비해 물고기가 적게 잡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