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파우스트

오페라는 처음인 것 같다.
실은 오페라와 뮤지컬의 차이를 잘 몰라 찾아보았는데, 내 수준에서는 명확히 구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다.

아무튼 어제 오페라 “파우스트”를 봤다. 실은 한달 전쯤부터 관련된 행사를 통해 무료로 감상할 인원을 뽑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친한 친구 한 명이 해당 행사를 통해 파우스트를 보게되어 내심 부러워하고 있었다. 파우스트는 평소에도 내가 주변에 말하고 다닐만큼 특별히 좋아하던 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 오후에  취소 표가 생겼다며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렇다. 될 놈은 된다. 역시 나는 이걸 보게 될 운명이었던 게다.

세종 문화회관은 정말 오랫만이었다. 원체 장소에 무심한 탓에 눈 앞에 다다라서야 익숙한 공간임을 상기했다.
자리는 2층 D열 (S석)이었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눈에 걸리는 앞 사람의 머리 탓에 ‘좀 불편하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위에서 조망하는 덕에 무대를 한 눈에 담기에는 좋을 것 같았다.
평소에 밖에 돌아다닐 때는 안경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나인데 이번에는 특별히 외투 속 주머니에 넣어 간 안경을 꺼내 썼다. 파우스트 진짜 좋아한다고.

오랫만에 간 세종문화회관

조명이 어두워지며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게 왠걸… 악기를 연주하시는 분들의 모습이 머리만 걸려 보였다. 맘이 뽀로통해졌지만 ‘무대에 집중하지 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두번째 난관을 만나게 되었으니… 그렇다! 이것은 꼬부랑 외국어다. 앞 좌석에 달린 스크린을 통해 자막이 보여진다지만 무대와 자막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아 눈동자를 굴려야 했다. 이번 건은 정말이지 참담했다. 최대한 한 눈에 담기 위해서 앞앞 좌석의 스크린과 무대를 번갈아 보았는데, 그래도 배우들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고 보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나는 무대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에 잘 안들리는 외국 영화를 자막없이 보는 심정으로 자막을 건너뛰며 보기로 했다. 시간이 가면서 조금은 적응이 되었지만 그래도 한글이었으면 극의 감정을 그대로 전달 받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나중에야 든 생각이지만 웨어러블 안경으로 자막을 띄워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불행 중 다행인지 파우스트 내용 중에서 마르그리트와의 이야기만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내용을 파악하는데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다. 게다가 책에서도 초반부에 해당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내 머리에서도 그나마 덜 휘발된 부분이었다. 잘 생각해봐. 대부분의 참고서도 앞부분만 너덜너덜하다고.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언급하기를 나는 파우스트라는 작품은 좋아하지만 파우스트라는 인물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제 욕심을 주체 못하고 메피스토에게 이용당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죽이는 꼴이 볼썽사납다. 게다가 책에서 보여지는 파우스트의 고뇌 역시 심도있게 그려지 않기때문에 더더욱 민폐 캐릭터로 보였다. 그래서 나는 메피스토텔레스나 마르그리트에게 더 매력을 느꼈다.  특히 메피스토의 강렬한 색상과 익살스러운 모습이 맘에 들었고, 마르그리트의 음색이 좋았다. 무대에 관련해서는 회전하며 움직이는 무대 장치나 조명을 이용한 표현을 보면서 기획 당시 하나하나 조각 퍼즐을 맞춰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을 무대 연출자를 떠올렸다.

사실 극의 전반부는 실망감이 컸다. 위에서 언급한 2가지 큰 복병을 만났을 뿐더러 오페라라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는데 차라리 당장이라도 돈을 더 내고 앞으로 뛰어나가 현장감을 제대로 느끼고 싶었다. 그렇게 극의 초중반이 지나고 휴식 후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사이 앞자리에 앉아있던 분이 집에 가신 것이 아닌가? ㅎㅎ 극 초반부터 꾸벅 꾸벅 졸더니 집에 가셔서 마치 브라운관으로 보듯 내 앞의 시야가 탁 트여 너무 기분이 좋았다. 고개를 좌우로 돌릴 필요도 없고 자막을 보기도 조금이나마 수월해져서인지 극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나만의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배우들의 성량도 더 올라간 듯 느껴졌다. 4막의 메피스토와 마르그리트의 교회 장면, 발랑탱의 죽음, 천사를 부르는 마르그리트 장면이 썩 맘에 들었다. 특히나 마지막에 무대가 열리며 하늘나라로 가는 마르그리트와 지하로 끌려들어가는 파우스트의 모습은 정말이지 좋았다. 정말 하늘이 열리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이 마지막 장면이 퍽이나 맘에 들어서 힘껏 박수를 쳐줄 수 있었다. 에의상 억지로 쳐준 게 아니었다.

오페라 파우스트 커튼콜 /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나는 처음 경험해보는 것은 일부러 더 사전 정보 없이 부딫혀 보는 편이다. 그래야 새로운 경험을 더 맛깔나게 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반대로 더 깊은 이해를 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길다면 긴 인생인데 이 경험을 다시 한번 할 날이 없을까? 깊은 이해와 재미는 나중으로 미뤄두고 오직 단 한번의 기회인 첫 경험은 무지하게 하는 것이 내 스타일이다.

“오페라 파우스트”의 2개의 생각

    1. 아, 역시 깨지는게 맞나보네요. 전 구글포토에서 링크를 따오는데, 언젠가부터 특정 아이피에서 접근오류가 뜨길래 저희 집 네트워크 문제인 줄 알았어요 ㅠㅠ
      이미지 호스팅 하나 알아봐야겠네요.
      그리고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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