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털 뽑기

잠에서 깼다.
이제 꽤 능숙하게 해내는 편이다만 신경이 곤두선 탓인지 운전을 하고 나면 피로가 몰려온다.
창을 넘겨 살펴 보니 익숙한 풍경에 익숙치 못한 것들이 눈에 걸린다.

마당으로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늘 그렇듯 친척들로 가득 찬 시골은 어딜가나 일거리들이 잔뜩 있는데 이번 풍경은 좀 생소하다.

닭이다. 죽은 닭이다.
모가지가 완전히 꺽인 두 마리의 닭이 커다란 대야안에 들어있었다. 나는 허드렛일을 피할 수 없는 젊은 일꾼이기에 이걸 해야하는건지 고민할 선택지 따위는 없었다. 얼른 장갑을 받아 닭의 털을 뽑기 시작했다.

닭을 잡아본 사람이 없어서 외할아버지께서 손수 몽둥이로 때려 잡으셨다고 하는데, 그 크기를 보니 도저히 맨 손으로 잡을 수는 없을 녀석이었다. 4~5년 동안 자란 한쌍의 닭들은 그 크기가 강아지보다도 크다. 오만상을 하고 닭털을 하나하나 뽑는데 이 털이 내 생각과는 좀 다르다. 무슨 털이 콩나물보다 굵어서 마치 닭의 몸에 박힌 거대한 송곳들을 뽑아내는 기분이었다.

얼핏얼핏 놈들의 대가리를 보니 짧은 순간에 참담한 생각과 기분이 내 머리속으로 엉키어 왔다.

우리가 고기라고 일컫는 것들 역시 살아있던 순간에는 생각을 하고, 감정과 고통 같은 것들을 느끼는 생명체였을 것이 자명하다.
이 흔해빠지고 고리타분한 주제에 대한 생각 뭉터리가 내 머리속을 훝고 지나간다. 사람으로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을 익숙한 고민이기에 생각은 이전에 지나온 길의 흔적을 밟으며 빠르게 이동했다.

사람들이 필요 이상의 육식을 태연자약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죽이고, 베고 손질하는 과정이 남의 손에 맡겨져 있다는 사실이 분명 영향을 끼칠 것이다.

손질은 큰외삼촌이 하셨다.
사람의 몸을 여는 수술 장면을 보면 금새 소름이 끼치고 마는데, 그래도 닭의 손질 과정은 오만상을 하고서라도 지켜 볼 수 있음을 자각하니 뭐라 말할 수 없는 불쾌함과 혼란이 일었다.
그 찝찜함을 떨쳐내기 위해 나는 집으로 돌아와 윌든을 펼쳐봐야 했다.

더 높은 법칙에 관한 이야기.
사냥과 낚시에 대해서 다룬 장이다. 어려운 글은 아니지만 담담하게 진실된 것들을 말하는 윌든은 내게 평화를 안겨줬다. 몇번을 읽은 글이지만 여전히 윌든이 내게 감동을 주는 까닭은 내가 아직 그 가치들을 자연스럽게 내것으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덧. 하루를 잊지 않기 위해 써보는 그날의 하이라이트
– 고추 방아다리 따기.
– 자연산 오디 한 봉지 가득 따서 한웅큼씩 먹어보기.

KB스마트원카드 발급받기

국민은행에서 스마트OTP 3만개를 무료 배포한다는 소식을 듣고 국민은행에 다녀왔다.

원래 토큰형 OTP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 아이를 사용한지 수 년이 지나다보니 배터리가 슬슬 걱정됐다. 수명을 다하여 갑자기 전원이 꺼져버리면 이 OTP로 등록된 모든 은행 지점을 하나 하나 방문해야 할 터였다.
미리 카드형 OTP를 하나 구입해서 교체해야겠다라고 생각 중인 와중에 스마트OTP(=KB스마트원카드) 무료 배포 소식을 듣고 고민할 틈도 없이 냉큼 국민은행을 방문했다.

현재 KB스마트원카드는 서울 지역 30개 영업점에서만 발급가능하며, 7월부터 전 영업점에서 발급 가능해질 예정이다. 발급 가능 지점은 아래와 같다.

스마트OTP는 NFC 기술을 이용하기 때문에 안드로이드에서만 사용가능하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KB국민은행 스마트OTP”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받아서 사용하는데 카드를 발급받을 때 차근차근 등록해주시고 사용법도 알려주신다.

KB스마트원카드(스마트OTP)와 기존에 사용하던 토큰형 OTP

아직 타 은행에서는 스마트 OTP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아서 사용할 수 없지만 빠른 시일내에 스마트OTP만으로 금융거래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수술방에서 나왔다

수술방에서 나왔다.

전혀 예정에 없던 수술이었다.
요 1년 사이에 많이 다치는 것이 사람의 운이란게 있는건지, 아니면 내가 정신을 내놓고 사는 건지.

꽤나 조심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다쳤다. 내 눈으로 보아도 상처가 깊어 지혈만 한 체로 병원으로 갔다.

그런데 의사가 보더니 꿰메는 정도로 안되고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순간 아득해져 물으니 몇 주 쉬고 재활을 하면 될것 같다고 했다.
요 몇년 사이 의사들 수십명을 만나보고 다니며 느낀거지만, 의사들은 늘 두루뭉실하게 얘기한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니 단언하지 않는게 당연하다고 생각이 되면서도.. 그래도 싫다.

심전도, 파상풍, 링거, 수술복, 그리고 더해지는 몇 개의 주사바늘들.
처음이 아니라 익숙하면서도 내 몸이 남에게 맡겨지는 느낌이 거북하다.

‘사고로 목숨을 잃는 과정도 순간일테지?’ 그런 생각이 미치자 내가 하루를 견디며 하나 하나 쌓고 있는 모든 것들이 너무 부질 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아픈 몸을 이끌고 글을 적는다.

“순간을 놓치지 말자.”
지금 이 순간의 기분을 잡아두자. 절대 잊지 말자.

오래된 피처폰 정리

왼쪽 두번째부터 와인폰 4(LG-KU2800), 와인폰 2(LG-KV3900), SCH-C280, sky 로맨틱웨이브 (im-s300). 맨 왼쪽은 현재 사용중인 베가 LTE-A

내 방에 고이 모셔뒀던 피처폰(Feature Phone)을 정리하기 위해 꺼냈다. 총 4대가 있었는데 그 중 2대는 와인폰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와인폰 시리즈의 두번째/네번째 폴더폰이고, 나머지 두개는 2g 반자동 슬라이드 폰이다.

사실 4대 모두 내 휴대폰이 아니다. 저중에 애니콜(SCH-C280)은 엄마가 사용하던 휴대폰이고 나머지는 모두 아빠가 사용하던 휴대폰이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휴대폰이 없었는데… (뭐, 학창시절에는 부모님이 요금을 내주는 것이니 ㅠㅠ)
이 자리를 빌어 간략히 내 휴대폰 역사를 살펴보자면! sky 휴대폰을 군 입대전에 한 대, 군 제대 후에 다시 또 한 대, 그리고 다음부터는 스마트폰으로 넘어와 모토글램.  그 후부터 디자이어hd(일명 옹이), 베가R-3, 베가 LTE-A 순으로 사용했다. 돌이켜보니 모두 저렴한 녀석들로만 사용했다. 스카이 휴대폰은 하얗고 예뻐서 참 좋았고, 모토글램과 디자이어hd로는 롬질을 어마어마하게 했다. 사실 그 전까지는 내가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가장 전문적인건 포토샵이었는데 그때의 롬질이 기덕이 되는 첫번째 관문이었던 것 같다. 그후에 베가 브랜드를 구입하면서부터는 성능이 훌륭해서 특별히 루팅을 하지 않았다. 대신에 Nook HD 시리즈와 갤럭시 노트8을 어마어마하게 혹사시켰음은 부인하지 않겠다.
쓸데없는 말이 길어졌는데.. 아무튼, 이 4개의 피처폰은 내 휴대폰이 아니지만 틈만 나면 내가 가지고 놀았기 때문에 모두 정감이 가는 녀석들이다.

당시의 내게는 백업 개념이 부족했던 탓에 피처폰안에는 사진과 문자 들이 고스란히 잠들어있었다. 끽해야 250×300 정도되는 해상도의 사진들. 그리고 문자가 부족했던 내가 아빠 휴대폰으로 친구들에게 보낸, 우리 가족이 힘들었던 시기에 서로에게 보낸 문자들. 사라지지 않고 잠들어 있던 기억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끔찍하게 설계된 UI조차 왜 이리 익숙한지 바로 어제 쓰던 것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한 손에 꼭 맞게 쥐어지는 느낌이 너무 좋다. 폴더폰을 여닫는 소리와 쫀득하게 올라가고 내려오는 반자동 슬라이드는 그 자체로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줬다. 그래서인지 당시에는 휴대폰을 던지고 노는 손버릇이 있었다. 요즘 휴대폰에 비하면 무쇠처럼 튼튼하기 때문에 한두번 떨어뜨리는 건 걱정도 되지 않았다. 이 손버릇을 한동안 고치지 못해 스마트폰을 몇번 땅바닥에 쳐박았던 기억이 있다.

오랫만에 꺼내보는 휴대폰들이 너무 반갑고 좋았다. 그래서 계속 그냥 남겨둘까도 잠시 고민했는데, 앞으로 새로운 경험을 충만하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덜어내어 가볍게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진 한장과 동영상 하나로 만족해보려 한다. 물론 사진과 동영상으로 충족되지 않는 날 것의 느낌이 있지만 살다보면 절대 버려지지 않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고이 간직하는 것들은 그것들로 한정하려고 한다. 너무 무거우면 다음 행선지까지 가기 힘들잖아.

사실 이번에 정리하는 피처폰들은 5년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이토록 옛스러운 물건이 되어버렸다. 세상이 변해가는 속도가 정말 빠르다.

참고로 피처폰에 있는 사진과 동영상을 백업하려거든 블루투스 기능을 적극 활용하면 좋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최신 스마트폰과 연결이 잘 되지 않는 기종은 다른 피처폰을 경유하는 방식을 이용하면 된다. 블루투스 기능이 없는 휴대폰의 경우에는 24핀 데이터 케이블 USB를 이용해야 하는데 오픈마켓을 잘 찾아보면 우체국 택배(배송비 무료)를 이용하는 판매자가 있다.
처음에는 서비스센터를 이용하려고 했는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요구하는 해지원부 증명서가 통신사 해지 6개월 이내에만 발급 가능하므로 이용할 수 없었다.

오래된 폴더폰은 대부분 해지한 뒤 6개월이 지났을테니 24핀 케이블을 이용해야 할 것 같다.

와인폰 2개1개는(KT의 2g 서비스가 종료되었기 때문에 KT용 2g 단말기는 쓸 수 없게 되어버렸다) 중고장터로 보냈다. 남은 와인폰 1대와 일부 고장이 나버린 두개의 슬라이드폰은 우체국의 중고폰 매입를 이용하려고 생각해봤는데 알고보니 우체국이 그저 다른 민간 업체의 업무를 대신해주는 것이었다. 고작 몇 천원에 개인정보 유출 위험을 감수하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 파기해버렸다.

JTN LIVE CONCERT – 포맨&벤

JTN 멤버쉽을 통해서 포맨&벤의 콘서트를 보았다.
콘서트는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2015.01.10/PM 8:00)에서 진행되었는데 6시 30분부터 입장가능했다. 원래 자리 배정은 선착순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너무 오래 기다리는 것도 힘들 것 같아서 입장 시간에 얼추 맞춰 6시 40분경에 티켓팅을 했다.
그런데 왠일인지 2015년의 첫번째 콘서트라는 이유로 지정좌석을 운영했다. 앞으로도 지정좌석제로 운영될런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역시 난 될 놈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게다가 지정받은 좌석조차도 내 취향을 어떻게 고려했는지 정면 방향의 약간 높은 좌석이었다.
조금 멀리 떨어져 가수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얼굴은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안경도 챙겨나오지 않은 터였다.

8시가되자 Ben(벤)이 먼저 나와 공연이 시작됐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불후의 명곡과 히든싱어에 나왔던 것 같은데 Tv를 잘 보지 않아서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노래 실력은 내 기대와 관심 그 이상이었다. 게다가 단아해보이는 느낌의 사진과 달리 실제로는 귀여운 스타일이어서 반전 매력도 있었다. 불러준 노래 중에는 원래 좋아하던 이선희의 곡들과  ‘오늘은 가지마’가 기억에 남는다.

약 30여분동안 벤이 공연을 하고 포맨이 등장했다.
내 머리속에 포맨이란…. 신용재 그리고 레고머리.
딱 그 정도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유머러스하고 능청스런 공연 매너가 인상깊었고 덕분에 즐겁게 콘서트를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김원주씨에게서는 백치미가 느껴졌다. 공연 중에 협찬 물품이었던 가야농장 음료를 객석에서 받아와 두병이나 원샷했는데, 곧 넘쳐흐르는 포만감에 노래가사를 잃어버리고 말아 소소한 재미를 선사해줬다.

공연 중간에는 프로포즈 시간도 있었는데 해당 커플은 이미 몇년전 포맨 콘서트에서도 프로포즈를 했다가 이별. 그후에 다시 재결합해 이번에 결혼 날짜를 받아왔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포맨 콘서트에 온 것이다. 참으로 묘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행복해보였다.

나는 사실 이날 여태껏 이 정도의 대규모 콘서트를 본 기억이 없었는데, 노랫소리가 내 주변 공기를 가득 채우는 기분이 참으로 벅차서 좋았다. 이 좋은 경험을 빌어서 앞으로는 종종 콘서트도 찾아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턱관절 환자들을 위한 지극히 개인적 이야기

혹시 본인이 턱관절 환자라는 사실을 얼마전에 알게 됐나요?
오직 당신을 위해서 지극히 개인적인 저의 경험을 공유합니다.

일단 제가 턱관절 통증으로 약 2년 반동안 고통받아왔다는 사실을 알려드려야겠네요.
아마 턱관절에 대한 정보를 헤집고 다닐 당신은 이미 턱관절 장애로 생긴 여러가지 문제점을 직접 경험하고 계시겠죠?
그것이 단순히 턱관절(관절 부위)로 추정되는 통증이던가, 혹은 목과 등을 타고 흐르는 통증이 될 수도 있겠죠. 그도 아니라면 비틀어지고 있는 당신의 얼굴을 거울 속에서 발견하셨나요?

저는 발병과 함께 두통과 전신 무기력증을 앓았고, 안모는 고등학교 성장기 시절에 틀어졌습니다. 다만 외관상으로는 심해보이지 않아서 무시했을 뿐이죠.
처음 시작은 아주 사소한 불편함이었지요. 하지만 목과 얼굴에 긴장성 통증이 느껴지더니, 정말 심할 때는 일주일 내내 누워서 일어날 수도 없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런 통증보다 정말로 서글픈 점은 턱관절 환자는 외관상 별로 환자다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겠지요. 아마도 당신의 가족과 친구들은 당신의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엄살로 치부해버릴수도 있어요. 심지어 턱관절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일부 의사들조차 턱관절 장애가 정신병이라고 하기도 하는 실정이니 더 이상 말은 해서 무얼할까요?

하루종일 턱을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뻐근함. 그리고 가끔은 구토를 하게 만들어버리고야 마는 두통속에서 한 두달을 견디고 나니 ‘그래도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결심이 선 날부터 제가 해왔던 것들. 만나왔던 무수한 의사들의 의견을 제 나름대로 정리해 담담히 적어봅니다. 최대한 솔직하고 객관적으로 적으려고 노력하겠지만, 턱관절 질환에 대해서는 현재 모든 케이스에 정답이라고 말할 그 어떤 전문가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니 스스로 많은 정보들을 검토하고 그 중 자신에게 옳다고 생각되는 치료 방법을 결정하고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감을 가지시 바랍니다. 여러분께 좋은 결과가 따라오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일단 턱관절의 증상을 발견한 당신이 제일 먼저 할 일은 본인의 턱의 상태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턱관절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전문 치과나 대학병원의 구강악안면외과를 방문해보시면 턱의 구조적 문제를 파악하실 수 있습니다. 아마 당신에게 골격으로 인한 문제(안면비대칭,주걱턱등)가 눈에 띈다면 아마도 당신은 수술 교정 제의를 받을 것입니다. 상악(윗 턱)에 달린 치아가 평행이 아니라면 우리가 성형수술 끝판왕이라고 숱하게 들었을 양악 수술, 아래 턱만 문제라면 하악 수술을 하자고 할 것입니다. 실제로 유의미한 골격에 문제가 있다면 수술교정은 선결해야 할 과제가 맞습니다. 보통 교합에 있어 4mm이상의 차이가 있으면 수술 교정을 권한다고 얘기들 하는데 이는 어디에나 통용되는 지침은 아니고 본인의 구조적인 모양이 전문가에 의해 고려되어야 합니다.
다만 알아두실 점은 개인적으로 구강악안면외과에서는 치아 교합에 관해서 2차적으로나 고려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제가 1년을 넘게 기다려 진료를 받았던 유명 특진 교수님은 제 교합이 아주 훌륭하다고 하셨으며 양악을 하는 것만이 유일한 치료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 여러 치과를 다니면서 제 치아 교합이 저작시 힘을 여러 치아에 고루 나눠주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사실 구강악안면외과나 양악 전문 치과를 방문하는 대다수가 이미 수술을 결정한 경우가 많고, 이름부터 ‘구강악안면외과’이기 때문에 턱의 구조를 중점적으로 턱관절을 치료하려고 하는 성향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수술교정을 하기전에 더 많은 부분을 체크하여야 합니다.
실제로 눈에 띄는 골격적 안면비대칭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턱관절 통증이 없는 사람들이 많고, 양악 수술에는 몇 가지 실제적인 리스크(코 퍼짐, 일부의 – 신경 마비&팔자주름& 인중이 길어지는&비대칭 – 케이스, 높은 비용등)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수술이라는 그 자체로도 늘 실패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좋습니다.
추가적으로 ‘양악 수술은 턱관절 개선과 연관이 없고, 악화를 막아주기만 할 뿐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텐데, 당신의 턱관절 통증이 과두의 문제가 아니라 골격적 이상에서 오는 근육의 긴장때문이라면 수술이 도움이 될 수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본인의 치아 교합 상태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턱관절 환자 중에는 치아 교정 후 혹은 수술 교정 후. 또는 발치 후 증상이 시작된 경우가 있습니다. 저 역시 극심한 매복 사랑니를 대학병원에서 발치하였는데 그 후에 아랫니의 교합이 흐트러졌고 그 후 통증이 생겼습니다.
– 턱관절 장애 발병 시기에 치과 치료를 받은 것은 사랑니 발치가 유일하다는 점.
– 나름 고르다고 여겨서 자주 관찰하고는 했던 앞 치아가 사랑니 발치 후 흐트러졌다는 점.
많은 턱관절 전문 치과 원장님에서 이 두가지 사실이 턱관절 장애에 단초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저는 교합에 대해 잘 모르지만 좋지 못한 교합은 저작시 힘이 고르게 분산되지 못하고 턱에 무리가 갈 수 있으며 이는 근육의 긴장을 야기한다고 합니다. 즉, 당신의 통증은 근육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올바른 교합을 위해 치과 진료를 받아보시길 바랍니다.
다만 일부 치과에서 권유 받을 수 있는 치아 삭제는 비가역적 치료이고, 스플린트 사용은 오픈바이크(과개교합)을 유발할 수 있으니 치료에 확신을 가진 뒤에나 받으시길 바랍니다. 무리한 치아삭제 그리고 제대로 맞추지도 못하는 스플린트 사용으로 악화된 사례가 턱관절 네이버 카페(살며 사랑하며 배우며)에 많이 있습니다. 추가적으로 카페를 통해 피해야 할 치과도 알아보시길 바랍니다. 턱관절 치과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치과 중에서는 그 치료 비용이 천만원을 호가하면서도 예후가 좋지 않는 곳도 꽤 있는 실정입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신체 균형을 체크해보세요.
근처 영상의학과를 방문해 풀스파인 촬영을 통해 목(경추)과 허리, 골반의 뒤틀림을 파악해보세요. 턱관절은 다른 신체의 밸런스와 관련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실제로 그 말이 맞고 인과관계가 어쨌든 당신이 겪는 고통에는 적어도 경추와 골반의 문제가 관여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만약 당신의 몸에서 뒤틀림이 보인다면 의외로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몸의 유연성과 코어 근육을 키워주는 스트레칭, 운동을 배우고 실천하세요. 저는 꾸준히 런닝과 풀업을 해왔는데 몇달전부터 수영과 요가를 추가했습니다. 특히 요가가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스트레칭으로는 인중을 눌러 목을 뒤로 당겨주는 자세와 날개뼈를 뒤&아래로 내리고 목을 뒤로 스트레칭해주는 멕켄지운동이 저에게 잘 맞았습니다. 저는 수백가지 스트레칭 자세를 적용해보고 내린 결론이니 직접 본인에게 맞는 운동을 찾아보세요.
참고로 전 하루에 컴퓨터를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꽤 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대인들의 노동 현장을 살펴보면 이는 비단 저만의 문제는 아닐겁니다. 전 모니터 받침대, 키보드 트레이, 발 받침대, 의자를 새로 구입했고 최대한 바른 자세로 앉아 있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추가적으로 기왕이면 당신에게 맞는 베개를 사용하세요. 비싼 베개일 필요는 없지만 자신의 몸에 잘 맞는 베개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입니다.

사실 제가 2년 반이라는 시간동안 수백만원을 진료비로 사용하고, 많은 병원들을 찾아 다니면서 들은 이야기, 관련 카페를 통해 알게 된 내용, 읽은 논문등의 정보는 훨씬 많지만 그나마 모든 환자에게 정도라고 생각되며, 개괄적으로 말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이 정도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부디 같은 질환에 시달리는 분들이 짧은 제 글을 통해서 턱관절 장애 속에 소비되는 고통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저는 광고쟁이가 아니니 저의 치료와 병원에 대한 문의는 하지 말아주세요.

추가적으로 로버트 업가르드 저자의 턱 건강 사용설명서 도서 일독을 추천합니다. ‘턱관절’로 검색해서 나오는 다른 도서들은 저자들이 수술’만’ 하는 의사거나 특정 치료홍보 목적인 한의원 원장으로 보이니 그다지 영양가가 없어보입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티스토리 블로그를 운영했을 때의 일이다.
지금은 조금 바뀌었지만 티스토리는 티스토리 블로거의 글을 주제별, 최신순으로 노출해주고 있었다.
나는 건조한 마음으로 다른 블로그들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몸이 좋지 않다. 돈도 직장도 그저 막막하고 어둡다.’
자살이라는 단어를 써내려가며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는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다행히 마지막 글에는 세계여행이라는 꿈을 위해 다시 일어나야 한다고 적혀 있어, 나는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나는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보지 말아야 할 타인의 치부를 보고 만 느낌.

하지만 누구나 볼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이 아닌가?
나는 곰곰히 생각했다. 저 사람에게 필요한 건 단 한마디의 위로가 아닐까? 사실 지금은 도리어 잘 모르겠다. 그 상황을 타개할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을까? 그만의 공간을 내가 건방지게 침범한 것일까?
내가 주어야 할 것은 위로가 아니라 공감은 아니었을까……?

어쨌든 어렸던 난 그 분에게 위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블로그 이웃들을 동원해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그분은 모든 댓글에 답변을 달아주셨다. 하지만 난 그후로 그 분의 글을 더 이상 볼 수는 없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겠지.’

그냥 그랬다. 잘 모르겠다.
그때는 내가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세상을 보는 눈이 어린가보다.

3D 프린터 조립 알바 후기

10월 초부터 말일까지 약 한달동안 3D 프린터 조립 알바를 했다.

기존에 여러매체를 통해 3D 프린터를 접하면서 막연한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인이 관련 사업을 하는 업체에서 일하게 되었고, 어느날 내게 알바를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했다. 평소 내가 이런 저런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을 쓸 일이 생기자 내가 생각났다고 했다.
그래서 시급도 묻지않고 무작정 해보았다.
그렇게 약 한달동안 편도 1시간 반이 넘는 거리를 오가며 알바를 했다.

결과부터 말해보자면 썩 괜찮은 경험을 해본 것 같다.
우선 3D 프린터에 대해 좀 더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좋았다. 앵무새 말을 쫓듯 하는 언론이나, 수식어가 찬란하기만 한 홍보 자료들로는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이 경험을 통해 직접적으로 이해되었다.

3D 프린터는 생각보다 참 별것 아니면서도 대단한 놈이었다.
그 구조나 작동원리가 참으로 단순하다는 점이 참 별 것이 아니게 느껴졌고, 그 별 것 아닌 것이 개개인의 생활을 폭발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직은 꽃피지 못한 ‘가능성’이다.

보급형 3D 프린터는 제작속도도 정교함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싸다고 말하기 애매한 가격의 제품을 구매해서 얻을 수 있는 애매한 이점을 일반 소비자들은 굳이 원치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목업을 제작하거나 커스터마이징 제품을 생산하는 후가공 업체등 다품종 소량 생산체제의 분야에서의 3D 프린트는 꿀과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소수의 분야에서 쓰이는 특수한 제품들은 보통의 일반인들에게는 ‘그들의 연장’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가능성’이 피어나기 위해서는 마치 올림픽 구호를 외치듯 더 싸고, 더 빠르게, 더 정교하게 출력물을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이 필요해 보인다. 말 그대로 “뚝딱” 만들어져야 한다.
나는 이가 빠져버린 플라스틱 부품 하나를 생산하기위해 산만하게 좌우로 몇시간씩 움직여대는 큼지막한 박스를 내 방에 들여놓고 싶지 않다. 그 가격이 20~30만원정도 한다면 재미있는 장난감이라고 생각해보겠지만 비슷한 가격대의 중국산 제품 퀄리티의 대해서는 좋은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실제로 내가 본 3D 프린터 구매자들 대부분이 대학교 연구실에 있거나 개인적인 흥미를 가지고 구매하는 사람들이었다. 성인의 취미로 보기에 보급형 3D 프린터는 크게 부담되는 가격은 아니다. 허나 우리가 3D 프린터에 원하는 건 고작 그런게 아닐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실제로 유용한 것이라고해서 항상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비트코인의 경우에도 개개인의 삶을 한층 개선시킬 혁신적 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보급형 3D 프린터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3D 프린터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것 외에도 그곳에서 일하는 과정자체가 새로운 경험과 생각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일단 평소부터 알고 지내던 4인이 유쾌하게 일하는 공간에서 사람냄새를 맡을 수 있어 좋았다.
한편 중국과 일본을 통해 사업&영업을 하셨던 사장님의 사람에 대한 철학을 듣고는 그동안 못했던 고민도 해보았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람을 남긴다.’라는 생각은 한동안 잊고 있었던 관점이다. 사실 돌이켜보면 나도 그런 마음 가짐으로 묵묵히 주어진 일들을 해나가던 때가 있었다. 당시에 몸은 힘들었어도 고요한 평화를 맛보고 있지 않았나 싶다.

아, 그리고 난 사실 군대에서 공구리나 납땜 등 남들 하는 만큼 이런 저런 종류의 작업을 이미 다 해봤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절단기도 사용하고 레이저 컷팅기도 구경하고… 처음이라 신기하고 재미있는 경험을 많이 했다.

많은 부품들을 자르고, 조이고, 균형을 맞춘다.
집중해서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가는 동안 오랜시간 잠들어 있던 흥미도 깨어났다. 어려서 며칠동안 꼼짝않고 고무줄 총을 만들었던 기억이 났다. 별이나 종이학 접기도 끈질기게해서 큰 유리병을 한가득씩 채웠었다. 나는 그리기나 공작등 미술 관련 부분에 유달리 흥미가 많았다. 크리스마스가 되어 뭔가를 만들거나 미술시간에 하드보드지를 잘라 입체 도형을 만들며 다른 어떤 고민도 없이 하루를 보내곤 했다.

추억을 되살리며 노하우가 필요한 작업들이 슬슬 몸에 익어갈 무렵 처음에 예정했던 알바 기간이 끝이 났다.

사람들도 좋고 아직 궁금한 부분도 좀 남았지만, 당장 집중해야 할 내 일들을 온전히 할 시간을 가지고 싶어서 알바를 그만뒀다.
하지만 나는 이 경험을 통해 앞으로도 꾸준히 3D 프린터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테고, 그동안 잊고있던 내 흥미를 되찾게되서 기쁜 맘이 크다.

위의 사진은3D 프린터 출력물들이다. 각기 원하는 3D 모델링 후 재료인 필라멘트에 따라 색상도 성질도 다양한 출력물을 뽑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