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부터 수영 강습을 시작했다.
사실 내가 어려서 다닌 초등학교에는 수영장이 있었다. 때문에 일년에 한 두번씩 수영시간이 따로 있었다. 아니, ‘물놀이 시간’이 있었다.
당시에는 내 목까지 올라오는 물이 무섭기도 하고, 따로 수영이라고 알려주는 사람도 없어서 친구들과 첨벙거리면서 웃고 즐기는 게 전부였다. 한 두녀석 능숙하게 자유형을 하는 녀석이 있으면 ‘재는 뭐하는 애일까?’하고 조금 놀라고는 했지만 금새 시큰둥해졌다. 돌이켜보면 당시 어린 나의 눈에 능숙하게 헤엄을 치던 아이들은 사실 뒤뚱뒤뚱 방향을 잡고 떠다니는 것과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러버덕..)
시간이 흘러 중학교 때는 뚝섬 근처의 수영장에 한두번 가보았던 것 같다. 여기는 생각보다 깊어서 머리가 잠기고는 했는데 한번은 정말 혼비백산할 정도로 물을 마셨던 적이 있다.
‘고작 수영장 풀에서 죽는 줄 알았단 말야!’
나는 그런 초라한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 후로는 수영장을 찾지 않았던 것 같다.
기억을 뒤짚어보니 고등학교 안에도 수영장이 있었다. 물론 학창시절이 끝나갈 무렵에야 완성이 되었고 무료로 개방해주지 않아서 단 한차례 시범적으로 체육시간에 이용해본 것이 끝이다. 다들 머리가 굵어서 그런지 어렸을 때보다 수영을 할 줄 아는 아이들이 꽤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어려서 제자리 멀리뛰기 전교 1등을 했을 정도로 탄력은 있는 편이다. 또한 다른 운동에는 관심이 없으면서도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는 종교를 대하듯 했기 때문에 그럭저럭 나빠보이지 않은 신체 균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친구 한 녀석이 내가 맥주병이라고 하자 왠지 수영을 잘할 것 같은 이미지인데 놀랐다는 투로 말했다. 나는 그 녀석의 말에 알 수 없는 자신감에 고무되었다. 하지만 그 자신감도 잠시 이내 킥판에 매달려 수영장 염소물을 연거푸 식도로 넘기는 신세가 되고 되었다.
‘이건 내 길이 아니다! 살 찐 애들이 물에 잘 뜨는 거야… 흑인들이 수영을 못하는데는 이유가 있지 않겠어?’
나는 그렇게 치졸한 변명만을 남긴채로 고등학교 시절의 수영도 단 한 차례의 치기로 남기게 되었다.
이제서야 밝히지만 나의 외갓집은 강원도이다. 넘어지면 냇가물에 콧잔등이 닿을동말동한 그런 시골이다. 어려서는 외갓집에 놀러 자주가고 그만큼 냇가에서도 많이 놀았다. 그런데 이곳에서 수영을 하기란 쉽지가 않다. 일단 물살도 쎄고… 게다가 차다. 그저 푹푹찌는 여름날 냇가물에 몸을 담그고, 그 물살을 타고 둥둥 떠다니는것 자체로 참으로 맛나다.
실은 남몰래 이곳에서 수영을 배워보려고도 했는데 이게 말처럼 쉽게 안되더라. 사실 기본적인 롤링, 호흡 아무것도 안되는데 수심이 들쭉날쭉한 이곳에서 수영을 배운다는 건 자살행위이다. 미리미리 수영을 배웠다면 그동안의 외갓집 방문이 훨씬 즐거웠을 것 같기는 한데… 위험이 명확한 일은 피하는게 맞으니 지금의 아쉬운 맘은 꾹꾹 눌러 담아야겠다.
그리고 얼마전 태국 – 캄보디아 여행을 계획하면서 내가 수영을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졌다. 휴향지로 가서 즐거운 물놀이를 계획하고 싶은데 물과 친숙하지 않으니, 뭔가 부족한 느낌이 걸쭉하게 묻어났다. 사실 부러진 손가락때문에 물에 들어가는건 이미 불가능한 얘기였음에도 늘 ‘수영을 배워고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던 맘에 짙은 여운을 더했다.
그래서 배운다.
10월부터.
수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