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에는 착할 선(善)자와 줄 선(線)자가 있다.

우리는 이 두가지 선을 잘 지켜야 한다.

짧게 살아온 경험에 의하면,
불의의 이탈 경로를 타지 않은 인생은 결국에.
시시한 인간이 될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대게 먼저 망가진 사람들이 내민 손을 잡거나 그 길을 답습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는 당시에 작은 가치를 팔아 큰 이익을 얻는 합당한 거래로 보이기 때문에 어릿한 사람들을 현혹하기 쉽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가 그토록 시시하고 고리타분하게 여겨 헐값에 팔아버린 가치들은 한번 잃어버리고나면 다시 사올 수 없는 종류의 진실로 값진 것이다. 동료일때는 한없이 약한데 적이 되면 더럽게 쎄지는 그런 놈이라고나 할까.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가하면
나라는 세계가 나의 역사를 온전히 알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에 대한 메타 인지가 부족한 사람조차도, 그 몸과 신경은 자신의 역사를 강화한다.

나는 결단력이 부족한 굼뜬 인간인데다가 생각이 많아 그것들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보았다.

사람들은 미리 세상을 산 사람들이 내놓은 시시한 답들을 무시하고
다양한 오답을 향해 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어린아이도 알 수 있는 몇 가지 진실이지, 높은 지능의 처세술이 필요한게 아니다.

20201103

삶의 바닥에서 죽고싶다와 살려달라는 말은 쉬이 넘나들 수 있는 경계에 위치해 있다. 두 말 사이의 본질은 도망치고 싶다는 것이고, 바닥의 중력에 잡힌 사람에게 죽을 각오로 살라는 이야기는 저 아랫 세상의 풍경을 본 적 없는 무지에서 비롯된다.

한 개인의 바닥에서는 지성도 성품도 별 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 굶주린 자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음식뿐이듯 삶이 위태로운 사람에게는 오직 절망보다 큰 삶의 의미만이 필요하다. 허나 그것을 스스로에게서 이끌어 낼 수 있었다면 이미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자기 자신의 목숨을 저울질하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므로 결론은 대게 타자에게 있다.

물론 제3자에게 귀책의무가 없으므로 비극은 자주 그리고 점점 더 자주 일어난다. 또한 선한 의도를 가진 들 우리들은 대게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중생이라 알면서도 주변인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아야 할 때가 있다. 괴로운 일이다.

나는 마치 미로 같다고 생각했다. 절망에 빠진 이는 분별없이 가장 가까운 문을 출구로 여기고 달려나간다. 그 길이 사는 길인지 죽는 길인지는 오직 운에 의해 찰나에 결정되는 것이다. 지금 사는 길도 막다른 길에 연결되어 있을지 알 수 없다.

허락된 것은 오직 아끼는 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더듬어 나가는 것 뿐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내 맘대로 되지 말라고 만들어놓은 것 같은 현실 속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책을 덮었을 때, 그 이야기가 슬프더라도 다른 이에게 흉으로 남지는 않기를 바란다. 그 책의 주인공도 그리 말했으리라.

201015

젊음이란 단 하나만 알고-믿고, 자연스레 번지듯 달려나가는 불길 같다.

나지막이 세상의 여러 가능성을 알아버린 어른이 젊은 시절 달렸던 것과 같이 달려나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단단히 마음을 동여메야 할까.

마음이 결코 늙지 않는 것처럼 실은 절로 자라지도 않으니, 나이테 사이에 켜켜히 쌓은 것을 안고 뛰기 위해서는 어릴적보다 더 많은 용기를 빌려야 한다.

누군지도 모르고 믿지도 않을 것에 대고 기도를 해본다. 결과는 네 것일지라도 지금은 내 것이기를.

내가 믿는 것에 대고 기도를 해본다. 마음은 세상에 침해되지 않기를, 그래서 되고자 하는 인간으로 죽을 수 있기를.

옛날 이야기에는 악마에게 속아 부귀영화와 자신의 삶을 맞바꾸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동화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했는데, 실은 우리 주변에 많은 이야기이다.

우리가 삶에서 원하는 것들 중 많은 것들이 그리 중요한 것들이 아니다. 그것들을 가지기 위해 바치는 값어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잘해봐야 삶의 많은 부분을 작은 욕망과 교환할 뿐이고, 대다수는 평화만을 빼앗기게 된다.

노력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방향성의 문제다. 노력은 단지 기본에 불과하다.

잘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능력이라 생각한 적이 있었고, 때로는 성품이라 생각한 때도 있었다. 종종 운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요즘은 옳은 생각들을 주의깊게 곁에 잡아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한심한 방향으로 향하는 관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에 저항하는 것이 개인의 삶을 가를 것이라 생각한다.

숨 쉬듯이 수양하자.

한번에 신을 수 있는 신발은 두개뿐

한 때는 미니멀리즘에 빠져있었다.

그런데 한참을 해보니 🤔 미니멀리즘이라는 것이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모아 가지고 싶은 욕망은 가짜가 아니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어 큰 집에 맘껏 사서 모으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것저것 모아 본 경험으로 그것도 답은 아닌 것 같았다.

모든 것에는 실제 공간과 마음의 일부분을 할당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한 개인이 소속감있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의 크기도 맘을 내 줄 시간도 한정되어있다.

그 후에 알게모르게 나는 생각과 정보에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게 된 것 같다. 정보는 크기의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원래도 활자 중독 증세가 있었으나 마치 면죄부를 받은 것 처럼 끊임없이 읽고 기록하고 학습하는데 빠져있었다.

독서나 공부는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말을 비판없이 쫓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무슨 해골물을 달게 마시거나, 누군가 내 머리를 홍두깨로 내려친 것은 아니다. 사실은 느끼고 있었는데 생각으로 깨우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항상 생각에 너무 깊이 메여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 맘에도 크기가 있었는데 까먹고 있었나보다. 우리는 동시에 여러 생각을 할 수 없고, 사색에 빠져 있을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 역시 삶에서 한정적이다.

아마도 나는 앞으로 덜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사회의 경쟁자들은 대게 미친놈들이다. 삶에서 더 좋은 결과물을 원할 때 우리는 인생을 포기한 워커홀릭들과 경쟁해야 한다.

답은 밀도에 있겠다. 나는 이것을 20살 초반에 배웠고 사용했었는데, 어느덧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신이 얼마나 많던간에 한번에 신을 수 있는 신은 오직 두 개라는 사실처럼, 삶에 담을 수 있는 것들도 그 크기가 정해져있음을 늘 생각하자.

200503

오늘 어릴적 친구가 “너는 도저히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속내를 드러내는 편은 아니지만 일부러 숨기려고 애쓴 적은 없어서 나는 좀 순수하게 의아했다. 그리고 나는 진짜 좀 그런 사람인가하고 생각했다.

한번은 고등학교 친구들이 “네가 우리 중에서 제일 특이하다.” 라고 만장일치로 콕 집어 얘기했던 적이 있었다.

나도 걔들도 잘 몰랐지만 아무튼 나는 어딘가 이질감이 느껴지는구나하고 생각했었다.

25년 넘게 날 보아왔던 놈 중 하나는 내가 “사막에 던져놓으면 모래를 퍼먹어서라도 살아남을 놈”이라고 했다.

칭찬인지 욕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죽지않는다길래 기분이 나쁘지 않아 그냥 넘겼다.

반면 맨날 너는 어떻다며 헛다리를 짚는 놈도 한 명 있다. 가끔은 나보다도 나를 앞질러가서 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틀릴 때가 더 많아서 별로 거슬리지는 않았다.

실은 나는 매일 스스로를 알아내려 고심한다. 이 일이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괴상해보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하루 중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했고, 왜 그랬을까를 따라가는 일은 참 이상하다. 내가 누군지 알고 싶고, 함부로 결론내리고 싶지만 왠지 잡히지 않는다.

마치 자가 스스로의 길이를 재고, 가위가 스스로를 자르려는 일 같다.

아무튼 나는 오늘 다른 사람의 자로 나를 재어보고 역시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200306

심장 뛰는 소리를 들어 본 적 있는 오래 된 이 있다면. 아마 적의 가슴을 열어 날뛰는 그것을 뽑아내 악기로 사용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내 단단한 쇠가죽 때리는 울음 소리만 못하다는 걸 깨닫았을 것이다. 

심장은 오직 제 주인을 위해 뛰기에, 뭔가 가련하고도 기특하다는 생각을 한다. 제 얘기를 하는 지 알았는지 심장 소리가 잦아들었다.

해가 다가오는지 어둠이 차분해졌다.아직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어둠의 부재를 통해 그것이 느껴진다. 새벽 찬 공기가 마치 몸으로 스며드는 것 같은 한기에 침식되다 보면 해는 신 중의 으뜸이라는 옛 이야기에 수긍이 간다.

오늘이 또 왔다.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몰라서 웃었다. 어찌되건 그 편이 더 좋아보이니까.

엑스박스 게임패스(XBOX GAMEPASS) PC 게임 설치 오류 해결법

윈도우10은 꽤 안정성이 높은 반면에 윈도우 스토어는 참 별로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윈도우10의 최근 업데이트는 똥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

아무튼 윈도우스토어를 경유해야 하는 엑스박스 게임패스(XBOX GAMEPASS)도 은근히 문제가 많았습니다. (게임 관리는 Xbox 앱을 통해서 합니다) 게임이 설치가 안된다거나 블루스크린을 띄우며 PC가 멈추기 일쑤입니다. 윈도우10을 수년동안 써봤지만 블루스크린을 본 게 몇년 만인지 모릅니다.

처음 겪은 문제는 Rise of Nations와 Age of Empire Definitive Edition을 설치하는데 블루스크린이 반복되는 것이었고, 두번째 문제는 Astroneer가 알 수 없는 오류로 설치가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첫번째 문제는 윈도우 업데이트로 해결하였습니다. 정확히 어떤 업데이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꽤 오랜 시간차를 두고 게임 설치를 시도했으니 마소측에서 문제를 인지하고 업데이트를 통해 해결한 것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두번째 문제는 윈도우10의 지역설정을 한국에서 미국으로 바꿈으로서 해결했습니다.
검색창에 ‘지역’이라고 ‘지역 설정’으로 들어가셔서 바꿔주시면 됩니다.
몇몇 게임의 경우 한국어 버전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한국 지역에서 노출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용과같이 극1을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위치를 미국으로 바꿔서 설치해야 합니다.

최근에 겪은 세번째 문제는 구독 정보를 읽어내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별다른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급한대로 윈도우 스토어의 게임탭에서 게임을 설치/실행하시면 됩니다.


22.06.17
새로 설치한 게임만 실행이 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윈도우 업데이트를 진행한다거나 xbox 앱을 초기화시키기. 스토어나 xbox앱 내의 오프라인 실행 권한 주기. 재로그인등 알려진 방법을 모두 동원해봤지만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알게 된 사실은 다른 드라이브에 설치시 게임이 실행된다는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기본 드라이브에 설치하면 먹통. 드라이브나 폴더의 권한 차이는 없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설정에서 기본 드라이브에 새로운 폴더를 만들어 지정하자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 원인을 찾음. 예전에 플레이했다가 지웠던 특정 게임을 재설치하자 해당 문제가 재발. 기본 폴더를 다시 재설정하는 방법으로 다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