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론에 관한 아주 개인적이고 조악한 글

올 한해 내 머리 속을 지배하고 있던 화두는 ‘결정론’이다.

나는 본디 운명따위는 믿지 않는다.
아마도 어려서부터 노력의 가치를 신봉하며 자랐고, 또한 늘 과해보일 정도로 목표에 집중하며 삶의 길을 내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욕심은 많은데, 타고 난 것이 없으니 운명 따위 엿이나 먹으라며 그저 그렇게 된 것이다.
아무튼 보통 사람들이 운명론이라고 부르는 것을 과학자들은 결정론이라고 부른다.

운명이라는 단어를 내리 깔아보는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어려서부터 신은 없다고 생각해 왔다. 머리가 굵어가며 차츰 사회의 부조리함에 익숙해졌는데 이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근거가 되었다.
권선징악은 고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판타지에 불과하다. 같은 역량을 가진 선과 악이 대결을 펼친다면, 단연코 악이 승리한다. 악하다는 것은 결과에 이르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한 사람이 선하기 때문에 절대 사용할 수 없는 수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왜 이타적인 가치를 신봉하는 것이 더 고되고, 나쁜 결과를 낳는가? 그렇다면 신의 가면 뒤에는 악마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인가? 그래 그럴바에 신은 없는 편이 낫겠지.

하지만 어느날 신 존재증명을 읽고 난 뒤에 세상의 정점에 뭔가가 있어야만 할 것같은 쎄한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그것이 종교에서 말하는 인격신은 아니다. 굳이 밝히자면 나는 불가지론자이다. 다만 인간은 우리 세계 바깥에 대해서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까 일단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며, 우주 너머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은 짧은 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그만 고민하는 게 좋겠다고 나의 11살 일기장에도 적혀있다.

그러면 운명도 믿지 않고, 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지 말자는 주의인 내가 왜 결정론을 가지고 이토록 고민을 하게 된 걸까?
내가 이성적이라고 그리고 현 시대에서는 가장 진실에 가깝게 접근하고 있다고 믿는 물리학자 중 일부가 결정론을 지지한다는 사실에 큰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믿음’이 아닌 증명가능한 ‘근거’를 바탕으로 생각하는 과학자들이 결정론을 지지한다?
물론 현대에 양자역학이 등장하면서 미시적 영역에 대한 불확실성을 근거로 결정론이 입지가 크게 줄었으나, 여전히 결정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아직 밝혀내지 못했을 뿐, 모든 것에는 규칙이 존재한다.”라고 말한다.
나는 이 말에 넘어가 하마터면 결정론자들의 의견에 삶을 저당잡히고 침몰할 뻔했다. 다행인 점은 그들의 의견 역시 믿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그 어느 누구도 모든 것에 예측가능한 규칙이 있을 것이라고 천명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런 믿음은 그저 인격신이 있다고 믿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나의 이런 글을 결정론자들이 본다면 내가 자라온 환경과 내가 타고난 기질 그리고 내 기분등 모든 것들에 의한 결과로 내가 이런 결론을 내렸다고 말하겠지만 그런데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알 수 없는 사실에 대해 믿는 것이 다를 뿐이며, 믿음에 관해서는 서로 터치하지 않는 것이 현실적으로 현명하다는 사실을 많은 종교&정치 토론에서 배웠다.

실은 얼마전 아는 형과 여행을 갔다가 새벽까지 음주 토킹중에 결정론에 관해서 토론 할 재미있는 예시가 하나 떠올랐는데 여기 적어보고 싶다.
한 개인이 어떤 선택을 내리는 일을 가정해보자. 전 우주의 모든 시간을 거슬러 그러한 선택은 무한대에 가깝게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오늘 야식으로 라면을 먹을까? 말까? 하는 선택에 조금의 소숫점 오차도 없는 환상적인 50%:50% 의 시행이 결코 존재하지 않을까? 단연코? 물론 이런 일은 내가 우연히 빌린 책 속에 1등 당첨 로또가 들어있을 확률보다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로 희박하지만 모든 공간, 모든 시간을 통틀어 단 한번도 없을 것인가.. 나는 왠지 한번쯤은 있을 것 같다.
그래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냥 한번쯤 있을 것 같다고 믿는다.

‘신은 결코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라고 아인슈타인은 말했지만 내가 창조주라면 나는 랜덤함수를 만들어 넣었을 것이다.

사실 모든게 결정되어 있다고 해도 나는 상관이 없다.
나는 아직까지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영화 속의 주인공으로 순간을 살아가는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운명을 믿지 않아서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주체적인 캐릭터로 살아갈 터이니 참 재미있는 영화가 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란

문득 생각이 나서 적어보는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의 기준

어린 시절 존경하던 어른들의 나이가 되고나니, 그 분들조차 이리저리 흔들리는 하나의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동시에 순간 순간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 흩어지는 나날들과 싸우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이제는 그 분들을 어렸을 때만큼 존경하지는 않는다. 대신 전보다 훨씬 더 좋아하게 되었다. 자신을 지켜나가는 모습이 멋있다.

나는 크던 작던 실수가 잦은 편인데, 앞으로도 바보 짓의 연속 일 것 같다. 정말 그렇게 될 것이다. 종종 실수할 것이고, 누군가와는 상처를 주고 받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내 어린날의 이기적인 모습에 얼굴이 붉어질 것이고, 후회로 얼룩지는 날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세상의 많은 문제들을 도덕적으로든, 타인의 감정을 헤치지 않는 방식으로든간에 완벽하게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마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보통의 사람이 그렇게 될 수는 없다.
근래에 특정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는 늘 겸손을 향해 간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문제를 바라보는 이기심을 모두 덜어내고도 한편에서의 정의가 다른 편에서의 정의와 완전히 중첩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 문제에 대해 소신과 겸손한 태도를 갖추고 있을 것. 어떤 문제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정하지 않으면 기계적 중립의 덫에 빠지기 쉽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겸손이란 스스로 공격받지 않기 위한 방어적인 태도와 다르다. 내가 지지하는 의견조차 한편으로는 한계가 존재함을 인지하고 있는 자세를 말한다.

  • 다른 존재에 대해 공감, 스스로의 개선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일 것. 나와 닮은 사람이 완벽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저 나랑 비슷한 부족한 사람일 뿐이다. 나와 닮아있다는 사실은 편안함만을 보장한다.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면 자신과 다른 부분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할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틀림이 아닌 다름의 영역으로 뻗어나가 스스로를 넓혀 성장할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이와 노인이 죽었을 때 어떤 문화권에서는 앞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던 어린 아이의 죽음을 슬퍼하고, 반면 또 다른 곳에서는 노인의 지혜를 잃은 것을 슬퍼한다고.
두 의견 모두 설득력이 있다.

나는 하얗게 태어나 자신의 도화지 위의 그림을 거침없이 고쳐나가는 그런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을 강요받지 않고 정보를 제대로 섭취하기

오늘은 인터넷 여론 알바단에 대한 논쟁글을 봤다.

인터넷 여론 조작에 대해서는 이미 몇 해전 정치 이슈로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나는 그것이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왔고 점점 고도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치 않는다. 본인의 친구 중 한명이 재수 생활을 마치자 마자 구한 일이 모 학원안에서 여론 댓글을 다는 것이어서 오래전부터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 또한 내가 운영하는 작은 커뮤니티에도 종종 같은 ip대의 체계적으로 설계된 홍보 게시물들이 적힌다. 그들의 장기적이며, 일반인처럼 보이도록 메뉴얼화된 글을 읽다보면  나도 다른 곳에서 참 많이 속고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면에서 모 사건은 아주 멍청한 곳에 외주를 맡겼거나, 본인들이 노하우도 없이 진행한 것이 명백하다.

한번은 ‘언론이 정보를 선별하여 대중을 선동하는 법’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다.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말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A와 B라는 작은 나라에 교통사고가 각각 하루 10번꼴로 난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A국의 방송국에서는 매일 한번씩 교통사고가 일어났음을 보도한다. 반면 B국의 방송국에서는 한달에 한번씩 교통사고를 보도한다. 실제로 A와 B의 교통사고 발생 수치는 다르지 않으나 해당 국가의 국민들이 느끼게 되는 체감 교통사고 발생 수치는 크게 차이가 나게된다. 더 나아가보자. A국에서는 교통사고가 하루에 약 10번 발생나고 매일 보도를 한다. 반면 B국에서는 교통사고가 하루에 약 1000번 발생하는데 한달에 한번씩 보도를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작은 교실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스스로 파악하여 올바른 사고와 결정을 내릴 수 있겠지만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은 충분히 크고 벌어지는 일도 매우 많다. 즉, 누군가가 떠먹여주는 정보만을 받아들이다보면 그들이 이미 가공해놓은 생각의 흐름 그대로 따라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거대 포탈의 기사나 지상파 뉴스, 메이저 신문들을 일체 보지 않는다. 덕분에 몇해 동안은 정치적 문외한으로 살아왔다. 큰 이슈가 터질 때마다 자주 들르는 커뮤니티들의 글들을 살펴보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선별된 정보가 아니다. 그곳에도 악의적 목표를 가진 자들이 상주하고, 또한 전혀 심사 숙고되지 않은 감정적 의견들이 난립한다.

결론적으로 요즘 내가 취하고 있는 자세는 다음과 같다.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주는 매체들을 직접 발굴하는 것이다. 특히 유명 블로거들의 글을 좋아하는데 블로거라고해서 다른 매체들에 비해 신뢰성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들도 사회에서는 의사며 기자고 각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몇몇 블로거들은 사건의 흐름을 꿰뚫어 전문가의 시야까지 얹어 깔끔하게 정리해주기도 한다. 물론 글을 쓰는 사람의 의견이 고민없이 그대로 투사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능하다면 같은 주제로 2~3개의 글을 읽는 편이 좋은 것 같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내가 구독중인 RSS 목록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한번 공유해보고싶다.

2016.07.10
최근에는 진보 성향 매체의 글들을 좀 보았는데, 굉장히 실망을 했다. 그래서 요즘에는 좋은 글을 발견하면 글을 쓴 사람의 이름을 알아두고 해당 기자를 검색해서 본다. 이제는 매체에 대한 신뢰를 거두고 개인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 같다.
jtbc도 사실은 손석희씨를 믿고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16.07.27
메갈 관련 보도를 보니 jtbc도 크로스체크 안하는 것으로 보인다.
팩트 체크라는 책도 내더만 방송하기전에 사실 관계 크로스 체크도 안하는 걸 보니 저딴 것도 언론인가 싶다. 장담하건데 한국에는 신용할 만한 언론이 단 한개도 없다. 그냥 레퍼런스 체크하면서 직접 알아보는게 낫다.

이성혐오(여혐, 남혐)를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생각의 점화는 무한도전의 식스맨으로 거론되던 장동민의 여성 비하 논란에서 이뤄졌다.

사실 이성을 혐오하는 분위기에 대하여 오래전부터 느끼고, 흥미를 느껴왔다. 몇몇 철학적인 문제들은 고민을 해도 도저히 답이 나올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는 반면, 이 문제는 치열한 논쟁 뒤에 그 원인과 지향할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해야겠다.

그럼에도 관련된 글을 적기는 쉽지 않다.
나는 남성이라는 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경험적으로나 사고 방식에 있어서 어떤 식으로는 편협해질 수 있다는 성찰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 차이를 메꾸기 위해서 틈이 날 때면 관련된 도서를 읽고 객관적이라고 여겨지는 자료들을 모아보고는 했다. 그 후 이성 혐오 현상에 대해서(추가적으로 남과 여의 차이) 한 두개의 포스팅으로는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성 혐오 문제는 큰 사회적 문제임과 동시에 태초부터 가장 오래된 두 집단의 감정 싸움을 조장하는 성격을 띄기 때문이다. 그 원인이 어디에서 왔던 감정적으로 격양된 양측 모두를 설득하는 합리적은 글을 짜내기 위해서는 하나 하나의 문장에 수십개의 변이 붙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오늘은 ‘이성 혐오를 대하는 개인의 올바른 자세란 무엇일까?’에 관한 내 개인적 의견에 대해서만 적어보려고 한다.

위에 적어놓은 것처럼 이성 혐오는 남성과 여성 두 집단간의 감정적 싸움처럼 보이는 일면이 있다. 여혐은 남혐을 낳고, 남혐은 여혐을 낳는다.  상호간의 부정적 피드백으로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간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따지는 것은 제쳐두고 스스로 이것을 끊어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신의 태도를 정하는데 있어서 이성 혐오의 발생원인이 사회/심리학적으로 무엇이 있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혹자는 상대 성의 폭력에 대한 피동적인  자세가 아니냐고, 사회적 문제로 바라보고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지탄할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누군가와 싸웠다면 서로의 잘못을 인정/이해하면서 사과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오해했던 원인이 사라진다고 해도 관계는 나아갈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선량한 사람들까지 싸잡아 비난하며 서로간에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또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 역시 우리들이기 때문에 관계의 회복없이  사회적 인식을 개선시키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다.

글을 쓰는 재주가 없어 결론을 요약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집단으로 묶어 전체를 비난하는 태도를 가지지 말자.
집단에 속한 다수가 비난받아 마땅한 태도를 가졌다면, 비난의 화살은 그 다수에게 향해야 할 것이다. 죄없는 사람들을 욕하고 싶지도, 또한 누군가를 편협한 시야를 가진 사람이 아닐까 의심하고 싶지도 않다. 반대로 나 역시 편협한 생각에 갇혀 살고 싶지도, 까닭없이 비난 받고 싶지도 않다. 문제의 해결을 지향하고 편협한 사람들의 폭력적 시야에 스스로가 파괴되지 않는 방법은 ‘스스로가 괴물이 되지 말 것이며, 또한 모든 사람을 괴물로 보지 않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 욕설이나 비아냥이 아닌 건설적인 토론은 지향하니, 저와 다른 생각에 대해서는 언제든 댓글 달아주시면 감사한 마음으로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었습니다.

글의 장점

말이나 그림, 행동에는 힘이 있다.

말은 글보다 빠르다. 거침없이 흐름을 따라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으며 유창한 말솜씨는 한편의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그림은 글보다 생생한 느낌이 있다. 말로도 눈빛으로도 표현하지 못하는 내면을 단 한컷에 담아 낼 수 있는 것이 그림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행동에는 변화라는 가능성이 들어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실제세계를 가공해낼 수 있는 마력이 있다. 원한다면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글만이 가지고 있는 두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글은 검토가 가능하다. ‘인생은 실전이다.’라는 말처럼 행동과 말은 주워담을 수 없다. 그러나 글에 적힌 나의 생각은 흐름을 잡아 언제고 다시 읽고 되새기고 더 나아지기 위해서 검토할 수 있다. 오늘은 새벽에 문뜩 잠이 깨서 블로그의 예전 글들을 읽고 간단한 정리를 했다. 몇 달사이에 생각이 변하기도 했고 상황도 달라서 몇몇 내용은 수정하고 삭제도 했다. 가장 크게 느낀점은 내가 글이나 말을 하면서 매우 과장된 표현을 사용한다는 점인데 이것이 나중에 바라보니 굉장히 부자연스럽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도 나의 부족한 표현력과 논리를 어설프게 빗대어 사용하려다보니 이렇게 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자중해야겠다.

둘째. 글에는 생각의 흐름이 남겨져 있다. 특히나 본인이 썼던 글을 읽어보면 표현 하나 하나 그리고 문단의 흐름 속에서 내가 어떤 생각과 판단을 했었는지 모두 읽어낼 수 있다. 나는 사소한 일에 대한 주의가 약하기 때문인지 가끔 지나칠 정도로 기억력이 좋지 못한데 내가 적어놓은 글들을 통해서는 과거를 아주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내가 2년 넘도록 블로그를 계속 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생각, 행동, 말

생각을 한다.

생각은 말이 된다. 또는 행동이 된다. 생각은 말과 행동 모두가 될 수도 있고 그저 생각으로만 남을 수도 있다. 생각이 자꾸 새어나오기 때문인지, 누군가를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점차 알 수 있게 된다. 시간이 걸릴지라도 천천히 기다리면 타인의 향기가 스며들기 마련이다

 

사람은 누구나 영웅으로 태어난다. 아이들은 누구나 스스로 세상의 주인공이며 꾸밈없이 아름답다. 시간이 흐른 어느날 아이 스스로 자신의 순수함이 바보처럼 느껴질때면 아이들은 자신들의 신과 영웅을 동화책속에 가둬 버린다. 그때부터 아이는 그저 한명의 인간이며 세상을 자로 재며 바라보기 시작한다. 판단하고 선택한다. 사람들은 이를 이성이라고 부른다.

 

생각을 한다. 그리고 선택을 한다.
선택은 말이 된다. 또는 행동이 된다.

어릴때는 그저 생각만 했지 선택하지는 않았다.
어떤 것이 옳은지 좋은 것인지 모를 때는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하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아직은 내 주위에서 아무런 향도 나지 않는 것 같다.

열한번째 글 – 이 블로그를 꾸준히 해야되겠다.

페이스북도 끄적거려보고 트위터도 만지작 거려보고 특정 커뮤니티(XE)도 만들어보고 이것 저것 해봤는데 역시 가장 매력적인 매체는 블로그이다.
그리고 워드프레스는 정말 맘에 든다.
블로그를 처음하는 사람이라면… ‘Tumblr.’도 정말 좋은 것 같다.
낙서장 개념으로 만들어봤었는데 정말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다.
(물론 나는 내 맘대로 못 바꾸는건 질색이지만.. 그래서 내가 사과 브랜드 제품을 참 싫어한다.)

예전에 운영했던 블로그를 한번 천천히 둘러봤는데….
디자인이 지금 봐도 너무 맘에 쏙 들어서 아깝다.

그런데 역시나 여기서 다시 시작해야겠다.
※ 워드프레스 기본 테마는 따로 모바일버젼으로 바꾸지 않아도 스마트폰에서 완벽하게 보여서 조금 놀랐다. 기존의 디자인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에서 플러스 점수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