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2.14

어린 시절의 가장 큰 착각은 행복과 밝음에 대한 오해였던 것 같다.

잘한다면, 좋은 방향으로 간다면 나는 늘 충만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 악마들이 알려준 잘못된 판타지였다.

아프지 않고 기쁘기만 한 것에는 의미가 깃들지 못한다. 진실에는 부재가 담기지 않는다.

잘못된 믿음을 쫓으며 진실의 눈을 가리지 않기를.

믿음보다 겸손이 앞서야

오늘은 모 음식 칼럼을 쓰는 사람이 떡볶이에 관해 평한 것이 논란이 됐다는 기사를 봤다.

그리고 그에 관해 사람들이 평한 글들을 읽었다.

내 생각은 이렇다.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하고 그에 관해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한 사람은 어떤 스스로의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경주한 노력은 그 의견에 대한 견실한 방패 혹은 믿음이 된다. 그 결론에 이르기 위한 궤적 안에 얄팍한 반론들의 가지는 스스로가 쳐내고 왔음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개인은 세상을 부분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답이 존재하지 않는 것에 답이라는 깃발을 꽂아봤자 그것은 스스로의 눈에만 비칠 뿐이다.

종종 많은 이들의 공감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의 진위 여부와는 전혀 다른 영역이다. 대게의 가치 판단에 답은 없다. 다만 믿을 뿐이다.

이것이 나의 의견이다.

튼튼한 성은 견고하게 쌓아올린 기반에 있는 것이지, 마지막에 얹어놓은 화려한 장식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자신이 답을 얻고자 노력한 것이 스스로를 무뢰한으로 만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2017.12.04

나는 꿈을 꾸지 않는다.
아니,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조금 이른 시간에 깨어 어떤 느낌이 이어지더라도 곧 잊어서, 잃어버린다.
‘어떤 꿈을 꿨는데…’

그런데 요즘은 종종 꿈을 꾼다.
잠을 자다가 어떤 종류의 감정이 황급히 일어나 도망쳐 나왔기에 꿈을 꿨다는 사실을 안다.

대게는 마지막 생각이 머리에 멤돌 뿐인데, 그것들이 머리를 타고 내려와 가슴을 찔렀다.
평소에 당연시 여기던 몇몇 생각들이 여기저기 박힌다.

꿈은 우리의 머리 속을 재정렬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그것들은 내 곁에서 주변의 생각으로 남겨져있다가 새로 갈무리되어 결국 내 삶의 진실로 새로 자리를 마련한 것 같다.
그리하여 처음 그 생각의 경계를 넘어설 때의 충격을 고스란히 꺼내어 온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

이런 날들을 지나칠수록 과거의 나는 하루만큼 나와 멀어지고 있다고 느껴졌다.
나는 스물살의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의 난 10년,20년 뒤의 나를 좋아할 수 있을까?

조금도 알 길이 없어 상상력의 빈곤함을 탓해보지만서도, 의외로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그냥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될대로 되라지.

몸으로 목격하다

요즘 그런 생각을 한다.

‘정당한 값을 지불하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다.’

공감에 대하여.
그것은 타인을 따뜻하게 녹여줄 수 있는 온도를 가졌느냐에 대한 것일까? 아니면 진정으로 타인의 상황과 감정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일까?

경험에 대하여.
특정한 일을 겪었다는 것이 각각의 개인들에 발화시키는 무엇가에 절대적인 값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은 한 개인에게 어떤 흔적을 남기는가? 경험이란 개별적인 것인가? 그로인해 남겨진 것들은 휘발되지 않는가?

요즘 유발 하라리의 극한의 경험(The Ultimate Experience)를 읽고 있는데 몸으로 목격하다라는 표현이 굉장히 와닿았다.

환희 또는 극심한 고통.
그런 종류의 경험 속에 있을 때 나는 그 기분만큼이나 커다란 다른 감정을 느끼고는 하는데, 오직 나만이 그 경험과 기분 속에 있다는 고독이다.

사실 이런 종류의 생각들을 정리해 절묘한 결론을 내릴만한 재주는 내게 없다.
다만 오늘 나만이 경험하고 타인에게는 오롯이 전달될 수 없는 시간을 보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삶에 있어 의미란 무엇일까.
이러한 기분과 체험 역시 일상 속에 또 다시 휘발되어 갈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중요한 것은 나로 말미암아 누군가가 존재의 의미를 지니는 것 이상이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오직 그것이 선악과를 먹은 우리들을 지탱하는 유일한 의미가 아닐까.

왜 그걸 자주 잊을까.

성공이란

자주 많이 웃는 것
지성인들의 존경심과 아이들의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에 감사하고, 배반한 친구들을 참아 주는 것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알고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찾아내는 것
건강한 아이, 작은 정원, 보다 나은 사회 환경과 같이
세상을 좀 더 나은 것으로 남기는 것
우리의 삶이 한 생명이라도 편안하게
숨 쉬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성공.

랄프 왈도 에머슨

김어준 – 나는 언제 행복한 사람인지

예전에 참 좋아했던 김어준씨의 강의다. 맘이 혼란스러울 때 종종 듣고는 했었는데 몇 년만에 다시 듣게 됐다. 정말 우연히 강의가 눈에 띄기에 아침 식사를 하며 틀어놓고 들었다.

오랫만에 강의를 들으니 예전에 비해 다르게 느껴지는 바도 있고, 해당 영상의 댓글을 보니 합리적인 비판도 있다고 여겨져 나름대로 강의에서 취할 수 있는 유익한 삶의 태도를 정리해보고자 하는 맘이 생겼다.

강의는 참 재미있다. 김어준씨의 본인의 기상천외한 경험담과 재미있는 입담을 통해 우리 맘을 두드린다. 하지만 실제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것을 통해 무엇을 배웠느냐는 것이 되겠다. 단순한 재미를 위해서라면 영화관에 가는게 더 낫지 않냐는 말이다.

일단 강의를 통해 받아들여야 할 가치는 두가지다.

1. 자신이 언제 행복한 사람인지 알아라. (=자기 욕망의 주인이 되라.)
남들이 한다고 그냥 무작정 따라 하지말고 본인이 진짜 원하는 것을 하라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듣다가 예전과는 다르게 잠시 그런 의문도 들었다. 사람의 욕망이란 어느정도 보편적인 부분도 있지 않을까? 맛있는 음식, 편안함, 아름다운 것들. 그렇다면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욕망이란 무엇일까?
개인간의 차이는 있을것이다. 굳이 설명해보자면 우리는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를 거치면서 남은 인생을 통해 완전히 바꿀 수 없는 각 개인의 특질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부정하기보다는 올바른 방향으로 키우는 것과 동시에 그 길위에 자신의 행복을 도모하는 것이 낫겠다.

2. ‘당장’, ‘그냥’ 해라.
자기 욕망의 주인이 되라는 첫번째 가치와 연관이 있는 말이다.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처음부터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나이가 먹어도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원한다는 느낌이 들면 당장 그것을 하면서 자신을 찾아가야 한다.

앞뒤 재지말고 그냥 해야 한다.
하고싶은 일들은 대게 힘들다.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라면 당연히 힘들 것이고, 그 어떤 즐거운 일이라도 힘든 지점은 함께 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하지 않아도 될 현실적인 이유를 만들거나 들으려고 하지말아라.

이렇게 직접 부딫혀보고난 뒤 진짜 원하던 것이 아니라면 또 다시 다음에 원하는 것을 찾아가면 그 뿐이다. 단 한번뿐인 인생에 최대 만족과 후회를 줄이기 위해서는 바삐 움직여야 할 것이다.

물론 안정감을 위해 멈춰도 좋다. 그럴 때 자신이 최대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걸 진정으로 확인했다면 말이다.

3. 당장 행복해져야 한다.
행복은 저축되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오직 현재. 그리고 현재. 또 다시 현재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오늘의 행복을 팔아 내일 행복하기 위해서는 내일의 행복이 오늘 버린 행복의 몫을 더한 그 값 이상이어야 할 것인데 그럴 일은 거의 없다. 즐거운 일을 내일 두배로 하는 것보다 이틀에 걸쳐 하는 게 훨씬 행복하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오늘의 행복을 매일 취하는 것이 영리한 것이다.

  • “이것들이 계획을 세웠어?”
    계획에서 실로 무가치한 것은 예측 불가능한 영역이다. 예측 불가능한 것은 자기 만족이자 소설이지 효과적인 계획이 아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계획보다는 소설을 쓰고 있다. 그러니 대부분의 계획은 단기적으로 세우되 인생에서는 계획 대신에 누구에게도 이견이 없을 원칙들을 세워라.
    (예 – 건강을 위한, 소중한 사람을 위한)

생각과 행동 빚기

마음의 길은 습관적으로 발화되는 것이다.

어떠한 행동에 다양한 이유를 붙여보지만 반례와 치명적인 반론은 늘 존재한다.

어떤 종류의 감정이나 생각도 온전히 이성적일 수 없음을 인정하자. 인정하기 싫지만 거의 모든 생각과 행동의 근저에는 지난 경험과 유전 지도에 따른 판단이 앞서있다.

크게 생각하기 위한 첫걸음은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에서 잠시 떨어져나와 바라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두번째로는 나 스스로를 내가 원하는 대로 컨트롤할 수 있음을 믿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황 속에 있는 모든 개인에게 가장 나을 행동을 하는 것이다.

현명한 행동이란 습관이 되지 않으면 불쾌하고 화나고 힘든 종류의 것이다.

수렵 채집 동물인 인간의 몸과 두뇌는 원래 현명하게 행동하도록 조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혜롭다는 건 그다지 자연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동물로 태어났다고해서 그렇게 죽을 필요는 없다. 불편함도 익숙해지면 내게 맞는 옷이 된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순수함을 유지하고 추하게 늙지 않으려면 경험을 사례 판단의 척도가 아닌 사고의 폭을 넓히는데 이용해야 한다. 그러자면 타인을 대할 때 직관의 일부 영역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경험을 쌓아 사고를 넓히되 실제 사실이 아닌 부분을 스스로 채워넣어 판단하지 말 것. 모든 사례는 개별적으로 판단하고, 관계에 최선을 다할 것.

우리가 경험적 직관에 의지하는 것은 표면적으로 볼 때 이익을 주기도 한다. 허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이나 사랑, 배려등 숭고한 가치는 그런 동물적 감각을 일부 제한함으로서만 추구할 수 있다.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길은 더 많은 상처와 자기 연민을 이끈다. 그러나 진정 고귀한 가치를 성취하기 위한 다른 길을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는데 그런 것들의 값은 인내와 자기 성찰의 시간으로 지불해야 하는 법이다.

원칙을 정하되 그 원칙을 스스로 부술 수 있는 유연함을 연습할 것. 원칙이나 사상은 모두 사회적 합의에 불과하므로 인위적 믿음에 매몰되어 더 중요한 가치를 잃는 과오를 범하지 말 것.

사전

나는 사전이 좋다.

지금이야 대게 온라인으로 사용한다지만, 어릴적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먼지 향이 물큰하게 바닥으로 깔리던 사전이 생각난다.
서먹하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서걱거리는 소리가 좋았다.
그 낯설고 형용되지 않던 혼란함이 차차로 익숙해지는 기분이 좋았다.

내가 생각하는 것. 머리로 보기 때문에 나만 보이는 것들을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 낯선 단어들을 보고 있으면 그만큼이나 세상과 좀 더 가까워진 것 같아서 맘이 안정됐다.

보고 느끼고 생각한다.
사진은 그저 빛을 박제한 것에 불과하기에 나는 그것들을 언어로 박제하려는 시도를 해본다.
짐짓 이런 저런 표현을 치렁치렁 달아서 내가 느끼는 것들과 비슷한지 비교해본다. 그리고 성에 차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앞뒤로 깍둑깍둑 썰어본다.

사실 글을 적는다는 건 나를 더 투명하게 번역하는 행위인 것이다.

무제

인생은 짧다.
그건 수백일에 그칠 수도 있고, 수십년이 될수도 있으나 각 개인들이 원하는 모든 것들을 성취하기에 짧다는 건 부정할 일이 없을 것이다.

인생 무상이다.
우리는 태어남을 선택하지 않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자유는 있으나, 삶은 고행이다라는 명제가 띤 세상에 아직 살아있다는 것은 이 곳에 소중한 뭔가 남아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허나 이것은 살기를 선택했다기보다는 죽지 않기로 결정한 소극적 생존에 더 가깝다. 삶의 의미에 대한 결정을 유예하고 고통과 기쁨의 크기를 조심스럽게 가늠해본다. 순간의 기쁨을 고통의 마취약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살기를 결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숨을 쉰 체 죽어 있는 것이다. 어떻게 살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이유를 던져주지 않은 세상에 자기만의 이유를 달아야 한다.
몇 해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몇 가지 작은 이익을 위해서 마음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함부로 판단해보자면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대게 그런 것 같다. 어린 시절동안 몇 개 가치의 무게를 양손에 가늠해보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언제든 떨어지지 않는 행동이 될 정도로 완전히 내 것이 되지는 못한 생각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 사랑하는 것. 이 두가지는 목숨을 팔아서라도 지켜야 할 것이다.

그 두가지를 침해하지 않는 경우 나는 즐거움을 최우선 가치로 둔다. 더 크고 행복하게 살기위해서 포기해야 될 것들은 가식, 타인의 시선, 무의미한 사회의 관습 따위다.

바보같지만 왠지 이런 생각을 똑 부러지게 적어놔야할 것 같아서 여기 적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