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지루님의 스타크래프트(Starcraft) 스토리 만화

블리자드 관련 만화를 그리시는 깜지루님의 스타크래프트 스토리 만화.
잊지않고 나중에 계속 보려고 포스팅해 둠.
그림체도 귀엽고 코믹하게 잘 그려져있다. 특히 저그를 엄청 귀엽게 그리신다.ㅋㅋㅋ

만화를 보니 어릴 때 오리지널 설정북이 떨어지도록 수십번을 읽고, 미션을 여러번 깬 나인데도 정주행을 하지 않아서인지 놓치고 있던 놀라운 포인트가 몇 개 있었다.
주말 새벽에 보다가 설레서 일어나 미션 깰 뻔 했다.

테란 주제곡은 언제 들어도 가슴이 웅장해지니 꼭 틀어놓고 보자.

독방

권해효가 읽는 고바야시 다키지의 독방

이 책을 고른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COVID-19의 영향으로 교보도서관에서 무료로 책을 대여해주길래 살펴봤는데, 다른 책들은 이미 도서 구독서비스를 2개나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겹치는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평소 맘껏 들을 수 없는 오디오북들을 살펴봤다.
무엇보다 최근까지의 상황이 독방이라는 제목과 어울렸고 권해효씨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책을 대여했다.

책을 듣기 전 고바야시 다키지라는 저자에 대해 잠깐 찾아보니 일본의 프롤레탈리아(Proletarier) 문학가라고 한다. 사실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대해 잘 몰라서 맛이나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잘은 몰라도 노동자 계급에 대한 핍박과 공산주의 믿음에 대한 찬양 그리고 투쟁에 대한 알싸한 맛이 날 것 같았는데 곁들여지는 1900년대 초의 일본 냄새도 좀 맡아보고 싶었다.
나는 한국인으로서 근현대사를 배운 터라 당시의 일본인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반감이 감정선에 닿아있어 일본인의 입장에서 쓴 당시의 생활상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도 조금 있었던 셈이다.

글은 생각보다 조촐했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나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대해 잘 모르지만, 사상이나 당시의 시대상을 다루기보다는 고바야시 다키지 개인이 수감하여 느끼는 인간의 비애와 소박한 감정에 대하여 느낄 수 있었다. 오디오북 전체도 1시간으로 짧고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지만 토막글이어서 대중교통에서 듣기에도 좋았다. 작가의 담백함과 솔직함이 맘에 들어서 대표작이라는 게잡이 공선(=게공선)도 읽어보려고 마음 먹었다.

추가적으로 이 오디오북을 통해서 컴북스의 100인의 배우 오디오북 시리즈(우리문학, 세계문학)를 알게되었는데, 나중에 구입해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권해효씨가 전문 성우가 아니다보니 호흡과 연기가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익숙한 음성으로 듣는 것 그 자체로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매일 작은 시간을 할애해 발성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책을 나만의 오디오북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작은 프로젝트도 다짐했다.

※ 고바야시 다키지는 시간이 흘러 공산주의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실패하게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보통의 변화는 이런식으로 휘청휘청 흘러가는데 운동가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하나의 이상을 향해 자신의 목숨을 불태우는 걸까?

위대한 낙서전 – Take Me Out

위대한 낙서전을 봤다. // 2018.08.23 – K현대미술관

요즈음에는 예전처럼 전시가 막 땡기는 것은 아니지만 K현대미술관에 가보지 않아서 한번 방문해보고픈 맘이 있었고, 실은 압구정도 한 바퀴 돌고 싶었다.

나는 그래피티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래서 전시에 관해서 딱히 할 말은 없다.
나는 모르는 것은 모르는 그대로 느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 생경한 경험 또한 나중에는 다시는 못 느낄 중요한 감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문외한이지만 멋진 색감과 강렬한 것들을 잘 느꼈다.
이번에 느낀건 딱 그정도. 다음에 또 기회가 있어서 보게 된다면 이번에 맘에 들었던 포스터를 그린 작가에 대해 공부하고 갈 것이다.

위대한 낙서전
이 오바마 포스터 완전 맘에 들었다. 엽서를 왕창 사려다가 나는 편지를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손을 거뒀다.

참고로 내가 이 포스팅을 적는 이유는 사실 노래1 때문이다.
전시에 깔린 노래가 더럽게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친구한테 말하는 것이었다면 나는 분명히 더 강렬한 표현을 썼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음악찾기 어플을 깔아 노래 제목을 알아내려고 시도해봤지만, 스마트폰에 당장 지울 수 있는 것들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집에 돌아와 녹색창에 대차게 검색을 해봐도 이 노래를 언급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
불행 중 다행인지 하루의 1초를 남기기 위해 짤막하게 찍은 동영상과 Shazam의 도움으로 이 노래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특히 중간의 기타 독주가 맘에 든다.


  1. Franz Ferdinand – Take Me Out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트로이메라이

슈만의 Träumerei는 독일어로 공상, 몽상등을 일컽는 단어라고 한다.
찾아보니 ‘꿈을 꿈’이라는 설명도 있었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트라이메라이는 단순한 연주라기보다는 한 편의 인생 이야기 같다.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난 뒤 여든이 넘어서야 고국 땅을 밟을 수 있게 된 호로비츠. 자신의 천재성은 체제 선전의 도구로 사용되었고, 그 상황 속에 호로비츠는 고향 땅에서 연주하는 꿈을 꿀 수나 있었을까?

슈만이 자신의 어린시절을 회상하면서 만든 곡인 트라이메라이를 연주하는 호로비츠의 심정은 어땠을까.

한 노인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그의 얼굴에 내리는 듯하다.

스타크래프트

올 8월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발매일을 시점으로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와 스타크래프트2의 캠페인을 재미있게 즐겼다.

예전에 클리어했던 ‘자유의 날개’는 기억을 되살려줄 정도의 캠페인만 선별적으로 골라 플레이했기에 정주행이라고 부르기에 조금 모자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요즘의 나는 취미 생활을 흩뿌려놓았다고 말할정도로 여기저기 흥미가 많은지라 취미가 뭐냐고 물었을 때 오히려 대답하기 곤란한 편인데 스스로가 스타크래프트 덕후라는 점은 매우 힘주어 말할 수 있다.

어릴 적에 도깨비 시장에 가서 여러가지 게임들과 데모 버전이 뒤섞여 있는 CD만 구입하던 내가 난생 처음 구입한 정품 타이틀이 바로 스타크래프트 오리지날이었다. 조그마한 아이가 큰 타이틀을 끌어안고 엄마한테 앞으로 다른 어려운 부탁은 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던 풋내나는 기억이 막 떠오르는 참이다. 그러고보니 그 시절 기억 속에서는 엄마도 참 젊었다.
함께 동봉된 메뉴얼을 수차례 읽었기에 보통은 잘 모르는 스타크래프트 세계관에도 유달리 관심이 많았다. 요즘에야 덕질하기에 좋은 콘텐츠가 여기저기에 넘치지만 그 때는 개인들이 나모웹에디터로 어설프게 만들어 여기저기 깨지기 일수인 홈페이지에 자료를 읽고 또 읽고 매일 매일 방문하면서 새로운 정보가 업데이트되기만을 기대하던 시절이었다. 하루는 어느 책방에서 스타크래프트 관련 소설을 찾았다. 그 내용이 공식 설정과 많이 달라서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책을 놓았는데 지금 보면 그게 일종의 동인지같은 것이었나보다.

시간이 흘러 스타크래프트2의 발매 소식을 들었다. 난 제4의 종족 젤나가가 나오기를 마음 깊이 기대했었다. 단지 친구들과 대전만 즐기는 수준을 넘은 진성 덕후였으므로 내가 알고 있는 세계관 속의 그들을 조작하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에 한스타를 통해 싱글 미션도 틈날 때마다 플레이했던 기억이 난다. 영어를 잘 못해서 그저 눈치로만 상황을 느끼며 해보기도 하고, 다시끔 한스타를 통해 플레이해고,중간 중간 추억을 되살려보기 위해 플레이도 해보고…
그리고 이번에 한국 성우들이 녹음한 리마스터 버전까지 싱글 미션을 꽤나 많이 플레이해봤다.
학교 다닐 때는 친구들과 리그도 만들어서 방과후에 경기도 하고, 다른 반 친구들과 게임으로 교류도 많이 했다. 매번 방학 때면 브레인 서버에서 래더 아이디를 걸고 길드를 부수고 다니는게 취미이기도 했다. 정말이지 스타크래프트는 내게 정말 의미있는 게임이다. 유치하고 순수한 내 어린날에 이 녀석이 함께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 세대에 나와 같은 사람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피씨방을 주 무대로 스타크래프트 – 디아블로 – WOW순으로 옮겨나는 블리자드의 학업 망테크를 탄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나야 디아블로를 한참 하다가 컴퓨터 사양에 부딫혀 스타를 계속 한 것이 중학교 교우관계까지 연결되어 스타크래프트의 고인물 한 층을 담당하게 됐다.

리마스터와 스타크래프트2 캠페인에 대한 감상은 다음에 이어 적도록 하겠다.

2018.08.12 :
나이가 들면서 열정을 쏟을 대상은 현실 세계에 한정하고, 게임은 순전히 즐기기만 하기로 맘을 먹었다. 그래서 전략 게임이라기보다는 피지컬 게임이 된 스타크래프트 래더에는 더 이상 흥미가 가지 않는다. 또한 밸런스 패치가 없어 전혀 새로울 게 없는 까닭도 있다. 리마스터되어 새롭게 보는 맛에 살아났던 팬심이 신선함과 함께 시들었다. 한동안은 재미있어 몇 시간씩 하기도 했는데 이도 반복된 게임 양상에 곧 지겨워졌다. 차라리 리메이크였다면 어땠을지 궁금하다.
아무튼 이제 다음에 추억을 다시 소환할 때가 되어야 다시 설치하게 될 것 같다.
하지만 미션을 외국어 학습 재료로 사용한다거나, 리그 방청 정도는 기회가 되면 언제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요즘에는 스타2 협동전을 해 왔는데, 이마저도 업데이트가 늦어 친구와 한 주에 하나씩 돌연변이를 깨는 것 이상으로는 하지 않고 있다.

지그문트 그로븐 하모니카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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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 IBK 챔버홀에서 하는 지그문트 그로븐( Sigmund Groven) 하모니카 콘서트에 다녀왔다.

나는 하모니카 연주가 낯설다.
어렸을 적 외갓집에서 하모니카를 발견하고 외삼촌들에게 몇 번 불어달라고 졸라서 짧은 몇 마디의 음을 들어봤던 게 전부다. 나도 하모니카를 조심스럽게 몇 차례 입에 대보기는 했지만 그 뿐이었다. 그 하모니카는 그다지 위생적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머리속의 하모니카는 ‘삑삑-‘터져나오던 외마디 기억이 전부이다. 그런데 하모니카로 콘서트를 한다니… 포스터 속 할아버지1는 얼마나 대단한 연주를 하기에 저런 미소를 지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

결과적으로 썩 좋았다.
사실 1부는 좀 무료하게 흘러갔다. 교양머리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처음 잠시 동안은 노르웨이 할아버지가 옥수수를 힘차게 입에 물고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이 새로운 악기에게 머리 속 공간을 내어 줄 시간이 좀 필요했던 것 같다.
스스로에게 “악기란?”이라는 질문을 던지면 난 크게 아래와 같은 추상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피아노(건반악기). 물방울 위를 통통 뛰며 걸어가는 애들.
바이올린(현악기). 구슬프게 우는 애들.
드럼(타악기). 심장 소리처럼 뛰는 애들.

그런데 그 동안 내게는 관악기에 대한 이미지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모니카 연주를 들으며 ‘이 음색은 무엇과 닮아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우선 하모니카도 처연하게 울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하모니카는 소년과 목동들의 발랄한 도구라는 내 머리 속 벽이 조금씩 허물어졌다.
그리고 때로는 청명하게. 하모니카는 새들의 지저귐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1부 말미에 아리랑을 들으면서부터는 그저 음악 그 자체만을 온전히 들을 수 있었다. 국악 소녀 송소희를 옆에 데려다놓으면 정말 멋질 것 같았다.

2부는 아코디언 연주와 함께 시작되었는데, 멋진 신사2가 갑옷처럼 아코디언을 두르고서는 등장했다. 오른손으로는 건반을 현란하게 두드리고 왼손의 베이스로는 웅장한 숨을 토해냈다.
쫙 빼입은 검은 양복만큼이나 기럭지도 쫙 빠져서 양손으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모습이 마치 좌청룡 우백호를 채찍처럼 휘두르는 전사같아 그저 숨죽여 지켜보았다.
게다가 터키 행진곡3이라니! 운동할 때 듣는 리스트 중 하나라 매일 듣는 곡인데 여기서 만나다니 반가움과 감동이 밀려들었다.

다른 하모니카 연주곡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노르웨이의 민요인 Varsog였다. 이 곡은 우리에게 익숙한 곡이기도 한데, Henning Sommero를 시작으로 Multicyde – A Better Day. 그리고 한국에서는 JTL – A Better Day로 이어지는 곡이다. 어려서부터 이 곡의 전주가 너무 좋아서 원곡까지 찾아 듣고는 했었는데 여기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어느 힘든 날 고개를 들어보니 너무도 아름다운 석양을 하늘에 걸려있는 걸 보았을 때 느낀 그런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참고로 나는 세 곡 중에 Multicyde의 곡을 제일 좋아한다.

그렇게 멋진 공연을 마치고 두 차례나 더 앵콜 무대를 보여준 하모니카 할아버지께 경의를 표한다.

연주를 듣고 나오는 길의 음악 분수에서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나오고 있었다.


  1. 지그문트 그로븐은 노르웨이에서 1946년에 태어났다. 한국 나이로 이미 70대이다. 
  2. 마티나스 레비츠키(Martynas Levickis) 
  3. Mozart Piano Sonata NO. 11, 터키풍으로 혹은 터키행진곡으로 불린다. 

에투알 갈라쇼(Gala des Étoiles)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16관, 2016년 6월 14일 19:00

라 스칼라 극장(Teatro alla Scala)에투알 갈라쇼(Gala des Étoiles)를 보았다.
에투알 갈라쇼는 MOOV Culture – Opera in Cinema 시리즈 중 하나로 상영 정보는 콘텐숍에서 확인가능하다. 처음에는 이름이 예뻐서 신사역의 브로드웨이로 가려고 했는데, 상영관이 작다는 얘기를 듣고 롯데월드몰로 갔다. 서울에서는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월드타워, 홍대입구가 접근성이 좋은 것 같다.

Opera in Cinema

 

에투알 발레 갈라쇼는 2015 밀라노 세계 박람회 폐막을 축하하기 위한 공연이다.

감상 전에 간단히 갈라쇼 프로그램의 제목만 살펴보고 갔다.
초심자로서 새로운 것을 접할 때 아무런 사전 정보없이 느끼는 그 첫느낌을 개인적으로 좋아하기 때문이다.

<카르멘>, <돈키호테>, <로미오와 줄리엣>, <스파르타쿠스>등의 대중적인 것들이 눈에 띄었다.

몸이 피곤한 하루였던지라 처음에는 잠이 올 것 같아서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병든 장미>를 보면서부터 서서히 집중이 되기 시작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왜 저렇게 빙글 빙글 도는 걸까?’ 라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그 모습에 어떤 객관적인 미가 있을지 찾고 있었다.
그런데 음악에 취한 탓인지, 아니면 배우들이 보여주는 기예에 가까운 몸놀림에 경탄을 했기 때문인지 어느 순간부터 그 모습이 아름다워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부분이 아름답다고는 딱 잘라 말하지 못하겠다. 발레라는 장르를 보는 눈이 부족하기 때문에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아름답다 혹은 우아하다, 힘이 느껴진다 그리고 멋지다.’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 돈키호테의 이반 바실리예프(Ivan Vasiliev)는 마치 하늘을 나는 것과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정말 순수하게 저런 몸놀림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경탄했다.
그외에는 <카르멘>의 연기와 <빈사의 백조>, <병든 장미>등이 맘에 들었다.

다음번에는 더 심도있는 감상을 할 수 있게 되기를 스스로에게 기대해본다.

참고로 이건 백스테이지 라이브 영상

에투알 갈라쇼 프로그램
<세개의 서곡 THREE PRELUDES> 루치아 라카라, 말론 디노
<마농 L’HISTOIRE DE MANON> 멜리사 해밀턴, 클라우디오 코비엘로
<병든 장미 LA ROSE MALADE> 마리아 아이히발트, 믹 제니
<그랑파 클래식 GRAND PAS CLASSIQUE> 알리나 소모바, 레오니드 사라파노프
<카르멘 CARMEN> 폴리나 세미오노바, 로베르토 볼레
<빈사의 백조 LA MORTE DEL CIGNO> 스베틀라나 자하로바
<돈키호테 DON CHISCIOTTE> 이반 바실리에프, 니콜레타 만니
<이슬비 LIGHT RAIN> 말론 디노, 루치아 라카라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E GIULIETTA> 마시모 무루, 마리아 아이히발트
<스파르타쿠스 SPARTACUS> 마리아 비노그라도바, 이반 바실리에프
<프로토타입 PROTOTYPE> 로베르토 볼레
<해적 IL CORSARO> 레오니드 사라파노프, 스베틀라나 자하로바
<시간의 춤 LA DANZA DELLE ORE>

동치미

2016년 6월 10일 오후 3시, 대학로 예그린씨어터.

아내를 따라 6일만에 세상을 버린 어느 시인의 실화를 담아냈다고 한다.

나로서는 그것이 그리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실제로 노부부들은  한 분이 세상을 달리하면, 남으신 분께서도 쉬이 돌아가시는 것을 실제로 듣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별이라는게 세상의 순리인 줄 알면서도 작은 이별조차도 마음에 얼룩을 남기는 게 사람의 정이다. 하물며 한 평생을 함께 한 그(녀)의 잃은 고통은 얼마나 클 것이며, 세상의 살아가야 할 큰 이유가 저물어 버린 것이 아닌가.

한번은 그런 적이 있다.
암으로 투병하시는 외할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맘이 쇠하여 몸까지 약해질까봐 비밀로 했기에 그때 당신께서는 암에 걸린 것을 모르셨는데

“내가 몸이 많이 안 좋은 것 같아. 얼마 살 것 같지가 않아. 그런데 너이 할머니을 두고 어찌 죽냐. 어찌 죽어. 너희 할머니 나 없으면 안되는데.  나도 너 할머니 없으면 못 살고. 그래서 어떻게든 아파도 참고 참고 살아야 하는데.

우린 같은 날 죽어야 해”

이 소리를 듣고서 너무 가슴이 아파 소리를 내지 않고 채 눈물을 흘리는데, 당시에 합병증으로 외할아버지 눈이 잘 안보이시던게 그때만큼은 그리 고마울 수가 없더라.

실은 나도 비슷한 맘을 가지고 있었기에 놀라운 면도 있었다.
사랑의 정의에 대해서는 각자의 믿음과 선호라는 것이 있다지만, 그래도 진짜 사랑이라는 단어에는 설렘이나 욕망이라는 치기어린 가치가 아닌 믿음이나 숭고함이라는 더 격이 높은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고.
그래서 아무나 닿을 수 없고, 진정으로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인생에서 한번 추구해 볼만한 가치라고.

아무튼 그렇게 공감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는지 정말 감동적으로 보았다. 사실 영화든 극이든 뮤지컬이던 콘텐츠를 계속 접하다 보면 연출이라는 부분이 저절로 눈에 익어서 마음으로만 ‘슬프다 슬프다’하고 마는 경우가 있는데, 정말이지 눈물이 나왔다.

정말 소중한 게 뭔지도 모르는 자식들이 미웠고, 자식을 위해서 자존심도 돈도 내어주는 아버지가 영민하지 못해 보여 미웠고,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하고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가 최우선인 어머니가 미련해보여서 미웠다.

하지만 또 그 모습들이 주변의 현실들과 겹쳐보여 미워도 도무지 미워지지가 않았다.
두 노부부가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툴툴대는 얼굴 위로 드러나서 오히려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미운 맘과 사랑스러운 맘이 섞이어 그냥 슬펐다.

가족들에게 잘해야지.

  •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기에도 인생은 참 짧다’라는 얘기도 기억에 남는다.

엄마가 낳은 숙이 세 자매

※ 극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감상 예정이신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대학로 선돌극장, 2016년 6월 08일 오후 8시.

치매 걸린 어머니와 세 딸에 관한 이야기라는 사전 정보만 얻고 관극을 했다.
나 역시 치매를 앓으셨던 할머니와 수년간을 힘겹게 보낸 경험이 있기에 특별히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있을거라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치매는 장치이고, 이 극은 상처에 관한 이야기이다.
상처가 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일뿐만 아니라, 해소되지 못한 상처 위에 적당히 거죽을 덮고 또 다시 덮어서 종국에는 거기에 찬 고름이 스스로를 서서히 확장시켜나가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제 속내를 한꺼풀, 한꺼풀 벗겨 보여준다.
나는 처음 극이 시작하고 엄마와 세 딸이 처음 등장할 때, 제 정신이 아닌게 대체 누구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하나… 둘… 셋. 넷?’
그도 그럴 것이 세 딸들은 엄마 점순이에게 점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점”은 하나의 상징인데, 나는 이것이 상처와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나이를 들어가면서 스스로가 싫어했던 부모님의 모습을 닮아간다고 하지 않은가. 가족간에는 상처가 유전된다는 말처럼 해소되지 못한 고통은 흑사병과 같은 위험성이 있다.

그 시작은 어디일까?
아마도 극의 종반에 드러나는 점순이의 성폭행 피해 경험일 것이다. 그래도 점순이는 남편 명식을 만나 새로운 꿈을 꾸었다.
명식이 해외로 나간 틈에 중국집 주인 놈에게 범해지기 전까지는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일정보다 일찍 돌아온 명식에게는 뜻 모를 칠삭둥이 딸이 하나 생겼다. 그는 이 사실을 묻었다. 하지만 이 응어리진 아픔을 고대로 묻어두었다가 종종 파내어 다시끔 상기시키고는 했다.
그는 아내를 용서하지 않았고, 둘째 딸이 자신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중국집에서 매번 서로에게 확인시키고는 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용서하지 않은 채로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점순이는 남편이 사라짐과 동시에 치매에 걸려 미치기로 작정했다. 그녀는 세상에 상처 받았고, 발바둥치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고통의 해소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어 버렸기에 미쳐버림으로서 도망치려고 했다.

TV에서 울려퍼지는 우주 다큐멘터리는 우주의 신비에 대해서 일갈한다.
빅뱅은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암흑물질은 얼마나 빠르게 스스로를 팽창시키며 그 심연은 어디까지인지?
한 사람의 끝 모를 고통도 심연과 닮은 구석이 있기에 점순은 그 속으로 ‘훨~ 훨~’날아가고 싶어했다.

그리하여 종국에는 여기저기 다치고 찢긴 세 딸들은 엄마 점순이와 자신들에게 엮은 사슬을 끊어버림으로서 그녀를 자유롭게 놓아 고통의 줄을 영원히 끊어버리고야 만다.

그토록 원하는 것이었으니 점순이는 훨훨 날아갔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