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털 뽑기

잠에서 깼다.
이제 꽤 능숙하게 해내는 편이다만 신경이 곤두선 탓인지 운전을 하고 나면 피로가 몰려온다.
창을 넘겨 살펴 보니 익숙한 풍경에 익숙치 못한 것들이 눈에 걸린다.

마당으로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늘 그렇듯 친척들로 가득 찬 시골은 어딜가나 일거리들이 잔뜩 있는데 이번 풍경은 좀 생소하다.

닭이다. 죽은 닭이다.
모가지가 완전히 꺽인 두 마리의 닭이 커다란 대야안에 들어있었다. 나는 허드렛일을 피할 수 없는 젊은 일꾼이기에 이걸 해야하는건지 고민할 선택지 따위는 없었다. 얼른 장갑을 받아 닭의 털을 뽑기 시작했다.

닭을 잡아본 사람이 없어서 외할아버지께서 손수 몽둥이로 때려 잡으셨다고 하는데, 그 크기를 보니 도저히 맨 손으로 잡을 수는 없을 녀석이었다. 4~5년 동안 자란 한쌍의 닭들은 그 크기가 강아지보다도 크다. 오만상을 하고 닭털을 하나하나 뽑는데 이 털이 내 생각과는 좀 다르다. 무슨 털이 콩나물보다 굵어서 마치 닭의 몸에 박힌 거대한 송곳들을 뽑아내는 기분이었다.

얼핏얼핏 놈들의 대가리를 보니 짧은 순간에 참담한 생각과 기분이 내 머리속으로 엉키어 왔다.

우리가 고기라고 일컫는 것들 역시 살아있던 순간에는 생각을 하고, 감정과 고통 같은 것들을 느끼는 생명체였을 것이 자명하다.
이 흔해빠지고 고리타분한 주제에 대한 생각 뭉터리가 내 머리속을 훝고 지나간다. 사람으로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을 익숙한 고민이기에 생각은 이전에 지나온 길의 흔적을 밟으며 빠르게 이동했다.

사람들이 필요 이상의 육식을 태연자약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죽이고, 베고 손질하는 과정이 남의 손에 맡겨져 있다는 사실이 분명 영향을 끼칠 것이다.

손질은 큰외삼촌이 하셨다.
사람의 몸을 여는 수술 장면을 보면 금새 소름이 끼치고 마는데, 그래도 닭의 손질 과정은 오만상을 하고서라도 지켜 볼 수 있음을 자각하니 뭐라 말할 수 없는 불쾌함과 혼란이 일었다.
그 찝찜함을 떨쳐내기 위해 나는 집으로 돌아와 윌든을 펼쳐봐야 했다.

더 높은 법칙에 관한 이야기.
사냥과 낚시에 대해서 다룬 장이다. 어려운 글은 아니지만 담담하게 진실된 것들을 말하는 윌든은 내게 평화를 안겨줬다. 몇번을 읽은 글이지만 여전히 윌든이 내게 감동을 주는 까닭은 내가 아직 그 가치들을 자연스럽게 내것으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덧. 하루를 잊지 않기 위해 써보는 그날의 하이라이트
– 고추 방아다리 따기.
– 자연산 오디 한 봉지 가득 따서 한웅큼씩 먹어보기.

KB스마트원카드 발급받기

국민은행에서 스마트OTP 3만개를 무료 배포한다는 소식을 듣고 국민은행에 다녀왔다.

원래 토큰형 OTP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 아이를 사용한지 수 년이 지나다보니 배터리가 슬슬 걱정됐다. 수명을 다하여 갑자기 전원이 꺼져버리면 이 OTP로 등록된 모든 은행 지점을 하나 하나 방문해야 할 터였다.
미리 카드형 OTP를 하나 구입해서 교체해야겠다라고 생각 중인 와중에 스마트OTP(=KB스마트원카드) 무료 배포 소식을 듣고 고민할 틈도 없이 냉큼 국민은행을 방문했다.

현재 KB스마트원카드는 서울 지역 30개 영업점에서만 발급가능하며, 7월부터 전 영업점에서 발급 가능해질 예정이다. 발급 가능 지점은 아래와 같다.

스마트OTP는 NFC 기술을 이용하기 때문에 안드로이드에서만 사용가능하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KB국민은행 스마트OTP”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받아서 사용하는데 카드를 발급받을 때 차근차근 등록해주시고 사용법도 알려주신다.

KB스마트원카드(스마트OTP)와 기존에 사용하던 토큰형 OTP

아직 타 은행에서는 스마트 OTP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아서 사용할 수 없지만 빠른 시일내에 스마트OTP만으로 금융거래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란

문득 생각이 나서 적어보는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의 기준

어린 시절 존경하던 어른들의 나이가 되고나니, 그 분들조차 이리저리 흔들리는 하나의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동시에 순간 순간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 흩어지는 나날들과 싸우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이제는 그 분들을 어렸을 때만큼 존경하지는 않는다. 대신 전보다 훨씬 더 좋아하게 되었다. 자신을 지켜나가는 모습이 멋있다.

나는 크던 작던 실수가 잦은 편인데, 앞으로도 바보 짓의 연속 일 것 같다. 정말 그렇게 될 것이다. 종종 실수할 것이고, 누군가와는 상처를 주고 받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내 어린날의 이기적인 모습에 얼굴이 붉어질 것이고, 후회로 얼룩지는 날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세상의 많은 문제들을 도덕적으로든, 타인의 감정을 헤치지 않는 방식으로든간에 완벽하게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마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보통의 사람이 그렇게 될 수는 없다.
근래에 특정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는 늘 겸손을 향해 간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문제를 바라보는 이기심을 모두 덜어내고도 한편에서의 정의가 다른 편에서의 정의와 완전히 중첩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 문제에 대해 소신과 겸손한 태도를 갖추고 있을 것. 어떤 문제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정하지 않으면 기계적 중립의 덫에 빠지기 쉽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겸손이란 스스로 공격받지 않기 위한 방어적인 태도와 다르다. 내가 지지하는 의견조차 한편으로는 한계가 존재함을 인지하고 있는 자세를 말한다.

  • 다른 존재에 대해 공감, 스스로의 개선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일 것. 나와 닮은 사람이 완벽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저 나랑 비슷한 부족한 사람일 뿐이다. 나와 닮아있다는 사실은 편안함만을 보장한다.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면 자신과 다른 부분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할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틀림이 아닌 다름의 영역으로 뻗어나가 스스로를 넓혀 성장할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이와 노인이 죽었을 때 어떤 문화권에서는 앞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던 어린 아이의 죽음을 슬퍼하고, 반면 또 다른 곳에서는 노인의 지혜를 잃은 것을 슬퍼한다고.
두 의견 모두 설득력이 있다.

나는 하얗게 태어나 자신의 도화지 위의 그림을 거침없이 고쳐나가는 그런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수술방에서 나왔다

수술방에서 나왔다.

전혀 예정에 없던 수술이었다.
요 1년 사이에 많이 다치는 것이 사람의 운이란게 있는건지, 아니면 내가 정신을 내놓고 사는 건지.

꽤나 조심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다쳤다. 내 눈으로 보아도 상처가 깊어 지혈만 한 체로 병원으로 갔다.

그런데 의사가 보더니 꿰메는 정도로 안되고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순간 아득해져 물으니 몇 주 쉬고 재활을 하면 될것 같다고 했다.
요 몇년 사이 의사들 수십명을 만나보고 다니며 느낀거지만, 의사들은 늘 두루뭉실하게 얘기한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니 단언하지 않는게 당연하다고 생각이 되면서도.. 그래도 싫다.

심전도, 파상풍, 링거, 수술복, 그리고 더해지는 몇 개의 주사바늘들.
처음이 아니라 익숙하면서도 내 몸이 남에게 맡겨지는 느낌이 거북하다.

‘사고로 목숨을 잃는 과정도 순간일테지?’ 그런 생각이 미치자 내가 하루를 견디며 하나 하나 쌓고 있는 모든 것들이 너무 부질 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아픈 몸을 이끌고 글을 적는다.

“순간을 놓치지 말자.”
지금 이 순간의 기분을 잡아두자. 절대 잊지 말자.

생각을 강요받지 않고 정보를 제대로 섭취하기

오늘은 인터넷 여론 알바단에 대한 논쟁글을 봤다.

인터넷 여론 조작에 대해서는 이미 몇 해전 정치 이슈로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나는 그것이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왔고 점점 고도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치 않는다. 본인의 친구 중 한명이 재수 생활을 마치자 마자 구한 일이 모 학원안에서 여론 댓글을 다는 것이어서 오래전부터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 또한 내가 운영하는 작은 커뮤니티에도 종종 같은 ip대의 체계적으로 설계된 홍보 게시물들이 적힌다. 그들의 장기적이며, 일반인처럼 보이도록 메뉴얼화된 글을 읽다보면  나도 다른 곳에서 참 많이 속고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면에서 모 사건은 아주 멍청한 곳에 외주를 맡겼거나, 본인들이 노하우도 없이 진행한 것이 명백하다.

한번은 ‘언론이 정보를 선별하여 대중을 선동하는 법’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다.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말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A와 B라는 작은 나라에 교통사고가 각각 하루 10번꼴로 난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A국의 방송국에서는 매일 한번씩 교통사고가 일어났음을 보도한다. 반면 B국의 방송국에서는 한달에 한번씩 교통사고를 보도한다. 실제로 A와 B의 교통사고 발생 수치는 다르지 않으나 해당 국가의 국민들이 느끼게 되는 체감 교통사고 발생 수치는 크게 차이가 나게된다. 더 나아가보자. A국에서는 교통사고가 하루에 약 10번 발생나고 매일 보도를 한다. 반면 B국에서는 교통사고가 하루에 약 1000번 발생하는데 한달에 한번씩 보도를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작은 교실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스스로 파악하여 올바른 사고와 결정을 내릴 수 있겠지만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은 충분히 크고 벌어지는 일도 매우 많다. 즉, 누군가가 떠먹여주는 정보만을 받아들이다보면 그들이 이미 가공해놓은 생각의 흐름 그대로 따라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거대 포탈의 기사나 지상파 뉴스, 메이저 신문들을 일체 보지 않는다. 덕분에 몇해 동안은 정치적 문외한으로 살아왔다. 큰 이슈가 터질 때마다 자주 들르는 커뮤니티들의 글들을 살펴보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선별된 정보가 아니다. 그곳에도 악의적 목표를 가진 자들이 상주하고, 또한 전혀 심사 숙고되지 않은 감정적 의견들이 난립한다.

결론적으로 요즘 내가 취하고 있는 자세는 다음과 같다.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주는 매체들을 직접 발굴하는 것이다. 특히 유명 블로거들의 글을 좋아하는데 블로거라고해서 다른 매체들에 비해 신뢰성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들도 사회에서는 의사며 기자고 각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몇몇 블로거들은 사건의 흐름을 꿰뚫어 전문가의 시야까지 얹어 깔끔하게 정리해주기도 한다. 물론 글을 쓰는 사람의 의견이 고민없이 그대로 투사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능하다면 같은 주제로 2~3개의 글을 읽는 편이 좋은 것 같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내가 구독중인 RSS 목록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한번 공유해보고싶다.

2016.07.10
최근에는 진보 성향 매체의 글들을 좀 보았는데, 굉장히 실망을 했다. 그래서 요즘에는 좋은 글을 발견하면 글을 쓴 사람의 이름을 알아두고 해당 기자를 검색해서 본다. 이제는 매체에 대한 신뢰를 거두고 개인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 같다.
jtbc도 사실은 손석희씨를 믿고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16.07.27
메갈 관련 보도를 보니 jtbc도 크로스체크 안하는 것으로 보인다.
팩트 체크라는 책도 내더만 방송하기전에 사실 관계 크로스 체크도 안하는 걸 보니 저딴 것도 언론인가 싶다. 장담하건데 한국에는 신용할 만한 언론이 단 한개도 없다. 그냥 레퍼런스 체크하면서 직접 알아보는게 낫다.

이성혐오(여혐, 남혐)를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생각의 점화는 무한도전의 식스맨으로 거론되던 장동민의 여성 비하 논란에서 이뤄졌다.

사실 이성을 혐오하는 분위기에 대하여 오래전부터 느끼고, 흥미를 느껴왔다. 몇몇 철학적인 문제들은 고민을 해도 도저히 답이 나올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는 반면, 이 문제는 치열한 논쟁 뒤에 그 원인과 지향할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해야겠다.

그럼에도 관련된 글을 적기는 쉽지 않다.
나는 남성이라는 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경험적으로나 사고 방식에 있어서 어떤 식으로는 편협해질 수 있다는 성찰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 차이를 메꾸기 위해서 틈이 날 때면 관련된 도서를 읽고 객관적이라고 여겨지는 자료들을 모아보고는 했다. 그 후 이성 혐오 현상에 대해서(추가적으로 남과 여의 차이) 한 두개의 포스팅으로는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성 혐오 문제는 큰 사회적 문제임과 동시에 태초부터 가장 오래된 두 집단의 감정 싸움을 조장하는 성격을 띄기 때문이다. 그 원인이 어디에서 왔던 감정적으로 격양된 양측 모두를 설득하는 합리적은 글을 짜내기 위해서는 하나 하나의 문장에 수십개의 변이 붙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오늘은 ‘이성 혐오를 대하는 개인의 올바른 자세란 무엇일까?’에 관한 내 개인적 의견에 대해서만 적어보려고 한다.

위에 적어놓은 것처럼 이성 혐오는 남성과 여성 두 집단간의 감정적 싸움처럼 보이는 일면이 있다. 여혐은 남혐을 낳고, 남혐은 여혐을 낳는다.  상호간의 부정적 피드백으로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간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따지는 것은 제쳐두고 스스로 이것을 끊어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신의 태도를 정하는데 있어서 이성 혐오의 발생원인이 사회/심리학적으로 무엇이 있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혹자는 상대 성의 폭력에 대한 피동적인  자세가 아니냐고, 사회적 문제로 바라보고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지탄할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누군가와 싸웠다면 서로의 잘못을 인정/이해하면서 사과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오해했던 원인이 사라진다고 해도 관계는 나아갈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선량한 사람들까지 싸잡아 비난하며 서로간에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또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 역시 우리들이기 때문에 관계의 회복없이  사회적 인식을 개선시키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다.

글을 쓰는 재주가 없어 결론을 요약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집단으로 묶어 전체를 비난하는 태도를 가지지 말자.
집단에 속한 다수가 비난받아 마땅한 태도를 가졌다면, 비난의 화살은 그 다수에게 향해야 할 것이다. 죄없는 사람들을 욕하고 싶지도, 또한 누군가를 편협한 시야를 가진 사람이 아닐까 의심하고 싶지도 않다. 반대로 나 역시 편협한 생각에 갇혀 살고 싶지도, 까닭없이 비난 받고 싶지도 않다. 문제의 해결을 지향하고 편협한 사람들의 폭력적 시야에 스스로가 파괴되지 않는 방법은 ‘스스로가 괴물이 되지 말 것이며, 또한 모든 사람을 괴물로 보지 않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 욕설이나 비아냥이 아닌 건설적인 토론은 지향하니, 저와 다른 생각에 대해서는 언제든 댓글 달아주시면 감사한 마음으로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었습니다.

오래된 피처폰 정리

왼쪽 두번째부터 와인폰 4(LG-KU2800), 와인폰 2(LG-KV3900), SCH-C280, sky 로맨틱웨이브 (im-s300). 맨 왼쪽은 현재 사용중인 베가 LTE-A

내 방에 고이 모셔뒀던 피처폰(Feature Phone)을 정리하기 위해 꺼냈다. 총 4대가 있었는데 그 중 2대는 와인폰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와인폰 시리즈의 두번째/네번째 폴더폰이고, 나머지 두개는 2g 반자동 슬라이드 폰이다.

사실 4대 모두 내 휴대폰이 아니다. 저중에 애니콜(SCH-C280)은 엄마가 사용하던 휴대폰이고 나머지는 모두 아빠가 사용하던 휴대폰이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휴대폰이 없었는데… (뭐, 학창시절에는 부모님이 요금을 내주는 것이니 ㅠㅠ)
이 자리를 빌어 간략히 내 휴대폰 역사를 살펴보자면! sky 휴대폰을 군 입대전에 한 대, 군 제대 후에 다시 또 한 대, 그리고 다음부터는 스마트폰으로 넘어와 모토글램.  그 후부터 디자이어hd(일명 옹이), 베가R-3, 베가 LTE-A 순으로 사용했다. 돌이켜보니 모두 저렴한 녀석들로만 사용했다. 스카이 휴대폰은 하얗고 예뻐서 참 좋았고, 모토글램과 디자이어hd로는 롬질을 어마어마하게 했다. 사실 그 전까지는 내가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가장 전문적인건 포토샵이었는데 그때의 롬질이 기덕이 되는 첫번째 관문이었던 것 같다. 그후에 베가 브랜드를 구입하면서부터는 성능이 훌륭해서 특별히 루팅을 하지 않았다. 대신에 Nook HD 시리즈와 갤럭시 노트8을 어마어마하게 혹사시켰음은 부인하지 않겠다.
쓸데없는 말이 길어졌는데.. 아무튼, 이 4개의 피처폰은 내 휴대폰이 아니지만 틈만 나면 내가 가지고 놀았기 때문에 모두 정감이 가는 녀석들이다.

당시의 내게는 백업 개념이 부족했던 탓에 피처폰안에는 사진과 문자 들이 고스란히 잠들어있었다. 끽해야 250×300 정도되는 해상도의 사진들. 그리고 문자가 부족했던 내가 아빠 휴대폰으로 친구들에게 보낸, 우리 가족이 힘들었던 시기에 서로에게 보낸 문자들. 사라지지 않고 잠들어 있던 기억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끔찍하게 설계된 UI조차 왜 이리 익숙한지 바로 어제 쓰던 것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한 손에 꼭 맞게 쥐어지는 느낌이 너무 좋다. 폴더폰을 여닫는 소리와 쫀득하게 올라가고 내려오는 반자동 슬라이드는 그 자체로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줬다. 그래서인지 당시에는 휴대폰을 던지고 노는 손버릇이 있었다. 요즘 휴대폰에 비하면 무쇠처럼 튼튼하기 때문에 한두번 떨어뜨리는 건 걱정도 되지 않았다. 이 손버릇을 한동안 고치지 못해 스마트폰을 몇번 땅바닥에 쳐박았던 기억이 있다.

오랫만에 꺼내보는 휴대폰들이 너무 반갑고 좋았다. 그래서 계속 그냥 남겨둘까도 잠시 고민했는데, 앞으로 새로운 경험을 충만하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덜어내어 가볍게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진 한장과 동영상 하나로 만족해보려 한다. 물론 사진과 동영상으로 충족되지 않는 날 것의 느낌이 있지만 살다보면 절대 버려지지 않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고이 간직하는 것들은 그것들로 한정하려고 한다. 너무 무거우면 다음 행선지까지 가기 힘들잖아.

사실 이번에 정리하는 피처폰들은 5년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이토록 옛스러운 물건이 되어버렸다. 세상이 변해가는 속도가 정말 빠르다.

참고로 피처폰에 있는 사진과 동영상을 백업하려거든 블루투스 기능을 적극 활용하면 좋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최신 스마트폰과 연결이 잘 되지 않는 기종은 다른 피처폰을 경유하는 방식을 이용하면 된다. 블루투스 기능이 없는 휴대폰의 경우에는 24핀 데이터 케이블 USB를 이용해야 하는데 오픈마켓을 잘 찾아보면 우체국 택배(배송비 무료)를 이용하는 판매자가 있다.
처음에는 서비스센터를 이용하려고 했는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요구하는 해지원부 증명서가 통신사 해지 6개월 이내에만 발급 가능하므로 이용할 수 없었다.

오래된 폴더폰은 대부분 해지한 뒤 6개월이 지났을테니 24핀 케이블을 이용해야 할 것 같다.

와인폰 2개1개는(KT의 2g 서비스가 종료되었기 때문에 KT용 2g 단말기는 쓸 수 없게 되어버렸다) 중고장터로 보냈다. 남은 와인폰 1대와 일부 고장이 나버린 두개의 슬라이드폰은 우체국의 중고폰 매입를 이용하려고 생각해봤는데 알고보니 우체국이 그저 다른 민간 업체의 업무를 대신해주는 것이었다. 고작 몇 천원에 개인정보 유출 위험을 감수하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 파기해버렸다.

미생 – 그럼에도 살아갈 수 있는 이유

얼마간 드라마 미생(未生)1이 주목을 받았다. 나는 미생을 만화책2으로 보았는데, 드라마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미생을 접하게 되어 참으로 고맙다.

미생은 우리들에게 너만 그렇게  힘든 것은 아니라며 넌지시 위로를 건내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만나는 지친 눈빛. 그 헤묵어보이는 어깨에 위로를 건내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서.
너도 그리고 나도. 모두 위로를 받아서 참 다행이다.

드라마는 오며가며 잠깐씩 본 것이 전부지만 최대한 원작에 가깝게 만들어졌다고 들었다. 특히  “지상파 채널에서 드라마 내의 러브라인을 제안해 거절했었다.”는 작가 윤태호씨의 이야기가 인상적으로 들려왔다.

미생(未生).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주인공 장그래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에서 실패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장그래는 그저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이어야만 했다.
상황 탓으로 돌리자면 그 동안 달려온 자신이 너무도 초라해지고, 스스로에게 미안해지기 때문이다. 그건 너무 아프다.

그렇게 시작된 인턴생활. 그리고 겨우 손에 움겨쥔 계약직.
독자들의 퉁명스러운 불만을 받아내야만 했던 특급 낙하산 장그래였지만, 계약직마저도 한 숨의 공기를 찾아해매듯 몸부림치고 나서야 얻을 수 있었다.

그런 장그래에게도 행운이 있다면 그건 어디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좋은 동료들과 오랜 세월동안 바둑으로 다져 낸 그의 안목이었다. 그런 그의 시선이 우리를 원 인터내셔널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로 이끌어준다.

돌 하나를 깔고 상대의 응수를 기다리듯 이야기는 장그래에게서 다른 인물에게로 차례차례 옮겨간다.
회사에서 받는 그 어떤 수모보다도 무거운 가장의 무게. 이성의 끈이 끊어지도록 팽팽히 당겨지는 갑을관계에서의 긴장감,  스스로가 누군지 지워내야 할 정도로 계속해서 머리를 채우는 일거리들, 비효율적인 시스템의 틈바구니를 채우는 야근시간.

숨이 턱턱 막혀오고 ‘너는 누구니? 왜 이렇게 힘들지?’ 라는 물음이 던져진다.

자신의 모습을 틀에 부워 제일 작은 톱니바퀴로 만들어낸다. 조금도 크거나 그 모양을 벗어나서는 안된다. 일이란 더 나은 가치를 만들고, 자신을 완성시켜나가는 것이라는 가증스런 말들을 향해 현실이 가래침을 마구 뱉어댄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그 속에서 순간을 놓치고, 자신들이 누군지 잊고만다. 우리 모습은 마치 큰 파도 위에 올라 탄 작은 돗단배같다. 바다를 정복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발디딜 한 켠의 공간만이 필요했을 뿐인데.

그럼에도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희망은 존재한다.
물론 파도가 너무 높아서 희망은 그저 희망으로만 끝날 수도 있다.
그래도 서로 같은 악몽속에 있다는 동질감과 연민은 우리에게 힘을 준다. 그런것들이 우리를 지탱해주는게 아닐까?

결국은 사람이다.

 

덧. 미생을 재미있게 감상하는 몇가지 팁.

  1. 한번에 정주행을 하다보면 녜웨이핑과 조훈현의 대국. 그 각각의 수를 쉽게 지나칠 수 있는데, 기보 해설과 만화속 상황을 연관시켜보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2. 만화책에는 각 권마다 착수, 도전, 기풍등의 부제가 있으며 이에 대한 설명은 각 권 책갈피의 작가 소개란 아래에 적혀있다.

  3. 미생 92수(단행본 6권)에는 BGM이 삽입되어 있는데  이 곡은 Brahms 3번교향곡 3악장 Baby alone in Babylone이라고 한다. 책으로 감상하는 경우에는 음악을 틀어놓고 보면 좋을 것 같다.

4. 작품 초기와 끝날즈음을 비교해보면 작화가 많이 달라지는데 이에 대한 작가의 변은 미생 후기 – 1에서 찾아볼 수 있다.

5. 미생 후기 – 2~5에는 미생 2부를 위한 윤태호 작가의 요르단 여행기가 담겨져 있다.

6. 미생 [ 특별5부작] 사석3도 놓치지 말자.


  1. tvN에서 제작. 매력적인 원작과 만화속 캐릭터들이 화면으로 뛰어나온 것 같은 캐스팅으로 드라마 방영 초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후속작으로 패러디물 미생물이 방영. 로봇 매소드 연기로 유명한 장수원이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2. 다음 웹툰. 현재 1부가 종료되었고, 2015년 봄부터 2부 연재 예정이다. 1부는 다음에서 기간제 유료 방식으로 볼 수 있고, 총 9권으로 된 완간세트도 판매중이다. 
  3.  오팀장(오상식)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담고있다. 오팀장의 눈이 늘 충혈되어 있는 까닭 그리고 영업3팀의 전통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이곳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